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적 폐원’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일방적 폐원’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3.07.28 16:01
  • 수정 2023.07.28 1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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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백병원 폐원 이사회 만장일치 의결부터 진료 종료 통보까지
직원은 부산 전보 언급···“사측 폭력적 폐원 성공 사례될까 우려”

[리포트] 서울백병원 ‘일방적 폐원’에서 짚어야 할 점

지난 10일 보건의료노조 서울지역본부 서울백병원지부 조합원들이 서울백병원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진료 종료를 통보한 서울백병원을 규탄했다.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서울백병원 폐원과 관련한 논란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인제학원 이사회는 지난 6월 서울백병원 폐원을 만장일치로 의결하면서 TFT를 꾸려 노동자들의 고용유지 방안 등을 논의하겠다 공언했지만 제대로 된 논의가 시작되기 전에 직원들을 부산백병원으로 보낼 것이란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부산백병원은 상계백병원이나 일산백병원 등 형제 백병원들 중에도 먼 편에 속해 사실상 해고란 게 그간 구성원들의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서울백병원 진료가 오는 8월 31일자로 종료된다는 보도가 쏟아지며 구성원들의 혼란은 가중됐다. 폐원을 이사회에서 결정할 것이란 소문 이후 관련 보도가 줄을 이었던 이전의 상황과 판박이다.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서울백병원은 폐원은 어떤 미래를 낳을까. 서울백병원만의 문제로 남지 않을 수 있다는 게 노동조합의 의견이다. 김동민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서울지역본부 서울백병원지부 지부장은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이런 식의 폐원이 사측의 성공 사례가 돼 버리면 다른 병원에서도 직원들을 이런 식으로 몰아붙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한 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쉽다”고 걱정했다.

정해진 결론, 대화는 무용지물
‘이삿짐’으로 여겨지는 노동자들

“저는 제 가족한테도 폐원이라는 말을 내 입으로 내뱉은 적이 없습니다. 가족에게서 서울백병원 폐원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저는 ‘논의된 적도 없고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말했습니다. ‘병원 아니면 당신 둘 중 하나가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 제 지인에게서도 최근에 걱정하는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또 거짓말을 했습니다. 우리 병원은 돈벌이를 먼저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 직원들과 서로 상생의 길을 걷는다고.”

노동자들은 폐원 결정 이후의 상황도 “깜깜이고, 일방적”이라 느낀다. 가족과 지인에게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서울백병원지부의 한 조합원은 “우리는 정리돼야 할 쓰레기가 아니고, 어딘가로 옮겨져야 할 이삿짐이 아니”라며 “나와 직원들은 나날이 피골이 상접한데 재단본부는 저 뒤에 있는 남산처럼 승승장구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간 노동조합은 병원 구성원과 지역 주민 등 이해당사자들을 모두 포함한 민주적 논의기구를 구성해 서울백병원의 경영정상화 방안을 모색하자고 주장해왔다. 이사회 이후 구성된 TFT에는 노동조합과 교수협의회, 서울백병원 원장단과 재단본부가 참여했다.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 서울시 등이 들어가지 않는 소위 ‘내부’ TFT였지만 노동조합은 일단 참여해 목소리를 내기로 결정했다. 서울백병원엔 20만 7,511명의 외래환자와 393명의 노동자가 있었기에 이들을 대변해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서울백병원 TFT 회의는 세 차례 진행됐다. 그러나 김동민 지부장은 TFT를 두고 “처음부터 삐그덕거렸다”고 떠올렸다. 첫 회의부터 병원장이 참석하지 않았고 재단본부에서도 결정 권한이 없는 직급의 사람이 자리했기 때문이다. 원장단에서는 부원장이 나왔는데, 첫 회의 다음 날 돌연 사퇴했다. “두 번째 논의도 생산적이지 않았어요. 병원장이 나왔는데 여태까지 병원을 위해서 뭘 했는지를 자랑식으로 말해서 공방 하다가 지연됐고, 세 번째도 폐원을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하다가 끝났어요.”

진료 종료일자가 구체적으로 공개된 건 세 번째 논의 이후였다. “그렇게 마무리했는데 재단본부가 연락이 와서 ‘진료 종료일자를 발표하겠다’고 말하더라고요. 독단적으로 하는 것 수용할 수 없다고 해서 면담을 했는데, 상임이사가 ‘유보하라’는 저희 주장에 고개를 끄덕였어요. 면담 후 제가 노동조합 사무실에 내려와 시계를 본 게 10시 10분이었고, 40분 후 진료 종료일자를 통보하겠다는 공문이 왔어요. 그리고 오후에 (서울백병원 진료가 종료된다는) 기사가 나왔죠.”

