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스마트’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정말 ‘스마트’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 안형진 기자
  • 승인 2010.10.04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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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기술과 일터의 융합이 만든 새로운 일터
‘스마트해진 직장’에서 살아가는 이웃들의 이야기
Close Up 왜 스마트워크인가… ② 스마트워크 적용 사례

ⓒ SK텔레콤
급속도로 발달하고 있는 정보화 인프라를 일터에 접목시키는 것으로 스마트워크의 개념을 한정한다면 지금 우리의 일터에도 스마트워크를 통한 변화의 바람은 거세게 불고 있다. 인터넷이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지구상의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무너뜨렸다면 발달된 정보화 기술은 Anytime, Anywhere 업무가 가능한 환경을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정부가 밝힌 대로 혁신적인 근무형태의 변화를 몰고 오는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민간 사업장에서 추진 중인 정보기술과 일터의 융합은 업무효율성을 상승시키는 한편 노동강도를 높이거나 통제가 강화되는 방향으로 흐르는 경향성을 보인다. 구청에서 근무 중인 공무원이자 주부인 J주임, 대한민국 정보화 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S통신사에 근무하고 있는 K사원, 비교적 IT인프라가 잘 갖춰진 중소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영업사원 L대리의 경우를 통해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일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1. 동대문구청 J주임의 ‘스마트’한 일터

서울시 동대문구청에서 일하고 있는 J주임은 주부이며 15개월 된 아이의 엄마다. 주말을 지낸 월요일 아침, 아이의 칭얼거림에 잠을 깬 J주임은 서둘러 분유를 타 아이에게 먹인 뒤 부엌으로 향했다. 부산스러움에 눈을 뜬 남편이 잠자리를 정리한 뒤 욕실로 들어가면 그녀는 부엌에서 아침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J주임의 아침은 지금보다 1시간은 일찍 시작됐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남편과 자신의 출근시간까지 맞추려면 아침은 늘 전쟁이였다. 아침식사는 거르거나 우유 또는 빵으로 때우는 날도 많았다.

남편을 직장으로 보낸 뒤 그녀는 아이를 잠시 어린이집에 맡기고 구청에서 지급한 노트북 앞에 앉았다. USB에 담긴 보안프로그램을 거쳐 동대문구 업무 시스템에 접속한다. 오늘 주어진 업무는 구에서 고용한 일반 상용직들의 임금을 정산하는 일. 업무 중 궁금한 사항이 생기면 구에서 지급한 인터넷 전화로 구청에 있는 직원과 통화한다.

오전동안 집중적으로 급한 업무를 수행한 J주임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어린이집에 잠시 맡겨둔 아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요즘 들어 아이가 웃음이 많아졌다. 지난 해 육아휴직 뒤 다시 출근하게 됐을 때 아침마다 엄마와 헤어지기 싫어 보채는 아이를 볼 때마다 마음 한 편이 무거웠던 터다.

아이가 오후 낮잠을 자는 시간을 이용해 다시 업무에 몰두한다. 육아와 업무를 병행하고 있지만 업무에 나태해질 수는 없다. 아이가 유독 칭얼거리는 날에는 근무시간인 오후 6시까지 시간 내에 처리해야 할 일들을 먼저 처리해두고 나머지는 미뤄둔다. 저녁시간 남편이 퇴근하면 아이를 잠시 맡겨두고 미뤄둔 일을 하면 된다.

J주임이 직접 구청으로 출근하는 날은 매주 수요일. 일주일 중 4일을 집에서 근무하고 단 하루만 구청으로 출근한다. 매주 수요일 구청으로 출근해서 그녀가 하는 일은 ‘수거보상제’의 관리다. 수거보상제는 구 벽면에 나붙은 불법광고물 등을 시민들이 수거해 신고하면 보상을 해주는 제도다. J주임은 지난 6월 재택근무를 하기 위해 새로운 부서로 옮겨왔다. 기존 부서에서 맡았던 업무는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부서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지만, 실제로 얼굴을 맞댈 기회는 수요일 하루뿐이라 직장 내에서의 정이 예전 같지는 못하다. 그나마 J주임은 활달한 성격으로 새롭게 만난 사람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었지만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다른 구청 직원들은 직장에서의 관계 형성이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곤 한다.

