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④] 광주형 일자리 지속가능성, 거버넌스에 달려있다
[커버스토리④] 광주형 일자리 지속가능성, 거버넌스에 달려있다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2.06.15 00:00
  • 수정 2022.06.15 0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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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합의’ 무게감으로 지속된 광주형 일자리
사회임금·투명경영 등 여전히 남은 갈등…“거버넌스 통해 풀어야”

넥스트 광주형 일자리

‘광주형 일자리’라는 말이 한국 사회에 등장한 지 8년이 돼갑니다. 광주글로벌모터스로 대표되기는 합니다만, 광주형 일자리의 전부는 아닙니다. 물론 우여곡절 끝에 광주글로벌모터스를 세우고 청년들을 고용하고 캐스퍼도 양산하게 된 건 성과입니다. 이제 많은 이들이 광주형 일자리의 다음을 고민합니다. 다음은 현재와 과거를 살펴야 내딛을 수 있는 계단입니다. 광주형 일자리를 중간 점검해보고자 광주를 찾았습니다.

커버스토리④ 광주형 일자리 지속가능성의 키는 소통과 대화

광주글로벌모터스에 전시돼 있는 양산 1호 캐스퍼 차량. 차량 위에는 광주형 일자리 노사민정 주체들의 서명이 적혀 있다.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지역 노사민정이 주체로 등장했다는 것은 광주형 일자리를 중앙정부 혹은 대기업 주도의 일자리와 분명히 구별하는 지표다. 앞선 기사에서 지적했듯 광주형 일자리는 지역 노사민정의 대화와 양보, 타협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기 어려운 국내 자동차산업의 구조적 한계를 뚫고 23년 만에 자동차 공장을 설립하게 했다.

광주 노사민정이 대화와 양보, 타협이 가능했던 이유는 미래에 대한 공동의 비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동계에서 국내 자동차산업 평균 임금에 모자란 ‘적정 임금 3,500만 원’을 받아 안은 것, 광주시와 광주글로벌모터스(GGM)가 광주상생일자리재단을 만들기로 한 것 등은 사회적인 약속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약속은 저절로 지켜지지 않는다. 지역 노사민정 거버넌스의 지속적인 역할에 따라 광주형 일자리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숱한 우여곡절 넘어
실현된 광주형 일자리

적정임금, 적정노동시간, 원·하청관계 개선, 노사책임경영은 노사민정 주체들이 광주형 일자리를 추진할 때부터 지향한 4대 의제다. 해당 의제는 2014년 9월부터 광주시가 사회통합추진단을 통해 광주형 일자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도출됐고, 2015년 상반기 한국노동연구원이 수행한 ‘광주형 일자리 창출 모델에 관한 연구’에서 정리됐다. 이어 2017년 6월 광주시 더 나은 일자리위원회는 4대 의제를 명문화한 ‘광주형 일자리 모델 실현을 위한 기초협약’을 체결했다.

광주형 일자리의 4대 의제는 지역의 일자리 창출과 동시에 양극화 해소라는 취지를 실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원칙이다. 다만 2018년 6월부터 광주형 일자리 투자 기업인 현대자동차와 실제 논의하는 과정에서 4대 의제는 일부 수정됐다. 2019년 1월 30일 광주 노사민정협의회는 ‘노사상생발전협정서’를 체결했는데, 여기서 원·하청관계 개선은 동반성장과 상생협력으로, 노사책임경영은 소통·투명 경영으로 변화한 것이다.

해당 내용은 2019년 1월 31일 광주시와 현대자동차가 투자협약을 체결하고, 2019년 8월 빛그린산단에 GGM이 착공된 이후에도 여전히 논란거리였다.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는 2020년 4월 2일 광주형 일자리 사업 참여 중단과 협약 파기를 공식 선언한 바 있었다. 동반성장과 상생협력과 소통·투명경영 실현 방안 부족 등이 배경이었다.

여기서 광주광역시와 GGM, 노동계와 소통 창구로 광주상생일자리재단 설립에 합의했다. 2020년 4월 20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광주형 노사상생의 완성차 공장 성공을 위한 합의서’가 체결되고,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도 노사민정협의회에 복귀하기로 했다. 그 결과 2020년 6월 광주형 일자리는 상생형 지역일자리 제1호로 선정될 수 있었다.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의장은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광주형 일자리의 의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사민정의 사회적 합의를 통하지 않았다면 GGM은 현대자동차의 공장이지 광주 지역의 공장이 아니다. 현대자동차 혹은 다른 사업자가 세운 공장이었다면 광주형 일자리 4대 의제를 강조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노사민정이 합의한 사안을 따라가겠다고 약속했다. 다시 말해 노사민정이 합의한 정신을 공유하지 않고서는 광주형 일자리의 지속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대화로 풀 수 없는 갈등은 없다

현재 광주형 일자리에 대한 지역 노사민정의 여러 불만과 문제제기는 대화와 소통으로 봉합된 상태다. 갈등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윤종해 의장이 지적했듯 ‘사회적 합의’의 무게감에 있다. 그러나 이는 반대로 사회적 합의라는 약속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갈등이 재현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예로 ‘GGM 누적 생산대수 35만대 선까지 신설법인 상생협의회 의결사항을 유효하게 한다’는 투자 협정서의 특수 규정이 있다. 현재 GGM은 투자 협정서에 따라 노동조합과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을 진행하지 않고, 노사협의회격인 상생협의회 차원에서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임금 인상 수준은 광주 노사민정협의회에서 의결하는 구조다. 다만 GGM 노동자들이 기업별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인 권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김동찬 광주상생일자리재단 대표이사는 그렇기에 더욱 사회임금과 관련한 사회적 합의 이행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GGM 안정화에 가장 중요한 점은 노사민정 상호 간 약속 이행이다. 현재 협약서상 5년간 임단협을 구성할 수 없게 하는데, 노동조합법에 의하면 노동조합을 구성할 수 있게끔 돼 있다. 노사 간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노동자들이 애로사항을 호소하고 있는데, 사회적 합의니까 무조건 5년을 지키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 당사자를 설득할 만큼 정책을 내놓을 수 있는가. 이것이 지속가능한 광주형 일자리를 유지하는 데 핵심 요소다.”

