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명동성당 투쟁 20년, 이주노동자 현주소는?
고용허가제·명동성당 투쟁 20년, 이주노동자 현주소는?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3.03.23 15:49
  • 수정 2023.03.23 15: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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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서 젊은 노동자 데려와 힘없어지면 돌려보내는 ‘착취 순환’ 계속
이주노동자 조직 소극적이었던 노동계··· 성찰하고 나아가야

[리포트] 사업장 이전 제한되는 이주노동자, 노조마저 외면한다면

19일 서울역 광장에서 진행된 ‘2023년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기념대회’에서 만난 라나 씨. 라나 씨는 이주노조 조합원이다.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2023년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기념대회에서 90년생 라나 씨를 만났다. 10년 전 E-9(비전문취업) 비자로 한국에 온 라나 씨는 가구공장에서 일하다 허리를 다쳤다. 가구 조립은 허리에 무리가 가니 본드를 붙이는 공정으로 바꿔달라고 했지만 사장은 안 된다고 했다. 참고 일하던 라나 씨는 사장에게 다른 사업장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열이 받은” 사장은 “너 지금 다른 데 가고 싶어서 이러는 거냐”라며 라나 씨를 몰아세웠다.

이야기를 듣던 라나 씨의 동료도 사장에게 맞은 적이 있다고 했다. 주말에 이어폰을 끼고 드라마를 보며 쉬고 있던 중 부르는 소리를 못 들었다는 이유였다. 쉬는 날 사장이 하라는 일을 무급으로 한 적도 있었다. 그들은 같은 사업장에서 일했다. 라나 씨와 동료가 이런 사업장을 벗어나고 싶어도 E-9 비자를 가지고 사업장을 바꾸려면 사장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지금 라나 씨는 E-7(외국인 숙련기능인력 점수제) 비자를 받아 비닐 압축공장에서 일한다. 반장도 맡았다. 라나 씨는 비자 문제만 빼면 한국이 좋다고 했다. 어렵겠지만 나중에 가족을 한국으로 데려와 함께 사는 것이 라나 씨의 바람이다. 라나 씨는 “한국에 있으면 어디라도 일하고 돈 벌 수 있어야 한다”며 “어떤 사람이든 회사를 일부러 그만두지 않는다. 어려운 문제 생기면 그만두는데, 우리는 그런 자유가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사장님이 허락 안 해 주면 못 간다. 그것 때문에 힘들게 일하고 욕도 먹고 이것저것 많은 경험을 한다”고 말했다.

20년 된 고용허가제
사업주 위한 설계 그대로

“일할 사람이 없다”는 현장의 아우성에 정부가 찾은 답은 이주노동자였다. 올해는 11만 명의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온다. 고용허가제가 도입된 이후 역대 최대 규모다. 조선업 등 인력난이 극심한 업종에는 별도 쿼터도 만들었다. 고용허가제는 비전문취업비자로, 한국은 아시아 16개국과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고용허가제 이전엔 산업연수생제도가 있었다. 1994년 운영을 시작한 이 제도의 취지로 정부는 ‘저임금 노동력 공급, 미등록 이주노동자 감소와 함께 산업기술 관련 개발도상국 국제협력 강화’를 내세웠다. 산업연수생제도를 통해 한국으로 온 노동자들은 노동자가 아닌 산업‘연수생’이라는 이유로 노동법에 적용받지 못했다. 저임금 등을 버티지 못한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을 이탈하자 정부는 2년 연수+1년 노동자에서 1년 연수+2년 노동자로 제도를 바꿨지만 큰 효과가 없어 고용허가제가 2004년 고안된다.

