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사람 중심 조직인데, 사람 없는 산별노조?
① 사람 중심 조직인데, 사람 없는 산별노조?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3.06.13 05:01
  • 수정 2023.10.10 0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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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별노조 조직강화 어떻게 할 것인가?
조직·회의·소통구조 재점검···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조직으로
[2023 산별노조운동 전략세미나] ①조직강화

민주노총은 올해 ‘초기업(산별) 교섭 활성화를 위한 입법운동’에 나섰다. 이제 민주노총의 90% 넘는 조합원이 산별노조에 속한 가운데 ‘무늬만 산별’을 넘어 법·제도적 보완을 통해 실질적인 산별교섭을 해내는 ‘내용도 산별’을 이루기 위해서다.

여기 산별노조라는 틀에 어떻게 내용을 채워갈지 고민하는 세 노조가 한자리에 모였다. 올해 산별노조 전환 25주년을 맞은 보건의료노조와 지난해 연맹 해산, 산별노조 전환을 결정한 사무금융노조와 화섬식품노조는 산별노조라는 키워드 하나로 무궁한 고민을 함께 나누고 있다. 이들이 보건의료노조가 지난해 ‘제2 산별노조운동’의 비전 수립을 위해 치른 2박 3일간 정책대회의 논의를 발전시키고자 공동 세미나를 기획한 것이다.

‘2023년 산별노조 운동 진단과 미래 전략 과제 모색 세미나’는 참여와혁신이 후원하고 세 노조가 공동 주최한다. 5월을 시작으로 매달 한 번씩 총 4회(△조직강화 △미조직 전략조직화 △단체교섭 △종합토론) 열리는 세미나 결과는 참여와혁신에 실린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지난 5월 18일 보건의료노조 생명홀에서 ‘2023 산별노조운동 전략세미나① 조직강화’가 진행됐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첫 세미나 주제는 ‘산별노조 조직 강화 전략’이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연구원 원장이 좌장을 맡았으며 보건의료노조 정책대회에서 연구·발표한 정경은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 발제했다. 이어 보건의료노조, 사무금융노조, 화섬식품노조의 각 정책 담당 간부가 지정토론을 했다.

왜, 조직강화 전략인가?

‘구조는 전략을 따른다.’ 조직이 추구하는 전략에 따라 조직구조가 배열된다는 뜻이다. 이 명제에 따라 산별노조들은 조직체계가 산별노조운동 전략을 담지 못한다는 고민을 안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정책대회에서 ‘조직강화’ 파트를 맡은 연구진(이하 연구진)은 “(보건의료노조는) 산별중앙교섭의 지체와 구성원의 다양성 증가 등으로 전략적 목표가 완전하게 실현되지 못하며 조직구조의 문제까지 야기하고 있다”며 “즉 기존의 정책, 교섭, 조직의 일체화 목표를 현재의 조직구조가 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특히 대부분 산별노조는 점점 증가하는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어떻게 조직 내부에서 품을지 고민이다. 이주호 원장은 “산별 조직강화라면 어떻게 조합원들을 하나로 모아 갈지 고민일 수밖에 없는데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며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함께 가는 길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앞에선 함께 단결, 투쟁을 외치더라도 현실은 따로국밥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복준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은 “보건의료노조 규모는 약 8만 6,000명으로 지난 25년간 조합원 수가 두 배 이상 늘었다. 조직률의 성장은 단순히 조합원 증가를 의미하지 않는다”며 “지역과 병원 특성, 직종, 성별, 세대, 근무형태, 고용형태 등에 기반한 다양한 요구가 노조 운영에 반영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했다. 

