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기사 ‘적정소득 보장’ 반영한 수수료체계 논의 나와
택배기사 ‘적정소득 보장’ 반영한 수수료체계 논의 나와
  • 임혜진 기자
  • 승인 2023.11.09 12:24
  • 수정 2023.11.09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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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송 수수료 책정 시 각종 부대비용 부담 등은 고려 안 돼
대리점별 다른 수수료 표준화 의견 제시

[리포트] 택배 수수료체계 개선 방안 마련 토론회

택배 시장 경쟁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소비자들이 지불하는 평균 택배 단가는 꽤 오랜 기간 하락해왔다. 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 통계에 따르면 평균 택배 단가는 2003년 3,280원에서 2020년 2,221원까지 낮아졌다. 이후 2021년 2,366원, 2022년 2,418원 두 차례 인상이 있었는데 택배노동자 과로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 최저임금 인상 등 영향으로 원가 상승에 따라 단가를 인상했다는 것이 업계의 입장이다.

전체적으로 단가는 낮아졌지만 택배 물량은 지난해 기준 10년 전보다 3배가량 증가했다. 한국통합물류협회의 국내시장 택배물동량 추이를 보면 2012년 약 14만 개에서 꾸준히 늘어 지난해 41만 2,000여 개로 추산됐다. 물량 증가에 따라 대부분의 택배사 수입은 늘어났지만, 택배노동자들은 더 많은 물량을 운송해야 해 고강도 노동에 노출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택배노동자들의 노동강도를 낮추려면 이들에게 기본적인 소득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택배 수수료체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나왔다.

*지난 10월 24일 서비스연맹 대회의실에서 서비스연맹 주최로 ‘택배산업 수수료체계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업무 부대비용, 노동력 재생산 비용 등
텍배노동자 순소득 저하 요소 다양

택배사는 배송 구역별로 대리점과 계약을 체결하고 배송업무를 위탁한다. 대리점은 개인사업자 신분의 택배노동자와 계약을 맺고 다시 배송업무를 위탁한다. 일반적으로 택배사가 택배요금을 결정하고 택배사-대리점 간 계약상 결정된 배송 수수료를 택배노동자가 받게 된다. 배송 수수료는 배송 한 건당 책정되며 택배사별로 금액 수준이 다르다.

택배노동자에게 배송 수수료는 순소득을 의미하지 않는다. 배송업무를 위해 부담하는 차량 유지 및 관리비와 경조사나 질병 등으로 휴가를 내려면 직접 용차(대체인력)비용 등 각종 비용을 수수료에서 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비스연맹 정책실은 택배노동자가 일반적으로 부담하는 업무 부대비용에 △업무경비(운송장, 테이프, 유니폼, 식대 등) △휴대폰 구입비 및 통신비 △택배차량 구입비 및 감가상각비 △차량관리비(보험료, 주유비, 수리비, 도색비 등) △물품사고 보상비 △운전자보험 등이 있다고 밝혔다.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 택배노동자도 병가나 휴가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부담하는 비용에는 용차비용뿐만 아니라 퇴직 적립금, 사회보험비(4대 보험 중 노동자 부담분) 등의 노동력 재생산 비용이 있다고 서비스연맹은 설명했다.

감정노동, 고객 응대 등 배송 외 업무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주어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예를 들면, 반품 업무를 위해 고객과 직접 소통하는 경우 등은 일종의 서비스노동에 해당한다. 추후 고객의 서비스 관련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택배노동자는 자신의 감정과 무관하게 친절하게 고객을 응대하는 감정노동을 수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수수료 책정 시 이러한 노동에 대한 고려는 되지 않고 있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회보험 외에도 다양한 복지 정책들이 일반고용에서는 회사에 따라 다양하게 발전돼 있지만, 특수고용에서는 그러한 정책이 매우 빈약한 실정이다. 또 자본이 노동자에게 암묵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숙련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는 감정노동 등에 대한 고려도 현재 전혀 없는 상태”라면서, “대기시간이나 과도한 배송거리 등 시간적 측면에서도 자본이 부담하거나 적어도 노동자와 일정하게 분담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아무런 지불을 하지 않거나 노동자가 전적으로 부담하게 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리점 수수료, 급지 분류체계 등
체계적인 정비 필요하단 지적 나와

택배노동자는 배송 수수료를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구조에 놓여 있다. 택배사가 소비자가 지불해야 할 택배요금과 대리점 및 택배노동자에 할당되는 전체 몫을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택배사-대리점-택배노동자로 이어지는 관계 속에서 대부분의 택배사들은 택배노동자가 받을 배송 수수료를 대리점 측이 결정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택배노동자들의 입장은 다르다. 다수의 대리점들은 택배사의 노무관리 부서처럼 기능할 뿐 실질적으로 택배노동자 수수료 결정 등에 영향을 미치는 건 택배사라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대리점이 가져가는 수수료가 지금보다 낮아져야 한다는 다수의 택배노동자들의 인식이 드러난 설문조사 결과도 있었다. 지난 8월 택배노동자 1,057명을 대상으로 택배 수수료체계 관련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현재 대리점이 가져가는 수수료는 전반적으로 5~15% 사이에 분포했고 10%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그러면서 적정 대리점 수수료 수준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 783명 중 59.3%가 ‘1%’라고 답했다. 그 밖에 ‘3%’, ‘8%’, ‘10%’가 적정하다는 응답 비율은 10%, 10.1%, 13.7%로 나타났다.

