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쇼크 이미 시작됐다
은퇴 쇼크 이미 시작됐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0.10.01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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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닥친 은퇴, 준비는? 없다!
머지않은 미래에 닥칠 내 문제
[Special Report] 은퇴, 미리 준비하자…① 은퇴자, 이렇게 살고 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지난 2006년 통계청이 발표한 연령별 인구추계에 따르면, 2050년에는 전체 인구 중에서 65세 이상의 고령 인구가 1,6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비중으로 따지면 38.2%에 이른다. 이는 2005년의 9.1%에 비해 4배 이상 비중이 커진 수치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에 도달하는 시기도 2026년으로 예상된다.

또 OECD가 발표한 2009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 인구의 소득 빈곤율을 보면, 한국은 45.1%로 30개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30개 회원국의 평균은 13.3%였다.

이런 통계들을 통해 한국사회의 고령화가 급속하게 이뤄지고 있는 데 반해 고령 인구의 경제적 기반은 매우 취약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통계수치가 아닌 실제 고령 인구의 삶은 어떨까? 직장에서 퇴직한 은퇴자의 삶을 통해 고령 인구의 삶을 살펴보자. 통계적으로 고령 인구를 구분하는 기준은 65세이지만, 보통의 경우 60세를 전후해서 은퇴가 이뤄지는 점을 감안해 60세 이상의 은퇴자를 만났다.

고령자 재취업, 산 넘어 산

A씨(51년생)는 중견기업에서 전문경영인으로 2007년 1월까지 근무했다. 올해 60세인 A씨가 은퇴한 나이는 57세. A씨는 은퇴 이후 이렇다 할 일거리를 갖지 못한 채 이러저러한 아르바이트를 통해 용돈을 마련하고 있다.

“35년 동안 조직생활을 하고 나서 은퇴할 때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더라. 조직이 아닌 개인으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마땅치 않다. 우선 나이가 많다는 게 현실적으로 걸림돌이 됐다. 내가 회사 경영자라도 젊은 사람을 채용하지 나이 든 사람을 채용하지는 않을 것 같다.”

전문경영인을 지낸 A씨에게는 그동안 보험회사 등에서 고문이나 세일즈 지점장을 맡아달라는 제의도 있었다. A씨는 이를 “매출을 늘려달라는 요청”이라고 풀이했다. 하지만 제조업 분야에서 경영을 했던 A씨에게 보험회사의 임원은 낯선 일이었을 뿐이다. 그나마 A씨는 풍족하지는 않지만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할 정도는 아니라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모 대기업의 연구개발본부에서 관리자로 일하다 은퇴한 B씨(47년생) 역시 은퇴 이후 이렇다 할 일거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B씨가 은퇴한 때가 59세이던 2005년 3월이므로 올해까지 6년 동안 일거리 없이 지내는 셈이다. 은퇴 전 일했던 경험을 살리는 일거리는 없었다.

“은퇴하고 나서 퇴직금으로 마련한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렸다. 이걸로 임대사업이라도 해보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지금은 빚만 남아 있는 상태다. 당장 은행에서 빌린 돈 이자 갚기에도 벅차다.”

돈을 벌어야 했던 B씨는 희망근로사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은퇴 전 관리자로 일했던 B씨에게 희망근로사업에 참여하는 것은 ‘자존심을 버려야 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누가 알아보기라도 할까봐 챙이 넓은 밀짚모자에 마스크까지 쓰고 리어카를 끌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이마저도 할 수 없게 됐다. B씨가 사는 지역에서는 올해 희망근로사업을 진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은퇴 전에 했던 일을 은퇴 이후에도 계속 할 수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우선 당장 생활을 꾸려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니더라도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B씨의 경우처럼 전혀 해보지 않았던 일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나아가 기본적인 생활 문제는 해결됐다 하더라도 자신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노년 일거리가 충분치 않다. A씨는 “60대는 아직 10~20년은 더 사회활동이 가능한 나이이기는 하지만, 젊은이들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며 “이런 특성을 고려한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그래야 할 메리트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일부 전문직 종사자는 은퇴 후에도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일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프로보노’다. ‘공익을 위하여’라는 뜻의 라틴어 ‘pro bono publico’에서 유래된 프로노보는 원래 변호사를 선임할 여유가 없는 개인 혹은 단체에 보수를 받지 않고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었다. 지금은 이 말이 전문지식이나 전문기술 등 자신의 전문성을 사회에 기부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확장돼 사용되고 있다.