민주노총으로 범위를 넓히면 산별노조들이 ‘일반노조화’되는 경향도 두드러진다. 이는 산별노조 내 다양성이 더 커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화섬식품노조도 조직의 다양성이 크게 확대됐다. 김학진 화섬식품노조 정책실장은 “2018년부터 조직률이 크게 증가했다. 파리바게뜨지회를 비롯해 네이버, 카카오, 넥슨 등 ICT 조직, SK하이닉스 기술사무직, 타투유니온 등 새 조직이 늘었다”며 “조직의 모태인 화학업종이 65~70%를 차지하다 이젠 40%대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변화를 고려해 화섬식품노조에서는 노조명을 ‘공감노조’로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다. 

보험, 증권 등 비은행권(제2금융권) 노동자들이 중심으로 조직된 사무금융노조도 더 다양해지고 있다. 디지털화 등 산업전환의 영향으로 비은행권 노동자들이 감소하는 만큼 새로운 직종 사무직 노동자들이 늘어난 것이다. 김영재 사무금융노조 미조직비정규실장은 “최근 50~100인 규모 사업장과 콜센터, 보험설계사 등 일반사무직이 많이 조직되고 있다”며 “기존 업종을 넘어서는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담을 그릇이 안 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사무금융노조에는 최근 조직된 구글코리아를 비롯해 마이크로소프트(MS), 오라클 등 다국적 기업 사무직도 함께하고 있다. 

‘산별노조다운’ 조직 구조로 재정비

이런 고민 위에 연구진은 조직 확대에 따른 복잡성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내부 연대 강화를 통한 더 큰 단결’이라는 연구 명제를 확정했다. 이 명제 아래 보건의료노조의 △조직체계 △회의체계 △소통체계에 초점을 두고 분석했다.

보건의료노조의 골간 구조는 ‘중앙-지역본부-기업지부’로 지역본부가 허리 역할을 하는 수직적 구조다. 화섬식품노조도 같은 구조다. 사무금융노조는 지역이 아닌 업종이 허리다. 사무금융노조는 ‘중앙-8개 업종본부-기업지부’로 운영된다. 사무금융노조는 지역본부가 부산 등에 있긴 하지만 전통적으로 수도권을 중심으로 운영돼 지역본부 체계가 거의 없는 구조다.

우선 골간 구조에서 각 주체들의 역할이 조정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연구진은 “설문조사 결과에서 보건의료노조의 활동별 수행 주체를 보면 산업정책 및 제도개선은 중앙, 임단협은 중앙과 지부로 양분됐다”며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와 지역연대사업, 정치사업, 지부 간부 교육과 역량 강화는 주로 지역본부가 수행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어 “(이런 역할을 수행하려면) 지역본부 인력과 예산에 대한 조정, 또는 사업조정이 시급하다. 현재 3단계보다는 (지역본부의 위치를 정보공유와 의사결정 과정에서 중앙과 더 긴밀하게 하는) 2단계 구조로 인식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특수목적공공병원 등 특성별회의 공식화, 특성별회의로도 포괄하지 못하는 새봄비정규직지부 등 특성별회의 구성 등의 제안도 있었다.

사무금융노조는 업종 중심 골간 구조에 대한 고민이 있다. 김경수 사무금융노조 정책실장은 “지부 입장에선 지부가 우선이고 다음이 업종본부, 이후가 중앙이다. 이 옥상옥 구조, 연맹형 구조를 어떻게 개편할지가 1단계 과제”라며 “지난해 산별노조 전환 이후 다음 단계는 대산별노조 형태로 재조직하는 것이다. 대산별노조다운 조직체계, 회의체계, 재정구조를 어떻게 만들지가 앞으로 과제인데 이에 대한 목표를 설정하지 못해 약간 맥이 빠져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화섬식품노조도 산별노조체계 확립을 위해 애쓰고 있다. 김학진 정책실장은 “형식적으론 연맹이 해산됐지만 내용적으로 산별노조 운영 방식이 확립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현장에서 지회 규칙이 산별노조와 배치되게 운영되는 조직이 꽤 있다. 산별단일노조 운영체계 방식을 통일하는 것이 올해 중심 사업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지난 5월 18일 보건의료노조 생명홀에서 ‘2023 산별노조운동 전략세미나① 조직강화’가 진행됐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다양성·효과성 담보하는
회의체계는 어떻게?

