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일 만에 열린 장례식
355일 만에 열린 장례식
  • 신상미 기자
  • 승인 2010.01.09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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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범국민장' 열려
남일당 현장 노제 이어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

 

▲ 9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용산참사' 철거민 희생자들의 범국민장 영결식에서 유가족들이 영정 앞에 헌화하며 슬퍼하고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2009년 1월 20일, 강제 철거에 항거해 용산 남일당 건물 망루에 올랐으나 경찰의 진압작전으로 희생된 철거민 희생자 5명에 대한 장례가 사건 발생 355일 만에야 유족들의 오열 속에 치러졌다.

1월 9일 낮 12시, 서울역 광장에서 8천여 명의 시민장례위원을 비롯해 노동계, 종교계, 정치계, 문화예술인, 시민단체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범국민장’이 거행됐다. 작년 12월 30일, 용산범대위가 서울시와 보상 문제에 합의하고 정운찬 총리가 사과문을 발표한 지 열흘 만이었다.

김태연 장례위원회 상임집행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영결식은 이강실, 조희주 상임장례위원장의 개식사를 시작으로 열사 약력보고, 경과보고 등이 이어졌다. 또 김정환 시인의 조시, 민중가수 박준의 조가, 진혼무 및 분향과 헌화가 이뤄졌다.

영결식에 참석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용산참사는 참사가 아닌 학살이라고 불러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가까운 철도노조 파업현장에 가서 파업파괴를 손수 지휘한 것은 용산학살을 다시 자행한 것”이라며 “(희생자들은) 8일, 하관했지만 차마 내 마음 속에서는 그들을 묻지 못했다. 진정으로 묻어야 할 사람은 이명박과 미제국주의자들”이라고 일갈했다.

그 밖에 민주당 정세균 대표,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 창조한국당 송영오 대표,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의 조사가 차례로 이어졌다. 특히 노회찬 대표는 진압 과정에서 희생된 고 김남우 특공대원에게 애도를 표해 눈길을 끌었다.

뒤이어 다섯 희생자의 유가족들이 나와 조사를 낭독할 때는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이들은 지난 355일 간의 기나긴 시간 동안 끊이지 않고 이어졌던 시민들의 관심과 격려에 감사의 뜻을 전했으며, 아버지와 남편이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됐는지 진실을 밝혀 고인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줄 것을 당부했다.
▲ 서울역 광장에서 '용산참사' 철거민 희생자들의 범국민장 영결식을 마친 운구행렬이 노제가 예정된 용산 남일당 참사 현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오후 2시 40분 경, 영결식을 마친 장례위원들과 시민들은 일정보다 늦은 5시 15분에 노제를 위해 용산현장에 도착했다.

이 과정에서 행렬이 용산 전자상가 입구인 효창원 길에 이르자, 경찰은 차선을 모두 막고 장례행렬과 대치했다. 장례위원회는 애초 약속한대로 양쪽 차선을 모두 쓸 수 있게 허가해달라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로 인해 경찰과 장례위원회 사이에 약간의 마찰이 있어 행사 시작이 늦어진 것이다.

눈발이 거세게 흩날리는 가운데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노제는 수사기록 공개, 책임자 처벌, 진상규명, 구속자 석방을 강하게 촉구했다.

한편 호상인사를 하기로 돼 있던 용산범대위 박래군, 이종회 공동집행위원장과 전국철거민연합 남경남 의장 등 3인은 현재 수배 상태로 농성 중인 명동성당을 빠져나올 수 없어 불참했으며, 조사 낭독이 예정돼 있었던 임성규 민주노총위원장도 참석하지 않았다.

결국 노제는 오후 6시 30분 경 끝났으며, 장례위원회와 유가족 등은 운구차와 버스 10대에 나누어 타고 장지인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으로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