일선에서 은퇴한 일부 변호사들이 법률상담을 하거나, 의사, 컨설턴트, 카운슬러 등 전문가들이 은퇴 후 전문성을 살려 사회봉사활동에 참여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최근에는 사회적 기업에 전문성을 기부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하지만 프로보노 활동에는 아직까지 일부 전문가집단, 그것도 노후생활에 여유가 있는 이들이 주로 참여하고 있을 뿐이다.

연금만으로 살 수 있어?

ⓒ 참여와혁신 포토DB
대부분의 은퇴자가 현실적으로 닥치는 문제는 돈 문제다. 은퇴 후에 전원생활을 즐기거나 해외에서 생활하는 등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은퇴자들에게 돈 문제는 가장 큰 걱정거리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2008년을 기준으로 79.8세이다. 60세에 은퇴한다 하더라도 은퇴 후 20년 정도 더 살게 된다는 의미다. 60세부터 국민연금을 수령하기 때문에 60세가 공식은퇴연령이지만 60세에 실제로 은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난해 한국노동연구원은 한국인이 경제활동에서 완전히 이탈하는 실제 은퇴연령이 평균 71.2세라고 발표한 바 있다. 공식은퇴연령과 실제 은퇴연령 사이에 11.2년의 차이가 나는데, 이 기간 동안 계속 돈을 벌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공식은퇴연령과 실제 은퇴연령 사이에 차이가 나는 것은, 60세부터 수령하는 연금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보험연구원은 연금소득을 은퇴 전 소득으로 나눈 소득대체율이 42.1%라고 발표했다. 은퇴 전에 200만 원의 월급을 받던 사람이 은퇴 후 다른 소득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84만2천 원을 연금으로 받는다는 것이다.

당장 생활수준을 절반 이하로 낮추지 않는 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은퇴 후에도 대부분의 은퇴자들이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다.

B씨는 “지금 연금으로 받고 있는 돈이 매월 70~80만 원 정도인데, 이 금액으로는 생활이 유지되지 않는다”면서 “아들 학비나 건강 문제 등 챙길 것이 많아 적어도 130~140만 원 정도는 돼야 흡족하지는 않더라도 생활을 꾸려갈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B씨의 세 자녀 중 두 딸은 이미 결혼을 해서 독립했지만, 아들은 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이다. 70~80만 원으로는 아들이 졸업할 때까지 들어갈 학비를 대기에도 부족하다. 게다가 B씨는 은행에서 돈을 빌려 임대사업에 손댔다가 실패하는 바람에 갚아야 할 이자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B씨는 눈높이를 낮춰서라도 재취업을 하려 하지만, B씨가 일할 만한 일자리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심지어 B씨는 “재취업을 하려 해도 일자리를 연결해줄 기관이 많지 않을뿐더러, 지금 같아선 그런 기관이 있다고 해도 거기까지 가는 데 드는 교통비나 식비도 부담이 된다”고 털어놨다.

끊긴 소득 흔들리는 권위

스스로를 평균 이상이라고 평가하는 A씨는 “은퇴하고 나서 고정적인 월급을 집에 못 가져다주는 게 제일 미안하다”면서 “내 용돈이야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거나 해서 어떻게든 만들어 쓸 수 있지만, 학비 등 꾸준히 나가야 하는 돈이 있어 퇴직금으로 이를 충당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A씨는 집에서 권위가 크게 떨어진 상태다. “은퇴 전에는 자는 것 외에는 회사 일에 매달릴 정도로 가정에 소홀했다”고 고백하면서 “꼬박꼬박 월급을 가져다줄 때는 마치 그것이 특권이나 되는 것처럼 가정을 소홀히 했지만, 돈도 못 벌어다 주는 데 집에서 환영 받기를 바랄 수는 없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A씨의 경우처럼 많은 은퇴자가 은퇴 후에 가족으로부터 권위를 인정받지 못한다. 소위 말하는 ‘왕따’를 당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심지어 이로 인해 자살을 생각하는 은퇴자도 있다.

중견전문인력고용지원센터 임수정 선임 컨설턴트는 “은퇴자들의 경우 소소한 일에도 심리적으로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고, 고학력자, 고령자일수록 실직이라는 상황에 적응하지 못한다”면서 “이런 이유로 가정불화를 겪는 은퇴자들이 많다”고 밝혔다.

