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없이 서울백병원 폐원 말고 ‘현명한 선택’해 달라”
“대책 없이 서울백병원 폐원 말고 ‘현명한 선택’해 달라”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3.06.20 06:02
  • 수정 2023.06.20 22: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폐원부터 하자”는 사측·법인에 서울백병원 노동자·환자 ‘막막’
[인터뷰] 김동민 보건의료노조 서울백병원지부 지부장
김동민 보건의료노조 서울백병원지부 지부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20만 7,511명의 외래환자와 393명의 노동자가 단골 병원과 일터를 잃을 기로에 놓였다. 20일 오후 3시 진행되는 학교법인 인제학원 이사회에선 서울백병원 폐원이 논의될 예정이다. 서울백병원 경영정상화 TFT는 서울백병원의 누적적자(올해 기준 1,745억 원)가 심각해 폐원이 불가피하단 경영자문을 받아들였다.

TFT엔 노동자가 참여하지 않고, TFT가 노동자들과 관련한 논의를 진행한 적도 없다. 뉴스가 쏟아지자 노동조합에도 문의가 쏟아졌다.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서울백병원지부(지부장 김동민)는 바로 사측에 면담을 신청했지만 돌아온 답은 “폐원부터 하고, 그 다음에 이야기하자”는 거였다.

서울백병원의 형제병원인 상계백병원, 일산백병원, 부산백병원, 해운대백병원 등으로 전원 고용 승계되는 방안이 검토된다는 소문은 돌고 있다. 그러나 “당사자의 조건이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고용승계 방안은 진정한 고용승계가 될 수 없다”는 게 서울백병원지부의 입장이다.

공대위 출범 기자회견을 마치고 <참여와혁신>과 만난 김동민 지부장은 “직원들은 그래도 묵묵히 맡은 바 업무를 하고 있지만 마음은 굉장히 불안할 것”이라며 “경영난의 진짜 문제점을 함께 찾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19일 출범한 ‘서울백병원 폐원 저지 공동대책위원회’는 이해당사자들을 모두 포함한 논의 기구를 꾸려 서울백병원의 경영정상화 방안을 모색하자 요구하고 있다. 

폐원 안건 상정 철회가
직무유기라니 “말도 안 돼”

- 기사로 폐원 추진 소식을 접한 서울백병원 보건의료노동자들이 많다고 들었다. 어떻게 된 건가?

5월 31일 경영 컨설팅 결과를 들었다. 서울백병원은 경영난 극복을 위해 TFT를 만들고 엘리오앤컴퍼니라는 업체에서 컨설팅을 받았다. 올해 3월 말까지 조사를 하고 4월에 발표를 한다고 했는데 점점 미뤄지더니 그날 발표가 됐다.

컨설팅 결과는 폐원(안) 하나였다. 서울백병원 원장과 부원장을 제외한 5명의 이사가 그 안에 찬성을 했다. 내부 직원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고, 면담 요청을 했다. 면담이 5일에 잡혔는데 오전부터 병원에서 내보낸 폐원 기사가 도배됐다. 사측의 공식적인 답변을 듣기 전이었기 때문에 노동조합이 직원들에게 알리지도 못한 상태였다. 기사가 나오고 나서부터는 환자들도 불안해하고 있다.

- 사측과의 면담에선 어떤 이야기가 오갔나?

사측은 ‘기사를 내리라고 요청하지도 않을 것이고, 폐원(안) 상정을 철회하는 게 직무유기’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했다. 직원들의 불안감을 어떻게 해소할 것이냐, 독단적으로 폐원을 추진하는 하는 건 안 된다고 말했지만 이사회 이후에 이야기하자고 답하더라.

서울백병원 적자 만든 책임
누구에 있는지 재검토해야

- 적자가 많다는 게 폐원이 추진되는 이유다. 노동조합의 의견은?

