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전주형 일자리는 어떻게 나올 수 있었나?
논산‧전주형 일자리는 어떻게 나올 수 있었나?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2.04.25 15:30
  • 수정 2022.04.27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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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생형 지역일자리 컨설팅 사업, 10개 지역 대상으로 진행
상생요소‧비즈니스모델 두 마리 토끼 어떻게 잡나?… 논산‧전주 ‘우수 컨설팅 사례’ 되돌아보기
노사발전재단×참여와혁신 공동기획
ⓒ 참여와혁신
ⓒ 참여와혁신

“우리 지역은 의료기기 산업 기반으로 상생형 지역일자리를 추진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의료기기 산업에는 노동자를 대표하는 단체가 없습니다.”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에 참여할 기업은 어떻게 모집해야 합니까?”

2019년 광주형 일자리를 시작으로 올해로 4년 차를 맞은 상생형 일자리 사업은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지난 4월 15일 대전 유성구 인터시티호텔에서는 ‘2022년 노사상생형 지역일자리 컨설팅 지원사업 실무 워크숍’이 열렸다.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을 추진하는 각 지역의 실무 담당자에게 사업의 취지와 과정에 대해 알리는 자리였다.

이날 워크숍에서는 날카로운 질의응답이 오갔다. 올해 노사발전재단이 주관하는 상생형 지역일자리 컨설팅 사업에 참여하는 지역은 경상북도, 인천광역시, 대전광역시, 강원 원주시, 충남 아산시, 충남 논산시, 전북 전주시, 전북 고창군, 전남 순천시, 전남 여수시 등 총 10곳이다. 이 중 논산‧전주‧아산을 제외하고는 모두 처음으로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을 추진하는 ‘새내기’ 지역이다.

상생형 일자리는 하나의 정도(定道)가 있는 사업이 아니다. 각 지역이 처한 상황과 특성에 맞는 상생요소와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야 한다. 그렇기에 실제 사업 추진 과정에서 지역 주체들이 어떠한 난관을 마주했고, 이를 어떻게 풀어나갔는지 현장의 경험을 나누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번 기사에서는 노사발전재단이 2021년 상생형 지역일자리 컨설팅 사업 ‘우수사례’로 꼽은 전주와 논산의 사례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아직 광주, 부산, 군산처럼 상생형 일자리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논산‧전주의 경험은 ‘새내기’ 지역에 더욱 가까운 참고사례가 될 수 있다.

지난 4월 15일 대전 유성구 인터시티호텔에서는 ‘2022년 노사상생형 지역일자리 컨설팅 지원사업 실무 워크숍’이 열렸다. 질의응답 시간에 한 지자체 관계자가 질문을 하고 있다.  ⓒ 노사발전재단

서두르기보다
기반 다졌던 2년

논산시와 전주시는 2020년부터 상생형 지역일자리를 추진했다. 2년여 동안 서두르기보다는 확실히 지역 내 기반을 다지는 시간을 가졌다. 그 결과 두 지역 모두 올해 1월 27일 상생협약 체결에 성공했다.

논산형 일자리는 식품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한다는 목표로 지역 농가를 비롯해 중소기업, 대기업, 노동자 간 상생을 강조한 모델이다. 논산형 일자리에는 정부 기관뿐만 아니라 CJ제일제당, YH(옛 한국야쿠르트), 한미식품 등 11개 기업과 한국노총 논산지역본부 및 한미식품 노동자 대표 그리고 건양대, 논산시의회 등 지역을 대표한 4개 기관 등 총 22개 노사민정 기관이 참여한다. 2024년까지 총 1,973억 원 투자, 355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전주형 일자리는 탄소산업을 기반으로 원‧하청 상생이 돋보이는 모델이다. 효성첨단소재를 필두로 데크카본, KGF 등 3개 기업이 ‘협약기업’으로 참여한다. 나텍, 피치케이블, 라지, 테라엔지니어링, 란스A&C, 에니에스, 씨디엘 등 7개 기업은 ‘협력기업’으로 함께한다. 또한 한국노총 전북지역본부 등 4개 노동계 대표와 한국탄소산업진흥원, 전북대학교 등 여러 노사민정 기관이 함께한다. 2024년까지 총 1,662억 6,000만 원을 투자해 232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다.

