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압에 확실히 싸우되, 사회적 의제 대화 노력할 것”
“탄압에 확실히 싸우되, 사회적 의제 대화 노력할 것”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3.04.18 14:46
  • 수정 2023.04.18 1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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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의 시대에 사회적 대화, 여전히 문제 푸는 유효한 수단”
[인터뷰 전문] 김동명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윤석열 정권은 양대노총을 공평하게 때리고 있다. 농담 아닌 농담으로 현 정부가 ‘총노동이 단결하는 데 기여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간 비교적 덜 맞아본 한국노총의 속사정은 어떨까. 현장에선 양대노총 연대를 더 강화해야 한단 지적과 동시에 정부의 타깃이 되는 모습이 불안하단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28대 임원선거를 치른 지 넉 달이 흘렀지만 선거 후유증은 여전하다. 이 와중에 국민과 현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조직혁신위원회는 가동 중이다. 저항과 대응만으로 벅차지만 지역소멸, 산업전환 등 사회적 의제를 주도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준비도 하고 있다. 복잡하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을 만나 노정관계부터 조직혁신위원회, 선거 후유증 등 한국노총이 마주한 복잡한 과제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김동명 위원장은 “노동탄압에 확실히 싸우되, 산업전환 등 다른 사회적 의제에 대해서 책임감을 갖고 여러 사회 주체와 대화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면서 “현실을 한탄하지 않고, 지금 마주한 현실에서 출발하겠다. 모든 변화엔 절차와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지난 12일 한국노총 위원장실에서 진행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최악의 노정관계··· 양대노총 함께 맞서야
전환의제 등엔 주도적으로 대화 요구할 것” 

- 오는 ‘5.1 노동절 전국노동자대회’ 조직을 위해 지역을 순회하고 있다.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

윤석열 정부의 반노동 정책으로 분노에 차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의외로 현장은 차분했다. 현재 노정관계와 정세를 꿰뚫고 있으며 한국노총의 투쟁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인식하고 있었다. 대항하고자 하는 열정이 분노로만 표출되는 것이 아니라, 침착하게 상황을 보고 있다는 뜻이다. 대립적으로 치닫는 노정관계에서 한국노총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조언도 많이 해줬다. 5.1 전국노동자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겠단 믿음이 쌓이고 있다.

- 최근 한국노총의 행보는 대립각이 커지는 노정관계에 대한 대응이 두드러진다. 노정관계를 어떻게 평가하나? 

최악의 관계다. 소통 자체가 안 되고 있다. 정부는 건설 분야 노조 탄압, 노조 회계장부 공세를 계속하면서 노동을 흔들고 있다. 노조의 일부 약점을 파고들어서 사회적으로 굉장한 부패집단으로 매도하고 있다.

- 한국노총은 현 상황을 어떻게 풀어갈 계획인가? 

노동탄압에 확실히 싸우되, 산업전환 등 다른 사회적 의제에 대해서 책임감을 갖고 여러 사회 주체와 대화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 한국노총의 입장이다. 

한국노총은 정권의 탄압에 좁은 저항만으로 맞설 수 없다. 잘못된 노동정책에 대해선 당연히 저항해야겠지만, 저항을 넘어 한국노총이 문제 해결에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사회 불평등, 양극화, 민주주의 후퇴, 세대·지역 간 갈등, 지역소멸, 기후위기, 산업전환 등 수많은 사회 문제가 산적해 있다. 이런 문제는 어느 한 주체가 혼자 풀긴 어렵다. 전환의 시기, 노사정을 포함한 각 주체가 어디까지 감수할 수 있을지를 포함해 사회적 논의를 확장해 가야 한다.

- 윤석열 정부에 맞선 양대노총의 연대도 강화되고 있다. 한국노총 내부에선 민주노총과 연대 확대가 자칫 ‘한국노총 고유의 색깔을 잃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민주노총뿐만 아니라 한국노총과도 대화할 의지가 없다. 양대노총을 모두 탄압하는 것이 지지층의 결집과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현장에 가면 정부의 노동개악 문제는 양대노총 구분 없이 전체 노동에 해당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노동을 대표하는 양 조직이 강력히 연대해 대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오히려 연대 수준을 높이라는 요구가 많다. 

반면 양대노총이 문제를 푸는 방식이 다른데, 즉 한국노총은 전투적 투쟁보다 대화와 타협에 무게를 두는 운동을 해왔는데 민주노총과 하나로 묶여서 정부의 타깃이 될 필요가 있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 자체가 노동시간 유연화, 직무급제로 포장한 성과급제 확대 등 노동조합이라면 결코 동의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민주노총과 함께 맞서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연대 수준을 관리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민주노총과 연대가 내분을 일으키는 수준까지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건 민주노총도 마찬가지일 거다. 양 조직이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수준 내에서 연대하되, 한국노총의 색깔은 사회적 대화 등을 통해 가져갈 것이다. 

