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빨아먹는’ 원청에 “살 수 없었던” 제화 노사 뭉치다
‘피 빨아먹는’ 원청에 “살 수 없었던” 제화 노사 뭉치다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3.09.28 13:49
  • 수정 2023.09.28 1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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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제화산업 위해 ‘제화산업(재건)노사상생발전협의회’ 발족
“다단계 착취 산업 생태계 바꿔보고자” 대화 주체로 나설 것
문종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가운데)가 협의회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추석 지나면 문 닫는 공장 더 많아질 거예요. 상황이 급박하고, 저희 너무 힘들어요.” 15일 오후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민주일반노조 서울본부 제화지부 사무실에서 나온 호소다. 대기업에 신발을 납품하는 하청업체 사장 a씨다. 그가 계속 말했다. “거긴 철저하게 이윤을 목표로 하는 거잖아요.” 싼 가격에 신발을 납품받길 원하는 제화 브랜드(원청)를 두고 한 말이다.

사무실엔 10여 명의 사람들이 마주앉아 있었다. 제화 노동자들, 공장을 운영하는 하청업체 사장, 하청업체에 제화를 납품받는 중소 브랜드 사장, 그리고 노동 분야 전문가들이다. 언뜻 교섭 자리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제화산업을 살려보자는 공동의 목표로 모인 ‘제화산업(재건)노사상생발전협의회(이하 제화노사상생발전협의회)’ 회의 시간이다.

산업 구조를 이대로 둬선 안 된다는 위기감에 제화 노사가 제화노사상생발전협의회를 9월 발족했다. 원청인 제화 브랜드, 백화점, 하청업체, 노동자로 이어지는 ‘다단계 착취’를 끊어보잔 공감대다. 회의를 마친 구성원들에게 제화노사상생발전협의회를 꾸리게 된 내막을 물어봤다.

인터뷰에 참여한 사용자들의 이야기는 익명으로 담기로 했다. “딸린 식구가 많아 원청이 일감을 끊으면 안 된다”는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이대로 시간이 몇 년 흐르면
영영 복구할 수 없겠단 동질감

a씨는 한국의 제화 산업이 몰락해가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일감이 없어 공장을 하루에 서너 시간밖에 못 돌리는 날이 늘어나고 있었다.

a씨와 같이 일하는 제화 노동자들이 만드는 건 고급 수제화다. 수제화 한 족을 소비자가 구매하면 원청인 브랜드 대기업이 40%, 백화점이 대략 40%, 나머지 약 20% 정도를 하청업체 사장과 제화노동자가 나눠 가진다고 노동자들은 추측한다. 제화 노동자가 수제화 한 족을 만들면 7,500원에서 8,500원 정도의 공임을 받는다. 브랜드별로 공임은 조금씩 다르다.

하청업체 사장이라고 해도 노동자들보다 특별히 큰돈을 가져가는 건 아니다.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주고 나면 남는 것이 없는 달도 있었다. 원청인 제화 대기업은 하청업체들이 싼 가격에 신발을 만들어주길 원했다. 원청인 제화 브랜드와 백화점이 하청업체를 착취하고, 하청업체가 다시 제화 노동자를 착취해 ‘을들의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단가를 깎던 원청은 국내보다 싼 값에 신발을 만들어줄 수 있는 해외로 눈을 돌렸다. 국내 하청업체 입장에선 그나마 있던 일감들도 줄어든 것이다. “일은 계속 없어지고, 공장 사정은 계속 어려워지게 되고, 나름대로 자체 브랜드도 하면서 그나마 버텨 왔는데 이것도 한계에 부딪힌 거죠.” (a씨)

새로운 노동자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도 a씨는 문제로 꼽았다. a씨는 “가장 절실한 건 일할 수 있는 분들이 없다는 것”이라며 “공장이라는 게 일하는 사람이 있어야 운영을 한다. 젊은 신규 인력이 제화 산업에 투입될 방법을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여기에 제화 노동자도 고개를 끄덕인다. “유통과 브랜드 본사가 모든 이익을 가져가는 구조 속에서 짧게는 2~3년 후, 길게는 5년이 흘러가면 복구할 어떤 최소한의 기간마저도 영영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동질감이지 않을까 싶어요.”, “노동조합 입장에선 현안이 많이 있지만 지금은 제화 산업 시스템을 새로 바꿔가면서 신규 노동자가 어떻게 들어올 수 있고, 미래 산업은 어떻게 끌고 갈 수 있는 건지 고민을 함께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박완규 제화지부 지부장의 말이다.

박완규 민주일반노조 서울본부 제화지부 지부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되겠어?” 불신에도
혼자선 할 수 없는 일이라

a씨가 ‘노조와 손잡을 결심’을 했을 때 동료 하청업체 사장들의 관심은 적었다. “그게 되겠어? 싶고, 불신이 팽만한”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괜히 노조 편 들어줘서 좋을 게 뭐가 있어”란 말들도 들었다. 하청업체 사장들이 보기에 제화지부는 공임 인상 등을 요구하며 텐디 본사를 점거하기도 한 소위 ‘강성 노조’였다.

박완규 지부장이 “노동자들도 똑같았다”고 답했다. 박완규 지부장은 “노동조합이 노사상생협의회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다”며 “우리 현장에 있는 조합원들도 ‘그게 어떤 의미야?’하는 질문들을 했다”고 말했다. 노동조합은 제화노사상생발전협의회 참여를 결정하기 전 현장 순회를 돌며 조합원들의 의견을 묻고 동의를 구했다.