회의체계도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산별노조의 회의구조는 대부분 ‘조합원 총회-대의원대회-중앙위원회-중앙집행위원회(중집)-상무집행위원회(상집)’로 동일하다.

연구진은 보건의료노조가 대의원대회를 자주 개최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의사결정 단위와 집행 단위가 최대한 일치하기 위해선 중앙위원회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정경은 연구위원은 “대의원대회에서 연간 사업계획을 결정하고 중집에서 실행하는 구조가 정착한 뒤 중앙위원회의 역할이 약화된 측면이 있다”면서 “그러나 중앙위원회는 중집과 달리 대의원대회와 함께 조합원 대표성과 비례성을 반영한 회의체이자 대의원대회에 안건을 부의하는 회의 단위로 의미가 있다. 중앙위원회의 중요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연구진은 중앙, 지역본부, 지부가 단일한 조직으로 움직이려면 단일한 인트라넷을 운영해 하나의 노조임을 분명히 하고, 주요 회의를 공개하는 문제 외에도 중앙과 지역본부, 지부까지 순차적 회의를 통해서 쌍방향 흐름을 충족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회의 진행법에 대한 교육과 토론, 전임자가 없거나 소수지부 활동의 효과성을 최적화하기 위한 회의 매뉴얼 개발 등도 요구된다.

화섬식품노조는 회의에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지 않는 점을 우려했다. 김학진 정책실장은 “우리 노조의 전통이 소위 말해 ‘까라면 까’가 잘 된다. 결정된 것을 하지 않으면 민주노조답지 않다고 여기는 기풍이 있다. 회의 전엔 미리 의견 조율을 다 하고 현장에선 결정만 하는 식이다. 대의원대회도 한 시간 만에 끝난다”면서 “그런데 이 기풍에 점점 물음표가 생기고 있다. 특히 산별노조 전환 이후 내용적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는 의문이 계속 나오고 있다. 토론 문화 장착이 매우 중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중집 성원들이 지역에 가서 전달을 잘 안 하는 문제가 있었는데 임시방편으로 중집이나 중앙위원회 다음날 전국 조직실 회의를 잡아서 결정된 사업을 전달하고 이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고 설명했다.

사무금융노조도 토론 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다. 김영재 미조직비정규실장은 “화섬식품노조가 한 시간 만에 대의원대회를 마칠 수 있는 이유는 사실 그전에 회의를 엄청나게 한 것이라고 본다”며 “제대로 된 회의를 한 번 하면 큰 교육이 되고 집행력이 높아진다. 그런데 우리 노조는 형식적이고 깊이 있는 토론이 되지 않는 회의가 많다”고 했다. 김경수 정책실장은 “상집과 중집이 서로 상관없다. 상집에서 주간 단위 스케쥴을 점검하고, 중집에서 지난 한 달을 평가한 뒤 새로운 한 달을 계획하는 과정이 돼야 하는데 안건 처리에 바빠 숲보다 나무에 집착하는 형태”라며 “저 앞에 있는 우리의 목표에 달려가기 위한 회의체계가 아니라 각기 따로 놀고 있다. 일례로 회의 때마다 각종 위원회가 생긴다. 회의체계에 대한 가지치기부터 먼저 돼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왼쪽부터) 최복준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 김경수 사무금융노조 정책실장, 김학진 화섬식품노조 정책실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커지는 규모 감당하려면,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조직 만들어야

소통방식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보건의료노조 소통방식에서 연구진이 지적한 가장 큰 문제는 시간 지체(time-lag)였다. 연구진은 “시간 지체는 비공식 조직을 통한 정보 공유를 활성화하고 왜곡되기 쉬운 부작용이 발생한다”며 “또 최초 정보 생산자의 업무 부담이 가중되는 문제가 있다. 시간 지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정보 공유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이야기했다. 보고서에서 한 보건의료노조 간부는 “(시간 지체를 극복하기 위해) 보건의료노조 위원장과 임원, 실장 등은 지역본부장이나 조직국장 등과 수시로 전화한다. 지역본부도 지부와 직접 전화한다. 그런데 앞으로 보건의료노조 조직이 커질수록 시스템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결국 노조의 중심은 사람이지만, 조직이 커질수록 시스템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모였다.