‘유통’으로 연결한
논산 식품클러스터

상생협약 체결까지 넘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실제로 작동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다. 논산시는 수도권 및 호남지역과 지리적 인접성이 뛰어나 일찍부터 식품산업이 발달했다. 2019년 기준 논산시 제조업 중 식품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취업자 수 기준 30.2%다. 다만 논산시 식품산업의 73.7%가 10인 미만 영세사업장으로 구성된 까닭에 저임금으로 인한 만성적 인력난에 시달렸다.

또한 논산시는 인구의 약 18%가 농업에 종사하는 도농복합형 도시인데,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이 논산시 식품산업에 활용되지 못하는 구조를 가졌다. 논산시에 자리한 주요 식품기업이 이미 논산이 아닌 다른 지역의 농산물로 공급망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논산시 노사민정은 만성적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지역 내 식품산업이 성장해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또 지역 농산물이 지역 내 식품기업으로 공급될 수 있다면, 지역 농가는 안정적인 소비처를 구하는 것이며 동시에 기업도 신선한 농산물을 저렴한 운송비로 조달할 수 있어 윈윈할 수 있다는 점을 핵심 포인트로 삼았다.

지난 1월 27일 논산시는 충청권 최초 노사민정 간 ‘충남 논산형 일자리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 논산시
지난 1월 27일 논산시는 충청권 최초 노사민정 간 ‘충남 논산형 일자리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 논산시

실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데는 식품산업의 특성상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우선 CJ제일제당, HY, 한미식품 등 식품 대기업은 전처리 과정을 거친 지역 농산물에 대한 수요가 있었다. 논산시는 이러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지역 중소식품기업을 한데 묶어 공동 R&D 등 협력사업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자 했다.

그런데 지역 중소식품기업들이 공동으로 할 수 있는 협력 사업이 극히 적었다. 예컨대 두부를 만드는 중소식품기업과 채소류를 세척하는 중소식품기업은 식품업이라는 접점 외에는 별다른 공통분모가 없었다. 또한 대기업의 신제품 개발 등 수요에 맞춰서 필요한 농산물을 적시에 공급하기 어려운 구조이기도 했다. 요컨대 기업 간 ‘가치사슬’이 연결돼 있지 않았고, 연결하기에 어려운 조건이었다.

주체들이 난색을 보이는 와중에 논산시는 해결책으로 온라인 판매, 공동 브랜드, 공동 판로 등 ‘유통’이라는 키워드로 가치사슬을 보완했다. 논산시 관계자는 “비즈니스 모델이 잘 안 나와서 진행하는 데 어려웠다. 식품기업들 간 가치사슬을 형성해야 하는데, 다들 개별적으로 사업해서 공동의 사업을 발견하기가 힘들었다”면서 “협약 체결 기관과 계속 합의하려고 했던 노력이 도움이 됐다. 합의 과정에서 유통으로 한번 묶어보자는 의견이 나와서 해결될 수 있었다. 앞으로 컨설팅을 받으면서 잘 다듬어 나가야 한다”고 전했다.

더불어 논산 노사민정은 단계적으로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식품기업 간 협력 활동을 활성화하는 동시에 지역농가와 네트워크 강화하는 것을 우선 과제로 삼았다. 기업 간 협력 수준이 일정 정도 올라올 경우 논산시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제도적 지원에 들어간다. 또한 논산형 일자리에 참여하는 대‧중소기업이 공동으로 신제품 개발하거나 판로 확대를 통해 기업이 스스로 신규 일자리 창출하게 할 계획이다.

예상치 못한 계획 변경
유연하게 대처한 전주

전주시는 2006년부터 지역 미래 산업으로 ‘탄소산업’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2017년 전주시 국가탄소산업단지 조성 계획이 확정되고, 2021년에는 한국탄소산업진흥원이 전주에 개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탄소산업이 전주에 완전히 뿌리내린 건 아니었다.

그 이유는 탄소산업의 구조적 특성에 있었다. 탄소산업은 탄소섬유‧중간재‧부품‧응용제품으로 이어지는 생산 구조로 이뤄진다. 탄소섬유를 제조하는 기업이 있고, 탄소섬유를 이용하여 프리프레그(Pre-impregnated material)와 같은 중간재를 제조하는 기업이 있다. 또한 프리프레그를 사용하여 부품을 만드는 업체와 해당 부품이 사용된 제품을 만드는 업체 등으로 이어진다.

