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노동 국감] 다친 노동자 버팀목 근로복지공단, 직원은 트라우마에 투신까지
[2023 노동 국감] 다친 노동자 버팀목 근로복지공단, 직원은 트라우마에 투신까지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3.10.23 20:54
  • 수정 2023.10.23 2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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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환노위 국감에서 근로복지공단 노동환경 화두
업무량 폭증에 인력·예산은 못 따라와···“기재부 장관 멱살 잡든 무슨 수 내야”
[인터뷰] 국회 앞 1인 시위 중 박진우 근로복지공단노동조합 위원장

“올해 8월부터 근로복지공단에서 민원서류 처리 등에 불만을 품은 민원인이 흉기를 들고 자해한 일이 4건 연달아 발생했다. 한 민원인은 식칼로 본인 배를 갈랐다. 다른 민원인은 본인 손목을 칼로 긋고 그은 팔을 든 채 공단 유리문 앞에 가만히 서 있기도 했다. 이런 장면을 목격한 근로복지공단 직원들은 큰 충격을 받고 휴직한다. 특히 9월 19일에는 업무상 스트레스를 호소해 온 근로복지공단 대전서부지사 직원이 저녁 7시까지 밀린 서류를 검토하다가 8층 사무실에서 투신했다.” (박진우 근로복지공단노조 위원장)

일하다 다친 노동자들에게 보상·치료·재활 서비스를 제공해, 이들의 일터 복귀를 돕는 근로복지공단 직원들에게 빨간불이 켜졌다. 특히 최근 업무상 스트레스를 호소해 온 직원의 자살 이후 공단에선 업무 과중과 감정노동으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위험 수준이라는 직원들의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한국노총 공공연맹 근로복지공단노조가 지난 16일부터 국회 앞 1인 시위에 나선 배경이다. 노조는 적정 인력과 예산 없이는 근로복지공단에 켜진 빨간불을 끌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박종길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이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박종길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이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환노위, 근로복지공단 노동환경 지적
“노동부가 기재부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아야”

2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부 산하기관 국정감사에서도 근로복지공단 직원들의 노동환경에 대한 문제가 나왔다.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은 “올해에 이어 지난해에도 근로복지공단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며 “이런 일이 반복되는 배경 중 하나는 근로복지공단 직원들의 업무가 급격히 증가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확인한 결과 2014년 9,211건이었던 업무상 질병재해의 산재보상 신청은 2022년 2만 8,796건으로 9년간 3.1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산재 승인 건수도 4,391건에서 1만 8,043건으로 4.1배 늘었다. 

김형동 의원은 “산재보상 기능이 활성화된 것은 노동현장이 반길 점이지만, 이를 근로복지공단에서 시스템적으로 뒷받침하지 못하는 점은 문제”라며 “또 누가 돌아가셔야 그때 계획을 세울 건가. 고용노동부가 자기 식구도 못 챙기면 자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근로복지공단 직원들의 산재 현황을 보면 2019년 31건, 2020년 35건, 2021년 51건, 2022년 40건이다. 공단 직원들도 적지 않은 산재 피해를 겪고 있다”며 “게다가 공단에 접수되는 산재 신청은 크게 늘어나고 있는데 근로복지공단은 정원에 비해 현원도 부족하다”고 이야기했다.

진성준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근로복지공단의 정원은 1만 154명이었지만 현원은 9,611명으로 543명 부족했다. 올해는 9,964명이 정원이지만 현원은 9,623명으로 341명 모자란다. 진성준 의원은 “이는 근로복지공단의 이직률이 다른 공공기관보다 높다는 거다. 이게 노조 위원장의 하소연”이라며 “근본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살펴야 하는 근로복지공단 직원들이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살피지 못할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 

박종길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은 “송구하다. 근로복지공단의 업무 자체가 어려운 데다가 처우가 건강보험공단과 비교해 초임 기준 80%밖에 안 된다”면서 “이 문제가 예산과 관련되다 보니 공단이 열심히 노력해도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답했다. 

진성준 의원은 최현석 고용노동부 기획조정실장을 불러 “고용노동부가 원론적인 답변만 할 게 아니라 기획재정부에 쫓아가서 바짓가랑이를 붙잡든지 고용노동부 장관이 기획재정부 장관 멱살을 잡든지 무슨 수를 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목소리 높였다. 이에 최현석 실장은 “재정 당국과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날 국정감사에서 화두가 된 근로복지공단의 노동환경에 대해 1인 시위 중인 박진우 근로복지공단노조 위원장에게 더 이야기 들어봤다. 

국회 앞 1인 시위 중인 박진우 근로복지공단노조 위원장 ⓒ 근로복지공단노조
국회 앞 1인 시위 중인 박진우 근로복지공단노조 위원장 ⓒ 근로복지공단노조

높은 노동강도에 보상은 부족
신규 입사자 17% 1년 내 퇴사

- 근로복지공단 노동자들의 노동강도가 높아진 배경이 있나? 

우선 올해 7월부터 산재보험 전속성 폐지로 특수고용·플랫폼 노동 8개 직종 132만 명이 추가 고객이 됐다. 산업재해 조사 대상이 약 2만 명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은 사업장도 따로 없어서 재해 조사를 하기 까다로운 점이 있다. 보상·재활사업 업무가 20% 정도 늘어난 상황에서 악성 민원에 대응하다 보면 서류는 쳐다보지도 못하고 하루가 가는 식이다.

