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피 사업소’에서 변화 일구는 청년 기관사들
‘기피 사업소’에서 변화 일구는 청년 기관사들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3.08.01 15:52
  • 수정 2023.08.07 1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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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세대교체, 노조 간부 재생산될 교육 필요해”
[인터뷰]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구로승무지부 정주회 지부장, 유태균 총무부장

“입사 1년여 만에 노동조합 간부를 할 계획은 원래 없었죠. 하지만 전례 없을 정도로 빠르게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어요. 모두가 젊은 상황이고 누군가는 노동조합 간부를 해야 하는 게 지금 상황이에요.”

2021년 상반기 한국철도공사 구로승무사업소 입사 동기인 정주회 씨(92년생)와 유태균 씨(95년생)는 지난해 7월 철도노조 구로승무지부 보궐선거를 기점으로 노동조합 간부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정주회 씨는 교육선전부장을, 유태균 씨는 총무부장을 맡게 됐다. 이후 정주회 씨는 올해 3월 선거에서 지부장에 당선됐고, 유태균 씨는 총무부장을 이어가기로 했다. 입사 후 갓 2년을 맞은 올해 상반기, 2030을 주축으로 구성된 구로승무지부는 관리자의 연차·병가 통제를 규탄하며 총력투쟁을 벌였다. 모두가 떠나길 바라는 낙후된 사업소에서 ‘쉴 권리’만은 지켜내야 한다는 절박함이었다. 급격하게 진행되는 세대교체의 흐름 속, 철도 기관사와 노동조합 간부를 병행하며 변화를 일궈가는 두 노동조합 간부를 참여와혁신이 지난 7월 20일에 찾아갔다.

정주회 구로승무지부 지부장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정주회 구로승무지부 지부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우리 집행부 좀 멋졌다”

- 구로승무지부는 올해 상반기 연차·병가 통제를 규탄하며 ‘아프면 쉴 권리 쟁취’ 투쟁을 벌였다.

정주회 : 2010년대 후반 입사자들이 5급으로 진급하는 과정에서 역전 현상이 발생했는데, 그 사유가 부적절했다. 연차 낮은 기관사와 면담에서 근무평정 권한을 행사하는 부소장이 병가 사용, 사이버 법정교육 이수율 등을 진급 누락 사유로 툭툭 던졌다. 사측은 진급에 반영 안 했다는 식으로 해명했는데, 실제 대화 맥락을 보면 그렇지 않았다. 2030 조합원들 사이에서 ‘내년에는 병가 안 쓰겠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왔다. 설령 진급에 반영하지 않았더라도 인사권을 매개로 관리자가 전횡을 벌이는 조직문화를 방치하면 일터도 팍팍해지고 조합원 간의 단결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 간부를 포함해 투쟁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조합원이 지부의 상당수를 차지하는데, 조직화가 어렵지는 않았나.

정주회 : 처음부터 투쟁을 계획한 건 아니었다. 사측에 근거 없는 진급역전, 관리자의 지나친 압박, 성과주의 확산 등에 대한 우려를 전했지만, 결국 진급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당장 총력투쟁으로 전환하지는 않았다. 노동조합 내부에 걱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사권은 사측의 고유 영역이기에 아무리 우리가 억울함을 호소해도 사측에서 정당한 인사권을 행사했다고 하면 책임을 묻긴 어려울 거라는 우려가 있었다. 사측이 인사 정보도 권한도 다 쥐고 있는데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느냐는 거다. 투쟁으로 인해 불이익을 볼 수 있다는 걱정도 컸다. 연·병가 통제를 증언한 조합원이 다 비공개를 요청했기 때문에 제대로 책임을 묻기 애매했다. 직접적이든 암묵적이든 인사 관련 요구가 굉장히 어려운 것 같다는 정서를 조합원들이 갖고 있었다.

조합원들과 우리의 요구가 정당하다는 점을 공유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가장 낮은 직급인 6급 조합원들을 만났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다’, ‘인사권 영역이지만 이의를 충분히 제기해야 된다’, ‘설령 부소장 퇴진이나 요구안을 100%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항의를 해야 한다’, ‘차라리 다 같이 보복을 당하면 되지 않느냐’는 둥 얘기를 나누며 투쟁에 대한 공감대를 넓혔다.

