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형 일자리, 어디까지 왔나?
상생형 일자리, 어디까지 왔나?
  • 손광모·정다솜 기자
  • 승인 2022.03.14 15:37
  • 수정 2022.03.14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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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노사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 성과와 의미는?
시스템으로 안착한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 …
‘지속가능한 사례’ 위해 비즈니스 모델, 상생요소 지속 보완 필요

‘일자리는 대기업이 만드는 것이다.’
‘중앙정부가 주도해야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은 이러한 생각에 맞서 이전과는 새로운 일자리 모델을 제시했다. 바로 중앙이 아닌 지역이 주도하고, 노동자, 기업, 시민, 전문가, 정부 등 노사민정이 다 함께 일자리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은 단순히 일자리의 양을 늘리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다. 지역 노사민정의 사회적 대화를 통해 어느 한 주체만의 힘으로 해소하기 어려웠던 공동의 문제를 함께 해소하려는 목적도 가진다. 노동시장 이중 구조화 완화, 원하청 불공정 거래 지양, 기업과 지역주민 간 갈등 해소 등 여러 형태의 ‘상생’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2019년 광주에서 최초로 상생협약이 체결된 이후 ‘○○형 일자리’라는 이름으로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이 전국에 퍼져 나갔다. 어느덧 햇수로 4년이 지난 지금,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은 어디쯤 와있을까?

상생형 지역일자리의 지금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은 크게 두 단계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상생협약 체결이다. 지역 노사민정 주체들이 지역 특색에 맞는 일자리를 만들어 보자고 의기투합한 것이다. 이후 사업계획이 구체화되면, 지자체의 신청을 통해 상생형 지역일자리 선정을 위한 심사에 들어간다. 심사에서는 일자리 모델의 지속가능성과 상생요소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실제 상생형 지역일자리로 선정되면 정부의 다양한 패키지 지원이 이뤄진다.

현재 상생형 지역일자리로 선정된 지역은 총 6곳이다. 광주형 일자리(완성차 제조‧2020년 6월), 강원형 일자리(초소형 전기화물차‧2020년 10월), 밀양형 일자리(금속가공‧2020년 10월), 군산형 일자리(전기차클러스터‧2021년 2월), 부산형 일자리(전기차구동유닛‧2021년 2월), 구미형 일자리(배터리‧2021년 12월) 등이다.

상생협약 체결지역은 이 6곳에서 대구1(자동차부품‧2019년 6월), 대구2(전기모빌리티‧2021년 11월), 전남 신안(해상풍력‧2021년 2월), 충남 논산(식품‧2022년 1월), 전북 익산(식품‧2022년 1월), 전북 전주(탄소섬유‧2022년 1월) 등 6곳을 더해 총 12곳에 달한다.

지난 1월 27일 열린 전북 익산형 상생일자리 협약식. ⓒ 산업통상자원부

상생협약 체결부터 상생형 지역일자리 선정. 그 이후 ‘성공 모델’로 자리 잡는 과정은 절대 쉽지 않다.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박은경 고용노동부 서기관은 “상생형 일자리 사업의 성패는 여러 요인에 의해서 영향받는다. 지자체장의 관심, 지자체 실무자의 의지, 컨소시엄 기관의 역량, 지역 노사민정 거버넌스, 실제로 투자할 기업의 유치 등이 모두 잘 연결돼야 성공 모델이 나온다. 그만큼 쉽지 않은 사업”이라고 말했다.

올해 1월 상생협약 체결에 성공한 최수경 전주시 노사일자리지원팀장은 “상생형 일자리를 이해하는 데 담당자나 연구진들도 너무 어려웠다. 세 차례 간담회 동안 지역 주체들에게 상생형 일자리를 설명하는 데만 시간을 썼던 것 같다”고 떠올렸다. 더불어 상생형 지역일자리를 추진했던 지역의 연구기관 관계자들은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은) 보고서 제출에 목적이 있는 일반적인 연구사업과는 결이 다르다. 실제 비즈니스를 추진하는 사업”이라고 평가했다.

상생형 일자리의 개념이 낯설뿐더러, 사회적 대화를 통한 사업 진행 방식에도 익숙하지 않다. 그렇기에 고용노동부와 노사발전재단, 일자리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등은 상생협약 체결 전후와 상생형 지역일자리 선정 전 컨설팅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시스템으로 자리 잡은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

우려 반, 기대 반으로 시작했던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은 이제 시스템으로 안착하기 시작했다.

