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②] 더 나은 일자리는 사회적 약속이 지켜지는 일자리
[커버스토리②] 더 나은 일자리는 사회적 약속이 지켜지는 일자리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2.06.14 00:02
  • 수정 2022.06.14 00: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적정임금·적정노동시간 실현에 사회임금 중요해
“당초 약속대로 실질적인 지원 방안 마련해야”

넥스트 광주형 일자리

‘광주형 일자리’라는 말이 한국 사회에 등장한 지 8년이 돼갑니다. 광주글로벌모터스로 대표되기는 합니다만, 광주형 일자리의 전부는 아닙니다. 물론 우여곡절 끝에 광주글로벌모터스를 세우고 청년들을 고용하고 캐스퍼도 양산하게 된 건 성과입니다. 이제 많은 이들이 광주형 일자리의 다음을 고민합니다. 다음은 현재와 과거를 살펴야 내딛을 수 있는 계단입니다. 광주형 일자리를 중간 점검해보고자 광주를 찾았습니다.

커버스토리② 사회임금 실현, 사회적 약속을 지킨다는 것

광주글로벌모터스 정문에 위치한 ‘상생의 일터’ 비석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광주형 일자리, 
사회임금과의 관계

사회임금은 광주형 일자리 설계 초기부터 논의됐다. 광주형 일자리 4대 원칙이자 추구해야 할 방향성이었던 △적정임금 △적정노동시간 △원·하청관계 개선 △노사책임경영 중 적정임금과 적정노동시간 실현에 사회임금은 중요한 요소였다. 2018년 11월 13일 서명한 ‘광주형 일자리의 성공적 실현을 위한 투자유치추진단 합의문’에 사회임금은 구체적으로 명시된다. 해당 합의문 1장 광주형 일자리 원리 구현 (1)항 적정임금 라목에는 “적정임금은 시장임금의 비중이 낮아지더라도 사회임금의 비중이 높아져 노동자들의 실질소득이 보전되도록 해야 하며, 이른바 사회통합형 일자리의 지향성을 내포한다”고 나와 있다.

그런데 왜 사회임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을까. 사회임금을 통한 적정임금 실현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지역 사회 주체들이 고민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광주에 자동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 특히 완성차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비용 경쟁력이 있어야 했다.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제조기업의 공장들은 비용을 이유로 해외에 공장을 짓고 있는 게 현실이었다. 인건비 경쟁력을 갖추다 보면 노동자가 노동시장을 통해 벌어들이는 시장임금 크기는 줄어든다. 청년들이 떠나지 않도록 더 나은 일자리를 지역에서 만들어보자던 광주형 일자리의 목적이 퇴색되는 셈이다. 해당 목적을 살리기 위해서는 또 다른 상상을 할 필요가 있었다. 주거, 교육, 돌봄, 의료 등을 지역공동체에서 지원해 실질소득의 하락을 막는 방안을 상상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시장임금에만 매달리게 하지 않아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난 적정노동시간을 달성에 도움을 준다.

사회임금을 위한 공동복지프로그램,
정작 노동자 반응은... 글쎄?

이러한 사회임금의 실현이라는 내용은 2018년 11월 13일 합의문 이후에 나온 합의서나 노사상생발전협정서 등에 고스란히 담겨 사회적 약속이 된다. 최근 사회임금 실현을 위해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사업들이 진행 중이다. 광주글로벌모터스(GGM) 노동자들의 통근을 위한 공장 앞까지 노선버스 확대 운영, 출퇴근 셔틀버스 운영, GGM이 위치한 빛그린산단 내 체육관 및 어린이집 설립, 주거 지원(공공임대주택 지원 및 무주택 노동자 월 20만 원 주거비 지원) 등 공동복지프로그램 운영이다.

