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연기금 투입, ‘혈세낭비’ 부른다
고속도로 연기금 투입, ‘혈세낭비’ 부른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04.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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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화 수순 밟는 한국도로공사…‘대동맥’ 팔릴 위기

연기금을 활용한 고속도로 재정투입 추진이 가속화되고 있다. 민자고속도로 사업전환과 고속도로 운영권을 연기금에 매각하기로 함에 따라 ‘공익성’ 시설인 고속도로가 장삿속으로 전락할 위기를 맞았다.

투입된 국민연금의 운용수익률은 지난해 달성한 7.98%에 못 미치는 약 5%에 그칠 전망. 

연기금을 투입해 안정된 수익률을 확보한다는 본래 취지를 생각한다면, 수익보전의 차원에서라도 통행료인상이 불가피하다. 연기금 투입에 따른 공공영역의 축소는 공공서비스의 질을 저하시키는 것은 물론, 국민들의 통행료 부담과 한국도로공사(이하 도로공사)의 존립마저 위협하고 있다.   

 

고속도로 운영권 매각, 공공성 상실된다

연기금에 매각이 거론되고 있는 노선은 영동선, 중부선, 서해안선, 서울외곽선. 이들 노선의 연간 통행료 수익은 도로공사의 연간 통행료 수익의 30%를 차지한다. ‘고속도로 노선별 수지분석 현황’을 보면 총 18개 고속도로 중 이들 4개의 노선이 현재 최고이익을 내고 있는 경부선에 이어 5번째 안에 분포되어 있는 알짜노선들이다.

알토란같은 이들 4곳이 매각되면 남은 적자노선들이 이전 통행료를 유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도로공사는 흑자노선에서 얻은 수익으로 적자노선의 투자재원을 확보하는 통합채산제 방식으로 운영이 되고 있기 때문에 운영권 매각은 도로의 균형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지난 11월 14일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이미 30년간 통행료 수입으로 투자금이 모두 회수된 경부선의 매각의사를 밝힌 바 있다. 투자금 회수가 끝난 도로는 무료도로로 전환을 하게 되어 있는 ‘유료도로법’에 따르면, 경부선은 무료도로로 전환을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므로 사실상 매각의 대상이 아니다. 그 동안 경부선의 수익금은 도로의 균형발전을 위해 불가피하게 요금이 책정돼 왔다. 

통합채산제가 무너지면 고속도로의 이익금으로 투자했던 신규사업은 물론 나머지 고속도로의 운영 및 관리비용 조달에 차질이 생긴다. 우리나라의 도로는 산악지형으로 교량과 터널이 많기 때문에 이들을 관리하는 비용이 줄어들게 되면 자연히 도로의 안정성은 위협을 받게 된다.

한국도로공사 노동조합 오현수 위원장은 “한국도로공사의 신용등급은 A3로 정부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우량기업인데, 민영화 되면 순식간에 부실기업화 되고 공기업 영역이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SOC는 매각을 통한 이익창출 대상이 아니라는 것.

사실상 민영화 길에 들어선 도로공사는 향후 민자고속도로 업체와 경쟁 하는 구도 속에서 도로분야의 공공성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또, 외국자본이 ‘연기금에도 매각을 하는데 우리에게는 왜 못하냐’고 매각요구를 해 온다면 팔지 않을 명분이 없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입장이다.
도로공사의 한 관계자는 “도로 균형발전을 위한 사업은 앞으로 없어질 것이며, 연기금 수익을 목적으로 흑자노선만 가지고 간다면 통행료는 3~4배 이상 증가해 국민부담이 가중된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또 “통행료 상승은 물류비용의 상승으로 이어져 관련 업종들의 타격이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뒤 안보고 수익성만 따지는 민자고속도로사업

건교부는 현재 건설 중인 부산~울산, 무안~광주, 여주~양평 등 3개 고속도로를 민자사업으로 전환하는 등 내년에 8~9개의 민자고속도로를 더 만들기로 결정했다.

기획예산처는 3개 고속도로 건설사업에 총 1조4천억원의 민간자금을 유치할 계획이며, 이를 위해 국채금리 보다 높은 수익률을 보장한다는 방침이다. <표2 참조>

이 중 부산~울산 간 고속도로는 이미 21.1%의 공정률을 보인 상태에서 IC형식 변경에 대한 관계기관과의 협의가 지연되고 있는 등 마찰을 빚고 있다. 이 와중에 민자사업으로 전환했을 경우 업계를 비롯해 관계기관과의 갈등이 우려된다.

또, 민자고속도로에 국고지원이 1000억 이상 들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대형 민간기업의 배불리기 사업이라는 비판도 일고 있다.<관련기사 41면>

 

지난 11월 25일 감사원은 ‘SOC 민간투자제도 운용 실태’를 통해 민자고속도로 사업이 불가하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실태조사 결과, 현재 추진 중인 17개 민자도로·터널 건설사업의 실제교통량이 예측의 50%에만 머물러도 민간사업자 손실보전비용이 매년 5000억∼6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기 때문이다.

이들 3개 노선이 민자사업으로 전환되면 통행료 인상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도로공사가 관리하는 고속도로 통행료 수준의 1.5배 미만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도로공사 측은 3개 노선의 과다산출, 노선상의 문제점, 국도대체 노선의 이용 교통량 감안 시 국고사업에 비해 3배 이상의 통행료 인상이 이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도로공사의 ‘국고 및 민간사업 비교’에 따르면 국고로 추진 시 1Km당 39.1원이던 고속도로 이용요금이 연기금투입 시 57.85원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국가 재정사업으로 진행된 국고구간은 기존의 통행료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는 국민들의 강력한 저항이 예상된다. 

 

관련 종사자들의 고용불안

현재 도로공사는 매각에 따른 부실경영이 재무구조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곧 노동자들의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팽배한 상태다.

매년 초 실시되는 경영평가에서 도로공사가 부실경영 평가를 받게 되면 정부의 구조조정 압박이 거세질 것이고, 이는 곧 고용불안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기획예산처 앞에서 농성을 벌이는 등 매각 및 민간사업전환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을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한 관계자는 “길면 3년, 빠르면 2년 안에 정부의 압박으로 구조조정이 시작될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또 “몇 년이 지나 연기금투입의 문제점들이 속출하면 정권이 다 바뀔 것이고, 책임지는 자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는 것 아닌가”라며 연기금투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매각’이 아닌 ‘실질적 투자’가 필요한 때

안정적인 투자처를 찾지 못한 상황에서 경제를 지탱하던 인프라를 매각한다면 그 부담은 결국 국민에게로 고스란히 돌아갈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 오현수 위원장은 “단편적 경기부양을 위한 SOC 매각이 아닌 투자가 필요한 때”라며 “도로 위에서 할 수 있는 사업의 효율성을 극대화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재 도로공사는 도로의 건설 및 유지, 보수관리 업무만 맡도록 되어 있다. 이것을 인터체인지를 활용한 물류사업이라던가 신도시에 인접한 휴게소의 유통단지 조성 등 공공성을 유지하면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사업에 투자를 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도로기능을 활용한 부가적 사업을 확충하는 방안 검토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