노동계, 왜 회계장부 내놓으란 노동부 장관 고발했나
노동계, 왜 회계장부 내놓으란 노동부 장관 고발했나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3.03.21 19:34
  • 수정 2023.03.21 1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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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 노총, 노동부 회계 제출 강요는 노조법·헌법·ILO 위배
“이정식 장관, 노조에 의무 없는 행위 강요하는 불법 행정”
21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양대노총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 등 직권남용 고발' 기자회견에 참가한 양대노총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21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양대노총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 등 직권남용 고발' 기자회견에 참가한 양대노총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양대 노총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을 ‘직권 남용’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정부가 노동조합에게 세부 사항이 적힌 ‘내지’를 포함한 회계장부 제출을 강요하는 건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침해할 뿐 아니라 노조법과 헌법에도 어긋난다는 게 이유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21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조합원에게 열람권이 있는 서류를 정부에 제출하도록 요구했다”며 “1,000명 이상 모든 노조에게 조합원 명부와 회의록, 결산서만이 아니라 지출원장과 증빙자료 등의 내지까지 제출하라는 노동부 요구는 직권을 남용한 노조탄압”이라고 고발 배경을 밝혔다. 형법 123조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의무 없는 일을 강요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최근 노동부는 노동조합 재정에 관한 서류를 복사·사진 등으로 보고하지 않은 노동조합에게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노조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14조 준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정부 요구에 따르지 않는 것은 같은 법 27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본 것이다. 노조법 14조는 재정 관련 장부·서류, 조합원 명부, 규약, 임원 성명·주소록, 회의록을 노동조합 사무실에 비치하도록 하고 있다. 또 노조법 27조에 따르면 노동조합은 행정관청에서 요구할 경우 ‘결산 결과’와 ‘운영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 이를 어기는 노동조합은 최대 500만 원의 과태료를 각각 부과받을 수 있다.

노동부는 이달 15일부터 4월 초까지 자료 제출을 완료하지 않은 노동조합에 과태료 부과 사전통지를 완료할 예정이다. 4월 중순부터는 서류 비치‧보존의무 이행 여부를 확인할 명분으로 현장 조사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조사를 거부‧방해·기피하는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질서위반행위규제법 위반과 공무집행방해죄 등을 적용한다. 노동조합을 상대로 이중삼중의 법적 조치를 취하는 계획이다. 

양대 노총, 회계 제출 강요는 노조법·헌법·ILO 위배

이날 공개된 고발장을 보면, 양대 노총 법률원은 노동부의 회계자료 제출 강요가 직권 남용에 해당하는 이유를 하나하나 따졌다.

① 정부에 보고할 의무, 노조법에도 없어

양대 노총은 무엇보다 “노조법 14조에서 노동조합에 고용노동부 등 행정관청에 보고할 의무를 규정하지 않고 있고, 고용노동부도 노동조합에 보고하도록 요구할 권한이 없다”고 지적했다. 양대 노총 주장대로 현행 노조법 14조는 “노동조합은 조합 설립일부터 30일 이내에 지정된 서류를 작성해 주된 사무소에 비치해야 한다”고 규정할 뿐이다.

양대 노총은 “노조법 14조가 조합원의 명부·규약·회의록·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 등을 주된 사무소에 비치하라고 규정한 취지는 노동조합이 자주적이면서 민주적인 조직의 운영을 위해 해당 서류를 공개하도록 한 것이지, 행정관청이 이를 관리·감독하도록 하라는 것이 아니”라며 “노동부 장관은 노동조합에 의무 없는 행위를 강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21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양대노총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 등 직권남용 고발' 기자회견에서 정기호 민주노총 법률원장의 발언 중 문성덕 한국노총 법률원 변호사가 '고용노동부장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고발장'을 들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21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양대노총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 등 직권남용 고발' 기자회견에서 정기호 민주노총 법률원장의 발언 중 문성덕 한국노총 법률원 변호사가 '고용노동부장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고발장'을 들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② 헌재·ILO에 반하는 노동부의 노조법 활용

노조법 27조를 근거로 노동부가 회계 자료를 요구한 건 “노조법을 위헌적으로 활용 것”이라고 반박했다. 양대 노총은 헌법재판소가 내린 판단을 근거로 내세웠다.

