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문제된 ‘광주형 일자리 지우기’··· 노동계 “앞이 캄캄”
시간문제된 ‘광주형 일자리 지우기’··· 노동계 “앞이 캄캄”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3.05.23 11:49
  • 수정 2023.05.23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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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 16일 ‘광주형 일자리 사수’ 천막농성 돌입
농성 일주일 지났지만 요지부동 광주시
[인터뷰]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의장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는 지난 16일 광주시청 앞에 ‘광주형 일자리 사수’ 농성천막을 세웠다. 광주형 일자리의 상징인 광주상생일자리재단을 광주고용경제진흥원과 통합하려는 광주시의 독단적인 행정을 막기 위해서다. 광주시는 두 기관 통합 추진 과정에서 광주형 일자리를 함께 만들어 온 지역 노동계와 한 차례도 논의하지 않았다. “인내의 시간은 끝났다”며 지역 노동계가 농성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흘렀지만 광주시는 요지부동이다. 

민주주의의 고장이자, 인권 도시라고 하는 광주시는 집요하게 노동을 외면하고 있다. 한국노총뿐 아니라 민주노총 소속 돌봄노동자들도 시의 불통과 무능을 비판하며 광주시청 로비에서 100일 넘게 농성 중이다.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의장에게 천막농성을 결정한 배경, 광주상생일자리재단의 의미 등에 대해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15일 광주시 북구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에서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의장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가 천막농성을 결정하게 된 배경은?

지난해 7월 민선 7기에서 민선 8기로 넘어갔는데, 광주시와 노동계가 맺은 사회적 합의는 이어지지 않았다. 광주시는 노사정이 맺은 ‘광주형 노사상생의 완성차공장 성공을 위한 합의서’에 따라 설립된 광주상생일자리재단을 광주고용경제진흥원과 일방적으로 통합하려 하고 있다. 민선7기 노사민정이 합의한 노동인권회관 건립은 사실상 백지화됐다. 노동계는 민선 8기의 성공적인 집행을 위해 인내하며 대화를 요구해 왔지만, 약 1년간 강기정 광주시장은 노동계와 만나지 않았다. 

그러다 취임 후 처음으로 지난 10일 강기정 시장은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와 점심 자리를 마련했다. 서로 협치하고 소통하자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광주시의회에서 광주상생일자리재단 통합 관련 조례안이 통과되더라. 조례안이 노동계 패싱 등 절차상 문제로 시의회에 멈춰 있었는데, 우리와 만난 다음날 통과된 것이다. 인내한 우리에게 돌아온 결과가 그랬다. 씁쓸했다. 노동계는 이미 숱하게 문제제기를 해왔기에 더는 광주시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고민 끝에 내린 최후의 수단이 천막농성이었다. 

- 광주상생일자리재단은 노동계에 어떤 의미인가? 

광주형 일자리 추진 과정에서 2020년 4월,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가 노사정 합의 파기를 선언한 적이 있다. 광주글로벌모터스(GGM)에 노동이사제 도입, 원하청 상생방안 등을 노동계가 요구했으나 논의조차 안 됐기 때문이다. 이후 노사정 대화를 통해 GGM 공장 내부에는 상생협의회, 외부에는 광주상생일자리재단을 세우기로 했다. 광주상생일자리재단의 경우 광주형 일자리 모델의 4대 원칙(①적정임금 ②적정노동시간 ③노사책임경영 ④원·하청 관계 개선)을 안착시키고 이를 지역 내로 확산시킬 임무가 주어졌다. 두 거버넌스는 곧 광주형 일자리의 정신을 꾸준히 지켜나갈 왼발과 오른발이었다.

