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완화 이후 사모펀드 미래는 미지수
규제완화 이후 사모펀드 미래는 미지수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4.03.06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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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산업 스며있는 사모펀드 자본
공과(功過)와 별개로 영향력 더 커질 듯
[특집] 사모펀드 10년

금융산업만 사모펀드의 진출이 활발한 게 아니다. 제조업, 서비스업 가릴 것 없이 많은 사업장에 사모펀드의 자본이 들어와 있다. 동양생명, HK저축은행, 아이리버, 레이크사이드CC, 메가박스, LG실트론, C&M, 버거킹, 네파, ING생명, 할리스커피, 노비타, 코웨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 기업들의 상당수 지분을 현재 사모펀드가 보유하고 있다.

답 안 나오는 ‘에스콰이아’

구두 브랜드 ‘에스콰이아’로 유명한 (주)이에프씨는 지난 30년간 무분규 사업장이었다. 한국노총 식품산업노련 산하 에스콰이아노조(위원장 남봉희)는 지난 1월 7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갔다.

지난해 임금교섭을 진행하던 중 회사가 성과연봉제 도입을 요구하면서 노사관계는 급랭했다. 급기야 12월 9일에는 단체협약 해지를 노조에 통보하고 31일에는 노조 사무실마저 폐쇄했다.

ⓒ참여와혁신 포토DB
1961년 창업한 에스콰이아는 1980년대에 이르러 국내 최고의 제화 명가로 명성을 얻었다. 작은 구둣방에서 회사를 일으킨 창업주는 최고급 수제화 제작을 목표로 경영을 꾸려갔다. 철저한 품질관리와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고급 수제화 도입, 남다른 디자인 등이 성공에 한 몫 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영에이지’, ‘비아트’ 등 여성과 젊은이들을 겨냥한 제화 및 의류 브랜드를 선보이며 전성기를 누린다.

IMF 외환위기 시절, 대기업까지 쓰러지는 와중에도 에스콰이아는 건재했다. 1999년에서 2002년 사이에는 오히려 매출이 두 배 가까이 늘면서 성장세를 이어갔다. 매출액 5,000억 원 수준의 종합 패션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하지만 에스콰이아는 신용카드 버블이 꺼지기 시작한 2003년부터 경영이 급속도로 악화됐다. 백화점 상품권과의 경쟁에서 밀려 구두 상품권이 30~40%씩 할인 판매된 것도 타격으로 돌아왔다. 수입화 등과의 경쟁도 만만치 않아 유명 백화점의 입점도 수월치 않았다. 2012년 매출은 1,890억 원 수준으로 급격히 떨어졌다.

지난 2009년 오너 일가가 보유한 에스콰이아의 지분은 PEF인 H&Q아시아퍼시픽코리아에 매각됐다. H&Q는 에스콰이아 인수 이전 구 쌍용증권의 인수로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H&Q는 오너 일가의 보유 지분 87.5%를 포함한 전 지분을 800억여 원에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했다.

H&Q는 당시, 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할 때는 ▲ 자금난에 빠진 우량 기업을 인수한 뒤 ▲ 3~5년 동안 자금을 투입해 회사를 정상화하고 가치를 높이며 ▲ 다른 전략적 투자자에게 회사를 매각할 것이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이후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매출액은 계속 감소하고 있고, 회사 자산은 매각됐으며 부채는 늘어갔다. 기대했던 투자는 이뤄지지 않았다. 사모펀드가 자금 조달을 위해 회사 자산을 담보로 활용하고 있다는 의혹도 돌았다.

2월 말 현재 노사는 사태 해결을 위해 교섭을 벌이고 있지만, 양쪽 다 뚜렷한 출구 전략을 갖고 있지 못한 채 줄다리기만 계속되고 있다.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조합원들은 기간이 길어지면서 피로를 호소하고 있다.

아시아 최대 규모 ‘한방’, 오비맥주 매각

단기간 내 고수익 창출이란 목적 때문에 지금까지 살펴 본 PEF의 부정적 사례와 사뭇 다른 경우도 있다. 연초 국내 투자시장의 최고 화젯거리가 되었던 6조 원 대 매각의 오비맥주가 주인공이다.