양대노총 연대에 나오는 상반된 의견을 뒤집어 생각해 보면 집행부가 균형을 잘 잡아가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지 않나.

- 한국노총의 사회적 대화의 원칙은?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을 위한 들러리로 서선 안 된다는 거다. 지금처럼 정부가 노동계를 부패집단 또는 이기적 집단으로 규정하고 때리면서 자기들이 이미 다 세팅해 놓은 자리에 나와서 도장만 찍으라는 것은 대화가 아니라 협박이다. 

다만 한국노총은 여전히 사회적 대화가 대전환의 시대에 우리 사회의 여러 갈등과 문제를 푸는 유효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악이 아니라 앞서 언급했듯 전체 공동체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양극화, 산업전환 등 사회적 의제에 대해 서로 터놓고 이야기하자는 제안을 계속할 것이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노동 배제하고 현실 외면한
주69시간제 과정 내용 모두 잘못돼”

- 정부의 ‘주69시간 노동시간 개편안’ 추진은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것이 어떤 의미라고 보나? 

주69시간제는 정책 추진 과정과 내용 모두 잘못됐다. 정부는 의견 수렴 과정에서 조합원 300만 명 규모의 양대노총을 완전히 배제했다. 대신 정부 입맛에 맞는 일부 노조, 노동자들을 활용하려 했다. 양대노총에는 정책 취지에 대한 설명조차 없었다.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내용도 문제다. 어느 나라가 장시간 노동을 국가 경쟁력으로 보겠나. 설령 장시간 노동이 국가 경쟁력을 강화한다 해도, 노동자의 삶을 고려한다면 추진해선 안 되는 정책이다. 노동자에게 적당한 휴식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노동 자체가 괴로워진다. 특히 ‘시간 선택권’으로 포장된 불규칙 노동의 폐해도 클 거라고 본다. 

- 위원장은 제약회사 생산직 출신이다. 제조 현장에서 장시간 노동을 경험했을 텐데. 

꾸준히 장시간 노동을 했다. 20대였던 당시 하루 기본 8시간에 오버타임(초과노동)을 3~4시간씩 했다. 하루 12시간 정도 일한 거다. 토요일 근무까지 했으니 주당 거의 68시간 일했다. 그땐 그게 일상이었다. 

힘이 남아돌 때였으니 육체적으로 괴롭다기보다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장시간 반복 노동을 계속하니 마음이 다 파괴되더라. 기계처럼 일하다 퇴근하면 괴로운 마음을 풀 길이 없어서 술이나 마시고, 다음 날 더 힘들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나 자신이 없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장시간 노동의 폐해는 노동자들에게만 그치지 않는다. 힘들어 죽겠는데, 일 시키는 사람이 얄미워 죽겠는데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겠나. 약 반죽에 머리카락이 보여도 안 줍고 싶어지는 거다. 일에 정성이 담기지 않는다. 아무 생각이 없는 거다. 자기 노동이 가치 있단 생각을 하지 못하는 노동자에게 무슨 참여와 창의를 바라겠나. 나는 장시간 노동이 얼마만큼 인간의 마음을, 삶을 파괴하는지 생생하게 체험했다. 마음이 파괴된 노동자들은 사회 불만 세력이 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출발 채비한 공약 이행···
‘범국민회의 구성’과 ‘지역국 신설’ 

- 지난 제28대 한국노총 임원선거에서 주요 공약으로 ‘범국민회의 구성’과 ‘지역국 신설’을 꼽았다. 윤석열 정부에서 산업전환 관련해서 이해당사자를 포함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또 정부는 지역균형 발전을 표방하지만 지역에선 지역을 위한 정책이 없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두 공약은 유의미해 보인다. 임기 약 3개월이 흐른 지금 공약 추진 상황은 어떤가? 

전환의제가 매우 중요한데도 정부는 산업계의 시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특히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구성 당시 산업계 대표를 비롯해 친기업적 전문가들을 위원으로 다수 임명하고 노동계는 배제했다.

이 가운데 한국노총은 올해 하반기까지 범국민회의의 외연을 넓히고, 총선시기에 범국민회의에서 나온 의제를 집중 제기할 생각이다. 특히 범국민회의는 한국노총의 외연 확대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현재 사무총국 내 담당자를 지정해 시민사회단체, 전문가 등과 접촉 단계에 있다. 구체적으로 어느 단체까지 포괄할지, 어떤 주제를 우선할지 등에 대해 정리되진 않았다. 서두르기보다 제대로 준비해서 한국노총이 전환의제를 주도하고, 외연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 지역국은? 

