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역을 살리고 청년의 희망을 만드는 광주형 일자리의 소멸을 바라보며
[기고] 지역을 살리고 청년의 희망을 만드는 광주형 일자리의 소멸을 바라보며
  • 참여와혁신
  • 승인 2024.01.10 09:02
  • 수정 2024.01.10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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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한국노총은 새로운 희망을 꿈꾼다
글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의장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의장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의장

많은 사람들은 광주형 일자리를 하나의 아이디어로 생각한다. 그저 운 좋게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가 됐다고 생각한다. 또 많은 사람들이 광주형 일자리의 전문가라고 생각하고 자기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의 격려와 열정이 광주형 일자리를 만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른다. 광주형 일자리가 나오기까지 노동계 내부의 치열한 자기고민과 고통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2004년 광주 지역의 대기업 노동조합(기아차지부 광주지회, 금호타이어지회, 캐리어에어컨지회, KT노동조합, 광주은행노동조합, 전력노동조합 전남본부)이 모였다. 갈수록 노동계가 시민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으니, 노동계가 먼저 시민에게 다가가는 사업을 해보자며 ‘문화야 놀자!’라는 이름으로 분기마다 시민 문화행사를 기획하게 된 것이다. 각 노동조합의 갹출로 마련된 노동계의 문화행사는 엉성했고 거칠었다. 집행부의 교체에 따라 부침도 있었다. 그런데도 이 주체들은 지역의 발전을 위한 노동의 역할을 고민했다. 청년이 지역에 머물게 하는 것은 양질의 일자리라며, 지역혁신을 위해 힘을 모았던 것이다. 

처음 광주형 일자리를 만들자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어떤 이들은 대기업이 투자하겠냐며 대기업 유치로만 광주형 일자리를 이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광주형 일자리는 ‘지역혁신 운동’이기 때문에 지역혁신과 시민의 참여를 염원하며 갖은 반대와 음해에도 노동계는 인내하며 참여했다. 젊은이가 지역을 떠나지 않고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는 희망의 도시, 젊음의 도시 광주를 만들고자 노동은 재차 인내하며 함께했다.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체계를 버젓이 도입하려 했던 공무원들, 현대차와 협상에 노동계의 참여는커녕 의견조차 들으려 하지 않던 노동 배제 세력에 맞서 인내하며 대안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 노력의 결과로 광주형 일자리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가 됐다.

사람들이 광주형 일자리라고 믿고 있는 GGM(광주글로벌모터스)은 어떤가? 저임금과 높은 이직률, 강한 노동강도에도 많은 젊은이들은 행여 현대·기아차와 통합으로 더 나은 회사가 됐으면 하는 희망으로 버티고 있다. 하지만 참여와 협의라는 광주형 일자리의 정신은 사라진 지 오래다. 양질의 일터, 민주적인 일터도 아니다. 오로지 5년간 협약이라는 조항에만 의지한 채 나쁜 일터가 되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는 GGM과 동의어가 아니다. GGM은 광주형 일자리를 시도하고 실험하는 하나의 공장일 뿐이다. 광주형 일자리는 저임금과 높은 노동강도로 원성이 자자한 공장을 꿈꾼 것이 아니다. 전기차와 자율주행 등 미래차를 만드는 공장, 일터혁신을 통해 생각하는 노동을 하고 유연한 생산,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것이 진짜 광주형 일자리다. 원·하청 임금격차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연대임금을 통해 더불어 행복한 지역을 만들고 주거와 복지를 지역이 책임지는 광주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광주형 일자리의 꿈이자 정신이다. 참여를 통해 민주주의를 배우는 일터를 꿈꾼 것이다.

광주는 민주주의의 도시이자 인권의 도시다. 효율성을 앞세우며 민주주의를 짓밟던 산업화가 결국 민주주의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 더디더라도 광주 시민의 숙의와 참여를 통해 비전을 공유하는 것, 효율성이라는 이름의 강압으로 소수의 의지를 밀어붙이는 것보다 민주주의가 더 효율적이라는 것, 이것들을 통해 지역이 새롭게 발전한다는 것이 광주형 일자리의 정신이다. 

전환의 시대, 시민의 참여가 누군가만의 이익으로 독점되면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한다. 냉소주의가 만연하게 된다.

16일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가 광주시청 앞에서 ‘사회적 합의 파기하는 광주상생일자리재단 통합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엔 1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참석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지난해 5월 16일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가 광주시청 앞에 ‘사회적 합의 파기하는 광주상생일자리재단 통합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엔 1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참석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광주상생일자리재단은 해산됐다. 경제고용진흥원에 광주상생일자리재단이 통합됐다. 또 광주광역시는 문재인 정부에서 보증하고 민선 7기 노사민정에서 합의한 노동인권회관 건립을 백지화했다.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의 광주형 일자리의 상징을 지키려는 몸부림은 일단 저지됐다.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는 광주광역시 민선 8기의 성공적 집행을 위해 인내하며 대화를 요구했지만, 광주광역시와 광주 시민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지금의 시련 앞에서 광주형 일자리라는, 상생의 노사민정 협치를 통한 광주 공동체의 발전을 바라는 정신만은 포기할 수 없다. 

최근 한국노총은 윤석열 정부와 사회적 대화에 복귀한다고 선언했다. 윤석열 정부 초기 한국노총에 대한 태도는 엄혹했다. 지난 대선 시기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민주당과 정책 협약을 맺었다는 이유로 한국노총 집행부를 무시한 채 몇몇 산별조직 및 지역본부와 소통했다. 각종 정부 정책과 지원에서 한국노총을 배제했다. 

한국노총은 사회적 대화 복귀와 관련해 특별한 대우와 선물을 요구하거나 받은 것이 아니다. 한국노총의 요구는 단순했다. 윤석열 정부의 대화 파트너로 한국노총을 인정하라는 것과 정책 변화, 소통을 요구한 것이다. 치솟는 물가와 산업전환으로 인한 고용불안과 일자리 문제, 환경 문제와 에너지 전환, 이런 변화가 결국 지역소멸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투쟁만을 주장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한국노총은 지난해 11월 말을 시한으로 정해 정부의 입장을 요구했으며 투쟁 의지를 높였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는 한국노총을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며 사회적 대화 테이블의 복귀를 요청했다.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는 양질의 일자리와 광주 공동체를 위한 사회적 대화를 원한다. 산업전환과 탄소중립 등 일자리를 만들고 삶이 풍요로운 광주를 위해선 노사민정이 필요하고 시민이 중요하다. 산업화 시대에 성공했던 값싼 노동력과 장시간 노동이 우리 사회의 대안이 될 수는 없다.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시대, 노동이 배제되고 일의 의미가 빠진 일자리는 좋은 일자리가 아니다.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는 지역의 이해당사자와 광주광역시 등이 노동전문가이자 일자리 전문가인 한국노총과 진지한 사회적 대화에 임하기를 원한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도시 광주에서 대화 파트너의 인정과 존중, 대화! 그것이 지역을 살리고 청년의 희망을 만드는 길이다. 

지금 여기, 광주에서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노총은, 노동계는 전진할 것이다. 시간은 시민의 편이자 민주주의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