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②] ‘광주형·군산형 일자리’의 지금과 지역 상생형 일자리의 미래
[특집②] ‘광주형·군산형 일자리’의 지금과 지역 상생형 일자리의 미래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2.07.06 03:18
  • 수정 2022.07.18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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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서 벗어나면 무관용한 태도는 상생을 어렵게 해”
“지역 경제‧산업 정책은 지역이 만든다... 중앙은 지원자 역할해야”

참여와혁신이 창간 18주년을 맞이해 지난 6월 10일 오전 광주광역시 소촌아트팩토리에서 ‘지역 상생형 일자리와 지역혁신운동의 미래 좌담회’를 열었다.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지역 상생형 일자리 모델이 지속발전하기 위해 지역 상생형 일자리의 현재를 돌아보고, 지역 상생형 일자리의 바탕이 되는 지역혁신 운동을 톺아보고자 마련한 자리다.

이번 좌담회 좌장은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이 맡았다. 패널로는 박병규 광주광역시 광산구 구청장, 김현철 군산대 융합기술창업학과 교수가 참석했다. 좌담은 △지역 상생형 일자리 모델에서 상생의 의미 △중앙정부에 예산 및 정책 결정 권한이 집중된 환경에서 지역의 의미 △상생형 일자리 성공을 위한 지역 사회 리더들의 역할 △지역 상생형 일자리의 확산과 나아갈 방향 등 크게 네 가지 주제에 대해 그간 경험과 사례에 비춰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참여와혁신이 지난 6월 10일 광주광역시 소촌아트팩토리에서 '지역 상생형일자리와 지역혁신운동의 미래 좌담회'를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이문호 : 광주형 일자리를 시작으로 각 지역으로 지역 상생형 일자리가 새로운 일자리 모델로 뻗어 나가고 있다. 지역 상생형 일자리 현재를 돌아보며 새로운 일자리 모델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고민해야 할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좌담을 위해 광주형 일자리 최초 설계자인 박병규 광주광역시 광산구 구청장, 군산형 일자리의 성공적 시작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김현철 군산대 융합기술창업학과 교수를 모셨다. 우선 두 분이 ‘광주형 일자리’와 ‘군산형 일자리’의 시작에서부터 현재까지 경과와 소회를 간략하게 말씀해 달라.

기획부터 실행까지, 지역 노사민정이 함께한 결과
광주, 지역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본보기

박병규 : 광주형 일자리는 2014년 민선 6기 광주광역시 시장 선거에서 당시 윤장현 후보가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고 시장에 당선됨으로써 시작됐다. 2014년 9월 1일에 전담 부서가 만들어졌고 나는 10월 1일부터 전담 부서 책임자로 일하게 됐다.

광주형 일자리 추진은 전략을 나눠 단계별로 해나갔다. 공공부문에서 광주형 일자리 성과를 만들고, 그 성과를 기반으로 민간부문으로 확산시키자는 계획을 가지고 시작했다. 공공부문에서는 일자리 질 개선을 위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생활임금제를 시행했다. 또 청소년 노동인권보호를 위해서 센터를 설치하는 등 여러 가지 활동과 성과를 창출했다.

박병규 광주광역시 광산구 구청장 ⓒ 참여와혁신 포토 DB
박병규 광주광역시 광산구 구청장 ⓒ 참여와혁신 포토 DB

이러한 활동은 단순히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어려운 노동조건을 개선했다는 것보다 그 과정에서 노동조합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함께 성과를 만들어갔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행정이(지방정부가) 어려운 노동자들에게 시혜를 베풀어준 게 아니라, 기획부터 실행까지 행정이 노조와 또는 행정이 노사민정과 함께한 결과로 성과들을 만들어낸 데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민간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더 나은 일자리위원회’라는 사회적 기구를 만들어 민간부문 일자리 창출에 대한 내용을 하나하나 만들어갔다. 거기서 나온 성과물이 바로 광주형 일자리 4대 핵심의제인 적정임금, 적정노동시간, 원하청 관계개선, 노사책임경영 등이다.

그럼에도 투자할 기업을 찾기 쉽지 않았다. 광주형 일자리에 대한 기업의 불신이 커서다. 우여곡절 끝에 2018년 6월 1일에 현대차가 광주시에 투자 의향서를 제출했다. 기쁜 소식이었고 투자가 바로 이뤄질 것 같았다. 하지만 소통 부재로 이견이 계속해서 생기면서 결국은 7개월 후인 2019년 1월 31일에 투자협약이 체결됐고, 그 뒤로 광주글로벌모터스(GGM)가 태동해 지금에 이르게 됐다.