하지만 올해 공단이 요청한 추가 인력은 204명인데, 실제로 추가된 인력은 8명뿐이다. 이 와중에 정부는 지난해 정원을 200명 감축하고 인건비를 43억 원 삭감했다. 올해 정부는 공공기관 인력과 예산을 더 줄이라고 한 상황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신규 입사자의 17%가 1년 이내에 퇴사한다. 우리 공단 임금 수준은 4대 보험 공공기관 중 최하위다. 건강보험공단과 비교하면 동일직급, 동일호봉 대비 79~82% 수준이다. 우리 공단 6~7년차가 건강보험공단 신입사원으로 시험 봐서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임금 격차가 향후 더 커지기에, 신입이어도 건강보험공단에서 일하는 게 더 낫다는 의미다. 나는 27년차인데, 같은 연차의 건강보험공단 직원은 나보다 연봉이 약 2,000만 원 더 많은 것으로 안다.

-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보험 처리 기간이 지난 8월 기준 총 209.2일 걸린다. 긴 처리 기간에 대해 노동자들뿐 아니라 국회도 지적하고 있다. 

우리가 봐도 처리 기간이 길다. 그런데 처리를 안 해주고 싶어서 늘어지는 게 아니다. 신속하게 일을 처리할 수 없는 구조적인 배경이 있다. 내가 현장에서 근무할 때 보상·재활부에서 한 명당 미처리 건수가 30개 정도면 민원인에게 문의가 왔을 때 사건이 기억이 난다. 그런데 미처리 건이 70~80개씩 되다 보니까 다 기억을 못 한다. 하나하나 관심을 가질 수가 없는 거다. 그러다 보면 민원인도 공단 직원이 본인 일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는 생각에 더 크게 화 내기도 한다. 이 새끼, 저 새끼 욕은 기본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 이른바 ‘묻지마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비슷한 시기에 민원인들의 민원 수위도 이전보다 더 극단적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도 받는다.

긴 산재 처리 기간
복합적인 해법 필요

- 어떻게 풀어야 하나? 

최근에 우원식 더불어민주당이 역학조사 기간을 180일 이내로 제한하고, 기간을 초과하면 국가가 피해자에게 산재 보험금을 선보상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 발의됐다. 근로복지공단노조는 역학조사 기간을 줄이려면 가칭 ‘재해조사원’을 390명 정도 고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우원식 의원실에 전달했다. 

산재 신청은 급증하지만 재해 조사 담당 인력 증가는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처리 기간이 계속 늘어나는 주요 이유다. 따라서 업무상 재해 판단 시 필요한 기초 증거 자료 수집에 재해조사원을 활용해야 한다고 본다. 또 우리의 업무 처리 속도와 연계된 근로복지공단 산하 직업환경연구원,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도 인력과 예산이 보완돼야 전반적으로 산재 처리 기간을 줄일 수 있다. 현재 공단의 비효율적인 전산시스템을 개선할 필요도 있다. 한 번 조사한 사업장에 대한 데이터를 쌓아놓으면, 이후 같은 사업장에서 산재가 발생했을 때 업무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  

감정노동 대책도
예산 한계로 ‘일시적’

- 감정노동 관련해서 노사가 대책을 마련한 것으로 안다.

지난 16일 노사가 안전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논의 결과 전 직원 트라우마 검사를 하고 있다. 공공기관 중 최초인 것으로 안다. 아무래도 직원 자살이라는 중대한 사건이 일어난 만큼 공단 이사장도 흔쾌히 이에 동의했다. 올해뿐 아니라 근로복지공단 직원들의 직무 스트레스와 트라우마에 대해 지속적으로 점검하며 데이터를 쌓아 나갔으면 한다. 그런데 이것도 예산이 필요하다. 민원인의 칼부림 사건에 대해서는 사건이 일어난 지사에만 금속 탐지기를 설치했다. 또 외주 용역 경비원을 한 명 고용했는데, 이 경비원의 계약기간은 다음 달까지다. 

산재 노동자 살 맞대며 돕는 공단 직원···
실질적인 예산·인력 확보 절실

- 어려움이 많은데, 현장에서 보람을 느낀 경험은?

근로복지공단을 찾는 노동자들은 어렵고 힘든 분들이 많다. 이들이 공단을 찾았을 때 해당되는 제도부터 설명해 준다. 산재 인정을 받으면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안내하고, 치료 후 재취업도 알선한다. 이 과정 자체에 보람을 느낀다. 

예전에 산재로 치료받던 노동자가 3층 주택에 살았는데, 그분을 등에 업고 집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우린 산재 노동자들과 살을 맞대며 일하고 있다.

특히 재활보상부 직원들은 직접 산재 노동자들을 찾아가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적극적으로 설명해 주더라. 일반 보험회사라면 사고가 나면 한 푼이라도 덜 주려고 하겠지만, 우리는 산재기금으로 지원하기에 노동자가 조금이라도 더 지원을 받고 빨리 일터에 복귀하기를 바란다. 사건이 종결된 뒤에도 고맙다고 공단에 계속 찾아오시는 분들도 있다. 

- 덧붙일 말은? 

폭증하는 업무에 시달리는 근로복지공단 직원들은 제2, 제3의 자살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재·고용보험, 퇴직연금 등 사회보험 서비스를 통해 산재, 실업, 임금체불 등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버팀목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근로복지공단 노동자들은 기댈 곳이 없어 일터를 떠나고 있다. 국회와 정부가 근로복지공단 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환경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