지난 10월 24일 서비스연맹 대회의실에서 ‘택배산업 수수료체계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 참여와혁신 임혜진 기자 hjim@laborplus.co.kr
지난 10월 24일 서비스연맹 대회의실에서 ‘택배산업 수수료체계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 참여와혁신 임혜진 기자 hjim@laborplus.co.kr

설문조사를 진행한 박선효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초빙부교수는 “조사 결과 택배 대리점 역할을 전면 부정하기보다 일부 역할이 있다고 보는 응답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1%가 적정하다는 응답이 많아 실제 대리점 수수료 수준과 현격한 인식 차이를 보이고 있어 관련해 추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희종 서비스연맹 정책실장은 “대리점의 시설 개선 정도, 휴게실 설치 여부 등에 따라 택배노동자의 노동강도가 달라진다. 또 대리점별로 배송지역 거리가 달라 추가 노동시간이나 비용이 발생하기도 한다”며 “적정 대리점 수수료 산정을 위해 시설, 택배기사 수 등을 고려해 대리점 등급을 나누고 국토부가 등급에 따라 권장 수수료를 발표하는 방법 등을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부분의 택배사들은 배송지역의 주거형태나 주거 밀집도 등을 고려해 배송지역에 등급을 매기고 급지별로 배송 수수료를 달리 책정한다. 택배사별로 급지를 나누는 기준과 방법은 다양하다. 예를 들면, CJ대한통운과 롯데글로벌로지스는 급지를 12개로 나누고 한진택배는 3개로 나눈다. 그러다 보니 동일한 주거형태와 주거 밀집도를 가진 지역이어도 택배사별로 급지 분류는 다를 수 있다.

택배노동자들은 급지 분류체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설문조사 결과 ‘급지 간 수수료 차이가 적절하다’, ‘급지 분류체계가 난배송 지역 등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급지 분류가 정확한 편이다’에 점수를 매기는 질문에 택배노동자들이 평균보다 낮은 점수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급지 결정 과정에 노동조합 등 노동자 대표가 참여해야 한다는 인식은 높게 나타났다.

이희종 정책실장은 “우체국 택배를 제외한 민간 택배사의 배송업무를 수행하는 택배노동자들이 자신의 급지별 수수료를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급지별 수수료는 택배사가, 대리점 수수료는 대리점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상황”이라며 “국토교통부가 우체국의 급지 기준을 준용해 행정구역별 급지를 표준화하고 급지별 적정 배송 건수를 제안하는 등의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다만 택배 물량 정도에 따라 급지별 수수료는 택배사별로 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택배노동자 ‘적정소득’ 반영한
표준화된 수수료체계 구상 제안돼

박명준 선임연구위원은 택배노동자가 부담하는 업무 부대비용, 노동력 재생산 비용과 적정 대리점 수수료, 표준화된 급지 분류체계에 따른 적정 배송 건수 등을 고려해 적정 배송 수수료 책정을 위한 체계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배송 수수료는 택배노동자들의 운반서비스노동에 보상이므로 ‘노동수수료’라고 칭할 수 있다”면서, “어떤 택배사에 근무하든 사회적 기준에 맞춰 노동자들의 적정소득 보장이 이뤄지도록 적정 노동수수료 개념을 반영한 표준화된 수수료체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특히 현재 택배노동에 대한 최소 및 최대시간과 관련된 규제가 부족한 점을 짚었다. 일정한 기준에 따라 택배노동자 1인당 적정 배송 건수를 확립하고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적정 노동시간과 그에 수반되는 적정소득이 보장될 수 있도록 급지 분류체계 재구조화 등의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박명준 선임연구위원은 설명했다. 한편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적정소득 논의와 함께 특수고용직(이하 특고)에 적용되는 법정 최저선의 소득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본다”며 “현행 최저임금법에서 도급제 노동자에 대해서도 최저임금을 정해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 논의에 갇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특고에 대해서도 최저 소득 수준에 대한 기준 설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고인 택배노동자가 적정 노동시간과 보상 수준을 보장받으려면 근로기준법상 임금노동자가 되거나 택배사가 이들을 직접고용하는 방법도 있다. 또 노조법 개정을 통해 특수고용직 택배노동자에 대한 원청 택배사의 사용자 책임을 물어 노동자 처우를 개선하자는 주장도 계속돼왔다. 이와 관련해, 박명준 선임연구위원은 “거시적 수준의 제도 변화는 한번에 도모하기 만만치 않다”며 “현재의 조건 하에서 실리적으로 실현 가능한 방안을 모색해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희종 정책실장은 대정부 교섭, 사회적 대화기구에서 택배노동자 적정소득에 대해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희종 정책실장은 “택배요금 인상, 적정소득, 업무 부대비용 등의 항목 결정, 표준 급지 체계 마련, 대리점 등급제 기준 마련 등을 논의하기 위해 산별노조 차원에서 대정부 투쟁 등을 계획할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