현재 서울백병원은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인계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사측은 직원들의 고용승계 방안으로 부산백병원으로의 이동을 말하다 직원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수도권에 위치한 일산·상계백병원도 언급한 상태다. 그러나 구체적인 수치가 나오지 않아 혼란은 커지고 있다. 김동민 지부장은 “부산백병원으로 직원들을 보낸다면 갈 수 있는 구성원이 얼마나 될까 싶다”며 “그게 필요하다고 한다면 긴 시간 동안 여유를 두고 논의를 하면서 제반 상황들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 격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서울 중구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앞에서 열린 ‘서울백병원 폐원 저지 공동대책위원회 발족 및 일방적 폐원 안건 상정 철회 촉구 기자회견’ 장소 뒷편으로 119 차량에 환자가 호송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서울, 도심 공동화·병원 양극화로
시설 낙후된 병원은 적자 나는 구조

폐원이라는 큰 갈등에 휩싸이기 전 서울백병원의 노사관계는 나쁘지 않은 편에 속했다. 1941년 백인제 박사가 백인제외과병원을 개원한 뒤 인제학원이라는 재단이 만들어졌고, 그 출발점이었던 서울백병원은 1975년 서울 도심의 유일한 종합병원으로 승격됐다. 상계백병원, 일산백병원, 부산백병원, 해운대백병원도 뒤이어 개원했다.

인제학원 이사회는 서울백병원의 적자가 감당 불가능한 수준이고 앞으로 그 적자를 메울 만큼 성장할 수 없겠다 판단하고 있다. 그렇다면 서울백병원의 적자가 왜 불어났는지를 볼 필요가 있다. 백병원 형제병원들은 한정된 재원 아래서 서로의 경영을 도와 왔다. 인제학원 재단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서울백병원은 맞형 노릇을 하며 다른 형제병원의 경영이 어려울 때 필요한 투자를 연기시키기도 했다.

서울백병원 구성원들도 사측이 의료기능을 축소하고 고통분담을 요구할 때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전공의 수련병원을 포기했다. 병상 수를 2017년 276개에서 2023년 122개로 줄이고, 운영 중이던 지역응급의료센터도 반납했다.

적자는 서울백병원이 ‘서울’에 있다는 지역적인 배경과도 관련이 깊다. 서울은 도심 공동화로 중심부 거주 인구가 줄어들어 환자 확보가 어려워지고 있다. 또 서울 지역의 병원 양극화도 심각한 수준이다. 보건의료노조 서울지역본부도 서울백병원이 위치한 중구의 경우 주변의 서울아산병원·서울대병원·연세대의료원·서울성모병원·삼성서울병원 등 비교적 투자가 잘 된 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는 추세라고 설명한다.

여기에 대기업들이 서울 지역의 의료 산업에 뛰어들기 시작하면서 생존은 더욱 어려워졌다. 사립대병원은 이윤 외에도 교육 등 추구해야 할 가치가 있고, 보유한 자본도 대기업에 비해 적을 수밖에 없다. 전국의 환자가 소위 ‘큰 병원’ 진료를 위해 서울을 찾는다고 해도 병상 수나 부대시설을 고려하기 마련이다.

결국 적은 인구에 비해 많은 병원이 밀집된 서울 중소 대학병원은 후발주자인 대기업에 밀려 경영난을 걱정하게 될 수밖에 없다. 서울 도심에 위치했던 중앙대 필동병원(2004년), 이대 동대문병원(2008년), 중앙대 용산병원(2011년), 성바오로병원(2019년), 제일병원(2021년) 등도 폐원하거나 이전, 혹은 재단의 다른 병원으로 통합하는 과정을 거쳐 왔다.

위기의 서울 대학병원들
어떤 일들 있었나?

#1. 이대 동대문병원
눈에 띄는 사례는 2008년 폐원 후 이대 목동병원으로 흡수된 이대 동대문병원이다. 이대 동대문병원은 1997년부터 경영 위기를 겪어 왔다. 병상을 축소하는 등 자구책을 펼쳐도 역부족이었다. 동대문병원 노동자들도 이화의료원 노사가 임금 인상을 결정했을 때 소급분을 받지 않는 등 고통을 분담해 왔다.