가장 최근 상황은 합의된 사회임금 미이행에 대해 내부에서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인데, 광주시의 미온적 대처로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편 광주시는 광주형 일자리 시즌2, 제2의 광주형 일자리를 만들겠다며 친환경자동차 부품공장을 유치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대략 이 정도가 시작에서부터 현재까지다.

이문호 :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지역 노사민정의 사회적 참여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게 광주형 일자리의 가장 큰 의미이지 않나 싶다. 지역 노사민정이 함께 좋은 일자리 만드는 것, 전국적으로 큰 울림을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한편 군산에선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문을 닫으며 굉장히 큰 사회적 이슈가 됐다. 어떻게 다시 지역을 활성화하냐는 문제가 컸다. 군산형 일자리에 대해 김현철 교수님 말씀 부탁한다.

군산의 회복을 위해 나선 지역 사람들,
‘전기차, 중견·중소기업 중심, 원·하청 관계 개선’ 키워드로 시작

김현철 : 군산을 보면 광주와는 시작이 조금은 다르다. 광주는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무언가를 해보는 의미였다. 군산은 현대중공업과 한국지엠이 공장문을 닫으면서 지역경제 근본이 흔들렸고, 이를 회복하기 위함이 컸다.

2018년 2월 한국지엠이 군산에서 떠난다고 알려진 게 설 연휴 전날이다. 설 연휴 전날 노동자들을 싹 흩어지게 해놓고 노동자들에게 개별통보를 하는 방식이었다. 뭔가 행동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상생형 일자리가 아니고 지역경제 기반의 붕괴를 어떻게 할까라는 이야기를 주로 했다. 내가 살아가면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생명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노동자 두 사람이 자살한 사건이 발생한다. 한 사람은 한국지엠 군산공장, 한 사람은 한국지엠 부평공장. 자동차산업을 연구하면서 제일 가슴 아팠던 게 쌍용차 문제를 우리 사회가 해결하지 못하고 그 많은 노동자를 죽게 만든 거였다. 그런 아픔이 있었기에 굉장히 긴장했다. 이렇게 가면 안 되겠구나 싶었다. 그때 정부 측에서도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문제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묻는 전화가 왔다.

처음엔 무슨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고, 노동계가 학계나 사람들을 모아서 우리 뭔가 이야기를 좀 해보자고 제안했다. 광주처럼 시작할 때부터 조직을 만드는 과정을 거친 건 아니다. 이런 활동에는 전북대 이호근, 채준호 두 교수의 협력이 크게 도움 됐다.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더니 첫 번째 부닥쳤던 문제가 부품업체를 포함한 기업주들 일부가 노조 탓하고 노동자를 욕하는 거였다. 아, 이게 좀 이상하다. 이렇게 가면 분열되고 아무것도 못하는데라는 생각이 딱 들었다.

그래서 과거에 연구하며 모았던 자료에 최근 자료를 더해 지엠이 어떤 회사인지 밝히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리고 그 내용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 상황이 지엠이라는 회사의 문제지, 노조 문제가 아니고 군산공장 문제도 아니라는 것을 데이터를 바탕으로 밝히고 설명하는 일부터 했다. 그러면서 광주형 일자리 소식을 듣고, 광주형 일자리가 추구하는 내용을 공부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2018년 1년 동안 크게 세 가지 화두를 정리했다.

내연기관차 더 이상 안 된다, 전기차로 무조건 가자고 한 게 첫 번째였다. 두 번째는 대기업 중심의 판을 만들지 말자. 현대중공업과 한국지엠이 군산에 들어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지원을 받았고 지역사회가 얼마나 협조했는데, 떠날 때는 설 연휴에 노동자에게 해고 통보하는 그런 기업들 하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중견기업 중심으로 새로운 판을 짜보자는 것이었다. 세 번째가 한국의 원하청 관계가 워낙 말이 많으니 수직계열 구조의 원하청 관계가 아니라 수평 거래 구조의 원하청 관계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이 세 가지 화두를 정리하고 2019년으로 넘어왔다.

