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하나의 산별교섭이 필요한 이유
[기고] 하나의 산별교섭이 필요한 이유
  • 참여와혁신
  • 승인 2023.03.24 19:04
  • 수정 2023.03.24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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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소연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 위원장
김소연 백화점면세점노조 위원장
김소연 백화점면세점노조 위원장

백화점과 면세점의 화장품 코너에는 수많은 브랜드가 밀집해있다.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서로 다른 유니폼을 입었을 뿐, 같은 점포 안에서 같은 고객들을 상대로 같은 종류의 물품을 판매하는 서비스노동을 수행한다. 

의자 착석 금지 방침, ‘고객용’ 화장실 사용 금지 방침, 일방적인 영업시간 연장 방침을 강요하는 백화점과 면세점의 행태를 사회적으로 고발하는 투쟁의 과정에서 각기 다른 브랜드 소속 노동자들이 함께 모여 하나의 목소리를 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임금이나 복지는 각각의 기업별로 다를 수 있지만 하지정맥류와 족저근막염, 방광염은 직원들의 소속 브랜드를 가리지 않고 찾아오기 때문이다. 과도하게 요구받는 감정노동의 문제나 정기 휴점 부족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온라인판매의 급속한 진전 등 산업구조의 변화로 고용 불안을 느끼게 되는 문제, 외부요인에 따라 변동하는 불안정한 임금의 문제에도 회사에 따른 약간의 비율 차이가 있을 뿐이다. 공감하지 못하는 노동자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우리 노동조합은 ‘산별교섭’이라는 방식으로 이러한 문제의 해법을 찾아가려고 한다. 같은 고충을 겪고 있는, 같은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에게 서로 다른 조건을 수용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각각 다른 기업들이라 해도 노동조합은 하나의 요구를 제시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공통의 문제를 개별적으로 여러 번씩 반복적으로 다룰 필요 없이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산별교섭을 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산별교섭’은 노동조합에만 유리하고 기업에는 불리한 방식이 아니다. 시간과 인력을 소모하며 의미 없이 반복하는 교섭 과정도 결국은 기업이 지불하는 ‘총비용’을 증가시킬 뿐이다. ‘낭비’와 ‘비효율’이야말로 기업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아니었는가? 노사관계는 언제나 제로섬(Zero-Sum) 게임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때에 따라 플러스섬(Plus-Sum)의 방식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은 이미 2022년 3개 회사*와 집단교섭을 성공적으로 타결한 경험이 있다. 3개 회사가 처음부터 집단교섭을 환영한 것은 아니었지만 집단교섭의 필요성이 분명했기에 집단교섭 테이블에 앉게 됐다. 그리고 2022년 교섭을 마무리할 무렵, 집단교섭이 개별교섭보다 효율적이고 편리한 방식이었다고 마침내 인정했다. *삼경무역㈜, ㈜쏘메이, (유)하이코스

패션·코스메틱 기업들은 쉬지 않고 변화하는 고객의 요구와 시장의 흐름에 빠르게 적응한다. 그런데 왜 유독 노사관계에서만은 그러지 못하는 걸까? ‘초기업 교섭은 노동조합의 세력 강화를 초래한다’는 막연한 공포, 고리타분한 선입견에서 벗어나기만 한다면 산별교섭이 노사 모두에게 매력적인 대안이라는 사실이 그들에게도 보일 것이다. 

록시땅코리아(유), 샤넬코리아(유), 엘오케이(유), 클라랑스코리아(유), ㈜한국시세이도, 삼경무역㈜, ㈜쏘메이, (유)하이코스에게 말하고 싶다. 노동조합이 산별교섭을 주장하는 이유는 회사를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노사가 상생하는 길을 함께 모색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