상급단체인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와 투쟁 방안을 논의했고 선배 조합원들과 간담회도 했다. 사실 처음에는 6급 조합원만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이미 진급을 끝냈거나 퇴직을 앞둔 3·4급도 선전전과 결의대회에 함께했다. 보통 결의대회에 60~70명만 모여도 많이 왔다고 말하곤 했는데, 지난 4월 결의대회에 조합원이 110명 정도 모였다. 당시로서는 가장 큰 규모였다.

- 연차·병가 통제 규탄 투쟁으로 구로승무지부에 생긴 변화가 있다면.

유태균 : 최근 철도특별사법경찰대 집회에 예상보다 많은 조합원이 참여했다. 집행부에서 계산하기로는 여건되는 사람이 모두 참여해도 100명 정도였는데, 그 수를 훨씬 넘는 130명이 왔다. 작년과 올 상반기에 큰 사건을 겪으며 ‘우리도 해봤다, 우리도 이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조합원들이 가졌기에 조직이 잘되지 않았나 싶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 집행부 좀 멋있다, 우리 좀 된다’는 뿌듯함을 느꼈다. 집회에 참여한 조합원들도 아마 자신감을 갖고 일도 노동조합 활동도 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하게 됐다.

정주회 : 노동조합 요구안이 100% 관철되는 않았지만, 예전처럼 함부로 병가나 연차를 통제하지 못한다. 가령 연차 사용이 어려울 거로 예상되면 사업소에서 본부에 지원을 요청하는 등 예전보다는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사측이 위기 대응 능력을 발휘하는 건 노동조합이 투쟁으로 바꿔낸 성과라고 본다. 조합원들의 정서가 한 번에 바뀐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조합원을 한 번에 만족시킬 투쟁은 없을 것이다. 다만 지부에 대한 신뢰는 조금씩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조합원들이 코레일 수도권광역본부 인근 철길 고가 인도에서 요구사항을 적은 리본을 묶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지난 4월 13일 ‘코로나에 운전강요, 책임자 처벌! 아프면 쉴 권리 쟁취!’ 결의대회 이후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조합원들이 코레일 수도권광역본부 인근 철길 고가 인도에서 요구사항을 적은 리본을 묶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전례 없이 빠른 세대교체,
“간부 재생산될 수 있는 교육 필요해”

- 구로승무사업소가 20·30세대를 중심으로 구성된 이유가 있나.

정주회 : 기관사들에게 인기 없는 사업소이기 때문이다. 기존 인원은 기회만 생기면 최대한 다른 사업소로 가려 한다. 빈자리는 신규채용으로 채워진다. 구성원의 60~70%가량이 최근 5년 내 입사자다. 올 상반기에만 38명이 새로 들어왔다. 총원의 7분의 1 규모다. 중위연령이 33세다.

건물은 낙후됐고 주박지(승무원이 취침하고 출발하는 역)도 제일 많다. 1호선의 경우 신호시스템과 차량도 구식이다. 열차 종류도 급행, 완행, 특급 등 다양하다. 근무 스케줄도 복잡하고 불규칙하다. 쉬는 시간이 적다. 사고나 장애가 날 확률이 높다. 경위서를 쓰고 진급에서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커진다. 구로승무사업소는 시설이 낡고 진급도 어렵다는 인식이 많다.

악순환이다. 사람이 부족하니 연·병가를 잘 못 쓴 것이다. 원래는 아니었다. 시설이 열악하고 환경은 안 좋더라도 연·병가는 쓸 수 있었다. 노동조합이 강력했기 때문이다. 구로승무지부가 급격한 세대교체를 겪기 전까지는 철도노조 중에서도 단결력이 좋은 곳이었던 걸로 안다. 그런데 젊은 조합원으로 채워지다 보니 연·병가마저 통제하는 등 사측에서 마음대로 하려는 분위기가 생겼다. 다 안 좋은데 너무도 기본적인 연·병가마저도 노동조합이 빼앗기게 생겼다는 말이 돌았다.