그랬더니 광주형 일자리를 기반으로 한 상생형 지역 일자리 사업을 정부가 추진하겠다고 했다. 결정적인 찬스라고 생각했다. 지역의 산업정책과 경제정책을 지역사회에서 만들어 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본 거다. 그렇게 해서 판을 짜기 시작했다. 지역사회 모임을 만들자고 제안해서 지역 노사민정, 교육기관인 대학까지 들어와 모임을 구성했다. 군산에서는 이 문제를 논의하게 됐을 때 민주노총이 처음부터 함께했다.

박병규 : 광주와 군산의 차이는 누가 먼저 시작하고 주도했느냐다. 군산은 행정보다는 민간이 자발적으로 주도해나갔다. 누군가가 계속해서 열정을 가지고 사람들을 모아가고 행정을 설득하며 추진했던 과정이 있고, 광주는 행정이 먼저 시작해서 노조, 시민사회를 포괄하며 대화해 갔던 게 차이가 있다. 또 하나 군산은 민주노총이 처음부터 참여했던 점이 큰 경쟁력이지 않나 싶다.

이문호 : 군산에서 민주노총이 참여할 수 있었던 객관적 조건이 있던 것 같다. 당장 공장이 문을 닫고 지역을 나가고 대량 실업 상황이었으니까. 광주는 그런 상황보다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보면 각 지역에서 산업 전환기, 특히 자동차 내연기관 중심 기업으로 구성된 지역에서는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에서 이러한 상생형 일자리에서 관심이 있다. 급하니까. 그래서 지역마다 여건과 상황을 파악하면 지금이 상생형 지역일자리를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조건인 것 같다. 또 현장에서 정말 지역을 사랑하고 뛰는 분들이 있어야 이런 걸 규합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다. 광주형 일자리나 군산형 일자리 진행 과정에서 기업 유치 어려움이 있다 보니 기업 중심으로 정책이 실행된 부분이 있다. 기업 목소리에 휘둘리는 상황이 연출되곤 한다. 그래서 상생의 가치, 이를테면 광주형 일자리 4대 원칙 같은 게 퇴색되는 거 아니냐는 비판도 있는데 어떻게 보나? 그리고 이런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상생, 사회 속 모두가 돌아봐야 할 문제

김현철 : 군산의 경우를 말씀드리면 상생 문제 때문에 양대 노총과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봉착해 있는 딜레마는 이렇다. 광주처럼 현대차 같은 대기업이 빨리 들어와서 생산에 들어가는 구조가 되면 상생의 문제를 계속 논의하고 끌고 갈 수 있다. 그런데 군산형 일자리를 함께하는 4개 기업 중에서 현재 2개 기업은 가동 중이지만, 그 둘 중 한 기업은 OEM 전문업체로 시작해서 아직 완전한 양산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나머지 두 기업은 공장도 완공하지 못한 상태다. 중소·중견기업 중심의 일자리 모델이 갖는 약점이다. 중소기업, 중견기업을 중심으로 사업을 하니 투자가 빨리빨리 진행이 안 되는 거다. 누가 공장 지어주는 것도 아니고 자기들이 투자하고 지역투자촉진보조금을 받아서 짓는 것이니 상황을 살피며 진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업 자체가 완전히 궤도에 올라가지 못하고 있으니까 상생 논의도 지연되는 측면이 있다. 노동계하고 이야기해 상생의 내용은 다 갖춰놨는데 내용을 채울 그릇이 완성되지 않은 셈이다. 지역 노동단체들에게 설명할 때 이 부분을 이해시키며 나아가고 있다.

박병규 : 상생형 일자리는 처음으로 시도해보는 것이다. 다들 이 일자리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한 상태 속에서 추진됐다. 그 과정에서 함께하려는 노력은 있었지만, 여전히 내 문제로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충분한 합의 과정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상생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그 전제로 애정이나 신뢰가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상생이란 단어를 사용하면서도 전혀 스스로 그렇지 못한 게 우리 한국사회의 현실, 노사관계 현실이 아니었나 싶다. 내 생각에서 벗어나면 무관용의 태도를 취해 상생이라는 게 쉽지 않다. 언제까지 논의만 하고 있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사회적 인식에 대한 논의가 좀 더 풍부하게 진행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두 번째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노동 문제는 관심을 못 받는다는 거다. 기업이 노사관계의 변화를 원하지만 정말로 자기들이 많은 투자를 통해서 노사관계를 변화시킬 생각은 없는 것 같다. 다른 방법을 찾는다. 우리 사회의 산업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사람이나 기술에 대한 문제는 심각하다. 이런 데 투자할 필요 없다는 거다.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불확실성도 크니까. 사람보다는 설비, 그리고 기술보단 필요할 때 M&A하면 되니 그런 쪽으로 간다. 기업과 행정의 노사관계를 인식 수준이 여전히 과거 틀에 갇힌 상태에서 상생형 일자리가 출발했다.