연구진은 “보건의료노조 활동이 활동가들의 무력감과 직무 소진을 유발하는지 검토하고 인원 확충 방안, 중앙과 지역본부 사무처의 처우 개선방안, 청년 활동가 양성 방안 마련 등 대책이 시급하다”며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중앙부터 지부까지 사무처 구성원들은 활동을 그만두기로 결심한 것은 아니지만, 자부심과 보람으로 버티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학진 정책실장은 “소통 간극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부터 우리가 임원(위원장·사무처장) 순회 간담회를 많이 돌리고 있다. 올해는 사업 수립 전에 한 번, 대의원대회 후 사업 결정 사항 이행 현장 분위기를 다지기 위해 현재도 돌고 있다. 두 명밖에 없는 상근임원은 정말 힘들지만 이렇게라도 간극을 줄이려는 것”이라며 “이렇게 사람 중심으로 굴러가는 사업 운영에는 문제가 있다. 만약 임원 건강이 안 좋아지면 ‘당장 그럼 누가 해?’ 소리가 나오게 된다”고 했다. 이어 “사람이 아닌 조직이 굴러가는 조직적인 사업 기풍이 생기지 않고 있다. 위원장이 더 헌신해서 현장에서 설득하면 잘 굴러가는 것”이라며 “이런 소수 인력 중심으로 돌아가는 구조 이제는 힘들다”고 말했다.

문명호 화섬식품노조 조직국장은 “1만 5,000명 정도 수준의 조직일 때 가능하던 운영 방식이 두 배가 훨씬 넘은 규모로 커진 상황에서도 같은 인원이 같은 역할을 감당하면서 하고 있다”며 “간부 재생산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면 결국 이 시스템은 버티지 못할 것 같다는 고민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업무 과부하를 줄이기 위해 시스템뿐 아니라 현장 파견직이 중앙이나 지역본부에 강화돼야 한단 목소리가 나왔다.

김경수 정책실장은 “보건의료노조가 약 8만 6,000명이고 사무금융노조는 7만 명이 조금 넘는다. 보건의료노조의 사무처는 60명인데 사무금융노조는 20명이 안 된다. 정책실은 2명이다. 무슨 일이 생기면 다 정책실로 가져온다”며 “한국노총 금융노조는 정책본부에 현장 파견직이 있다. 현장 파견직을 어떻게 구할 수 있을지 논의가 본격화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김학진 정책실장도 “산별노조로 전환하면서 현장에서 정책에 대한 요구 사항이 많아지고 있는데 소화할 수가 없다”며 “화섬식품노조 중앙 사무처 인원은 13명이고 정책 담당은 나 혼자다. 요새 가장 큰 고민이 인력 문제다. 사무처 인원을 채용하고 싶어도 사람이 없어서 채용을 못 한다”고 토로했다.

첫 세미나를 마무리하며 이주호 정책연구원장은 “정말 산별노조의 고민이 비슷하단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며 “사람 중심의 조직이라는 말은 좋지만 시스템이 아닌 개인의 헌신으로 굴러가면 조직이 어려워지는 상황이 온다. ‘과도기’, ‘전환기’,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말 자체가 와닿았다. 그렇지만 산별노조운동에 대한 새로운 움직임이 활성화되고 있는 만큼 제2 산별노조운동의 계기가 될 수 있는 이번 전략세미나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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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사람 중심 조직인데, 사람 없는 산별노조?
② 노조할 ‘이유’부터! 산별노조 조직확대 전략

③ 단체교섭 
④ 종합토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