내가 1999년도에 서울백병원에 입사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병원은 어려웠다. 서울백병원이 설립되고 난 후 형제병원(상계·일산·부산·해운대백병원)들이 생겼다. 그 사이에 서울백병원에 제대로 된 투자가 이뤄진 적이 없었다. 형제병원 설립에 투자금이 지원되고, 서울백병원이 등한시돼 급변하는 의료 시장에 대비하지 못했던 거다.

서울백병원에 TFT를 만들기 전에도 슬림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고통분담은 이미 하고 있었다. 그런데 TFT를 만들고 나서는 노사가 같이 논의하는 게 아니라 TFT 구성원 몇 명이 의료 기능을 더 약화시켰다. 전공의 수련병원을 포기하고, 병상 수도 2017년 276개에서 2023년 122개로 줄이고, 운영하던 지역응급의료센터도 자진 반납했다. 서울백병원 정상화가 아닌 의료 기능 약화에 7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것이 아깝다.

서울백병원뿐 아니라 다른 병원들은 잘 대비시키고 있는지도 재단에 묻고 싶다. 서울백병원 하나 문 닫는 것으로 모든 경영난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본다. 진짜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함께 찾는 게 우선이다.

- 의료 기능이 약화됐는데 적자는 왜 늘어났던 건가?

단순히 의료 수익 대비 지출만 놓고 봤을 때 1,745억 원이라는 건데, 대학병원 회계를 보면 의료 수익 외 수익이 있다. 코로나19 손실 보상금처럼 정부 보상금도 있다. 그런 고려는 전혀 없이 1,745억 원이라는 숫자만 내세워진다. 1,745억 원만 강조될 게 아니라 진짜 적자가 얼마인지, 이 적자를 만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 건지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동민 보건의료노조 서울백병원지부 지부장이 환자에게 온 편지를 보여주고 있다. ‘서울백병원이 영원히 존재하기를 기원합니다. 저는 25년을 한결같이 가족과 함께 백병원을 사랑하며 다니고 있습니다. 폐원을 거두어 주십시오. 사정을 메스컴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만 다시 한 번 선처 부탁드립니다’라고 쓰여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노동자 생계·환자 걱정돼
싸움은 지금부터 시작

- 노동조합이 지금 가장 우려하는 것은?

직원들 생계다. 어디로 합쳐서 옮긴다든지, 새로운 병원을 만든다든지 대책 하나 없이 무조건 폐원하고 그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하니까 너무 막막하다. 두 번째는 서울백병원을 수십 년 동안 다녔던 환자분들이다. 내가 이 병원에서 일한 지 22년이 됐는데, 우리 어머니는 서울백병원을 다닌 지 30년이 됐다. 역사가 있다 보니 오래 다니는 분들이 많은 병원이다. 또 서울백병원은 중구에 하나 남은 대학병원이다. 메르스 때도 코로나19 때도 전담병원으로 역할을 충실히 했다. 다가올 국가적 재난 상황도 걱정이다.

- 향후 계획을 공유해 달라.

조합원 총회를 열어 의견을 듣고, 교수님들과 지역사회와도 많이 대화할 거다. 서명 운동도 계속 할 예정이다. 서울백병원 폐원은 지역사회의 의료 공백을 일으키는 만큼 관련된 이해당사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같이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 공대위를 제안한 대상도 지역구 국회의원부터 중구청장, 구의원, 시의원, 지역 약사회, 상인회처럼 광범위하다. 설사 이사회에서 폐원이 결정된다 하더라도 일방적 추진은 안 된다고 요구해나갈 거다.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본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직원들이 불안해하는 눈빛이 너무 마음 아프다. 직원들 눈을 못 보겠다. 코로나19가 완전히 끝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끝났다고 공표되는 시점 아닌가. 써먹을 만큼 써 먹었다는 건지. 코로나19 당시에 (폐원을 추진) 하면 재단 본부가 욕먹을 것 같으니까 이제 와서 칼을 빼든 거 아니냐고 격분하는 조합원들이 많다. 이사회 구성원들에 백병원과 인제학원이 발전할 수 있는 현명한 선택을 해 달라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