10년을 노력했지만 소위 ‘목동이 돈을 벌어 동대문의 적자를 메우는’ 상황이 반복되자 재단이 구성원에게 비상대책위원회를 제안했다. 비대위에 참여해 노동자들을 대변했던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당시 이화의료원지부 지부장)은 “노동자들도 더 이상은 어려운 상황이라는 데 공감했다”며 “노조는 고용보장은 전원 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고 회상했다.

폐원 논의 시작점부터 노동자가 참여했던 이대 동대문병원은 일이 마무리되기까지 8개월가량 걸렸다. 그 결과 비정규직까지 전원 고용승계됐다. 다만 모든 인원을 목동병원이 수용할 수 없기에 이화여대로 간 행정직 직원들도 있었다. 이들은 목동병원 경영이 안정화됐을 때 선택에 따라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갈등이 없었던 건 아니다.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사측은 임금 삭감을 원했고, 임금 삭감분에 대한 노사 의견이 달라 노동조합이 투쟁 기조로 돌아섰을 때도 있었다. 나순자 위원장은 “그럼에도 사측과 재단이 일방적으로 무엇을 하는 건 생각 못 했을 것”이라며 “결정할 때 노동조합이랑 이야기를 많이 했고, 노동조합도 조합원과 간담회를 자주 가지며 거듭 상황 공유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

#2. 중앙대 용산병원
2004년 문을 닫은 중앙대 필동병원은 흑석동으로의 신축 이전이었기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2011년 중앙대 용산병원이 중앙대학교병원에 통합될 때 혼란이 있었다. 중앙대의료원은 용산병원이 흑석동으로 오기 6년 전부터 의료진과 직원들을 흑석동으로 보내 왔다. 이지윤 보건의료노조 중앙대의료원지부 지부장은 2011년 폐원이 추진될 때 이미 중앙대 용산병원에 사람이 2005년 대비 2/5 정도 줄은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중앙대의료원은 별도 비대위나 TF 없이 지속적인 노사협의회로 통합을 추진했다. 노사 상생 협약도 맺었다. 당시 용산병원엔 60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었고, 통합 과정에서 구조조정과 임금 삭감은 없었다.

이지윤 지부장은 “용산병원 직원들도 당시 상당히 불안했고, 안전하게 흑석동 병원이 흡수하는 것으로 내부 논의를 해 왔다”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마냥 잘된 것은 아니었다. 이동 과정에서 신규 채용을 자제했기 때문에 용산병원은 적은 인력으로 병원을 운영했고, 성장기였던 흑석동 병원도 용산병원과 통합하려는 노력을 서로 했다”고 말했다.

주인의식 가지라던 사용자
중대차할 땐 손잡지 않아 안타까워

서울 지역의 사립대병원들의 적자와 폐원, 같은 재단 내 다른 병원으로의 이동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보건의료노조 서울지역본부 간부들이 서울백병원의 투쟁을 남 일처럼 여기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폐원이 언급되는 중대차하고 힘든 시기, 병원에선 ‘솔직한 소통’을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가 공고히 작동해야 한다는 게 같은 경험을 한 보건의료노동자들의 의견이다.

이지윤 지부장은 “사용자는 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을 강조하지만, 실제로 주인으로 여기지 않는 것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본다. 직원들이 가장 필요로 할 때 손을 잡지 않는 사용자의 태도가 상당히 안타깝다”며 “(서울백병원 재단의 행보는) 백인제 이사장님의 백병원 설립 취지와도 부합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병원에서 일한 직원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사는 함께 그 어떤 순간에서도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이 지난달 서울 중구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앞에서 열린 ‘서울백병원 폐원 저지 공동대책위원회 발족 및 일방적 폐원 안건 상정 철회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나순자 위원장도 “평상시엔 가족이라고 이야기하면서 폐원할 땐 존중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다. 노조도 직원도 무시한 결과라고 생각한다”며 “몇 개월이 걸리더라도 사전에 논의를 해 갔으면 노조도 반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이라도 일반 직원을 대표하는 노동조합과 충분히 논의하며 서울백병원의 앞날을 결정하는 게 가장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울백병원지부는 병원 측과 특별교섭을 이어가며 교수진 등 구성원들과 대응책을 마련하겠단 계획이다. 김동민 지부장은 “이런 일은 어떤 병원에서라도 쉽게 발생할 수 있을지 모른다”며 “조합원들, 보건의료노조와 향후 계획을 상시적으로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