어쨌든 J주임은 자신의 현재 직장생활이 매우 만족스럽다. 빠듯한 살림에 직장을 그만둘 수는 없고, 부모님에게 아이를 맡기기도 여의치 않아 남편과 함께 한숨만 내쉬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교통비나 식대 등 복지차원에서 지급되던 임금은 받을 수 없어 월급이 조금 줄었지만 매일 출퇴근으로 치르던 비용이 줄어든 효과가 더 크다.

 

ⓒ 동대문구청

#2. S통신사 K사원의 ‘스마트’한 일터

K사원이 다니는 S통신사는 한국의 정보통신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자타공인의 리딩컴퍼니다. 얼마 전 K사원은 회사에서 지급한 스마트폰을 받았다. 스마트폰 안에는 회사에서 개발한 업무관련 어플리케이션이 설치돼 있다. 처음 스마트폰을 지급받은 K사원은 스마트폰의 다양한 기능에 재미를 느꼈다.

유용하리라고 여겨지는 각종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 받아 사용해 보는 재미에 푹 빠진 K사원이 근래 많이 이용하는 스마트폰 기능은 다름 아닌 ‘일정관리’ 기능이다. 출근 후 자리에 앉아 스마트 폰의 일정관리 탭을 누르자 오늘 예정된 일정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일정관리 서비스에 자신의 일정을 저장해 놓고 스마트폰과 연동시키면 매일 예정된 일정을 빠짐없이 관리할 수 있다.

오늘 오전에는 외부 지점 직원과의 중요한 미팅이 잡혀 있다. 오늘의 일정을 확인한 K사원은 결재 받아야 할 사항을 회사 내부 전자결재 시스템에 업로드 해 놓은 뒤 미팅을 위해 사옥을 나섰다. 이동하고 있는 동안에도 전자결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중요한 E-mail은 오지 않았는지 스마트폰을 통해 틈틈이 확인할 수 있다. K사원은 자신이 올린 전자결재가 최종결재 상태에서 대기 중이라는 사실과 거래처의 중요 정보가 E-mail을 통해 전달된 것을 확인한 뒤 거래처에 전화를 걸어 향후 미팅 일정을 조율했다. 조율된 미팅 일정은 곧바로 스마트폰을 이용해 저장한다.

미팅 장소에 도착한 K사원은 스마트폰에 내장된 메모 기능 대신 자신이 사용하는 플래너를 꺼냈다. 스마트폰의 메모 기능도 좋기는 하지만 미팅 중 스마트폰을 두드리는 것은 상대에 대한 예의도 아니거니와 지난 일을 자유롭게 확인하는 작업은 한 장 한 장 넘겨 볼 수 있는 플래너가 한 수 위다. 미팅을 진행하면서 업무상 팀원들과 빠르게 공유해야할 사항을 발견하게 된 K사원은 스마트폰에 내장된 회의실 예약 기능을 사용해 사내 회의실을 예약하고, 회의에 참가할 인원들을 회사 구성원 검색을 통해 검색한 뒤 이들에게 회의에 참석해 달라는 메시지를 전송했다.

회의 예정시간보다 5분 정도 늦게 도착한 K사원이 헐레벌떡 회의실로 도착하자 메시지를 받은 팀원들이 이미 회의실에 도착해 있었다. 팀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 K사원은 오늘 미팅을 통해 진전된 사항들을 팀원과 공유하고 서로의 의견을 나눴다.

오전 외근과 오후 회의를 마치고 나니 어느덧 퇴근시간이 가까워 왔다. K사원은 오랜만에 일찍 귀가해 아내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신이 일찍 귀가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아내가 들뜬 목소리로 맛있는 저녁식사를 마련해 놓겠단다. 즐거운 마음으로 퇴근길에 오른 K사원. 계속되는 야근으로 어두운 밤 도로를 막힘없이 달리던 그에게 오늘의 퇴근길 교통 정체는 오히려 즐겁게만 느껴진다.