먼저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에 대한 지역 주체들의 이해도가 높아졌다.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이 1년 준비해서 결과가 나오는 사업이 아니며,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을 이제 지자체에서 인식하는 것 같다”며 “상생형 일자리 컨설팅 사업도 1년만 받는 게 아니라 2~3년 장기적으로 준비한 다음에 최종적 선정 심사를 받는 등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서 움직이는 것 같다”고 전했다.

지난해 들어서 상생형 지역일자리의 업종 다양성도 확보됐다. 해상풍력(신안), 탄소섬유(전주), 식품(논산, 익산) 등이 그 예다. 그동안 상생협약을 체결하거나 상생형 지역일자리로 선정된 지역의 산업이 주로 자동차나 전기차 부문에 집중돼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지역의 특색을 고려해 사업을 진행하기보다는 대중적으로 익히 알려진 광주형 일자리와 군산형 일자리가 자동차 산업을 추진하자 너도나도 따라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상생요소가 확장되기도 했다. 지난해 상생협약을 체결한 전남형 일자리(신안)는 노사상생, 원하청상생을 추구했던 광주형 일자리나 군산형 일자리와 상생의 유형이 달랐다. 해상풍력발전소 설립 과정에서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지역 주민의 반발이 있었다. 노사 상생보다는 기업과 지역주민 간의 상생을 꾀한 모델인 것이다.

상생형 일자리 사업 담당했던 전남도 관계자는 “상생형 일자리 1호가 노사상생에 집중된 광주형 일자리였다. 신안군은 지역 주민과 기업의 상생 모델인데, ‘상생형 일자리 취지와 맞아떨어지는 것이냐’는 의구심이 있었다”면서 “사업 초반에 특색 있는 상생형 일자리 모델을 꾸려나가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전했다.

또한 익산형 일자리의 경우 노사민정이 아닌 노‘농’사민정을 지향한다. 김소철 익산시 일자리창출계장은 “2019년부터 익산형 일자리를 추진했지만, 노사민정에 기반한 일자리 모델을 가지고 기업을 설득하기 어려웠다”면서 “그 와중에 지역 농가를 포함해 노농사민정에 기반한 일자리 모델을 도출해냈다. 그 이후 물꼬가 트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업종별, 상생요소별 다양화라는 결과를 두고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금까지는 지차제장이나 지역 상층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을 연계하려는 경향이 있었다”며 “하지만 지난해부터 일자리위원회 상생형 지역일자리센터 등에서 능동적으로 역할을 해내면서 발굴한 성과라고 볼 수 있다. 노사발전재단에서도 컨설팅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지역으로부터 역량을 이끌어내는 모양새를 만든 것”이라고 평가했다.

여태까지는 지역 핵심인물의 “우연찮은 네트워크”를 통해서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이 진행됐다면, 이제는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지역의 일자리 사업이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박은경 서기관도 “지역 내 숙원 사업에 ‘상생형’을 덧붙이는 게 아니라 제로베이스에서 지역 특성을 고려한 일자리 모델이 많이 나오기 시작한 것 같다”며 “다양성 측면이나 지역의 자발성 측면이 이전보다 나아진 것 같다”고 전했다.

지난 1월 27일 열린 전북 전주형 상생일자리 협약식 ⓒ 산업통상자원부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이 시스템으로 안착했다는 점은 지역 주체들의 경험에서 직접적으로 확인된다. 특히 2019년부터 사업을 추진해온 전주시는 협약체결까지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당초 기한 내 완공될 것으로 예상됐던 탄소섬유국가단지가 부지 내 문화재 발굴 등으로 인해 2026년으로 미뤄지면서 투자를 약속했던 기업들이 일부 이탈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사민정의 논의를 통해 상생형 일자리 사업을 지속 추진하기로 했다. 최수경 전주시 노사일자리지원팀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을 하면서) 공무원들이 일할 수 있는 성장 동력이 된 것 같아요. 우리 지역에 어떤 산업을 발전시켜야 할지, 시민들에게 혜택을 어떻게 돌아가게 할 건지 등 정책을 연구하고 개발하게 된 거죠. 노사민정과 자주 대화를 하다 보니 시야의 폭이 넓어졌고, 그들의 애로사항도 잘 알게 됐죠. 이런 일을 지자체에서 자체적으로 예산을 세워서 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워요. 주어진 업무만 하게 되죠.”