김용철 금속노조 대구지부 성서공단지역지회 노동상담소장은 지난달 28일 진행된 ‘이주노동자 조직화 어디까지 왔나?’ 토론회에서 고용허가제를 두고 “명칭에 나와 있듯 사업주를 위해 설계된 제도”라고 말했다. “사업주는 고용의 모든 허가권을 쥐고 이주노동자들의 직장 선택을 통제해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강제한다”는 게 김용철 노동상담소장의 생각이다.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은 3년 동안 3회(이후 2년 동안은 2회) 사업장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이주노조를 비롯한 노동계가 지적해왔듯 사업장 이동은 사업주 동의 없인 어렵다. “비전문인력 정주화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고려”해 국내 체류기간도 제한된다. 현재 취업 체류기간은 최초 입국 시 3년+1년 10개월이다. 만약 재입국특례자가 되면 추가로 3년+1년 10개월이 가능해 총 9년 8개월 체류가 허용된다.

고용허가제는 여전히 “사업주를 위해 설계된 제도”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28일 “내국인력의 빈자리를 보완하는 준숙련 외국인력의 적극적인 활용”을 위해 고용허가제 개편방안을 내놨다. 기존 E-9비자에 장기근속 특례를 신설해 최대 10년 이상 체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장기근속 특례를 받으려면 경력과 어학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제조업의 경우 입국 후 최초로 배정된 사업장에서 24개월 동안 근무해야 한다. 제조업이 아닌 업종은 18개월이다. 직장을 바꾼다면 해당 사업장에서 30개월 이상 근무해야 특례를 받을 수 있다.

더불어 정부는 인력난이 심한 일부 서비스업 상하차 직종에도 E-9비자를 받은 노동자의 고용을 허용하기로 했다. ▲폐기물 수집, 운반, 처리 및 원료재생업 ▲음식료품 및 담배 중개업 ▲기타 신선 식품 및 단순 가공식품 도매업 ▲항공 및 육상화물 취급업 중 하역 및 적재 단순 종사자 등이다.

체류기간을 늘리면서도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고, 열악한 노동환경일 가능성이 높은 업종으로 고용허가제를 확대하고, 가족초청을 여전히 허용하지 않는 점 등이 노동계의 비판을 샀다. 김용철 노동상담소장은 “고용허가제가 사업장 이동의 자유 제한으로 많은 비판을 받아 왔음에도 10년 이상 장기 준숙련 고용제도를 만들면서 그 독소조항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며 “또한 정주노동자들이 힘들어 기피하는 일자리에 이주노동자들을 밀어 넣는 비정규직 중의 비정규직 제도를 만들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주노동자 조직화 어디까지 왔나?’ 토론회에서 발제하는 김용철 금속노조 대구지부 성서공단지역지회 노동상담소장 ⓒ노동해방을 위한 좌파활동가 전국결집

20년 전 명동성당 투쟁 요구
지금도 유효하고 절박한 과제

고용허가제 시행을 앞둔 2003년 이주노동자들은 제도에 반대하며 명동성당에서 농성 투쟁에 돌입했다. 고용허가제 폐지와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를 요구하는 싸움이었다. 고용허가제는 시행되고,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와 단속의 중단도 이뤄내진 못했지만 명동성당 투쟁은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인 이주노조가 세워진 계기가 됐다.

고용허가제 도입과 명동성당 투쟁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사업장 이동의 자유 등 제도개선은 더디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는 조직된 이주노동자의 숫자와도 관련이 있다. 김용철 노동상담소장에 따르면 이주노조를 비롯해 산별노조에 속한 이주조합원 숫자는 5,000여 명을 넘지 않는다. 150여만 명의 이주노동자 중 민주노총에 0.3%의 노동자가 조직돼 있는 셈이다.