한창 집을 향해 달리던 그의 스마트폰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발신자는 자신의 팀장. 오늘 저녁 7시 30분 긴급회의가 있어 회의실을 예약해 놓았으니 팀원들은 빠짐없이 회의에 참석하라는 명령이다. K사원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미소가 사라졌다. 메시지를 보지 못했다는 변명은 애초에 통하지 않는다. 전화기 너머 아내의 한숨소리가 가뜩이나 무거워진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신경질적으로 차를 돌려 다시 회사로 향하는 K사원. 퇴근길 교통 정체로 제 시간에 회사에 도착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짜증이 밀려오는 순간이다.

 

ⓒ KT

#3. 중소기업 L대리의 ‘스마트’한 일터

L대리는 50여 명의 직원으로 구성된 중소기업에서 기업을 상대로 IT보안 솔루션을 판매하는 영업사원이다. 영업에 뛰어든 지난 3년 동안 그가 확보한 고객사만 500여 곳. 매일 영업현장을 뛰어다니는 그에게 하루 24시간은 너무 짧다. 오늘은 아침부터 고객사로 출근도장을 찍었다.

그런 그에게 회사와의 소통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은 전화기와 노트북. 고객사 현관 앞에서 전화로 팀장에게 출근 보고를 한 L대리는 고객사 담당자와 미팅을 시작했다. 제품 브로셔와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통해 제품의 특징을 소개받은 고객사 담당자는 제품에 커다란 관심을 보였다.

담당자는 L대리에게 들은 몇 가지 보안 솔루션의 가격은 얼마인지 물었다. L대리는 자신의 노트북을 열어 VPN(가상사설망)을 통해 사내 ERP(전사적 자원관리)시스템에 접속했다. 사내 ERP시스템에는 각 제품의 담당자들이 환율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외국 보안 솔루션의 가격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한다. L대리는 업데이트 된 가격정보를 토대로 그 자리에서 몇 개의 견적서를 작성해 전자문서화 한 뒤 고객에게 전했다.

첫 번째 고객사 미팅을 진행한 L대리는 곧장 지하철로 이동해 두 번째 고객사를 향해 움직였다. 지하철에서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L대리의 휴대전화가 울린다. 방금 미팅을 마친 고객사에서 제품을 구매할 테니 납품 일자를 내일 오전까지 맞춰달라는 요구를 해왔다. 지금 바로 절차를 진행하면 어렵사리 내일 오전 납품일정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E-mail을 통해 계약서를 받은 L대리는 곧장 주문사양서를 만들어 회사로 보낸 뒤 주문서 내용대로 내일 오전 납품 가능하도록 조치해달라고 부탁한다.

모든 조치를 끝낸 L대리는 안도의 긴 한숨을 내쉬었다. 고객의 요구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해 납품시기가 늦어졌다면 꼼짝없이 금주 매출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목표 달성 시 받게 될 인센티브와 칭찬, 목표 미달 시 떨어지는 불호령 사이의 언덕을 방금 넘어선 것이다.

어느덧 지하철은 다음 방문할 고객사가 있는 역에 다다르고 있었다. 식사시간도 잊은 채 고객사를 찾아다니다보니 어느새 저녁 8시. 팀장에게 전화를 통해 퇴근 보고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 올랐다. 내일은 주말. 안도감과 피곤함이 밀려와 지하철에 서서 꿈벅 잠이 들었던 L대리의 휴대전화가 울린다.

비몽사몽 간 전화를 받은 L대리는 깜짝 놀랐다. 오늘까지 제출하기로 했던 사업기획안을 받아보지 못한 팀장의 불호령이다. 팀장은 내일까지 결과물을 내놓으라고 말하며 잔뜩 화를 내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만일 회사로의 원격접속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면 토요일인 내일도 회사에 나가야 했을지 모른다. 기획안 작성에 필요한 대부분의 자료는 대외비로 사내 데스크톱 PC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언제 어디서든 회사의 업무를 진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다음날 아침 L대리는 회사에 전화를 걸어 당직근무자에게 자신의 PC를 켜 줄 것을 요청했다. 아내와 아이가 주말 달콤한 아침잠을 즐기고 있을 때 L대리는 노트북을 통해 회사에 있는 자신의 PC를 원격 조종하기 시작했다. 저장된 자료를 찾아내고, 기획안을 작성한다. 오늘 오후 아이와의 외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일을 마쳐야 한다. 만일 일이 늦어지게 되면 기획안을 받지 못해 화가 난 팀장과 모처럼의 외출이 취소된 아이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