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공백 메우는 간호사들 “불법 진료에 내몰렸다”
전공의 공백 메우는 간호사들 “불법 진료에 내몰렸다”
  • 김온새봄 기자
  • 승인 2024.02.23 16:18
  • 수정 2024.02.23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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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간호사 애로사항 신고센터에 이틀간 154건 제보 접수돼
대한간호협회, “복지부와 협의해 간호사 보호 대책 마련 중”
23일 오전 서울시 중구 대한간호협회 서울연수원 강당에서 열린 ‘의사 파업에 따른 현장 간호사 업무 가중 관련 1차 긴급 기자회견’에서 탁영란 대한간호협회 회장이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김온새봄 기자 osbkim@laborplus.co.kr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이 지난 20일부터 집단 진료 거부를 이어 오며 현장에서 의료공백이 발생하는 가운데, 대한간호협회가 “간호사들이 불법 진료에 내몰렸다”며 정부와 협의해 보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예고했다.

대한간호협회(회장 탁영란)는 23일 오전 서울시 중구 대한간호협회 서울연수원 강당에서 ‘의사 파업에 따른 현장 간호사 업무 가중 관련 1차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탁영란 대한간호협회 회장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의료현장을 지키는 간호사들은 지금 전공의가 떠난 빈자리에 아무런 법적 보호도 없이 투입돼 과중한 업무를 감내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주요 100개 수련병원 전공의 74%가 사직서 제출···
간호사들, 과중한 업무 속 불법 의료 강요받기도

앞서 정부는 지난 6일 2025학년부터 의대 입학 정원을 기존에서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했는데, 이 정책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은 단체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 오전 6시부터 업무를 중단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는 21일 오후 9시 기준 주요 100개 수련병원 소속 전공의의 74.4%(9,275명)에 달한다. 이들 100개 병원에는 전체 전공의 1만 3,000여 명 가운데 약 95%가 소속돼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최훈화 대한간호협회 정책국 전문위원은 “지난 16일 대한간호협회는 의료공백 위기 대응 간호사TF를 구성했고, 20일에는 현장 간호사 애로사항 신고센터를 개설해 현장 모니터링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최훈화 전문위원에 따르면 신고센터 운영을 시작한 20일 오후 6시부터 기자회견 당일인 23일 오전 9시까지 이틀여 동안 154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최훈화 전문위원은 ‘휴식일 출근’이나 ‘야간근무로 인한 휴식일에 개인 연차휴가 사용 강요’ 등 과중한 업무는 물론, ‘의사의 ID를 사용해 대리 처방을 발급하는 경우’나 ‘간호사의 권한을 넘은 처치·검사 실시’ 등 의료법 위반 사례가 제보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최훈화 전문위원은 제보된 사례 가운데 생명·안전이 위험할 수 있는 상황도 있었다고 했다. 갑작스럽게 상태가 악화한 환자에게 심정지가 일어난 경우다. 최훈화 전문위원은 “심정지 환자 발생 시 본래는 간호사가 흉부 압박과 산소 공급으로 응급처치를 하는 사이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살펴 기도 삽관이나 약물 투여, 제세동기 사용 등을 처방한다”며, 의사의 부재로 처방을 하지 못한 환자의 상태가 악화했다고 말했다.

23일 오전 서울시 중구 대한간호협회 서울연수원 강당에서 열린 ‘의사 파업에 따른 현장 간호사 업무 가중 관련 1차 긴급 기자회견’에서 최훈화 대한간호협회 정책국 전문위원이 발언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김온새봄 기자 osbkim@laborplus.co.kr

대한간호협회, “문제는 불분명한 업무 기준”
위임 불가 업무 명시·책임 경감 등 복지부와 대책 협의

다만 대한간호협회는 정부가 대안 중 하나로 제시한 의사 업무 보조 인력, 이른바 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의 적극 활용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며 선을 그었다. 최훈화 전문위원은 “신고센터에서 받은 제보의 70.8%(109명)가 일반 간호사였다”며, 의료공백으로 인한 업무 과중과 불법 진료 문제가 직렬을 막론하고 모든 간호사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위기라고 했다.

PA간호사 자체가 제도적 근거 없이 각 병원에서 자의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간호사의 업무 전문성이 높아지면서 간호사와 의사 간 업무 구분이 불분명한 ‘그레이존(불분명한 영역·gray zone)’이 생겼고, 이에 해당하는 업무를 맡은 간호사에게 ‘임상전문간호사’, ‘PA간호사’ 등의 직책이 임의로 주어졌을 뿐이라는 게 최훈화 전문위원의 설명이다.

최훈화 전문위원에 따르면 정부와 대한간호협회는 전공의 진료 거부가 계속되는 동안 적용될 긴급 업무 지침을 발표하기로 합의했다. 이 지침에는 △간호사에게 위임할 수 없는 업무를 명시한 행정명령 하달 △해당 행정명령 위반 시 의료기관장에게 책임 부과 △간호사가 불가피하게 의사 업무를 위임받아 발생한 의료사고에서 간호사의 책임 경감 △정부가 지정한 전국 409개 응급의료기관 간호사들에게 위기 대응 수당 지급 등의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아울러 최훈화 전문위원은 “이번에 협의한 긴급 업무 지침은 한시적인 위기 상황에 대한 대책이지만, PA간호사 문제 등 간호사의 모호한 업무 범위로 인한 문제는 상시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 같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장기적으로는 간호사의 업무 범위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방안을 협회 차원에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