- 젊은 세대로 채워지면서 사측의 압박이 세진 건지?

정주회 : 구로승무사업소의 세대교체가 워낙 급격하게 진행되며 젊은 기관사가 많아지니 관리자들이 문제적 태도를 보였다. 아침에 병가를 쓰고 싶다고 하면 ‘일단 출근은 해라, 승무는 빼주겠다’ 이런 식이다. 6급인 직원들이 3급 관리자에게 그런 말을 들으면 보통 억지로 출근해 억울함을 토로한다. 같은 상황이 지난 2~3년 동안 자꾸 반복되어 왔다. 그나마 다행인 건 노동조합의 공백은 없었다. 노동조합의 기풍이나 분위기가 죽지 않아서 젊은 조합원들이 집회나 선전전에 대체로 참여하려는 분위기다.

- 입사 1년여 만에 노동조합 간부를 시작한 계기는?

정주회 : 대학 때 학생회를 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노동조합 간부도 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은 했다. 입사 1년여 만에 노동조합 간부를 할 계획은 원래 없었다. 하지만 전례 없을 정도로 빠르게 세대가 교체되고 있다. 어차피 조금만 있으면 노동조합 외에도 동호회나 향우회, 상조회의 집행 간부를 해야 할 상황이다. 중간 세대가 없기 때문이다. 비슷한 연령대의 다른 간부도 같은 말을 하더라. 지금 모두가 젊은 상황이고 누군가는 해야 하기 때문에 전례를 신경 쓸 수 없다고.

유태균 : 원래는 조용히, 얇고 길게 한국철도공사를 다니는 게 목표였다. 첫 직장이기도 하고 노동조합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다 공사에 오랫동안 다니려면 일하는 환경도 좋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노동조합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지난해 보궐선거를 치르게 만든 배경이 결정적이었다.

정주회 : 당시 서해선에 신규 노선이 들어서며 새로운 사업소가 생겼다. 최신 시설 등 여러모로 이점이 많아 다들 가고 싶어 하는 인기 사업소였다. 우리 사업소에서도 몇십 명이 지원했는데, 당시 소장이 현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지원서 제출 자체를 안 했다. 문제는 노동조합에도 그 사실을 알렸는데 당시 지부장이 동의를 해줬다. 평소에도 소통을 잘 안 했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는데, 사태가 발생하자 강력한 내부 항의가 일었고, 결국 보궐선거로 집행부가 교체됐다.

유태균 : 피해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언젠가는 나도 피해를 당하거나 의도치도 않게 내가 누군가한테 불이익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냥 가만히 있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노동조합 일을 배워보고 싶었다.

유태균 구로승무지부 총무부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 신입사원과 다름없을 때인데,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게 어렵지 않은가.

유태균 : 체력적으로도 솔직히 힘든 부분이 없지 않지만, 다 같이 하는 일이니까 힘내서 하고 있다. 처음 간부를 시작할 때 힘들 것 같아서 안 하는 것보다 일단 해보는 게 맞다고 봤다. 조합원으로서 집회에 참여해 보니 간부로 참여하는 거랑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고 느꼈다. ‘그냥 한번 해보자, 다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었다. 오히려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배우는 마음으로 간부를 한다면 좀 서툴고 못 하더라도 선배들도 이해해 줄 것 같았다.

정주회 : 경험이 많지 않아서 판단에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다. 사측에는 어느 정도 요구하는 게 맞을지. 올바르면서도 현실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지 매번 고민한다. 옛날 게 답은 아니겠지만, 대체로 어떻게 해왔는지 전임 간부들에게 물어본다. 과거 집행부가 조합원과 불통 문제로 내려온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의제를 잘 잡고 활동하려 한다. 한편으로는 저뿐만 아니라 조합원도 경험이 많지 않다. 지난 1년간 우리 지부 자체 투쟁만 해봤기 때문에 철도 민영화 저지 투쟁 등 전국적인 쟁점을 어떻게 풀어낼지도 나름 걱정이다.

