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인 ‘권리 생산’하는 공공일자리, 노동부가 주도해야”
“중증장애인 ‘권리 생산’하는 공공일자리, 노동부가 주도해야”
  • 임혜진 기자
  • 승인 2023.04.17 15:18
  • 수정 2023.04.17 15: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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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 거주 중증장애인, 사회적 관계 넓힐 수 있게 일자리 확대 필요”
[인터뷰] 조은소리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 사무국장

참여와 시민단체

참여와혁신이 매달 노동·시민·사회단체를 소개합니다. 노동을 주로 다루던 참여와혁신인데 ‘장르’가 달라진 게 아니냐고요? ‘참여’는 일터 내 민주주의뿐 아니라 일터 밖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참여민주주의 학교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을 만나며 여러 형태의 참여 경험을 참여와혁신 독자와 나누려 합니다.

조은소리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 사무국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조은소리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 사무국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이 발표한 ‘2022년 상반기 장애인 경제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증장애인 경제활동참가율은 22.9%, 고용률은 21.2%다. 경증장애인은 각각 44.8%, 43.1%로 나타나 중증장애인 경우에 비해 2배가량 높았다.

헌법상 모든 국민은 노동할 권리가 있다. 국가는 고용 증진과 적정임금 보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에 따라 정부는 장애인복지법에 근거해 장애인 일자리 사업을 실시하며 장애인의 노동시장 참여, 자립 기반 마련 등을 지원해왔다. 그러나 경증장애인 중심으로 일자리 사업이 추진되고 있어 중증장애인은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지적이 있다.

대부분의 민간 기업들은 시장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노동생산성을 기준으로 사람을 고용한다. 중증장애인은 상대적으로 생산성 면에서 경쟁력이 낮게 평가돼 노동시장에서 소외되고 있다. 그러나 중증장애인도 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사회와 교류할 권리가 있다. 이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이하 전권협)는 정부가 나서서 공공일자리를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은소리 사무국장과 인터뷰는 20일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했다.

스스로 소득 벌기 어려운 ‘최중증장애인’
“대다수 공공일자리로 처음 일해”

2020년 7월 서울시에서 권리 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시범사업이 최초로 시행됐다. 이후 경기·전남·전북·경남 등 각 지방자치단체로 사업이 확대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전권협 등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투쟁해온 결과다.

여기서 공공일자리 사업은 중증장애인 중에서도 ‘최중증장애인’을 우선 적용 대상으로 한다. 최중증장애인은 장애인보조기구나 활동보조인 등 도움 없이 스스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거나 사실상 경제적 활동 기회가 거의 없는 장애인을 뜻한다. 1급 뇌병변장애인 또는 발달장애인, 뇌병변장애인·척수장애인·근육장애인·언어 및 시청각 등 중복장애인 등도 최중증장애인에 해당한다.

최중증장애인은 법적 용어가 아닌 전장연 등 시민사회가 제안한 개념이다. 정부의 장애인 일자리 관련 정책은 비장애인과 같은 직업 수행을 위한 재활의 목적에 비중을 두고 있어 사업 혜택이 경증장애인 중심으로 돌아간다. 중증장애인은 직업 재활 훈련을 받아도 비장애인·경증장애인과 생산성 경쟁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특히 장애 정도가 극도로 심해 재활 자체에 한계가 있는 중증장애인은 정부 사업에서 배제되는 편이다. 따라서 전권협은 이들을 최중증장애인이라고 부르며 이들 대상의 공공일자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은소리 사무국장은 “40~60대분들이 공공일자리 사업에 주로 참여하시는데 대다수가 처음 일을 하시는 분들이다. 급여를 받지 못하며 일하던 분들도 많았다”며 “지금은 (공공일자리 사업으로) 최저임금 받고 4대 보험 가입해 일하면서 ‘부모님에게 내복이나 맛있는 거 하나 사 드릴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동안 노동시장에서 배제됐던 분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고 지역사회와 관계를 맺어가게 된 것이다. 굉장히 (사업)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고 전했다.

권리 중심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확대를 요구하는 행진 ⓒ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
권리 중심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확대를 요구하는 행진 ⓒ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

‘권익 옹호·문화예술·인식 개선’
권리를 생산하는 일, “이것도 노동이다”

공공일자리 사업을 통해 중증장애인이 수행하는 직무는 크게 3가지다. ▲장애인 권익 옹호 ▲문화예술 ▲장애인 인식개선 등이다. 이들 직무의 목적은 유엔(UN) 장애인권리협약에 따른 장애인 인권 보호다. 장애인권리협약에는 장애인의 평등권·생명권·건강권·이동권·노동권 등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지난해 9월 UN 장애인권리위원회는 사람들이 장애를 바르게 이해하고 장애인 권리를 존중할 수 있도록 교육·홍보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우리나라에 권고한 바 있다.