사무총국 내 지역지원본부를 신설했다. 기존 지역노사민정협의회 등을 활용해 지역 노동의제를 발굴하고 지방정부,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서 문제를 풀어가고자 한다. 당장 전국적으로 지원하긴 어렵겠고 우선 한국노총이 조금만 더 힘을 보태면 나올 수 있는 모범 지역 사례를 발굴해 다른 지역으로 전파하는 식의 구상을 하고 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조직혁신안, 
내부화 수준이 관건

- 지난달 23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조직혁신위원회 구성‧운영을 결정하고, 약 3주 만인 지난 11일 1차 전체회의가 열렸다. 한국노총이 국민과 현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위원회가 가장 중점에 둬야 할 지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현시점에서 조직혁신위원회가 가동된 주된 이유는 한국노총이 연루된 비리 문제다. 그래서 비리 문제, 조직 내 민주주의 절차를 어기는 문제 등 부정적인 문제에 대해서 한국노총이 좌시하지 않고 통제할 수 있는 조직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고 본다.

다른 한 축으로는 대표적으로 건설산업 노조가 한국노총의 이미지를 갉아먹고, 노총을 어렵게 한 사건이 많았다. 건설 노조를 재정비해서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며, 어떻게 건설 노동자들을 위한 조직으로 거듭나게 할지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 혁신안을 얼마나 조직 내부에 제도화시켜 내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내가 ‘직을 건다’는 표현을 하기도 했다. 당장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번 기회에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조직 내부를 노동조합다운 조직으로 재편하려 한다. 이미 위원회가 가동되고 있어서 얘기하긴 조심스럽지만, 나도 모든 것을 걸었기 때문에 위원회의 방향이 잘못됐다면 타협할 생각은 없다. 

- 그런데 위원회 공동위원장이 모두 내부 인물로 꾸려졌다. 위원회의 객관성, 실효성에 의구심이 제기된다. 어떻게 보나? 

애초 외부 위원장을 전면에 배치하려 했지만 영입에 여의찮은 면이 있었다. 또 외부 위원장이 들어오면 한국노총이 돌아가는 구조 등을 이해하는 데 취약해 구체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대신 외부 자문단을 대폭 보강해서 객관성, 실효성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고자 했다. 외부 의견이 많이 반영될 수 있도록 위원회 운영 과정에서 노력할 계획이다. 

공동위원장들에게도 사전에 사심·정치적 지향 등을 혁신위원회에 접목하지 말고, 오직 한국노총이라는 공적 조직 하나만 생각하며 현장을 설득하겠단 각오로 임해달라고 당부했다.

정치 개입한 임원선거
선거 후유증은 인내심 필요

- 한국노총 내부에선 치열했던 제28대 임원선거 이후 선거 후유증이 상당한 것으로 안다. 위원장도 체감하나?

그렇다. 현상적으론 대의원대회, 중앙집행위원회 등 회의 참석률이 대표적이다. 전국노동자대회 참석률도 영향을 받을 걸로 보인다. 이것 역시 선거 후유증의 한 모습이라고 본다. 한국노총의 선거 후유증이 이렇게까지 오래간 건 드문 것 같다.

- 왜 그렇다고 보나? 

한국노총 임원선거에 정치세력이 과도하게 개입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선거 과정이 복잡해지고 갈등도 더 복잡해졌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국민의힘)은 특히 임원선거 과정에서부터 개입했고 선거에서 이긴 위원장인 나를 비롯한 집행부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어떤 소통도 안 한다. 과거와 달리 한국노총이 권력을 등지고 있다. 그렇다 보니 권력에 기대고 싶은 이들은 나에게 기대할 바가 없다. 조직이 위기에 닥치면 더 단결해야 하는데도 오히려 원심력이 작용하고 있다.

- 어떻게 풀 건가?

어려울수록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권력과 사이가 좋았던 시절의 향수에 젖어서 조급하게 권력과 타협해선 안 된다. 그렇게 해서 문제가 풀리겠나? 어려울 때일수록 성숙하게 판단해서 자기를 내려놓고 조직을 위해 힘을 보태야 한다. 그래도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책임감을 느끼고, 더 낮춰서 불협화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 덧붙일 말이 있다면? 

대통령이 한국노총 집행부를 정면에서 겨누고 있다. 산하 조직 일부에선 당황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국노총은 노동조합이다. 노동조합답게, 노동운동 하는 사람들답게 의연하게 맞서자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럴 때일수록 일희일비하지 말고 끈질기게 대응하자. 현실을 한탄하지 말고, 지금 마주한 현실에서 출발하자. 모든 변화엔 절차와 인내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