오비맥주는 두산그룹의 핵심 계열사였다. 과거의 브랜드 명이 계속 쓰이고 있으며, 프로야구 인기 구단 중 하나였던 오비베어스가 현 두산베어스의 전신이라는 점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도 많다. 따라서 오비맥주를 두산그룹의 소유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두산이 오비맥주를 외국계 기업으로 넘긴 것은 이미 지난 1998년이었다.

IMF 외환위기 이후 두산그룹이 중공업 중심으로 사업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오비맥주를 매물로 내 놨다. 벨기에의 맥주 회사인 인터브루가 오비맥주를 인수했다. 이는 아시아 지역 시장의 거점 공장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오비맥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맥주회사를 인수하며 세계 3위 규모로 덩치를 키운 인터브루는 2004년 세계 5위 규모였던 브라질의 암베브와 합병을 통해 2위로 규모로 커지면서 ‘인베브’란 이름으로 바뀐다. 인베브는 당시 세계 3위 규모인 미국의 앤호이저부시와 다시 합병, 앤호이저부시 인베브(이하 AB인베브)로 출범한다. 명실상부 세계 1위 규모의 거대 맥주회사가 탄생한 것이다.

인베브가 오비맥주를 사모펀드인 KKR-어피너티에 매각한 것은 앤호이저부시와의 합병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인베브는 2009년 7월 18억 달러, 약 2조3천억 원에 오비맥주를 매각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후 AB인베브는 오비맥주를 다시 58억 달러, 약 6조1,680억 원에 되산다. KKR-어피너티로서는 단기간에 큰 규모의 매각 차익을 냈으니 PEF 본연의 목적에 충실했다. 수치상으로만 보면 지금까지 살펴본 부정적 사례와 다를 바가 없다.

거침없는 투자로 경쟁력 제고, 선사례?

인베브가 오비맥주를 PEF에 매각할 당시 분위기는 어땠을까? 오비맥주는 경기도 이천, 충청북도 청원, 광주광역시, 세 곳에 생산 공장을 두고 있다. 이천과 광주 공장에는 한국노총 산하 노조가, 청원 공장에는 민주노총 산하 노조가 설립돼 있다.

2009년 매각 당시 양 노조는 공동 대책위를 구성하고 파업에 들어가는 등 연대투쟁을 벌였다. 조합원 구조조정 등의 현안이 매각 이후 뒤이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이다. 당시 양 노조는 사측인 인베브와 고용승계 및 회사 지속 발전을 약속 받는 내용의 합의를 체결했다.

매각 협상 과정에서 이와 같은 내용을 조건으로 내걸라는 노동조합의 요구였지만 불안감은 여전히 존재했다. 실질적인 구속력이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회사를 인수한 사모펀드가 어떤 태도를 취할지에 대해선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4년이 흐른 지금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그간의 부정적인 사례들과 같은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신규 설비의 증설과 시장 점유율 확대, 매출 증가로 인해 100여 명 가량 증원이 있었다.

하이트맥주와 비교해 6:4의 비율이었던 시장 점유율은 4:6 수준으로 역전됐다. 주류 업계에서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게 대단히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괄목상대할 만한 변화다. 2009년의 상각전이익이 2,514억 원 수준이었다면 2013년에는 5,290억 원으로 늘었다. 매출이 늘고 경영이 활기를 띠면서 노사관계가 경색될 이유도 없었다.

이와 같은 결과가 가능했던 것은 ‘캡스톤’의 경영기법이 성공적이었다는 외부 평가가 지배적이다. 캡스톤은 KKR의 사내컨설팅 조직으로서, CEO, CFO 등 전문경영인들 100여 명 규모로 이뤄져 있다. 이들은 비용절감에 치우친 수익 전략이 결국 조직원들의 잠재력과 조직의 성장 가능성을 억누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투자를 대폭 늘렸다. 2010년부터 매년 공장의 라인 증설에 500억 원씩 투자하는 등 시설에만 2,000억 원 이상을 쏟아 부었다. 연간 생산능력은 2009년과 비교해 30% 가량 높아졌다. 영업 마케팅 비용 역시 기존보다 30~40% 더 투자해나갔다.