UN 권고에 따라 필요한 장애인 인권 보호 활동을 중증장애인이 참여 가능한 일자리로 만든 것이 바로 ‘권리 중심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다. 장애인 권익 옹호 활동에는 장애인 편의시설, 의료기관 등 이용 시 불편사항 모니터링, 지역사회 관련 제도 모니터링, 장애인 차별 해소를 위한 퍼포먼스 등이 있다. 문화예술활동은 미술·연극·댄스·노래 등 창작활동을 통해 근육장애인 등의 생각·소망 등을 표현하는 활동이고, 장애인 인식 개선 활동은 장애인·비장애인 대상으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강의 및 강사 양성 등이 포함된다.

전권협은 이러한 활동이 “장애인 권리를 생산하는 일”이라며 “이것도 노동이다”라고 강조했다. 조은소리 사무국장은 “실제로 노동자분들이 많이 하는 업무 중에는 저상버스 모니터링이 있다. 휠체어 리프트가 고장 난 경우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 편의시설 등을 다니면서 휠체어가 들어갈 만한 간격인지, 휠체어가 다닐 만할 정도로 보도블록 상태가 괜찮은지 등을 확인하고 민원을 넣는 등의 활동을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노동자분들과 전권협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업무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을 알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조은소리 사무국장은 “장애인권리협약 내용을 담은 책자를 주민센터에 비치하거나 직접 피켓을 들고 선전전을 하며 시민들에게 전달하는 활동도 진행된다. 중증장애인 중 발달장애인분들이 많은데 이분들은 주로 그림을 그려 동화책을 만들거나 캠페인에 필요한 도구 등을 만드는 활동을 한다”고 말했다.

조은소리 사무국장은 권리 중심 공공일자리가 중증장애인으로 대상을 한정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매력적인 일자리라고 강조했다. 그는 “권리를 생산한다는 이야기가 낯설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일자리를 AI 등 기계가 대체한다고 하지 않나?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 노동을 해야 할까’라고 고민해 보면 권리 중심 공공일자리가 하나의 표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계가 못하는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증장애인 일자리, 복지 관점보다
‘기본권 보호’ 문제로 접근해야

전권협은 권리 중심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사업 주체를 고용노동부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는 각 지자체 예산으로 사업이 운영되고 있다. 지역 간 예산 편차가 있어 사업 자체가 없는 지역이 있고, 일부 지역은 고용 기간이 1년 미만인 곳도 있다. 이에 전권협은 중앙정부에서 사업을 주도해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또 보건복지부보다 고용노동부가 주도적으로 이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중증장애인 복지 차원에서 일자리를 시혜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권을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정부가 일자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이유다.

전권협은 중증장애인이 노동을 하면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 자립할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했다. 대부분의 중증장애인들은 일할 기회가 부족해 시설에서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일도 적다. 그러다 보니 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나 화장실 등 지역사회 인프라가 더욱 개선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고 전권협은 지적한다. 따라서 중증장애인이 거주시설에서 나와 자립 생활을 영위하며 지역사회와 어우러질 수 있으려면 일자리 제공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조은소리 사무국장은 “중증장애인분들이 밖에서 함께 살지 않으니까 인프라가 더 개선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시설에서만 살던 분들은 사회적 연결망이 거의 없다. 시설을 나가려면 돈이 필요한데 지역을 돌아다니지 않아 어떤 일자리가 있는지도 잘 모르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장연이 보통 이야기하는 게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동·교육·노동이 다 연결된 것이다. 장애인들에게 이런 권리가 보장돼야 지역사회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며 “따라서 최저임금 보장도 중요하겠지만 중증장애인들의 관계망을 넓혀간다는 점에서 이들을 위한 공공일자리는 더욱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권협은 고용노동부 중심의 권리 중심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사업을 요구하는 한편 관련 법 제정도 요구하고 있다.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의 상위법인 특별법을 제정해 국비 지원을 받는 사업으로 만들어 본다는 계획이다. 조은소리 사무국장은 “현재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법안 발의를 논의 중”이라며 “올해 안에 법안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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