이런 기존의 인식체계가 지금도 크게 바뀌고 있진 않다. 광주만 보더라도 광주글로벌모터스라는 상생을 제1의 가치로 한 기업이 만들어졌지만, 제대로 상생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또 한 주체로 참여하고 있는 광주시도 정말로 그런 노력을 하고 있느냐? 부족하다. 또 이걸 뒷받침하기 위해서 상생협의회나 광주상생일자리재단도 만들었는데 제 역할을 못 찾고 있는 것 같다.

상생에 앞서 노동에 대한 왜곡된 인식 편견 이런 것들이 어느 정도 바뀌어야 상생에 대한 문화도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다. 아까 김현철 교수님도 말씀하셨다. 노조도 분명히 책임질 부분이 있을 거다. 그러나 책임 여부를 떠나서 해야 할 일이 있다. 내 책임이냐 아니냐를 따지기보다 미래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노조는 방어하는 데 급급하다. 환경적인 요인들이 변화되지 않기 때문에 상생이 잘 안된다고 생각한다.

김현철 : 조금 범위를 넓혀서 생각해보면 이런 거다. 미국의 제조업이 망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했을 때 상생이라는 게 미국 사회에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 지금도 나는 지엠이라는 회사를 자동차 회사라고 부르지 않는다. 지엠은 자동차는 부업으로 만드는 금융회사다. 파이낸셜 테크닉만 써서 회사를 끌어왔던 거지 자동차 회사로서 생존해온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지금처럼 상생이라는 걸 상실해갈수록 미국 기업들처럼 될 거라는 거다.

내가 염려하는 또 하나는 노동계가 사회에서 이니셔티브(주도권)를 쥐고 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구수로 보면 노동자가 그렇게 많은데 우리 사회의 이니셔티브를 노동계가 끌고 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못하고 있다. 그게 왜 그러냐면 노동계 안에 상생이 안 되는 거다. 예를 들면 대기업-하청 관계처럼 대기업노조가 하청노동자를 배려하는 의사결정하고 끌고 가기 시작하면 우리 사회 담론을 노동계가 끌고 갈 수 있는데 그걸 못하고 있다. 그게 굉장히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중앙이 다 쥐고 있으면,
지방은 아무 것도 못한다

이문호 : 좋은 말씀을 많이 해줬다. 노동에 대한, 상생에 대한 인식들을 바꿨으면 좋겠다는 말씀으로 새겨들어야 할 것 같다. 다음은 지역과 중앙의 관계 설정 문제다. 중앙정부의 입김이 세다. 그리고 중앙정부가 생각하는 여러 가지 기준들, 원칙들이 있는데 거기에 쫓기다 보니 지역에서 하고 싶은 일들이 상생형 일자리 사업에 제대로 반영이 안 된다는 의견이 있다.

김현청 군산대 융합기술창업학과 교수 ⓒ 참여와혁신 포토 DB
김현청 군산대 융합기술창업학과 교수 ⓒ 참여와혁신 포토 DB

김현철 : 내가 군산형 일자리를 하면서 가장 관심을 가졌던 지점이 지역에서 뭔가 해볼 수 있다는 거였다. 그거를 지방자치의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선거해서 시장 당선시키고 끝나는 지방자치가 아니고, 지역의 경제‧산업 정책을 지역이 스스로 만들어서 추진해야 한다는 거다. 그래야만 지역 일자리를 지역이 책임지고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중앙정부는 여기에 지원자 역할을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산업부가 우리나라의 산업정책을 오래 해온 경험이 있으니까 산업부 또는 산업 담당 연구기관이 지방에 와서 그 지역의 산업정책 설계를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인적 자원은 다 중앙이 가지고 있고 지방은 인적 자원이 없는데 뭘 어떻게 하나? 그러니까 언제나 중앙이 지방을 통제할 생각만 하는 거다. 그게 아니고 중앙이 지방으로 와서 지방의 산업정책을 정립해 지방을 살리는, 그래서 지방 일자리가 만들어지게 해야 하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거다.

