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 없는 연금개혁안···양대 노총·연금행동 “무책임”
수치 없는 연금개혁안···양대 노총·연금행동 “무책임”
  • 임혜진 기자
  • 승인 2023.10.27 18:09
  • 수정 2023.11.02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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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보건복지부,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 발표
연령별 보험료율 차등 인상 등 개혁안 제시에 충분한 논의 없었단 비판 나와

ⓒ 참여와혁신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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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국민연금 개혁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보험료율 인상 필요성을 강조하며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변화 수준과 관련된 수치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이하 연금특위)와 공론화 과정을 통해 구체적으로 결정하겠다고 했다. 이에 핵심적인 숫자 없이 논의가 필요하단 말을 반복하는 것은 정부가 연금개혁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2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발표했다. 계획안은 이날 오전 제3차 국민연금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확정됐다. 조규홍 장관은 지난 3월 발표된 재정추계 결과를 바탕으로 한 재정계산위원회의 자문안, 24차례 걸친 국민 의견수렴 결과,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논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계획안을 마련했다고 했다.

조규홍 장관은 보험료율, 소득대체율에 대한 확정적인 수치를 계획안에 포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의견이 다양한 만큼 특정안을 제시하기보다 공론화 과정을 통해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조규홍 장관은 “향후 국회 연금특위의 구조개혁 논의와 연계해 결정하겠다. 또 이르면 연말에 장래인구추계가 나오는데 이를 바탕으로 논의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연금특위는 기초연금, 퇴직연금 등과 공적연금을 어떻게 연계할 것인지에 대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논의한 바 있다.

보험료율 인상 개혁 방향성은 제시됐다. 세대 간 형평성을 고려해 연령별 그룹에 따라 보험료율을 차등 인상하는 방법을 검토하겠다는 계획이다. 예를 들어 일정 연령 도달 시 보험료율 인상, 연금 수급 개시 임박한 연령대 가입자 대상으로 더 높은 인상률 적용 등의 방법이 있다. 

연령별 보험료율 차등 인상 계획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24차례 진행된 이해관계자 FGI(집단 심층 인터뷰)에서 나온 청년세대의 의견을 특히 반영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조규홍 장관은 “다른 OECD 국가들과 비교 시 소득대체율은 비슷한데 보험료율은 절반 수준”이라며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점진적 보험료율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민연금 재정 안정화를 위해 보험료율 인상 계획과 함께 자동안정화장치 도입 또는 확정 기여 방식으로의 전환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한다는 계획도 나왔다. 자동안정화장치란 인구구조, 경제지표 등 연금 재정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를 고려해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등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장치다. 확정 기여 방식은 보험료 부담금이 사전에 결정되는 방식으로, 현재 연금 제도는 보험료와 직접적인 연계 없이 정해진 급여를 보장하는 확정 급여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아울러 국민연금법에 국가가 국민연금 지급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명문화해 청년세대의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를 제고하겠다는 계획도 있었다. 그 밖에 기금 수익률 1% 인상을 위한 해외투자·대체투자 비중 확대,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 대상 및 크레딧 제도 확대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이에 대해 양대 노총은 성명을 통해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안을 강하게 비판했다. 구체적인 소득대체율, 보험료율 등 핵심적인 숫자가 제시되지 않았다며 연금개혁에 대해 정부가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이해관계자 FGI를 했다면서 자동안정화장치 도입, 확정 기여형 방식으로의 전환, 연령그룹에 따른 보험료 차등 인상 등은 깊이 있게 논의되지 않았던 내용”이라며 정부가 국민이 납득할 만한 근거를 대고 내용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날 오전 국민연금심의위원회에서 정부안이 처음 공개됐는데 노동자 대표 등 심의위원들이 정부안을 제대로 심의할 시간이 부족했다고도 짚었다.

양대 노총은 조규홍 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개혁안에 핵심적이고 필요한 내용은 부족하고 충분한 논의가 없었던 내용들이 포함된 것은 오히려 국민연금을 망치는 행위로 볼 수 있다며 이에 대해 조규홍 장관은 보건복지부 수장으로서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이하 연금행동)도 이번 개혁안은 ‘맹탕’이라며 원점에서 재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금행동은 조규홍 장관의 발언 중 ‘OECD 가입국과 비교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유사’하다는 내용이 틀리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기간을 고려하면 실질 소득대체율은 40% 미만이고, 이는 OECD 회원국 평균 소득대체율(2021년 기준 42.2%)보다 낮다는 설명이다.

연금행동은 국민연금이 노후 빈곤 예방을 위해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만큼 적정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개혁 방향이 필요한데 이 부분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확정 기여 방식으로의 전환, 자동안정화장치 도입, 연령그룹별 보험료 차등 인상 등은 논의가 부족한 내용들로 위험한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연금행동은 지난 26일 국민연금의 노후소득 보장성 강화를 위해 현행 9%의 보험료율을 13%까지, 2028년 40%로 낮아지는 소득대체율을 50%까지 올려야 한다는 내용의 국민연금 대안보고서를 내놓은 바 있다. 다음 주 양대 노총과 연금행동은 각 정당에 대안보고서 관련 요구를 전달하고, 양대 노총 등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 기구 구성을 촉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