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 반납, 삭감' 예고된 갈등
'인하, 반납, 삭감' 예고된 갈등
  • 성지은 기자
  • 승인 2009.05.07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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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된 원칙, 노사관계 시한폭탄으로
두 개의 임금 테이블, 노노 갈등 여지
Issue in Issue 진단_ 일촉즉발 공공부문 ② 약속과 원칙 사라진 노사관계

“신입직원 임금 삭감은 명백한 위법행위입니다. 취업규칙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조합원의 과반수 이상 찬성,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또한 단협상 근로조건에 대해 후퇴는 하지 못하도록 명시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정부는 단협이 정부 기준에 위배되면 무효화하라고 합니다. 단협은 근로기준법보다도 우선하는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이 단협을 체결하는 자체가 의미 없어지는 것이고 그러면 노동조합이 협상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법치주의라고 하면서 정작 정부에서 법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노사관계 혼선, 향후 단협은?

대졸 초임 삭감으로 향후 공공부문은 분리된 2개의 임금 테이블을 가져가게 될 전망이다. 정부는 대졸 초임 삭감을 추진하면서 “신입사원이 간부직이 되기 전까지 인하 조정된 보수체계를 계속 적용한다”고 밝혔다. 이는 호봉직으로 전환되기 전까지 인하된 임금을 적용받는 것이며, 간부직 기준에 대해서는 “승진 소요연수가 최소 15년 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졸 초임 삭감을 시행하고 있는 공기업에서는 2개의 임금 테이블을 시행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노동조합 가입 규정이 유니온숍일 경우 이 신입직원은 자동적으로 노동조합에 가입되며 기존에 노사가 합의한 취업규칙과 단체협약을 적용받아야 한다는 데 있다.

이는 향후 노사의 임단협 체결 시 노동조합이 두 개의 임금 테이블에 대해 다른 기준을 적용하여 따로 협상을 해야 하는 것인지, 임금 인상 시 각각 어떤 기준을 적용할 것인지 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최근 정부는 공공부문에 “연봉제 및 임금피크제, 성과관리·퇴출제도를 도입하겠다”며 “호봉제를 폐지하고 조직원 간의 경쟁유도를 위한 표준연봉제를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공공부문 노동계는 “연봉제 추진은 노사가 합의한 퇴직금 제도 및 임금체계 변경 등의 당면 현안 뿐 아니라 성과주의 업무처리 시스템의 도입으로 인한 노동형태까지 연동되게 되는 문제”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김형동 변호사는 “단협과 중복되는 취업규칙은 단협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기존 직원에 대한 근로조건 변경은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내년 노사관계는 과거 민간기업의 연봉제 추진 사례에서 보듯 일방적인 단협 해지 등으로 심각한 투쟁 국면으로 접어들거나 개별적 협상이 이뤄질 경우 단체협약 및 임금, 근로조건에 많은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노 - 노 갈등도 불가피

연봉제 도입은 그간 많은 논란이 있어온 것처럼 승진 적체로 인한 불만을 갖고 있었던 30대 조합원과 40대 이상 조합원 간의 견해 차이가 벌어질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다. 또한 업무 성격상 성과가 뚜렷한 부서와 그렇지 않은 부서 간 괴리는 내부적인 갈등 요소를 더욱 가중시킬 전망이다.

한 노동조합 간부는 “연봉제 도입은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 업무와 실제 수익성을 보장할 수 있는 업무에 대한 선호도를 극명하게 가를 수 있다”고 전망하고 “내부적으로 잠재돼 있던 직급, 직제, 세대별 갈등이 표면화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또한 이러한 임금체제 개편에 합의한다 하더라도 현재 대졸 초임 삭감에 합의하고 이를 적용한 기업의 경우 이번에 새로 임금 테이블을 조정한 신입직원도 단협을 적용할 것인지, 독자적인 테이블로 둘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을 수 있다.

향후 공공부문 노동조합은 이러한 내부의 의견, 그리고 동일한 부서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 20% 이상 임금을 삭감한 신입직원이 노동조합에 가입할 경우 이에 따른 갈등을 조정하고 논의를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감사원은 최근 ‘공공기관 선진화 과제 점검’을 위해 노동조합 및 노사관계 관련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지난 워크숍 자리에서 김황식 감사원장은 “향후 법과 원칙의 확립과 국리민복의 감사 운용기조를 확립해 가고 선진화 계획 이행 실태와 탈법적 노사관계를 상시 점검해 나갈 것”이라며 “향후 기획재정부와 감사원 간에 설치된 ‘감사결과 예산반영협의회’를 활용해 부당인상된 금액이 있는 경우 그 이상 예산삭감을 유도하는 등 실질적 불이익을 주는 조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향후 정부 추진 정책으로 인한 노사 갈등이 예산 삭감 등 실질적인 근로조건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노동조합의 투쟁이 예산 삭감 등을 우려한 내부의 반발로 무산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노조활동도 ‘경영 평가’

최근 노동부는 ‘노동부 산하(유관) 공공기관 단체협약 분석 및 개선방안’ 시행을 통해 ▲ 조합원 가입범위 ▲ 근무시간 중 노조활동과 조합원 교육시간 ▲ 노조 전임자 ▲ 노조간부 인사 ▲ 노조 운영과 시설·편의 제공과 노조 홍보활동 보장, 자료열람 편의제공 ▲경영회의 의견제시권 ▲ 직제와 정원 외 운영 등에 대한 평가를 실시했다.