두 번째는 상생형 일자리 사업을 하면서 여러 차례 주장한 내용인데, 상생형 일자리 지원사업에선 개별 사업 하나하나 다 심사해서 예산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다 보니 군산은 심지어 지원 순서가 뒤바뀌었단 느낌을 받는 사업이 있다. 이걸 먼저 하고 저걸 나중에 해야 하는데, 나중에 할 걸 먼저 주는 거다. 사업마다 따로 심의하고, 심의 부처도 다르니까. 그래서 이러지 말고 차라리 전체 사업 자체를 평가해서 운용할 수 있는 전체 예산을 달라는 거다. 예를 들어 중앙정부가 ◯◯형 일자리든 이 사업을 해볼 만하니까 500억 원 줄 테니, 지역에서 해보라고 하는 것이다. 해당 지역 산업정책은 중앙에서 함께 짜면서 도와줬던 거니까, 그들과 어떻게 사업 예산을 배분할지 함께 논의해서 사업을 끌고 가면 훨씬 더 효율적인 정책이 되지 않을까 하는 구상이다.

박병규 : 비슷한 이야기다. 중앙에서 예산이나 정책 결정 권한을 다 틀어쥐고 있는 게 큰 문제다. 한두 해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지방정부에서 일을 해봤지만, 중앙정부에서는 일을 안 해봐서 권한 나누기가 정말로 할 수 없는 일인가, 불가능한 일인가 싶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중앙정부가 모든 걸 틀어쥐고 있어선 안 된다. 진짜 분권이나 자치가 제대로 되려면 중앙정부가 좀 놔야 한다는 입장인데, 그걸 놓으면 안 되는 내가 모르는 다른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생각까지 들더라.

현재로서는 굉장히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지방에서 어떤 일을 한 번씩 하려면 진짜 문턱이 닳아지게 중앙정부 가서 읍소를 해야 한다. 이런 게 상당히 큰 문제다. 매번 이런 문제를 지적했던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심지어 연방제 수준의 분권을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변화를 느낄 수 없었다. 이런 문제조차도 역시 정치적인 수사로 끝나고 정치공학으로 문제를 풀어버리니까. 결국은 일자리 경제에 대한 현실적인 접근이 안 되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를 지역민의 입장에서 접근한다면 쉽게 해결책이 나온다. 근데 중앙정부 중심의 판단과 의사결정을 여전히 하고 있다. 특히 지방을 미숙하게 보는 것 같단 느낌도 있다. 지방에서 뭘 알아. 우리가 하나씩 간섭하고 통제해야지, 놔두면 엉망이 되는 거야. 지방에 맡기면 안 돼 이런 식이다.

아까 김현철 교수가 말씀하신 예산 순서가 바뀌는 것도 그거다. 중앙에서 정해서 줘야 하는 거다. 순서도 잘 모르면서. 근데 예를 들어 100원이라는 돈을 주면 쟤들이 다 낭비해버릴 수도 있어. 10원씩 쪼개서, 이건 이렇게 써야 하고 저건 저렇게 써야 하고 간섭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런데 지역마다 상황이 다 다른데, 안 할 수 없으니까 지역들도 어쩔 수 없이 예산을 신청하는 거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장들 간 비교가 된다. 전임은 예산 얼마 했고 나는 얼마 못했고. 그러니까 억지로 따오는 거다. 그러면서 집행을 하는데 또 어떤 경우는 그게 효과가 없기도 하다. 어떤 건 따왔지만 매칭을 하고 앞으로 계속 들어갈 비용을 고려하니 진행에 어려움이 있어 반납하기도 한다. 이런 게 너무 반복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중앙정부가 바뀌지 않는 한 나도 해법은 없다. 기본 방향은 절대적으로 이건 아니다.

이문호 : 분권화가 제대로 안 돼 있으면 지역 사회적 대화도 활성화가 안 된다. 지역에 권한도 있고 재정 능력도 있어야 하는데 이 점이 모순이다. 지역 상생을 하자고 해놓고, 중앙에서 권한을 틀어쥐고 있으면 어렵다. 두 분이 말씀하신 방향이 실현되면 그래도 지역에서 숨 쉴 수 있는 영역과 공간이 커지지 않을까 한다.