또 고민되는 지점은 청년-장년 조합원의 화합이다. 젊은 조합원이 많아지는 바람에 오히려 장년 조합원들이 함께 있길 어려워하는 것 같다. 작년 말, 올해 초에 한창 선배들을 챙기고픈 마음에 뒤풀이에 자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신구 조합원이 섞이지 않아서 고민이다. 또 그분들이 바라거나 아쉬워하는 게 있을 텐데, 소수의 목소리는 항상 작게 들리지 않나. 후배들이 지부 간부를 이제 막 시작했으니 일부러 말씀을 아끼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배 세대는 노동조합의 효능감을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에 집회 때도 참석하면 맨 앞줄을 채워준다. 집행부 입장에선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 노동조합을 하면서 즐거운 점이 있는지?

유태균 : 성격상 총무 일이 잘 맞아서 재밌게 하고 있다. 원래 가계부 작성을 좋아한다. 총무는 간단히 생각하면 조합비의 사용처를 정하고 알맞은 지출액을 세우는 일이다. 계획한 대로 돈을 알맞게 쓰면 쾌감이 느껴진다. 한 가지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은 집회 등 모든 사업에 돈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노동조합 활동은 규모가 클수록 좋지만, 관리하는 입장이다 보니 ‘사람 많을수록 돈도 더 들어갈 텐데’하는 마음이 한편에 생긴다. 그래도 스스로 ‘이 정도는 괜찮아’하면서 재밌게 하고 있다.

정주회 : 노동조합의 효능을 확인할 때다. 간담회에서 조합원들이 이야기에 공감해 줄 때, 또 집행부를 신뢰하는 조합원들이 선전전이나 집회에 나와서 그 힘으로 처음에는 꿈쩍도 않던 사측이 움직이는 걸 실제로 보면 집단에 힘이 있다는 걸 느낀다. 책이나 뉴스로만 보던 것들인데 ‘이래서 노동조합을 하는구나’하는 보람이 생긴다.

- 철도노조에 바람이 있다면?

유태균 : 철도노조가 오는 9월에 민영화 반대 파업을 예고했다. 작년에도 파업 직전까지 갔다가 무산됐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SRT 노선 확대나 철도 민영화에 대한 파업을 해야만 한다면 흐지부지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근 대의원대회에서 2013년 철도노조 파업 영상을 자세히 볼 기회가 있었다. 학생일 때와 달리 조합원으로서 그 영상을 보니까, 과연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들더라. 걱정과 두려움은 있지만 단단하게 파업을 조직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정주회 : ‘간부가 재생산될 수 있는 지부 만들기’가 집행부를 꾸리면서 세운 제일 큰 목표다. 거꾸로 말하면 제일 안 될 것 같기에 목표로 정했다. 지금 철도노조에 있는 간부 양성 교육은 일회성이라고 생각한다. 3~4년 차 간부 중 노동운동의 역사나 철도노조의 역사·규약·강령을 공부할 수 있는 중장기적 프로그램을 이수한 사람은 없는 거로 안다. 공공운수노조 등 산별에서는 몇 주차 간부 교육을 실시한다고 들었는데, 우리 같은 교대제·교번제 사업장 간부들은 듣기 어렵다.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에서 연차 보상비를 지원하는 하루짜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지만, 2년 임기 동안 집행부 간부 9명의 절반도 못 다녀올 듯하다. 자체적으로 책 읽기 모임이라도 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간부가 재생산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세대교체는 구로승무지부가 전국 철도 사업소에서 가장 빠르게 겪고 있지만 다른 지부에도 점차 도래하고 있다. 피할 수 없는 과제다. 다들 부족한 역량을 호소하며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철도노조가 주기적으로 큰 싸움과 파업에서 경험을 전수받거나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의식을 학습하는 프로세스가 강했다면, 지금은 좀 더 디테일한 교육 프로그램이 생겨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크다. 처음 입사할 때를 제외하면 일반 조합원은 대의원을 하지 않는 이상 노동조합에 대한 교육을 들을 일이 없다. 파업 때 백화점식으로 노동조합의 현안을 얘기하며 모금과 집회 참여를 유도하는 것보다는, 한 꺼풀 밑에 있는 얘기를 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철도노조가 그렇게 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