임수정 컨설턴트는 그러면서 극단적인 사례를 소개했다. 일밖에 모르고 살다가 은퇴 후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C씨는 우연히 부인의 외도 사실을 인지하게 됐다고 한다. 오랜 시간 상담을 통해 심리적 유대감이 형성된 후에야 어렵사리 이런 얘기를 꺼냈던 C씨가 한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다. 임 컨설턴트가 전화를 걸었을 때, C씨는 “생을 정리하려고 산에 올랐다”면서 “전화를 받고 보니 내 편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는 결국 그 길로 산에서 내려와 부인과 이혼한 후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미국 회사의 영업담당자로 취업해, 지금은 미국에서 근무하고 있다.

B씨도 안정적인 수입원이 끊긴 후 집에서 신뢰가 떨어졌던 경험을 털어놨다. “가장의 권위가 서는 것은 소득이 있을 때뿐이고, 돈 못 벌면 권위는커녕 신뢰도 받지 못한다”면서 “그런 이유로 집에 있기 불편해서 산에 다녔지만, 매일 산에만 갈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A씨는 “은퇴 전에 반겨주도록 만들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반겨달라는 건 웃기는 얘기”라면서 “내가 지금 이런 벌을 받는 건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 세대는 가정보다 회사 일에 매달리는 것이 당연한 문화처럼 여겨졌지만, 은퇴 후에 이런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일과 가정의 양립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고령자에 대한 편견 버려라

은퇴 후에 은퇴자들은 이처럼 다양한 문제들에 맞닥뜨리지만, 은퇴 전에는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게 대부분이다. 따라서 은퇴 후에 닥칠 문제를 미리 가늠해보고 그에 따른 계획을 세우는 것은 극소수에 한정된다.

더구나 대부분의 기업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경쟁 속에서 생존을 위해 애쓰는 가운데, 기업 차원의 은퇴 예정자를 위한 은퇴교육이나 전직지원교육은 생각할 겨를조차 없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A씨 스스로도 자신의 은퇴 후보다 회사의 앞날만 보고 경영을 했을 뿐, 직원들을 위한 은퇴교육은 경영계획의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막상 스스로가 은퇴를 하고 보니,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해낼 수 있으리라는 은퇴 당시의 자신감은 현실의 벽 앞에 무기력했다고 털어놨다. 전문경영인도 그런 상황에서 직원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A씨가 근무했던 회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은퇴교육에 관심이 없다. 사회적으로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된 이후에 몇몇 대기업들에서 은퇴교육을 하고는 있지만, 대다수 중소기업들은 그럴 여력도 없다. 그러니 결국 준비 없는 은퇴를 맞게 되고, 은퇴 이후 다양한 문제들에 맞닥뜨리고 나서야 후회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은퇴 이후의 문제를 온전히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물론 은퇴 전에 은퇴 이후를 계획하는 등 개인의 관심이 우선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은퇴 이후에도 일정한 기간 동안 소득활동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는 은퇴한 고령자를 위한 일자리를 마련하고, 고령자 고용을 지원할 시스템을 정비하는 게 특히 중요한 문제로 제기된다.

국민연금공단 노후설계서비스부 이여규 차장은 “최근 보험회사들이 노후자금이 얼마나 필요하다는 광고를 하면서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관심이 높아진 측면이 있다”면서 “관련기관들이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통해 관심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임수정 컨설턴트는 “무엇보다도 실제로 고용하는 기업부터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업에서 인재를 채용할 때는 1~2년 일할 사람이 아니라 5~10년 일할 사람을 원한다. 따라서 연령을 고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고령자는 활동적이지 않다거나 젊은 직원이 대할 때 부담스러워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고령자의 풍부한 경험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임 컨설턴트는 또 “국가도 전직지원서비스장려금이나 세제지원 같은 인센티브만 제공하면 그만이라는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기업이 이를 실제로 활용할 수 있도록 감독관을 기업에 파견해 캠페인을 펴는 등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고령자는 으레 경비나 시설관리 같은 일만 할 수 있다는 것도 편견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고령자가 젊은이에 비해 근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고령자가 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발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고령자를 위한 취업지원기관이 태부족이라는 점도 개선해야 할 문제다. 또 고령자의 경우 작은 일에도 심리적인 부담을 느끼고, 특히 고학력자일수록 자존감을 지켜줄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게 임 컨설턴트의 지적이다.

우리나라는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전체 인구에서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늘고 있다. 더 이상 고령자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만 맡겨둘 수 없는 이유다. 더욱이 베이비붐 세대가 줄줄이 은퇴를 앞두고 있는 지금, 이들이 은퇴 이후 어떻게 생활할 것인지 사회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고령자 문제를 방치하면 10년 혹은 20년 후, 바로 우리 스스로가 이 문제의 당사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