다음 질문인데 어떤 콘퍼런스에서 들었던 말이다. 상생형 지역일자리가 잘 되려면 그 지역에 미친 사람이 있어야 한다, 즉 그런 지역 리더가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지역 리더들에게 필요한 역량, 그리고 그 역량을 어떻게 지역에서 키워나갈 수 있을까?


도맡을 주체는 필요하나, 떠맡기면 지속가능성 없어
지역 주체 키울 시스템과 사회적 지원이 필요

김현철 : 나의 경우 아쉬웠던 건 예전엔 국립대 교수가 외부활동을 할 수 있었다. 사립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급여는 적지만, 대신 일종의 고용보장이 되는 자리이다. 그러니까 지역사회의 필요나 요구가 있을 때 나가서 함께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근데 그게 우리가 마지막 세대다.

지금은 대학을 교육부가 완전히 옭아매서 교수가 학교 일만 해도 정말 과로할 정도로 일이 많다. 이 점이 지금 제일 아쉽다. 그러니까 지역사회에서 미친 사람이 나오려면 해당 분야의 아무튼 전문적 지식을 가지면서 미쳐야 하는 거다. 박병규 구청장님도 자동차회사에서 일을 했기에 자동차를 이해했던 거고, 나는 자동차회사에서 경영전략 연구를 하던 사람이라 거기에 전문적 지식이 있었던 거다. 그러면서 지역사회와 함께 어울리면서 상생형 일자리 모델을 만들어낸 건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그걸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을 거다. 대학 후배들을 보면. 그런 걱정이 있다.

박병규 : 어렵고 조심스러운 이야기이다. 전에 어디 가서 이 말을 해서 분위기가 싸늘해진 적이 있다. 사회적 대화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내가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단 이야기만 하면 어떻게 하냐. 솔직히 현실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든 안 하든 참여할 수가 없다. 먹고살기 바빠 죽겠는데. 그럼 누가 해야 하나? 이 사람은 이래서 안 되고, 저 사람 저래서 안 되니까. 국립대 교수가 해야 한다고 했다.(웃음) 맨날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말만 하면 어떡하나. 그 의견에 100% 동의하는데 주체가 없는 거 아니냐는 지적을 했던 적이 있다.

결국 주체가 있어야 하는데, 주체는 그 일에 미친 사람이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근데 개인에게 과도한 부담이나 기대를 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개인기가 필요하지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개인기와 개인의 소명의식에 계속 맡길 문제는 아니다. 그렇게 하다 지쳐 쓰러지는 거다. 이어지기가 어렵다.

사회적으로 가야 한다. 사회적 투자가 돼야 한다. 제도, 정책 등의 뒷받침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 사회적인 평가도 되고, 그게 사회적 자본으로 축적될 수 있다. 이런 것도 좀 과감하게 투자를 해줘야 한다. 주체가 더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도록 하면서 제2의, 제3의 인물을 만들어야 한다. 

부족한 것을 깎아내리지 말고
채우며 앞으로 나가는 사회 돼야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 ⓒ 참여와혁신 포토 DB

이문호 : 마지막이다. 디지털화, 그리고 탄소중립 사회로 가야 하는 상황에서 코로나 위기까지 겹쳤다. 대 산업전환 시기가 도래했다. 상생형 지역일자리가 더 필요한 시기다. 두 분이 쌓아온 경험으로 봤을 때 한국 상생형 지역일자리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지 조언 부탁한다.

박병규 : 일반적인 사람들의 관심사, 그 사람들이 처한 환경, 그 사람들이 고통받는 현실을 봐야 한다. 근데 정치가 지금 너무 이념이나 진영논리로 계속 가는 것 같다. 행동도 거기에 편승해서 하고.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 정치와 행정에서 성찰이 필요하다.