전주를 비롯한 전북지역에 170여 개 탄소기업이 설립됐지만, 이중 중간재업체는 14개, 설계‧디자인‧성형‧가공 업체는 35개에 불과했다. 탄소산업 가치사슬 중 허리에 해당하는 기업이 부실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탄소섬유를 만드는 효성 같은 기업은 생산 물량의 대부분을 해외로 수출하고, 탄소부품이 필요한 업체에서는 해외로부터 수입하는 실정이었다. 탄소산업이 전주의 미래 산업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중간재 이후 업체를 육성하는 것이 꼭 필요했다. 그러나 전북 탄소기업의 91.7%가 50인 미만 사업장이었던 관계로 자생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지난 1월 27일 열린 전북 전주형 상생일자리 협약식 ⓒ 산업통상자원부 
지난 1월 27일 열린 전북 전주형 상생일자리 협약식 ⓒ 산업통상자원부

전주시 노사민정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소탄소기업들이 협동조합을 구성하려 했다. 협동조합을 통해 기존 소매가에 구입하던 원‧부자재를 공동 구입했다. 이로써 가격 경쟁력을 갖췄다. 또한 공동 기술 개발로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를 꾀하려 했다. 전주형 일자리 초기, 협동조합 모델에 대한 기업들의 의구심이 있었지만 이내 논의를 통해 설득할 수 있었다.

순항 중이었던 전주시 노사민정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난관에 부닥쳤다. 전주시 국가탄소산업단지 준공 시기가 2024년에서 2026년으로 급작스레 연장된 것이다. 국가탄소산업단지는 전주형 일자리의 기반이었다. 산단 조성이 연기됨에 따라 당초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에 참여 의사를 표했던 기업들이 난색을 표했다.

전주시 관계자는 “국가 산단 조성이 연기되는 바람에 유치한 투자 기업 몇 곳이 떠나기도 했다”면서 “전주형 일자리를 전반적으로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래도 남은 기업들로 해보자는 의견이 모였다”고 밝혔다.

이에 전주시 노사민정은 상생협약 체결 시기를 1차와 산단 준공 이후 2차로 나누어 진행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참여 의사를 밝힌 기업들의 투자 의지와 여력을 파악하고 가치사슬에 맞게끔 중소기업들을 집적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이에 따라 당장 투자할 수 있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1차 협약을 추진하고, 산업단지 조성 이후 투자 여력이 있는 기업을 모아 2차 협약을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지속가능성 위해
노동조합 참여 독려

상생협약 체결을 위해서 지역 주체들의 실질적인 참여는 빠뜨릴 수 없는 요소다. 논산과 전주 두 지역 모두 산업적 특성상 영세사업장이 다수를 점했다. 이 때문에 실질적으로 노동자를 대표할 수 있는 단체가 미비했다. 더불어 기존 조직된 지역 노사민정협의회도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였다.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은 지역 노사민정의 참여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단순 투자 유치 사업과 결이 다르다. 그렇기에 노동자를 대표하는 이의 부재는 상당한 애로사항이었다. 두 지역은 이 문제를 노동조합 지역본부의 참여를 성사함으로써 해결했다. 논산은 한국노총 논산지역지부, 전주는 한국노총 전북지역본부로 하여금 노동자들을 대표하게 한 것이다.

논산시 관계자는 “지역 노사민정협의회가 많이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였다”면서 “상생형 일자리를 추진하면서 노사민정협의회 사무국도 설치하고 활성화가 된 것 같다”고 밝혔다.

노동계를 비롯한 지역주체의 참여는 상생요소를 더할 뿐만 아니라 상생협약에 담긴 정신을 구체화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전주시 관계자는 “전주형 일자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논의하고 기업들과 노동자들의 요구 사항을 모두 담아내려면 상생협의회뿐만 아니라 분과위원회 등 여러 채널을 운영하면서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4월 15일 대전 유성구 인터시티호텔에서는 ‘2022년 노사상생형 지역일자리 컨설팅 지원사업 실무 워크숍’이 열렸다. ⓒ 노사발전재단

한편, 논산과 전주 두 지역은 2022년에도 상생형 지역일자리 컨설팅 사업에 지원했다. 두 지역의 올해 목표는 ‘상생협의회 구축’. ‘공동근로복지기금 마련’ 등 상생협약에 담은 내용을 실제로 구현하는 것이다. 전주시는 지난 4월 5일 ‘탄소산업상생협의회’를 출범시켰다. 논산시 또한 4월 10일 ‘논산형 지역상생일자리 추진위원회·실무협의회 킥오프(Kick-off)회의’를 가지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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