또 광주상생일자리재단은 GGM의 적정임금체계, 승진체계 등 여러 노동조건을 제안해서 노사민정협의회에 안건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면 노사민정협의회에서 해당 안건을 상정해 논의한 결과를 GGM이 받아들이는 식의 결정 구조다. 노사민정협의회에 상정할 안건을 만들 광주상생일자리재단이 흔들린다는 것은 곧 광주형 일자리가 흔들리는 것과 같다. 광주시는 사회적 합의를 이행하고 확산시키는 거버넌스로써 이러한 재단에 대한 이해 없이 효율성이란 잣대로만 판단하는 거다.

특히 강기정 시장은 문재인 정부 시절 정무수석으로,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지역균형발전 정책으로 꼽히는 상생형 일자리 사업의 성공을 위해 노력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제 와서 광주형 일자리를 지우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 노동계의 싱크탱크로서 광주상생일자리재단의 역할도 기대됐는데. 

그렇다. 수도권 등 큰 도시에선 노동문제에 깊이 관여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광주엔 턱없이 부족하다. 노동 연구자도, 노동에 대해 교육할 사람도 없다. 지역 노동계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선 노동 전문가가 필요하다. 광주상생일자리재단에서도 구하려 했지만 급여, 생활여건 등으로 선임연구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의 선진임금체계도 재단에서 만들어야 하는데 이걸 누가 만들 수 있겠나. 건마다 용역을 줄 수도 없다. 게다가 GGM에서 누적 생산 목표대수 35만대 달성까지는 노동조합과 임단협을 하지 않고 (노사협의회 격인) 상생협의회와 대화를 하고 있는데, 이 약속 기한이 다가오고 있다. 앞으로 발생할 노사문제를 중재하는 역할도 재단이 맡아야 한다. 그런데 광주시는 이에 대해 어떤 답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GGM 노동자들이 동종업계보다 낮은 임금을 감수한 이유는 주거, 복지 등 사회적 임금 때문이었다. 사회적 약속의 이행을 담보할 재단이 사라지면, 노동자들도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노동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지난 16일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가 광주시청 앞에서 ‘사회적 합의 파기하는 광주상생일자리재단 통합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 기자회견 참석자는 ‘민주주의 심장 광주시정책 윤석열 정부와 무엇이 다른가’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 그간 광주상생일자리재단이 제 역할을 못 했다는 지적도 있다. 

재단이 노동계가 기대했던 만큼 역할을 못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애초 약속대로 인원을 투입했다면 재단이 그 역할을 어느 정도 해나갔을 거다. 원래 올해까지 23명을 충원해야 하는데, 파견 공무원을 제외하고 8~9명 정도 재단에서 일하는 것으로 안다. 선임연구원도 없다. 인원을 반도 안 채운 상태에서 운영을 해놓고 효율성이니, 다른 기관과 역할이 겹친다느니 따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

- 광주상생일자리재단이 광주경제진흥원과 통합돼도, 제 기능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두 기관이 통합될 경우 규모가 작은 광주상생일자리재단이 광주고용경제진흥원에 흡수돼 기존 노동·일자리 정책 연구 및 상생형 일자리 지원 사업이 유지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인원으로 봤을 때 광주경제진흥원이 광주상생일자리재단의 4배 규모다. 오히려 재단이 경제진흥원의 한 부서로 전락해 버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두 기관의 성격도 다르다. 광주고용경제진흥원은 중소기업·소상공인의 고충 상담·해결, 정보·자료 제공, 창업교육 등의 업무를 주로 수행하고 있다.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는 통합이 아닌, 광주상생일자리재단이 설립 취지대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오히려 인력과 예산을 충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 덧붙일 말은? 

이제 광주상생일자리재단의 통합은 시간문제가 됐다. 광주 지역 노동계를 이끌고 있는 사람으로서 암담하다. 광주형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7년여간 사방에서 압박이 들어왔다.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 후회도 많이 했다. 그렇게 어렵게 왔는데, 그 결과물이 지워지는 과정을 보니 앞이 캄캄하다. 만들긴 어렵고 없애긴 쉽다. 그래도 광주형 일자리를 위해 버텨온 힘으로 천막농성을 이어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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