그래야 이 문제도 제대로 바라보게 되는 거다. 다들 지금 공중에 붕 떠 있다. 민생에 관심 없다. 먹고살 만하다는 뜻이다. 일자리 경제 문제를 크게 걱정하지 않는 거다. 입으로 걱정하는 거지. 생각해 보자. 자기 문제라면, 내가 일자리가 없어서 지금 고통받고 있고, 내 자식들이 고통받고 있다면 붕 떠다니는 그런 얘기는 안 할 거다. 당장 일자리 문제를 어떻게 할 거냐고 달라붙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한국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이 결국 일자리와 연관되지 않은 게 없다고 본다. 일자리 환경이 바뀌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도 바뀔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해서 상생형 지역일자리든 어떤 이름이든 이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이론이나 실천이 있다면 그걸로 가면 된다. 그런데 그게 없다면 상생형 지역일자리에 좀 더 관심 두고 힘을 모아서 이걸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꾸 부족한 점을 지적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부족함을 더 채울 것인지, 지금 정체된 걸 어떻게 좀 더 끌어올릴 것인지에 대해 우리 사회가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 특히 정치나 행정 영역에 부탁하고 싶다. 또 세력으로 된 노조에 그런 부탁을 하고 싶다. 생각 있는 시민이 함께 가야 성공한다.

이문호 : 전반적으로 일자리, 민생을 위해 특히 정치와 행정의 성찰을 강조했다. 사회 여러 집단에서 생기고 있는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야 상생형 일자리가 활성화될 거라는 조언이기도 하다.


양보는 서로 마이너스가 아닌
플러스의 결과를 만든다

김현철 : 다른 지역에 가면 제일 먼저 하는 말이 군산을 보고 베끼지 마세요다. 군산은 특수한 상황에 있었기에 가능했고, 각 지역 상황에 맞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기본적으로 산업구조는 끊임없이 변한다. 산업구조 변화는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다. 언제든 산업구조 변화는 있다. 산업구조 변화라는 건 어디선가 일자리가 뭉텅이로 사라지고, 어디선가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는 변화다. 그걸 기본적으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자리 자동화로 인해서 일자리 변화가 어떻게 나타나는지가 큰 의미가 있다. 고급이나 저급 일자리는 늘어나는데 중급 일자리가 중심으로 사라진다. 중급은 대부분 제조업 노동자들이다. 그걸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금융업 때문에 서비스업이 좋은 일자리인 것처럼 정부가 이야기하는데 아니다. 계속 증가하는 서비스업 일자리는 금융 등 몇 가지 빼면 가장 나쁜 일자리다.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할 거냐, 결국 정의로운 전환은 어떻게 할 것인지 지역이 고민해서 지역일자리를 기획하고 육성해야 한다.

이런 이슈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건데, 양대 노총 같은 조직이 좀 더 현실에 대한 판단을 하고 이런 논의를 주도해 가야 한다고 본다. 뒷짐 지고 우리 것만 내놓으라고 요구하거나 그런 투쟁이 되면 내가 항상 우려하는 진보의 함정에 빠진다. 진보의 가치를 내세우면서 법이 만들어지면, 그게 법 과잉으로 이어진다. 법 과잉은 많은 사람이 법을 지킬 수 없게 만들어 검찰이 처벌을 선택할 수 있게 한다. 너는 이 법으로 처벌받아, 너는 내가 사정을 봐줄게 이런 선택이 가능해진다는 거다. 법은 보편적으로 지킬 수 있는 한도에서 만들어야 하는 거고, 그 이상은 끊임없이 상생의 정신으로 달성해가는 사회가 돼야 한다. 그리고 기업의 이야기도 허심탄회하게 들어줘야 한다. 대체 뭘 걱정하느냐. 당신들의 걱정을 없앨 방안도 함께 찾아 법을 만들자고 해야 한다. 군산형 일자리에서 노사 합의할 때도 비슷한 과정 거쳤다. 노동계는 5년간 쟁의하지 말라니까 이거 뭔 소리야 위헌이야 이러면서 싸웠고. 반면 우리사주제나 노동자대표 이사회참관제 등에 대해 사측에선 노동자가 경영에 간섭하느냐고 반발했다. 이 지점에서 서로 양보해서 경영을 투명하게 만드는 장치를 도입하고, 그렇게 해준다면 노조가 5년간 쟁의행위를 안 하고 지켜볼 수 있다고 해서 합의가 된 거다. 그런 과정을 통해 상생형 일자리가 좀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 한국사회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이문호 : 사회적 양보가 미래 성장을 불러오고, 그래야 미래 결과를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말씀인 것 같다. 특히 노동계가 진보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사회적 의제를 충분히 선점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해주셨다. 한국 상생형 지역일자리를 선도했고, 앞으로도 선도해야 할 두 분의 귀한 말씀을 들었다. 모두 고생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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