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세액공제 선별 적용’ 10월부터···취약 노동자 피해 지적도
‘노조 세액공제 선별 적용’ 10월부터···취약 노동자 피해 지적도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3.09.05 13:26
  • 수정 2023.09.06 1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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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단체 회계 공시 안 하면 산하 조직 조합원 세액공제 못 받아
노동계 “노동조합 하지 말란 것”, “조합원 재산권 침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 고용노동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 고용노동부

회계를 공시하지 않은 노동조합의 조합원은 조합비 세액공제를 못 받도록 하는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 발효가 오는 10월 1일로 앞당겨진다. 해당 시행령은 애초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다.

고용노동부는 5일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하고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 강화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고려하고, 노동조합의 투명한 회계 운영에 대한 조합원과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제도 시행을 당초보다 앞당기기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 재입법 예고는 5일부터 오는 11일까지 진행된다.

자산·부채, 수입·지출 등 노동조합 회계를 공시할 시스템은 노동부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사이트인 ‘노동포털’에서 다음 달 1일부터 운영된다. 전 국민이 해당 노동조합의 회계를 열람하게 되는 셈이다. 결산 결과 등록 기간은 다음 달 1일부터 두 달간이다.

조합원은 세액공제를 소속 노동조합뿐 아니라 상급단체 모두 결산 결과를 공시해야만 받을 수 있다. 회계 공시 대상은 1,000인 이상 노동조합과 총연합단체·연합단체로 한정했지만, 상급단체 중 한 곳이라도 회계를 공시하지 않으면 가맹 노동조합 조합원은 세액공제를 받지 못한다. 가령 한국노총 OO연맹 □□노동조합 산하의 △△지부라면, 가입자 수가 1,000 미만이더라도 한국노총·OO연맹·XX노동조합 모두 결산 결과를 공시해야 조합원이 세액공제를 받게 된다.

이번 조치에 대해 노동부는 “조합원의 재정 정보 접근성을 강화하고 (노동조합) 미가입 노동자의 노동조합 선택권·단결권 등을 보장”하며, “조합비 세액공제는 사실상 국민의 세금으로 노동조합의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므로 이에 상응하는 공공성·투명성 확보를 위해 회계 공시와 연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비정규직 조합원 혼란 가중”
“연합단체 탈퇴 부추기는 행위”

노동계는 정부의 세액공제 선별 적용에 반발하며 시행령 철회를 재차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정부가 서둘러 시행하려는 회계 공시를 전제로 한 세액공제 선별 적용은 고용 특성상 초기업단위노조로 모일 수밖에 없어 조합원 수 기준 1,000명을 넘을 수밖에 없는 기간제 비정규직, 공무직, 다단계 하층 구조에 놓인 간접고용·특수고용 조합원에게 혼란을 가중할 것이 뻔하다”고 지적했다.

저임금, 비정규 노동자가 다수 속한 민주일반연맹의 이정민 정책실장은 “각 사업장으로 보면 작은 규모지만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으며 고용도 불안한 노동자들이 노동권을 위해 지역일반노조 등 초기업노조로 모였다”며 “노조법상 (위법 소지가 있는) 회계 공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그나마 세액공제를 받아야 할 노동자들마저 도매금으로 조합비를 환급받지 못하게 하는 것은 노동조합을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노총은 “노동부는 소득공제가 국민의 세금으로 노동조합의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라 거짓 선동을 하지만 소득공제는 조합원이 노동을 통한 소득 중 일부를 세금으로 내고 이를 법이 정한 바에 따라 추가로 납부하거나 환급받는 제도”라며 “내가 낸 세금을 법에 의거해 돌려받는 것인데 이를 회계 공시와 연동시켜 차별적으로 적용하겠다는 노동부의 행위는 명백하게 민주노총과 산별노조, 노동조합과 조합원을 갈라치기 위한 비열한 시도”라고 비판했다.

한국노총도 지난 7월 기획재정부에 전달한 의견서를 통해 시행령 개정안이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한국노총은 “(시행령 개정안)은 행정부의 일방적이고 자의적인 조세 부과를 금지하고 반드시 국회가 제정한 법률에 의해서만 조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조세법률주의 원칙을 위반”한다고 주장했다. 또 상급단체의 공시 거부로 산하 조직 조합원이 세액공제를 받지 못하도록 한 것에 대해서는 “결산 공시와는 관련이 없는 제3자인 조합원이 기부금 세액공제를 박탈당하여 조세를 부과받게 되는 것이므로, 실질적 조세법률주의에 위반되는 동시에 조합원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지현 한국노총 대변인은 “직장인 연말 정산 시즌을 앞두고 다급하게 시행령 시행 시기를 앞당긴 것은 노동자들의 불만을 증폭시켜 노동조합과 상급단체를 옥죄려는 의도”라며 “노동조합이 소속된 연합단체와 총연합단체까지 시행공시를 하지 않을 경우 세액공제 혜택을 주지 않겠다는 것은 단위 노동조합의 연합단체와 총연합단체 탈퇴를 부추기는 행위”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