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이탈 일주일···의료노동자들, “진료 정상화 촉구”
전공의 이탈 일주일···의료노동자들, “진료 정상화 촉구”
  • 김온새봄 기자
  • 승인 2024.02.27 01:10
  • 수정 2024.02.27 0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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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노조·의료노련, 현장 의료공백 상황 증언 나서
“문제 해결 위해선 정부와 의사단체 간 대화해야”
26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인근에서 열린 ‘전공의 근무지 무단이탈로 인한, 병원 현장 상황 고발 및 전공의 현장 복귀 촉구 기자회견’에 참가한 의료노련 조합원들이 구호를 제창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26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인근에서 열린 ‘전공의 근무지 무단이탈로 인한, 병원 현장 상황 고발 및 전공의 현장 복귀 촉구 기자회견’에 참가한 한국노총 의료노련 조합원들이 구호를 제창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전공의들이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며 집단 진료 중단을 선언하고 의료 현장을 이탈한 지 일주일을 맞은 가운데, 양대 노총 보건의료노동자들이 전공의들에게 현장 복귀와 진료 정상화를 촉구했다.

26일 오전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위원장 최희선, 이하 보건의료노조)은 서울시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회관 생명홀에서 ‘의사 진료거부 중단과 조속한 진료 정상화 촉구 기자회견’을, 한국노총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위원장 신승일, 이하 의료노련)은 서울시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인근에서 ‘전공의 근무지 무단이탈로 인한 병원 현장 상황 고발 및 전공의 현장 복귀 촉구 기자회견’을 각각 열었다.

양 노조는 전공의 집단 진료거부로 의료 현장에서 환자의 생명이 위태로워질 뿐 아니라,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간호사가 동원되면서 불법 의료행위가 빈발한다고 지적했다. 양 노조는 전공의들에게 조속한 현장 복귀와 진료 재개, 대화 국면 전환 등도 촉구했다.

신승일 의료노련 위원장은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하는 의료행위 중단은 정당화될 수 없다”며 진료를 거부하고 있는 전공의들을 비판했다. 이어 신승일 위원장은 “의사 부족은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당장의 문제고 인구에 비해 의료서비스 이용량이 계속 늘어날 것으로 추계되고 있다”며 정부가 추진하는 의대 정원 확대 규모 2,000명이 과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최희선 보건의료노조 위원장도 “정부가 발표한 의대 정원 확대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는 필수·지역·공공의료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마중물”이라며 “(전공의들의 이탈로) 병원의 다른 보건의료노동자들이 과중한 노동·불법 의료행위를 감당하게 되는 것은 해답이 아니”라며 전공의들에게 업무 복귀를 촉구했다.

2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회관 생명홀에서 열린 ‘의사 진료거부 중단과 조속한 진료 정상화 촉구’ 기자회견의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전공의 병원 이탈하자
조기 퇴원·불법 의료행위 난무

이날 양 노조의 기자회견에서 현장 노동자들은 의사의 집단 진료 거부로 인한 피해를 증언하고 나섰다. 서울 소재 사립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는 보건의료노조 조합원 A씨는 “병원에서 환자를 강제 조기 퇴원시키고 수술을 50% 이상 줄였다”며 “입원을 시킬 수 없다는 이유로 환자를 돌려보내고 있는 응급실은 오히려 고요해서 더욱 불안하다”고 말했다.

최미영 의료노련 순천향대천안병원노조 위원장도 “며칠 전 전체 병동을 순회해 보니 외래 초진 환자를 대폭 줄이고, 입원했던 환자는 호전되면 바로 퇴원시켜 빈 병상이 많았다”며 “이런 (의료공백) 상황에선 예기치 않은 사고나 상태 악화로 응급실로 오는 환자,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이 진짜 문제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방 사립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다른 보건의료노조 조합원 B씨는 “비수도권 병원은 이전에도 전공의 부족으로 문제를 겪었지만, 이번 집단 진료거부로 문제가 더욱 가중됐다”고 토로했다. B씨는 “심정지 환자 발생 시 CPR(심폐소생술) 팀조차 간호사와 응급구조사만으로 구성돼 산소공급, 혈액배양검사, 사후처치 등 의사의 업무를 아무런 보호 없이 불법적으로 위임받고 있다”고 했다.