다만 현재 운영되고 있는 수준이 사회임금 실현이라는 사회적 약속을 담보하는 수준은 아니라는 게 GGM 노동자들의 의견으로 보인다. 지난 5월 만났던 C씨는 “체육관이 (산단 내) 있어도 안 간다. 자차가 있는 청년이 아니면, 아니 자차가 있어도 자기 집 근처에서 운동을 하고 싶어 한다”고 했다. 그리고 “월세 지원 안 받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한다. 혼자 나와서 살면 식비나 가전 등을 구입하는 비용이 든다. 광주에 집이 있는 친구들은 부모님 집에 살면서 돈 모으는 게 낫다는 것”이라 했다. 물론 광주가 아닌 지역에서 온 청년들에겐 유용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2020년 광주청년센터가 발표한 광주 청년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광주 청년의 월평균 생활비는 180만 9,000원이다. 만 19~39세 광주 시민 2,00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다. 식비 비중이 가장 컸는데, 16.0%로 28만 9,000원이다. 식비에 이어 지출이 큰 부분은 주거비(15%)로 한 달 27만 2,000원 정도를 썼다. 저축비 25만 8,000원(14.3%), 문화활동비 19만 3,000원(10.7%), 교육비 18만 7,000원(10.4%), 교통비 17만 5,000원(9.7%), 통신비 15만 1,000원(8.3%) 등이 뒤를 이었다. 식비와 주거비가 가장 큰 지출 항목으로 C씨의 말대로 광주에 부모님 집이 있다면 나가 살지 않는 게 좋다. 한편으로는 주거비 지원의 현실화도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다. 주거비만 보고 단순 계산했을 때 부모님 집에서 사는 GGM 노동자보다 무주택자로 월세 지원을 받는 GGM 노동자가 매월 7만 2,000원 마이너스다.

주거 복지 실현의 시급함

이러한 이유 말고도 주거 문제는 GGM 노동자들에게 첨예한 사항이다. 청년들의 생애주기 계획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C씨의 표현대로라면 GGM 노동자들은 결혼을 걱정하고 있다. 현재 지원되는 공공임대주택은 26㎡(8평), 36㎡(11평·기본), 48㎡(16평) 등이다. 결혼 후 가정을 꾸리고 살기에는 현실적으로 작다는 것이다. 그래서 광주 산정지구에 공공임대아파트 공급 계획 중이나 적어도 5년 이상 걸리기 때문에 당장이 고민이라는 설명이다.

GGM 상생협의회 근로자위원들은 이런 GGM 노동자들의 고민을 받아 지난 3월 23일 광주광역시에 실효적인 공동복지프로그램 이행을 촉구했다. 이후 그럴싸한 답변을 받지 못하자 5월 11일 근로자위원들은 광주시에 공동복지프로그램 이행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전했다. 입장문에는 사회적 임금을 보장해 실질소득을 높이기로 한 내용을 담은 노사생생발전협정서를 체결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근로자위원들은 “시가 일자리를 만들 때 1인당 600∼700만 원의 사회적 임금 혜택을 약속했으나 현재 공동복지프로그램에 직접 지원해주는 비용은 1인당 평균 161만 원으로 연간 급여 대비 4.6% 수준에 그쳤다”며 “상생이 훼손되지 않도록 광주광역시는 당초 약속한 사회적 임금의 혜택이 광주글로벌모터스 근로자 개개인에게 직접 돌아갈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시행하라”고 촉구했다.

다른 부분도 지적했는데, “주거비와 교육비·교통비를 지원해주고 있으나, 교육비는 어린이집 운영비로, 교통비는 통근버스 지원 운영비로 사용되고 있으며 사원에게 직접 지급하는 유일한 항목인 주거 지원비는 1인당 평균 73만 원에 불과하다”며 “그나마 주거지원을 받는 사원을 대상으로 1인당 240만 원 이내로 한정하고 사원의 조건에 따라 적용 여부가 결정됨으로 수혜자 비율이 낮아 근로자 간 위화감마저 조성되고 있어 개선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2019년 GGM 착공식 당시 광주 노동시민사회가 ‘노동존중 사회통합 광주형 일자리 4대의제 실행 촉구 결의대회’를 열었다. ⓒ 광주 노동계 

사회임금 실현을 두고
지역 노사민정의 생각은?

