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 결사 자유 보장’ ILO 권고···정부 “구속력 없어”, 노조 “권고 폄훼 유감”
‘화물연대 결사 자유 보장’ ILO 권고···정부 “구속력 없어”, 노조 “권고 폄훼 유감”
  • 임혜진 기자
  • 승인 2024.03.15 18:17
  • 수정 2024.03.15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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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 결사위, 업무개시명령 불이행 관련 처벌 가하지 말 것 등 권고
정부 “사실관계에 부합 안 하거나 오해 있는 부분 답변할 것”
10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금호타이어 광주공장 앞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조합원들이 사용하는 화물차들이 멈춰 있다.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광주광역시 광산구 금호타이어 광주공장 앞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조합원들이 사용하는 화물차들이 멈춰 있다. © 참여와혁신 DB

2022년 11월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가 안전운임제* 유지·확대를 요구하며 파업에 나서자 정부가 운송 업무를 강제하는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것에 대해, 국제노동기구(ILO)가 화물 운송기사 등 개인사업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가 결사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 안전운임제 : 화물노동자의 과로·과속·과적을 막기 위해 적정 운임을 보장하는 제도로 3년 일몰제에 따라 2022년 말 폐지됐다.

ILO는 13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제350차 이사회를 열고 공공운수노조 등이 제기한 진정 사건에 대한 ILO 결사의자유위원회의 권고안을 채택했다. 2022년 12월 공공운수노조(위원장 엄길용)는 정부가 파업에 나선 화물노동자들에 업무개시명령 등을 내린 것을 두고 ILO 기본협약 87호(결사의 자유, 단결권), 98호(단결권, 단체교섭권)를 위반했다며 민주노총, 국제운수노련(ITF), 국제공공노련(PSI), 국제노총(ITUC)과 진정을 했었다.

정부는 “이번 권고에서 우리나라의 ILO 협약 위반을 언급한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ILO 결사의자유위원회(이하 결사위)는 권고안에 직접적으로 결사의 자유 협약을 위반했다는 표현을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 권고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정부는 “결사위 권고는 법적 구속력이 없어 직접적인 제재도 없다”고 했다. 

이에 공공운수노조는 “정부가 협약에 근거해 화물노동자들의 결사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나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권고안이 나온 것”이라며 “정부의 국제기구 권고 폄훼에 유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ILO “화물연대, 노조로서 결사의 자유 보장해야”
정부 “설립신고 안 한 화물연대, 보호 어려운 측면 있어”
공공운수노조 “업종본부, 설립신고 필요 없어”

ILO 결사위는 개인사업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가 결사의 자유 및 단체교섭의 원칙을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을 정부에 권고했다. 아울러 “해당 사안에서 제기된 문제들은 특수고용직 또는 자영업자인 화물 운송기사들로 조직된 단체를 노동조합으로 인정하지 않는 데에서 비롯됐다”며 “정부는 이들이 결사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조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에 정부는 “우리나라는 특수고용직도 노조법상 노동자에 해당하면 노조를 설립·가입할 수 있는 등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면서 “화물연대본부의 경우 설립신고 등 노조법상 절차를 거치지 않는 등 법적 보호를 받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은 정부 입장을 반박하며 “화물연대본부는 적법하게 설립 신고한 공공운수노조 산하의 업종본부로서 별도의 설립신고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아울러 화물연대본부 조합원들은 화주와 운송사에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특수고용직으로 볼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노조법상 노동자로서 파업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ILO “업무개시명령, 사실상 파업 금지 조처”
정부 “사회·경제적 피해 최소화 위해 불가피했다”
공공운수노조 “포괄적인 업무개시명령 내려”

또한 ILO 결사위는 2022년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이 발동된 이후 이를 위반한 채 파업에 참여했던 화물노동자들을 형사 처벌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그러면서 ILO 결사위는 업무개시명령이 사실상 화물노동자들의 파업을 금지하는 조처라고 지적했다.

우선 ILO 결사위는 주요 경제 부문에서의 파업이 국민의 생명·건강 또는 개인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는 경우 업무개시명령이 합법적일 수 있다는 점을 밝혔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부가 내린 업무개시명령은 그러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업무개시명령 불이행을 이유로 파업 참여자에 대한 형사 처벌을 가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이에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은 사회·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매우 제한적으로 취해진 불가피한 조처였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화물연대 구성원에 대한 형사 제재는 개별 구성원의 불법적인 폭력, 강압 등의 행위에 대한 것으로 현재까지 업무개시명령 불응만을 이유로 실제 형사 제재가 이루어진 사례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은 정부가 화물연대본부의 파업으로 인한 영향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없던 시점부터 업무개시명령을 예고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가 법률상 (업무개시명령 발동) 요건을 충족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입증 없이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며 이는 노조의 파업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2022년 11월 정부는 운송사 209곳과 2,500여 명의 시멘트 운송사업자에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2,500여 명은 시멘트 운송을 하는 화물연대본부 소속 조합원 수와 동일한 수준이다. 따라서 공공운수노조는 해당 업무개시명령이 화물연대본부의 파업을 금지하는 조처라고 주장했고, ILO 결사위도 권고안을 통해 공공운수노조의 주장을 인정했다.

ILO, 화물연대본부 조합원 비밀 보장 등도 권고
정부 “오해 있는 부분에 대해 ILO에 답변할 것”

권고안에는 화물연대본부 조합원의 개별 조합원 정보에 대한 비밀이 보장돼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2022년 1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화물연대본부 파업 과정에서 공정거래법 위반이 있었는지를 조사하며 화물연대본부에 조합원 명단 등 제출을 요청한 바 있다.

아울러 ILO 결사위는 화물연대본부 소속 개별 조합원의 범죄 행위에 기인해 화물연대본부의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또 특정 운송사들이 파업 참가자에 대해 취한 보복 조치 등이 재발하지 않도록 적절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공정거래법에 따라 최소한의 범위에서 자료를 요청했지만 화물연대본부의 거부로 정보를 취득한 바 없다”며 “향후에 정보를 취득하더라도 비밀을 보장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정부는 “법률과 원칙에 따른 정당한 활동은 보장하되, 위법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히 대응할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이번 권고에 대해 관계부처와 공동으로 면밀히 검토할 계획이라고 했다. 다만 “결사위의 권고가 사실관계에 부합하지 않거나 정부의 조처에 대한 오해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답변을 통해 ILO에 반영을 요구하는 한편, 그간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정부의 이행 노력과 개선된 점을 적극적으로 전달할 예정”이라고 했다.

공공운수노조·화물연대본부
“화물노동자 노조할 권리 보장해야”

공공운수노조와 화물연대본부는 화물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ILO 결사위가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이 사실상 화물노동자들의 파업을 금지하는 조처라고 판단한 점을 두고, 이 같은 정부의 조처가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화물연대본부는 성명을 통해 “정부는 지금이라도 업무개시명령 법안 폐지, 공정거래법 개정 등을 통해 화물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라. 그리고 모든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즉각 보장하라”며 “화물연대는 반노동 정책에 맞서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