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택배노조 이끈’ 故김태완 수석··· “책임감 대단했다”
‘첫 택배노조 이끈’ 故김태완 수석··· “책임감 대단했다”
  • 임혜진 기자
  • 승인 2023.07.18 18:23
  • 수정 2023.07.19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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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김태완 택배노조 수석부위원장 노동사회장 치러져
택배노조 조합원들 “택배노동자 권리 대변했던 김태완 동지 기억할 것”
2017년 택배노조 출범 이후 "정신없이 달려온" 김태완 위원장은 '참여와혁신'과 인터뷰에서 “택배노동자의 ‘노동자성’ 판단 끝났다. 이제 중요한 건 ‘사용자성’ 문제”라며 “올해부터는 실질적으로 택배사와 교섭을 해나가는 과정이 핵심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 참여와혁신 이연우 기자 yulee@laborplus.co.kr
고 김태완 택배노조 수석부위원장이 2020년 4월 택배노조 출범 3년을 맞아 참여와혁신과 인터뷰에서 “정신없이 달려온 과정이었다. 택배노동자들의 권리를 함께 찾아보자고 노조에 오는 사람마다 해고를 겪는 일이 다반사였다. 해고부터 막고 싸우는 과정이었기에 대단히 절박했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고 김태완 전국택배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이 지난 16일 향년 54세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1997년 서울대학총학생회연합 집행위원장, 2008년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수석부위원장 겸 자주평화통일위원장, 2017년 택배연대노조 초대위원장을 역임했다. 2020년 택배연대노조와 택배노조의 통합 이후 2021년부터는 택배노조 수석부위원장으로서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 및 권익 향상을 위해 살았다. 고인의 빈소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에 안타까워했다. 지난 17일 빈소에서 만난 택배노조 조합원들이 기억하는 고 김태완 수석부위원장의 모습을 담았다.

원영부 택배노조 경기지부장
“2017년 11월에 노조(구 택배연대노조, 현 택배노조) 설립신고필증을 받은 후에 바로 가입했어요. 그런데 노조에 가입하자마자 대리점이 직장 폐쇄를 했어요. 그때 노조가 쟁의권을 갖고 투쟁해서 8일 만에 이기고 복직했어요. 그 중심에서 이끌어 준 사람이 당시 김태완 초대위원장이었죠. (김태완 동지) 아들이 우리 아들이랑 나이가 비슷한데요. 그 아들한테 그랬어요. ‘아저씨가 해고됐을 때 너희 아빠가 아저씨를 구해줬어’라고요.” 

“부당한 건 참지 말고 싸워야 한다고 가르쳐준 사람이 김태완 동지예요. 저랑 동갑인데, 둘 다 축구를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아쉽게도 한 번도 둘이 축구를 못했어요, 투쟁하느라.” 

박대희 택배노조 우체국본부 서울청 부본부장
“2014년경부터 현장 택배기사들의 불만이 엄청 고조됐는데요. 이후 기사들의 불만이나 고충을 들어보자 해서 택배기사 권리찾기 전국모임을 (김태완 수석과) 만들었어요. 당시 택배기사 상조회 같은 모임도 곳곳에 있었지만, 택배기사도 노동자라는 입장으로 노동조합을 해보자는 사람들이 나왔어요. 그 가운데 김태완 수석이 있었죠. 택배노동자가 특수고용직이라 노동3권도 보장되지 않고, 사측과 교섭도 원활하지 않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바꾸려면 노동조합 설립신고필증을 따야 된다는 전략을 (김태완 수석이) 설계했어요. 그래서 고용노동청 앞에서 농성도 하고 국회의사당 앞에서 단식도 하고 했죠.”

택배노조 전 조직국장 A씨
“(김태완 수석) 둘째가 태어났던 날이 기억에 남아요. (김태완 수석이) 택배대리점에서 일할 때인데 옆에서 일을 덜어주려 해도 본인이 맡은 일을 다 하셨어요. 어떻게 보면 미련한 걸 수도 있지만, 책임감이 강하신 거죠.”

“위원장으로서는 더 하셨어요. 한 번은 대구·경북 쪽에서 조합원 해고 사건이 있었어요. 현장에서 너무 잘 싸워서 저는 2개월 내로 이길 수 있겠구나 생각했죠. 그런데 (김태완 수석은) 별의별 대안을 다 내놓았어요. 총파업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냐 등 머릿속으로 계속 전략을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런 게 굉장한 높은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옆에서 보면 미안할 정도였으니까요. 고민의 양 자체가 다르신 분이에요.”

유성욱 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장
“제가 기억하는 김태완 동지는 심할 정도로 성격이 굉장히 낙천적이에요. 항상 긍정적이고 어떤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우리들에게 희망을 주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줬죠. 노조 필증이 없을 때, 이를 알리는 투쟁을 하자고 할 때도 저는 솔직히 안 될 것 같았어요. 조합원도 전국에 150명 정도 이럴 때니까요. 그런데 김태완 동지는 ‘우리가 하나의 족적을 남기면 후세대들이 우리의 뜻을 이어갈 수 있으니까 의미 있는 투쟁이 될 거다’라고 설득하면서 본격적으로 투쟁을 한 거였어요.”

정하석 택배노조 우체국본부 서대문지회 조합원
“따뜻한 분이셨죠. 현장 조합원 한 분, 한 분 이야기 들어주셨던 게 기억나요.”

롯데김해지회 조합원 B씨
“조합원들이 (내부적으로 노조를) 비판하는 일이 있죠. 그럴 때 (김태완 수석이) 급하게 지방에 내려와서 간담회를 하셨는데요. 그렇게 다들 시끄럽게 비판해도 그분은 한 번도 언짢아한 적이 없어요.”

정찬관 택배노조 광주전남지부 조합원
“김태완 수석님이 가지고 다니시는 작은 휴대용 빔프로젝터가 있었어요. 그걸로 PPT 띄우고 노동자 권리에 대해 설명하러 다니신 거죠. 우리의 권리가 정당하게 보장받아야 우리 아이들도 정당한 세상에서 살 수 있을 테니까요. 나중에 아드님들이 아빠를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어요.”

택배노조 조합원 C씨
“택배노동자한테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님은 아버지, 김태완 수석부위원장은 어머니 같은 역할을 해주셨어요. 노동자 권리를 대변하고 노동자가 갈 길을 제시해 주시고, 최초로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분류 작업이라는 택배 노동환경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셨고요. 이렇게 택배노조에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도록 역사를 새로 쓰셨다는 점에서 두 분 다 대단한 분들이라 이야기하고 싶어요.”

“수석님과 개인적인 인연은 없습니다. 노동운동을 진실되게 해오신 수석님을 하나님이 하늘나라에서 더 큰 일을 해달라고 불렀다고 생각해요.”

* 고 김태완 수석부위원장의 빈소는 서울 한양대학교병원 장례식장 7호실에 마련됐다. 추모식은 18일 오후 8시에 한양대학교병원 동문회관 5층에서 열린다. 발인은 오는 19일 오전 8시다. 영결식은 19일 오전 9시에 고인이 생전 택배노동자로 근무해왔던 서울 용산구 CJ대한통운 구 용산터미널에서 진행된다. 장지는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