더불어 GGM에 기대하는 ‘소통·투명경영’의 수준 역시 ‘사회적 합의’의 대상이다. 광주시는 GGM의 지분 21%를 가진 대주주이지만, 광주그린카진흥원을 통해 우회 투자하는 형태다.

오주섭 광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광주시의원들이 GGM에 자료를 요청한 적 있다. 그런데 그때 회사는 ‘주식회사에게 왜 시의원들이 자료를 주라고 하느냐’는 반응이었다”면서 “만약 GGM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때는 GGM 경영진들이 지역사회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지 상상하니 정말 답답했다”고 전했다.

상법상 주식회사는 각종 기업 경영에 관한 사항을 정기적으로 공시한다. 하지만 GGM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설립된 만큼 현행법 기준을 지키는 것 이상의 활동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동찬 대표이사는 “GGM 입장에서도 기존에 있던 기업의 경영시스템과는 다른 좀 더 투명한 소통이 필요하다. 노동자에게 설득할 수 있는 명분을 가져줘야 된다”며, “당연히 기업의 기밀사항은 지켜야 하겠지만 그를 제외한 관리 및 운영사항이나 현재 회사가 겪고 있는 애로사항 등을 허심탄회하게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즉 어느 선에서 투명한 소통을 이야기하는지 사회적 합의로 풀어내야 된다. 기존 기업 공시 내용을 뛰어넘는 정보를 사회에 공개를 해야 되는 게 맞는지 아니면 노사 대표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 맞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GGM 노사 간 소통도 중요한 요소다. GGM은 △매달 1차례 경영설명회 개최 △정기적인 노사상생협의회 개최를 통한 소통 등으로 “노사 상생발전 협정서에서 결의한 내용이 현장에서 매우 잘 구현되고 있다”고 알렸다. 그러나 GGM에서 일하는 C씨는 “제대로 된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노사 간 동상이몽을 줄이고 당사자 모두가 만족할 만한 소통이 이뤄지는지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임원진과 얘기하는 시간도 가지고, 경영설명회도 하고 있다. 그런데 한 번도 제대로 된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 주주에게 하듯이 ‘어떤 요소 때문에 적자가 났고, 하루에 얼마를 팔아서 이득이 얼마가 났다’ 이렇게 설명해주면 좋은데, 저희한테는 ‘차 몇 대 못 만들었다. 그러니 다음 달에 차를 몇 대 더 만들어야 된다’는 식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원하는 부분들은 얘기하면 회사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그냥 회사 방침을 따라라. 그러다 보면 성과금을 받을 수 있다’는 식이다. 이렇게 말하니 노동자에게는 언제까지고 참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밖에 없다.”

2019년 1월 광주광역시와 현대자동차가 광주글로벌모터스 설립 관련 투자협약식을 진행했다. ⓒ 청와대

“노사민정 함께라면 해결책 만들어낼 수 있어”

이렇듯 GGM을 둘러싼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윤영현 광주경영자총협회 상임부회장은 “캐스퍼도 출시를 했지만, 아직도 정착됐다고 말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사회 의제에 대한 합의나 주거 지원 문제 등 갈등의 소지는 남아 있다. 또 노사관계라는 게 수년간 잘하다가도 한 번에 또 어긋나기도 하지 않나. 서로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 있더라도 인내하면서 대화나 협상을 통해서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전했다.

다만 지금까지 광주형 일자리를 추진한 과정을 돌이켜볼 때 갈등 그 자체는 부정적인 요소가 아니다.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은 지역 노사민정 간 대화와 소통의 공간이 마련되는 과정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오주섭 사무처장은 2020년 6월경 노사 갈등이 첨예하게 벌어질 때를 회상했다.

“공장이 가동되기 전까지는 실제로 시민사회가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공장 기공식에 노동계가 참여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첨예한 대립 관계가 펼쳐질 때, 시민사회가 나서서 광주시도 만나고, 노동계도 만나면서 일정 정도 역할을 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지역사회가 노동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노동계와 소통의 필요성을 인지하게 됐다. 그전까지만 해도 시민사회와 노동계의 소통이 충분하지 않았다.”

요컨대 광주형 일자리의 지속가능성은 갈등이 일어나도 이를 원활히 해결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김동찬 대표이사는 광주상생일자리재단에 노사민정의 소통 창구라는 역할이 부여된 점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노사관계는 극한 대립과 갈등만 존재했다. 갈등 요소가 불거지면, 모 아니면 도의 해결책, 혹은 법대로 하자는 방식을 추구했다. 그런데 광주형 일자리 추진과정에서 노사민정 등이 함께 풀어 가면 해결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희망을 봤다. 예컨대 지금까지 개별 기업들이 사정이 어려워지면 대규모 구조조정을 하는 등의 방법을 써왔다. 그런데 광주형 일자리를 통해서 타협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고 본다. 사람을 자르는 게 아니라 급여를 50~60%만 받고 2년 정도 고통 분담을 하는 등이 여러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사회적 생태계를 만들어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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