불신과 불안에도 이들이 협의회 발족까지 온 건 앞서 나왔던 동질감, 그리고 제화 산업의 다단계 착취 구조에서 겪는 어려움을 각자의 힘만으론 풀기 힘들겠단 생각에서다. 노동자들은 적은 공임을 받는 동시에 1년 단위로 도급제 계약을 맺어 4대 보험 등이 적용되지 않는다. 하청업체 사장들은 일감이 줄어 폐업 위기에 처해 있다. 중소 브랜드들은 판로 개척에 고민이 깊다. 노동조합도 하청업체도 중소 브랜드들도 나름대로 노력은 했지만 상황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이제는 어느 한 쪽에서 뭘 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에요. 진짜 위기고 심각하거든요. 노동자분들도 노동자분들대로 힘드시고요. 공장은 공장대로 힘들고, 저희는 저희대로 힘들거든요. 이게 다 연결이 돼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무너지면 같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제화 브랜드를 운영하는 b씨도 말을 보탰다.

a씨와 b씨는 지금까지 제화 대기업들은 하청에 싼 신발을 만들 것을 요구하면서도 투자를 엉뚱한 곳에 해 왔단 생각도 한다. “투자를 안 한다는 게 왜 명확하냐면 뭔가 개발도 하고 공장들도 어느 정도 살 수 있게끔 해줘야 하는데 남는 돈 가지고 부동산 투기를 하거나 다른 사업을 하다 보니까. 지금도 모든 원청들이 식품 사업, 부동산업 그런 것들을 하고 있어요.” a씨가 공감했다.

대기업→하청→노동자
착취, 제화만의 구조 아냐

이야기를 듣던 문종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가 “비단 제화 산업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30년 구두를 만드신 숙련 노동자가 있는데, 모아놓은 돈도 없고 노후 보장이 안 돼요. 그런데 그 이면에 시장은 커진 거예요. 벌어들인 돈이 생산에 재투자가 된 게 아니라 땅에 투자가 되고, 다 없어졌다는 거예요. 저는 이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예요.”

“다 그렇잖아요. 다른 대기업들의 행태가요. 제화만 이렇게 일방적으로 소진시키는 산업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에요. 새로 시장이 커지는 산업도 이런 원리로 작동을 하면, 무슨 산업이 새로 떠도 어차피 똑같다는 거죠. 우리 산업 구조가, 생태계가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제화에서 하는 거고 그래서 중요한 거예요.”

그러면서 문종찬 상임활동가는 “품질을 개선하고 소위 연구개발을 하고,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걸 하청업체에서, 작은 브랜드에서 할 수 있나? 아니”라며 “이 산업의 최종 이익을 향유했던 자본에서 해줘야 할 역할인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제화산업노사상생발전협의회 발족식을 알리는 입간판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한국의 제화 기술
아깝지 않나요?

제화 노사는 제화노사상생발전협의회에서 먼저 이들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산업 구조와 그 구조가 실현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이후 원청과 지자체 등을 불러 대화를 계속하고 싶단 바람도 있다.

지금의 생각을 각각 들려달라고 했다. b씨는 한국의 제화 산업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해외에서 생산되는 신발보다 국내의 것이 더 ‘고급’이 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려면 좋은 품질의 신발을 마땅한 값의 공임을 받으며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기술이 너무 아깝지 않나요? 명품 몇 브랜드가 한국 성수동 공장에서 생산하는 데가 있대요. 기가 막히대요 퀼리티가. 명품은 한 족당 돈을 많이 주니까 그런 거예요. 우리 제화 산업은 분명히 가능성이 있어요. 죽이면 안 돼요. 어렵겠죠. 힘들겠죠. 근데 지자체나 이런 데서도 좀 도와주고 해서 탄탄하고 깊이 있게 만들어놓으면 그 시장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거 같거든요.” b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a씨는 고급 신발이 한국에서 생산되면 그걸 소비자가 제대로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메이드 인 차이나인지, 코리아인지 소비자들이 뒤집어 까고 보지 않는 이상은 모르는” 상황이다. 중국산 신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고려한 브랜드 본사들이 생산지를 잘 안 보이는 곳에 숨겨놨기 때문이다.

또 a씨는 브랜드 본사들이 해외로 생산지를 돌려서 한국에 되파는 게 아니라, 한국의 제화를 해외에 알리는 데 주력했으면 하는 의견이다. a씨는 “국내에서 피 빨아먹듯이 밑에 있는 하청한테 그만 좀 해먹고 해외에 우리 브랜드를 알리고 영업점을 내서 투자를 해야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그런 부분도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박완규 지부장은 원청이 나서려면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산업 구조는 위에서 가진 자가 다 독식하는 거다. 우리 협의회가 출범할 때 정부 관계자들이 와서 축하 인사도 해주시고 했는데, 단순하게 인사로 끝나는 게 아니라 브랜드 본사와 유통업체를 움직일 수 있는 것들이 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며 “이 산업이 큰 비전이 있는 게 아니라도 해도 국가 입장에서도 신발이라고 하는 건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품목이다. 최소한 제화 생산을 할 수 있는 사업 구조, 인력 구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