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즉각 시행” vs. “대통령 거부권 건의”
“노란봉투법 즉각 시행” vs. “대통령 거부권 건의”
  • 정다솜 기자, 임혜진 기자
  • 승인 2023.11.10 00:16
  • 수정 2023.11.10 0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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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노조법 2·3조 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에
노동계, 통과 환영 및 대통령 거부권 행사 경고
경영계, 대통령 거부권 행사 건의 예고
이정식 노동부 장관 “비통”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이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노동계는 환영하는 동시에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경고했다.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정의를 넓혀 하청노조도 원청과 교섭할 수 있는 길을 열고,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노총은 “이번 노조법 개정으로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다단계 원·하청관계에서 더 이상 진짜 사장을 찾기 위해 비상식적인 숨바꼭질을 하지 않게 됐다”며 “진짜 사장이 교섭함으로써 불필요한 쟁의행위와 노사갈등도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난 30여 년간 두산중공업 배달호, 한진중공업 김주익, 최강서, 그리고 유성·쌍용자동차, 비정규직들이 정부와 사측의 무분별한 손배가압류의 고통에 절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의 범위가 명확해져 더 이상 억울하게 목숨을 버리는 노동자들이 없어지길 기대한다”고 했다. 

민주노총은 ‘20년 만의 노조법 개정, 반드시 지켜내자’라는 제목의 논평을 내고 “20년 만에 제자리를 찾기 시작한 노조법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금 정부·여당이 해야 할 것은 노조법 개정 저지가 아니다. 오늘도 정치와 제도가 외면하며 무너지고 있는 노동자의 존엄과 권리를 지키고자 분투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듣는 것이 정부·여당의 책임이며 의무”라며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의 입법권을 존중해 노조법 2·3조 개정안을 즉각 공포하고 시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공공운수노조는 “이제 남은 것은 대통령 공표다. 벌써부터 거부권 행사 이야기가 회자된다”라며 “오늘 국회를 통과한 개정 노조법은 헌법이 정한 노동3권을 보다 엄밀히 보장하는 법이자, 우리나라가 비준한 국제 노동 기준을 준수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이다. 이를 거부하는 것은 민의에 대한 배반이자, 헌법에 대한 도전이며, 노동자에 대한 도발”이라고 경고했다.

금속노조도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하청 비정규직을 비롯한 모든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을 지키는 법률이다. 노동3권을 명시한 헌법 정신을 실현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킨 역사의 진전이자 함께 사는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이 민의를 외면한 채 자본과 결탁해 대통령 권력으로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금속노조는 앞장서 투쟁의 들불을 지필 것”이라고 했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지난해)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고 외치며 노조법 2·3조 개정의 밑불이 된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은 47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으로 고통받고 있다”며 “노란봉투법 통과를 계기로 한화오션은 오직 노동자 탄압이 목적인 470억 원 손해배상 소송을 취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5일 오후 서울 중구 광교에서 열린 ‘노조법 2·3조 개정 촉구 민주노총 결의대회’에 참가자들이 ‘대통령 거부권 멈춰!’라는 문구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지난 9월 5일 오후 서울 중구 광교에서 열린 ‘노조법 2·3조 개정 촉구 민주노총 결의대회’에 참가자들이 ‘대통령 거부권 멈춰!’라는 문구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경영계, 13일 기자회견 예고
‘대통령 거부권 행사’ 건의 계획

경영계는 즉각 반발 성명을 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산업현장 혼란과 경제적 파국을 막을 유일한 방법은 대통령의 거부권밖에 없다. 우리 기업들이 정상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거부권을 행사해 주길 건의한다”고 밝혔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사용자 개념의 확대로 하청노조의 원청 사업주에 대한 쟁의행위를 허용해 수많은 원·하청 관계로 이뤄진 산업생태계를 붕괴시킬 우려가 크다”며 “노동쟁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노사 간 갈등이 심화돼 파업은 더욱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무역협회는 “이번 입법은 산업현장의 불법 쟁의행위를 면책함으로써 국내기업의 해외 이전을 부추기고 기업 경영을 더욱 위축시키는 도화선이 될 것이며 근로자들의 실직과 수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 명약관화하다”고 지적하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촉구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노란봉투법은 우리나라 산업현장의 근간과 질서를 흔들고 오랫동안 쌓아온 법률체계를 심각하게 훼손해 국내 산업생태계와 일자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손해배상청구권 제한 조항으로 인해 노동조합이 불법 집회를 감행해도 기업은 이를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이 사라지게 된다. 노동계로 기울어진 운동장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고 이는 불법 파업과 무리한 노사분규 확산으로 이어져 사회 혼란과 불확실성이 심화로 인해 국내 경제는 깊이 멍들어 갈 것”이라며 대통령에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호소했다.

경총·한경협·한국무역협회·대한상공회의소·중소기업중앙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6단체는 오는 13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노란봉투법을 통과를 규탄하고 윤석열 대통령에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을 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7월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을 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이정식 장관, 개정안 통과에 “비통”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일방적으로 처리된 점에 대해 노동정책을 책임지는 장관으로서 비통한 심정을 억누르기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개정안이 시행되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 ‘실질적 지배력'이 미친다는 이유만으로 (하청노조가 원청에) 무분별하게 교섭을 요구하고 폭력적인 파업이 공공연해질 우려가 있고 불법행위는 그 책임을 면제받게 될 것”이라며 “그 결과 산업현장이 초토화돼 일자리는 사라지게 되고 국가 경쟁력은 추락하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정식 장관은 “역사적 경험에 비춰봤을 때 일방의 입장만을 반영한 일방적이고 졸속 노조법 개정은 엄청난 후폭풍만을 불러올 것”이라며 “법률안이 정부로 이송되면 대한민국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