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연합 기고] 우리 삶은 일회용이 아니다
[녹색연합 기고] 우리 삶은 일회용이 아니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23.12.07 08:24
  • 수정 2023.12.07 08: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 윤소영 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 mint@greenkorea.org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 ⓒ 녹색연합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 ⓒ 녹색연합

“8억 원 대출로 기계를 들여 만들었는데, 지금 2,000만 개 재고가 쌓였습니다.”

일회용 플라스틱을 규제하겠다는 정책에 따라 대체품 창업에 뛰어든 종이빨대 제조 기업 청년 대표의 얘기다. 이 온라인 뉴스의 댓글 창에는 정부의 오락가락한 환경정책이 오히려 또 다른 소상공인을 도산 위기로 몰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다회용과 대체품으로의 전환을 차근차근 준비해 온 소상공인들은 일관성 없는 정부 정책에 분통을 터트렸다. 시민들은 불편을 감수하며 일회용 플라스틱 감축에 참여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오히려 정부가 규제 완화로 환경 보존 의무를 저버린 것이다.

1년여 전으로 기억을 되돌려 보자.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식당·카페 등 식품접객업 매장에서 한시적으로 허용됐던 일회용품 사용이 다시 금지됐고, 2022년 11월 24일부터는 종이컵, 플라스틱 빨대, 비닐봉지 등이 규제품목으로 추가될 예정이었다. 매장 안에서 종이컵, 플라스틱 빨대, 젓는 막대(Sip stick)를 못 쓰게 하고, 대형마트에만 적용됐던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 금지를 슈퍼마켓·편의점·제과점 등까지 확대할 계획이었다. 다만 현장의 부담을 줄이고 제도 안착을 위해 1년의 계도기간을 두기로 했다.

그런데 본격적인 제도 시행을 보름 앞둔 올해 11월 7일, 환경부는 소상공인의 희생을 줄인다는 이유로 종이컵, 플라스틱 빨래, 비닐봉지 등에 대한 일회용품 규제를 사실상 철회했다. 무려 1년의 계도기간에도 제도를 시행하기 위한 준비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종이컵은 사용 규제 품목에서 완전히 제외됐고, 플라스틱 빨대의 경우 계도기간은 무기한 연장됐다. 비닐봉지 사용에 대한 과태료 부과도 없던 일이 됐다. 환경부의 이 같은 발표는 일회용 종이컵과 비닐봉지를 써도 좋다는 권유이자, 시장에서 쌀·종이 빨대와 플라스틱 빨대 간 경쟁을 부추기는 것과 다름없다. 다회용 장바구니, 텀블러 등을 쓰며 환경에 이로운 삶의 방식을 실천하고자 노력해 오던 시민들에게 스스로 무능했음을 증명한 셈이다. 특히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 문제 해결을 다시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떠넘긴 것이야말로 담당 부처로서 가장 부끄러워해야 할 부분이다. 어느 환경캠페이너의 말처럼 환경부의 의무는 ‘이벤트 말고, 규제하는 것’이다.

그린피스가 2023년 3월에 발표한 우리나라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에 관한 보고서인 <플라스틱 소비의 늪에 빠지다>를 보면, 2020년 기준 1인당 일회용 플라스틱 소비량은 19kg에 달한다. 2017년에 비해 약 20%나 증가했다. 구체적인 1인당 소비량은 생수 페트병 109개(1.6kg), 일회용 플라스틱컵 102개(1.4kg), 일회용 비닐봉지 533개(10.7kg), 일회용 플라스틱 배달 용기 568개(5.3kg) 등으로 나타났다. 식생활 문화 변화와 코로나19를 겪으며 우리 생활이 얼마나 많은 일회용 플라스틱의 지배를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플라스틱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원료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매립이나 소각으로 다른 오염물질로 전환되고, 바다나 강으로 흘러 들어가 미세플라스틱으로 형태만 바뀔 뿐이다. 플라스틱 문제에서 가장 먼저 덜어내야 하는 것이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이다. 생산자인 기업, 소비자인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규제자인 정부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줄이기’를 노력해야만 심각한 플라스틱 오염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국제사회는 하나의 지구를 지키기 위해 일회용품 규제를 강화하고, 플라스틱 오염을 멈추기 위한 강력하고 구속력이 있는 국제협약을 논의하고 있다. 기업의 자발적인 감축과 재활용에만 기대기에는 이미 지구의 오염 수준은 한계치를 넘어섰다는 판단에서다. 유럽연합(EU)은 일회용 플라스틱 지침에 따라 2021년부터 플라스틱 빨대와 비닐봉지, 플라스틱 식품 용기, 스티로폼 용기는 물론 면봉과 물티슈 같은 위생용품에까지 판매금지와 생산자 책임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캐나다 역시 플라스틱 빨대, 수저, 비닐봉지, 일회용 식품 용기, 음료 묶음 고리(Six-Pack Rings), 음료 스틱 등 총 6가지 품목에 대한 수입·제조·판매를 단계적으로 금지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준비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준비가 늦은 것이다. 방향과 속도가 동시에 필요한 때다. 사라지지 않을 일회용품이 아닌 우리 삶을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