윤수미 의료노련 인하대병원노조 수석부위원장은 “며칠 전 새벽에 환자의 상태 악화로 산소 치료가 필요했는데, 처방할 권한이 있는 당직 교수와 연락이 늦어져 제때 산소를 투여 받지 못하고 위급한 상황에 놓였다”는 사례를 언급했다.

26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인근에서 열린 ‘전공의 근무지 무단이탈로 인한, 병원 현장 상황 고발 및 전공의 현장 복귀 촉구 기자회견’에 참가한 의료노련 조합원들이 구호를 제창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26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인근에서 열린 ‘전공의 근무지 무단이탈로 인한, 병원 현장 상황 고발 및 전공의 현장 복귀 촉구 기자회견’에 참가한 의료노련 조합원들이 구호를 제창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양 노조, “지역·필수의료 붕괴한다”
전공의 현장 복귀·정부와 대화 촉구

앞서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집단 진료 거부를 시작한 지난 20일 성명서를 내고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의대 증원 계획 백지화 △과학적인 의사 수급 추계 기구 설치 △수련병원 전문의 인력 확대 △불가항력으로 발생한 의료사고에서 의사 법적 부담 완화 △열악한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정부의 각종 명령 철회와 정식 사과 △의료법 제59조 ‘업무개시명령’ 관련 조항 전면 폐지 등 7가지를 요구한 바 있다.

보건의료노조와 의료노련은 전공의들의 요구 일부에 대해서는 동의를 표하면서도, 지역의료와 필수의료가 붕괴하고 있어 의대 정원 증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공통적으로 짚었다. 의료노련은 주 80시간 이상 근무·24시간 이상 연속근무 등 전공의들이 처한 열악한 수련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를 했으며, 보건의료노조는 과학적인 의사 수급 추계를 위한 기구 설치 필요성에 공감했다.

박민숙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은 “정부의 필수의료 패키지에는 상급종합병원 전체 의사의 37.8%를 수련생인 전공의의 값싼 노동력에 의존하는 기형적 시스템을 개선하고, 불가항적 의료 사고를 구제하며, 열악한 전공의 근무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종합대책 등이 이미 포함돼 있다”며, 대한전공의협의회가 필수의료 패키지 백지화를 요구하는 것이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최미영 의료노련 순천향대천안병원노조 위원장은 “상급종합병원에서 17년간 임상간호사로 일하며 제대로 자거나 씻지도 못한 채로 일하는 전공의들을 많이 봤고, 오더(진료 지시)를 내다 말고 조는 경우도 다반사였다”며 열악한 전공의 수련환경을 개선할 필요에 공감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힘든 상황을 해결하려면 현장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만나고 협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구용 의료노련 서울아산병원희망노조 위원장도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이나 진료 전면 중단은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며 의사 윤리강령을 위배한다”며 “지역의 의료공백 문제와 필수의료 진료과 기피 등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선 의사는 진료 중단을 멈추며 정부도 대책을 가지고 대화에 나서 서로 대화·협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보건의료노조는 △의료진의 업무 부담을 덜고 중증 응급환자의 정상 진료를 돕기 위한 경증·비응급 환자 종합병원 이용 자제 △현장에 남아 의료활동을 이어나가는 의료진들에 대한 격려와 응원 △의사단체와 정부 간 대화를 촉구하는 각계각층의 활동 등 국민 행동 등을 제안하기도 했다. 의료노련 역시 조속한 진료 재개를 위해선 의료계뿐만 아니라 전체 시민사회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밝혔다.

2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회관 생명홀에서 열린 ‘의사 진료거부 중단과 조속한 진료 정상화 촉구’ 기자회견에서 박민숙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이 전공의들의 요구에 대한 보건의료노조의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