2013년 7월 헌재는 “행정관청이 노동조합에 자료제출을 요구하게 된 사유는 대개가 노동조합 내부에서 요청된 사정, 즉 조합원의 민원 제기 또는 정보공개청구가 있었던 상황 때문이었다”며 “(해당) 법률조항은 모든 노동조합에 대하여 일률적인 보고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관청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보고의무를 부과하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문성덕 한국노총법률원 대표변호사는 “(헌재 판결에 따르면) 노조법 27조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한해 노동조합에게 보고의무를 부과하고 있다”며 “조합원 수 1,000명을 넘는 모든 노동조합에 일괄적으로 회계장부 제출을 요구하는 것은 법률이 노동부에 부여한 권한을 아득히 넘는 일탈행위”라고 말했다. 행정 개입은 노동조합 내부에서 요청할 경우에 사후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내부 요청 없이 사전적으로 정부에서 개입을 하는 건 헌법이 규정한 노동조합 단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아울러 앙대 노총은 노동부가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을 위반한다고 봤다. 한국은 2021년 ILO 기본협약 87호(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을 비준했고, 해당 협약은 작년 4월부터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닌다.

양대 노총은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노동조합의 회계는 그 자율성이 존중되어야 하므로, 정부의 간섭할 수 있는 위험이 수반되는 경우에는 ILO 협약에 위반된다는 결정한 바 있다”며 “만일 사후 보완 수단이 아닌 사전적 개입 수단이거나 보충적이 아닌 적극적인 간섭을 한다면, 노조법과 같은 효력이 있는 ILO 87호 협약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21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양대노총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 등 직권남용 고발' 기자회견에서 강석윤 한국노총 부위원장과 양동규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고용노동부장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고발장'을 들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21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양대노총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 등 직권남용 고발' 기자회견에서 강석윤 한국노총 부위원장과 양동규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고용노동부장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고발장'을 들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③ 재정자료 외부 반출, 조합원에게도 인정되지 않아

복사, 사진 촬영 등으로 회계 자료를 제출하라는 노동부의 요구는 법원 판례에 비춰보더라도 타당하지 않다고 양대 노총은 주장했다. 2016년 10월 서울고등법원은 설령 조합원의 요구일지라도 노동조합이 재정 자료를 복사해줄 의무는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당시 법원은 △노동조합의 재정에 관한 자료의 등본을 외부로 반출할 권리까지 조합원에게 보장돼 있다고 볼만한 규정이 노조법에 없고 △노동조합의 재정에 관한 서류를 외부로 반출하면 조합원이 아닌 자에게 관련 서류가 유출될 수 있어 노동조합 운영 등에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판단했다.

정기호 민주노총법률원장은 “노동부가 (회계 장부) 속지까지 제출토록 하는 것은 조합원에게도 요구되지 않는 등사청구권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월권행위”라고 지적했다.

④ 법이 보장하는 ‘노동조합 자주성’ 침해

양대 노총은 노동부의 회계 자료 제출 강요를 두고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의 취지에서 도출되는 노동조합 자주성 원칙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위법한 요구”리고 비판했다. 헌법은 노동권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있고, 이를 구체화한 노조법 2조는 노동조합을 ‘자주적 단체’로 정의한다. 

정기호 법률원장은 “단순히 사용자뿐 아니라 국가도 노동조합 활동에 개입할 수 없다는 게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의 본질적인 의미”라며 “결국 노동부가 재정 관련 서류를 제출토록 하는 것은 노동조합 운영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대 노총 법률원, 전면적 법률 지원 예정

양대 노총은 노동부로부터 과태료 부과 대상으로 지목된 산하 노동조합에 대한 법률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문성덕 변호사는 “한마디로 총연맹이 모든 것을 책임질 것”이라며 △과태료 부과 사전통지에 대해서는 의견진술 요구 △과태료가 부과되면 60일 이내에 이의제기 △과태료를 부과하는 약식재판에 대해서는 7일 이내 이의신청 △과태료를 부과하는 법원 재판이 내려진다면 1주일 이내 즉시 항고 등을 진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문성덕 변호사는 “노동부는 불법 부당한 관행 개선을 통해 노사법치주의를 확립한다며 노사관계에 때아닌 법치주의를 들먹이고 있다”며 “그러나 법치주의는 노동부를 비롯한 행정부가 공권력을 행사할 때 법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이다. 양대 노총 법률원은 노동부에 법치주의가 확립될 때까지 법률 투쟁을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1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양대노총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 등 직권남용 고발'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21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양대노총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 등 직권남용 고발'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