전문성이 있는 경영진의 선임 역시 좋은 결과를 내는 데 한 몫 했다. 마찬가지로 주류 업체인 진로에서 30년 넘게 영업을 해 온 장진수 사장을 발탁하면서, 맥주 업계에 만연해 있던 ‘밀어내기’ 관행을 없애는 데 성공했다. 그간의 영업 전략이 1차 도매상 위주의 관리였다면, 개별 업소와 소매점으로 이어지는 2차 거래선까지 영업 라인이 확장됐다.

변화를 꾀하려는 노력과 함께 시운도 따랐다. 완만하지만 주기적으로 상승과 하강을 거듭하는 주류 업계의 사이클 상, PEF가 오비맥주를 인수할 즈음은 본격적으로 상승 곡선을 탈 시점이라는 분석이 있다. 경쟁 상대인 ‘하이트’의 부진으로 성과가 부각됐다는 평가도 있다. 2011년부터 오비맥주가 점유율 1위를 차지하게 된 데는 ‘카스’ 브랜드의 선호도가 컸는데, 그 사이 하이트맥주는 진로와 합병 과정에서 영업 집중도가 저하되는 부작용이 있었다.

오비맥주 매각-재인수 사례는 PEF와 외국계 기업 사이의 거래니, 그간의 부정적 사례들에서처럼 ‘먹튀자본’의 꼬리표를 붙이기에는 상황이 좀 다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의 부정적 인식을 감안한 듯, AB인베브와 KKR-어피니티는 매각 발표와 동시에 “조세당국에 충분히 협조하고 거래 시점에 법인세를 내겠다”는 입장을 밝혀 호평을 받기도 했다.

문턱 낮추고 규제 풀고

개별 사례마다 차이가 있음에도 아직 대중적으로는 사모펀드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또 한편에서의 우려와 별개로, 여전히 사모펀드는 활개를 치고 있으며 이들의 활동 폭은 앞으로도 점점 더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도 규제 완화를 통해 사모펀드를 좀 더 활성화시키겠다는 정책 방향을 들고 나왔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사모펀드는 기업 혁신과 기술개발 등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모험적 투자가 필요한 부분에 자본을 공급해 사회적 효용을 높이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긍정론자들의 주장이다. 금융위원회도 지난해 12월 사모펀드제도 개편방안에 대해서 밝히며 “사모펀드는 금융산업 내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자산운용이 가능한 분야”라며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사모펀드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제도의 전면 개편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선 향후 전문투자형 사모펀드(헤지펀드)와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의 두 가지로 다양한 기능을 하는 사모펀드의 규율을 통합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투자위험성이 큰 점을 감안해 일반 투자자의 사모펀드 직접투자를 제한할 계획이다. 최소 투자한도는 5억 원으로 설정했다.

그와 함께 사모펀드에 재투자할 수 있는 공모펀드를 허용해 일반 투자자의 사모펀드 투자수요를 흡수할 예정이다. 아울러 운용업자와 설립 자체의 장벽도 낮추고,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자산총액 5조 원 이상의 기업집단) 중 금융주력 기업집단에 한해선 PEF 설립 운용을 허가할 방침이다.

금융위는 이와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마련해 올 상반기 중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전반적으로 규제를 완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최소 투자한도를 5억 원으로 설정한 부분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이와 같은 한도 금액 설정은 일반 투자자들의 진입 문턱을 높이는 결과이며, 이는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게 아니라 도리어 축소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사모펀드는 손실이 나더라도 감내할 수 있는 투자자에 한정해 투자가 이뤄져야 하므로, 최저 투자한도를 더 올리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맞서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투자한도에 대한 논란을 제외하면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데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그동안 경험했던 수많은 사례들에서, 그리고 단기간 내에 최대의 이익을 실현한다는 사모펀드의 목표에서 볼 수 있듯이 사모펀드가 산업의 장기적인 발전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더욱 활발하게 활동하게 될 사모펀드가 우리나라 경제에 과연 득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모험적 투자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사회적 효용의 확장이라는 기대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이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의문부호로 남아 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향후 언론의 경제면에 사모펀드의 이름을 더 자주 오르내리리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