세부 항목을 보면 근무시간 중 노조활동을 부당한 노조활동에 활용하는지, 조합원 교육시간을 비합리적으로 사용하는지, 교육시간이 과다하지는 않은지 등을 점검한다. 또한 노조 전임자 수를 너무 과다하게 인정하는 것은 아닌지, 노조 운영에 있어 사무실 비품 및 노조활동에 장소 및 시설 제공이 과다한 것은 아닌지를 평가하고, 노동조합 홍보활동과 관련해서는 사업주와 홍보할 때 협의하는지, 내부 인트라넷을 너무 과다하게 활용하는 것은 아닌지를 본다.

노동부는 이와 함께 향후 이러한 단체협약에 대한 평가를 경영평가 및 기관장 평가의 기준으로 활용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공기업 노동조합 간부는 “공공부문 임원의 임금 자진 반납, 삭감이 이어지고 이는 대졸 초임 삭감으로 이어졌다”며 “정부의 정책이 신속하게 추진되고 있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5월 초에 예정된 기관장 평가였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신속하게 추진되고 있는 공공부문 선진화 정책이 당면한 경영평가를 떠나 향후 몰고 올 파장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안도, 대책도 마련되지 않은 채 진행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중앙대학교 이병훈 교수는 “정부는 효율성이 높아진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당정에서는 예산 등에 효율성이 제고될지 몰라도 인력 삭감을 하면서도 여전히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비정규직으로 대치를 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공공이 해야 할 투자에 대해서는 선을 긋고 무조건적으로 옳다고 밀어붙이다 보니 경제 위기 상황 속에서 노동계는 큰 반발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다 국민들도 줄인다는 것에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는 98년도에 경험했던 고용의 질 악화, 중장기적으로 발생한 예상치 못한 문제에 대한 대응 부재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법적 전쟁’ 일어날까

그렇다면 노동법상 신입직원의 임금 삭감은 어떻게 해석이 될까. 민주노총 노동법률원 김기덕 법률원장의 잡쉐어링에 대한 법적 검토에 따르면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 신입사원의 임금은 보수규정과 단체협약, 임금협약, 취업규칙, 근로계약 등으로 결정되는데 이 중 취업규칙은 사용자가 한 사업장의 근로조건, 작업장 규율 등을 통일적으로 규정한 것으로 보수규정, 인사규정, 징계규정이 취업규칙에 포함된다.

그러나 취업규칙의 변경은 과반 이상을 차지하는 노동조합이 있을 경우에는 노조 동의를, 노조가 없을 경우 과반 이상의 근로자들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법무법인 새날의 정명아 노무사는 “먼저 이는 노동법 해석의 기초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부가 일방적인 기본적인 상황에 대한 법리적 검토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며 “대졸 초임 삭감으로 취업규칙을 일방적으로 분리한 임금테이블과 임금교섭을 통해 성립된 임금기준으로 형성된 임금테이블, 두 개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유니온숍을 적용하는 노동조합의 경우 신입직원은 조합원으로 가입이 되는데 노동조합법을 적용받게 되면 노조법 33조에서 단체협약에서 정한 근로조건 기타 근로자의 대우에 관한 기준에 위반하는 취업규칙은 무효라고 규정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만약 올해 입사한 대졸자가 노동조합에 가입,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해 법적 소송을 걸었을 때 어떻게 될까.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김형동 변호사는 “만약 신입직원이 임금 차액을 달라고 요구한다면 이는 법원에서도 정치적 판단이라고 해서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 기본권과 헌법 정신에 위배될 수 있는 지점인데다 임금 체불 집단 소송 등으로 사회적 이슈화가 될 경우 향후 여론이 어떻게 작용될지는 미지수다. 노동조합 활동 및 노사관계를 경영평가에 적용한다는 정부의 취지 역시 지배개입으로서의 부당노동행위가 적용된다.

정명아 노무사는 “이를 통해 본의 아니게 위축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이는 노조활동 침해가 될 수 있다”며 “지배개입으로서의 부당노동행위는 침해되는 그 자체를 요건으로 한다”고 전했다.

숨 가쁘게 추진하고 있는 정부의 ‘선진화’ 방안이 공공부문 노사관계에는 잔뜩 먹구름이 끼어 있다. 실제로 몇몇 노동조합은 ‘법적 투쟁’에 돌입한 상태이고 이는 개별 노사관계나 노동조합 활동, 그리고 공공부문 노동계의 변화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향후의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