김용철 노동상담소장은 “명동성당 투쟁이 20년 된 지금 이주노동자 조직화는 매우 미미한 상태다. 짧은 기간 내에 돈을 벌어야 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상태뿐만 아니라, 주체적인 조건을 보면 이주노동자들이 본국에서 노조 경험이 없었거나, 노조가 무엇인지 모르거나, 노조로부터 가입 권유를 받아본 적이 없었을 수 있다”고 했다.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조합 가입률이 늘어나지 않았던 책임을 한국 노동계가 피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그루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서부산지회 조합원은 “‘한국 노동자도 많이 어려운데’, ‘우리 코가 석자인데’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며 “한국의 노동운동 내부를 성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주노동을 잘 몰라서’라는 말이 노동계에서 10년, 20년간 유효했다면 이주노동자를 외면한 것”이었다는 주장이다.

무관심을 넘어 불편함을 내비치는 상황도 종종 있다. 김현주 울산이주민센터 사무국장은 “정부가 울산 동구에 내국인 노동자의 20%까지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E-7비자를 개선한다고 발표하자 노동당과 정의당, 진보당은 ‘울산 동구에 최대 5,000명까지 유입 소문에 동구 주민 여론이 들끓고 있다’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며 “금속노조와 조선노연도 ‘이주노동자 확대를 통해 조선 산업의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단견을 바꾸기 위해 현장에서 이주노동자 투입을 막겠다’고 했다. 노동·진보진영이 보인 태도는 이주민 혐오 정서를 확산시키는 데 일조했고, 나아가 계급적이지 못한 태도는 자본을 이롭게 하는 것으로 귀결됐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일하는 현장에서 이주노동자들과 구체적으로 접점을 만들어서 동지애를 쌓아가면 좋겠다. 그래야 큰 흐름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같은 노동자라는 관점으로 바라보면 현장에서 어떻게 연대해야 할지 길이 보일 것”이라며 “노동조합과 함께하는 게 더 나아가는 길이라는 걸 느낄 수 있도록 현장에서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주노동자 노동운동
산별·총연맹이 지원해야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조합을 하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금속노조에 조직된 삼우정밀지회는 2007년 8월 최초로 이주노동자를 조합원으로 가입시킨 바 있다. 이주노동자를 같은 노동조합으로 조직하는 노조는 늘어나는 추세다. 김용철 노동상담소장은 “(금속노조는) 단체협약에 구체적인 이주노동자의 권리 조항을 담고, 이주노동자와 차별 없는 일터를 만드는 조항도 확보한다. 서부산지회에서는 이주조합원들만으로 단협을 체결한 사례까지 있다”며 “최근 현중사내하청지회, 거통고지회 등에서 조선소의 이주노동자를 조직하는 활동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했다.

제조업 못지않게 많은 이주노동자가 있는 건설현장에서도 같은 고민을 한다. 건설노조 경기중서부건설지부는 이주노동자를 적극적으로 조직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김호중 경기중서부건설지부 지부장은 “처음부터 이주노동자를 조직하고 같이 노동조합을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건설현장의 다수인 이주노동자를 조직하지 않으면 건설노동자의 각종 권리가 있어도 이를 요구하기 위한 위력적인 투쟁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반발도 많았다. 어떻게 이주노동자를 조합에 가입시키냐며 탈퇴하고 싸우기도 했다. 안산 사는 사람이 서울로 가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주노동자 조직화를) 건설노조가 과제로 받아 안고 나서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섹 알 마문 이주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조합 활동에 산별노조·총연맹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고용허가제 노동자들을 우리가 어떻게 조직할 것인지 명동성당 농성에 참여한 동지들뿐 아니라 민주노총도 고민이 없었다. 이 와중에 정부는 센터들을 만들어 노동자들 편의를 봐주며 노동조합에 가면 안 된다는 분위기를 만들었다”며 “이주노동자 조직을 하려고 하면 첫째도, 둘째도 활동가다. 활동가가 있어야 조직을 하고 교육을 한다”고 했다.

이어 “이주노동자들은 다양한 나라에서 오기 때문에 각 나라의 언어를 할 수 있는 활동가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주노조 간부들은 비자가 끝나면 자기 나라로 떠나야 한다. 그런 부분에서 고민을 더 해 줬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