주거 문제로 상징되는 사회임금 문제에 대해 광주형 일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는 지역 노사민정 리더들의 생각은 무엇일까. 노사민은 사회적 약속 이행이 중요하다는 비슷한 입장이면서 다른 포인트들이 있었다. 정은 아무래도 공동복지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할 입장이기 때문에 약속 이행의 과정을 지켜봐달라는 입장이다.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의장은 “사회적인 약속이었던 만큼 이행돼야 한다”며 “5년 동안 약속이 안 지켜지면 나중에 이 공장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광주형 일자리 논의 초기 논란이 됐던 ‘상생노사발전협의회를 구성해 그 안에서 노사가 제반 근무환경 및 조건을 협의하며, 결정 사항은 최소 5년 동안 유효성을 보장한다’는 것에서 나온 5년이다. 물론 지금도 노동조합은 만들 수 있다. 헌법으로 보장된 노동3권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상생협의회 틀을 유지하며 5년 동안 불만이 쌓여 향후 노사 교섭을 하게 된다면 상생의 반대 방향으로 치닫는다는 의미다.

여기에 윤종해 의장은 광주형 일자리, 혹은 GGM을 바라보는 지역 사회의 시선도 문제가 있다고 봤다. “공장 만들어주고 취직까지 시켜줬으면 됐지, 왜 우리가 집을 지어줘야 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며 “지방정부뿐 아니라 지역 사회에서 일자리가 생겼으니 끝,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시선들이 사회적 약속임에도 이행을 더디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오주섭 광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주택 문제는 사회임금 문제에서 중요한 것인데, 현재 난제”라며 “앞으로 산정지구 개발이 최소 7년은 걸릴 텐데 그 기간 동안 임시로 임대주택에서 살라고 계속 이야기하는 건 대안이 될 수 없고 노동자들의 불만을 누적시키고 광주글로벌모터스의 상생에 어려움을 직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광주광역시가 설득력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봤다.

GGM 경영진 역시 “광주광역시가 사원에게 직접 지원하는 주거지원이 미흡하다”며 “장기적인 주거 대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산정지구 주택 건설은 완료 시점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추정돼 기간 공백을 메꿀 수 있는 임시 주거지원이 필요하다”고 봤다. 다만 5월 11일 상생협의회 근로자위원이 제기한 문제에 광주광역시가 적극 검토한다고 약속한 만큼 성과를 기대한다는 입장이기도 하다.

윤영현 광주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은 현재 제기되고 있는 주거 문제에 뾰족한 대안이 없는 것에 동의하고, 산정지구 택지 개발에 상당 시일이 걸려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도 같은 의견이었다. 약간 다른 지점은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한계가 있어 중앙정부 차원에서 획기적인 지원 체계 마련과 같은 접근이 필요하다”며 “지원을 위한 법제도를 손보기 위해서는 지방정부만으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광주광역시는 “주거비 지원 대상 및 범위 확대, 국민·민영주택 우선공급 등 장기 주거대책 마련, 상생형 내일채움공제 신설, 상생일자리 기금 조성 등 공동복지프로그램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20대 대통력직인수위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와 관련 중앙부처, 국회에 법령 개정 및 국비 지원을 건의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해당 내용을 담은 ‘국가균형발전 특별법’ 일부 개정안이 송갑석 국회의원 대표 발의로 현재 국회 소관 상임위 심사를 앞두고 있다”며 “산정지구의 경우 지금 택지 개발을 추진하게 되면 27년도부터 입주가 가능하고, 개발 완료는 29년. 5년 정도 갭이 생기는 것은 행복주택을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놓은 상태”라고 밝혔다. 더불어 “조바심은 날 수 있으나 행정 절차와 프로세스를 이해해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역 노사민정의 인식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사회적 약속에 대한 이행이 중요하다는 것? 그래서 ‘한다’고 주장만 하는 구호로 형성된 신뢰가 아닌 무언가 쥘 수 있는 실체로 형성된 신뢰를 쌓아야 한다는 것? 이것들이 광주형 일자리를 다음 단계로 나가게 할 토대가 된다는 것? 그러기에는 사회적 안건을 두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대화나 조율이 부족해 보인다. 단지 서로 답답해하는 상황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 광주형 일자리에서 일하는 사람은 냉소적으로 변해간다. C씨는 요즘 “왜 상생할 수 없는지에 대해 오히려 더 느끼는 순간들이고 뭔가 벽이 생기고 있다”고 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