‘지속가능한 사례’ 위해  
꾸준한 수정‧보완 필요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은 사업성과 상생요소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사업이다.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 자문위원단 중 한 명인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상생형 일자리로 선정된 6개 지역의 경우 ‘지속가능성’을 중점에 두고 꾸준히 지켜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광주형 일자리에서 캐스퍼가 판매됐다. 강원형 일자리에서도 포트로(초소형전기화물차)가 적은 수량이지만 판매됐다. 제품화가 되고 있다는 의미”라면서 “하지만 제품화가 고용 창출 효과로 이어지는지는 아직 두고 봐야 한다. 실제 성공사례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호’인 광주형 일자리가 상생형 지역일자리에 선정된 지 3년 차에 불과하기에 본격적인 성과가 나올 수 있는 시점은 아니지만, 실제 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는지 지속적인 관리‧점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상생협약 체결 지역의 경우 상생협약안에 담은 일자리 모델이 실제 사업이 될 수 있도록 구체성을 더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업종 면에서 식품, 탄소섬유, 해상풍력 등 다양해졌다. 다만 비즈니스 모델이 아직 명확하지는 않다. 결국 보완, 수정을 해야 성공사례가 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지난 1월 27일 열린 충남 논산형 일자리 상생 협약식 ⓒ 산업통상자원부

실제로 상생 협약을 체결한 지역들은 협약안을 실현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박선주 논산시 일자리창출팀장은 “중소기업이 다수 참여하는 논산형 일자리 모델에서는 기업 간 가치사슬 형성 등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내기가 어려웠고 앞으로도 과제"라면서 "올해는 상생협약 이행 방안과 더불어 기업들이 지속가능하게 협약을 이어가고 투자가 더욱 확대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내는 게 큰 목적이다. 노사발전재단 컨설팅을 받으면서 상생협약이 잘 실현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수경 전주시 노사일자리지원팀장 “올해는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 지정을 목표로 컨설팅을 신청했다. 상생협약에 들어 있는 탄소상생협의회나 분과위원회 등 구성해야 할 협의체도 다양하고, 공동근로복지기금 조성 등 여러 사업이 남아있다. 기업들과 인터뷰로 지역사업발굴도 해야 한다. 사업 지정 신청을 위한 준비 과정에 있다”고 전했다.

지역의 미래를 밝히는
상생형 지역일자리

상생협약으로 지역 시민들의 기대감도 오르는 모양새다. 수년 전부터 해상풍력 사업을 시도하려는 지자체들은 많았다. 그러나 각 지자체 주민들의 반발로 공회전 상태였다.

전남도 관계자는 “몇십 년 전부터 해상풍력 사업을 추진하려는 지자체들도 많았지만 주민 수용성 확보가 어려웠다. 전남도 마찬가지”라며 “그런데 선포식도 가지고 협약을 체결하면서 실제로 사업이 진행되는 게 보이고, 연장선상에서 지역주민들을 상대로 설명회를 지속해서 하니 지역 주민들의 생각이 조금 긍정적으로 변화한 것 같다”고 전했다.

지난해 2월 열린 전남형 상생일자리 협약식 현장 ⓒ 산업통상자원부

상생형 지역일자리 모델이 기존의 일자리 모델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지역의 여러 이해관계자의 참여로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박은경 서기관은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점은 일반적 투자유치와 다르지 않다”며 “그러나 상생형 일자리는 지역 맞춤형이고, 참여 주체 간 대화와 약속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지역 내 지지기반이 형성되고 지속가능성이 높아진다. 더불어 지역 주체들은 쉽지 않은 과정을 직접 풀어나가면서 경험과 역량이 쌓이고, 성취감을 갖게 되기도 한다.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자산의 형성된다”고 말했다.

박용철 소장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미래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점점 더 환경이 복잡해지고 어려워질 거예요. 곧 어떠한 경제 주체가 혼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죠. 상생형 일자리가 비록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모델이지만, 지향해야 할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차원에서 상생형 일자리가 바로 미래형 일자리인 거죠. 상당히 어렵지만 우리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봐요.”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은 지역의 미래를 밝힌다. 지역의 미래를 밝히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지역이다. '일자리는 노사민정이 함께 만든다.' '지방정부가 주도해서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미래형 일자리 모델이 제시하는 이러한 의제들은 더욱더 확산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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