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말해주던 것과 다른 공장 안 세상
세상이 말해주던 것과 다른 공장 안 세상
  • 함지윤 기자
  • 승인 2007.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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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특집Ⅴ]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을 가다 ③ 현장체험기2
외형으로 단정할 수 없는 노동의 가치

"야 그 정도는 장난이지. 우리 부대가 얼마나 빡센 줄 알아?"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이 모이면 꼭 한 번은 군대 이야기가 나온다. 그럴 때면 육ㆍ해ㆍ공군, 전ㆍ후방을 막론하고 모두 자기 부대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다른 부대에서 근무해 본 적은 없다.

사실 노동도 마찬가지다. 그 일터에서 직접 자기가 겪어보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은 현실에서 많은 오류와 오해를 만든다. 짧은 시간이지만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승용 제1공장 의장파트 파이널공정에서 일을 하며 그동안 우리가 많은 오해 속에서 살고 있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시간에 갇힌 사람들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내 앞으로 1시간에 52대의 차량이 지나간다. 1분 안에 1대의 차량을 만들어야 한다. 과연 60초라는 짧은 시간동안 가능한 일인가? 도대체 얼마나 빨리 움직여야 하는 것일까? 작업 전 컨베이어벨트가 만들어내는 시간이 주는 압박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1대의 자동차가 생산되기까지 주물작업에서부터 도장, 의장 등 수많은 작업과정을 거쳐야 한다. 다양한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의 손길과 수십만 개의 부품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자동차산업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클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량생산을 통해 그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컨베이어시스템이 도입됐다. 1분에 1대의 차량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은 컨베이어시스템으로 작업을 세분화해 한사람이 1분 안에 자신이 맡은 부분을 작업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전기드릴로 나사를 조이는 작업은 불과 20초도 되지 않아 1대 차량작업이 끝났고, 좀더 복잡한 작업이라 할지라도 1분이란 시간 안에 모두 가능했다. 

 

세분화된 작업 하나하나는 참 쉬운 일처럼 보였다. 함께 일하던 노동자들도 “사실 일이 힘든 건 아니야. 옛날보다 작업환경이 훨씬 좋아진 것도 사실이고. 옛날엔 정말 힘들었는데 지금은 힘든 부분은 로봇들이 하고 있거든”하며 작업강도가 높은 건 아니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장파트 사람들은 “힘들다”고 한다. 그들이 힘들어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시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다른 작업은 집중해서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지만 컨베이어벨트 위 사람들은 그럴 수가 없다.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리현상까지도 컨베이어시스템에 맞춰야 했다. 

 

1분에 한 대씩 오는 차량을 20~30초 동안 작업을 하고 남는 30여초의 여유시간. 30초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게 과연 뭐가 있을까? 공장 안에서 유독 신문을 보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하루 작업하면 3~4개 종류의 신문을 보죠. 그런데 기억나는 것은 거의 없어요. 내용을 이해하고 보기보다는 글자를 읽는 거죠. 시간에 쫓겨서 읽는 건데 내용이 기억나겠어요?”
 

사정이 이렇다보니 컨베이어벨트 위에서는 일명 ‘밀어내기’가 일반화돼 있었다. 3~4대 뒤에 있는 차량까지 가서 미리 작업을 하면 여유시간을 조금 더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에게 컨베이어벨트가 허락한 자유는 고작 이것뿐이었다. 여유시간이 10초 내외로 남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이나마도 불가능했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 다시 작업하는 모습은 입력된 프로그램에 맞춰 움직이는 로봇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현장 사람들이 자신들을 가리켜 ‘로봇’이라고 하는 말이 조금씩 이해가 됐다.

 

단순·반복 작업 “변화가 낯설다”


작업이 1분 안에 가능하도록 세분화되다보니 한사람이 2~3개의 작업을 하는 단순작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작업이 단순하다보니 이른바 숙련이 되면 자기 파트의 작업을 마치는데 불과 20~30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또 입사해서 퇴사할 때까지 작업의 변화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나사만 몇 년 동안 조이고 있을 뿐이다. 물론 각 조나 반 안에서의 이동이 있긴 하다. 하지만 현장 사람들은 이에 대해 부정적이다. 
 

“핸들 나사 조이는 거나 브레이크 나사 조이는 거나 뭐가 달라. 결국엔 나사 조이는 거지. 핸들 나사 조이다가 브레이크 나사 조이면 신기하고 재미있나. 그냥 헷갈리기만 하지.”

 

공장 밖의 사람들은 조합원들이 변화를 싫어한다고 말한다. 그들과 함께 작업을 해보니 그것은 그들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오랜 시간 같은 작업만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는 그들에게 ‘변화’란 단어자체가 낯설어 보였다. 콜라를 마셔본 적이 없는 부시맨에게 ‘콜라병’의 존재가 낯설듯이 우리가 쉽게 말하는 ‘변화’가 어떤 것인지 그들에게 와 닿지 않는 게 당연해 보였다.

 

공장 안 사람들의 주된 관심은 ‘지루함’을 어떻게 달랠 것인가라고 한다. 단순·반복 작업이 낳은 지루함과의 싸움이 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울리는 라디오소리, 책 읽는 풍경, 핸드폰을 만지는 사람들…. 지루함의 늪 속에 혹시 ‘나’라는 자신이 빠져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는 사람들의 몸부림이 공장 여기저기서 느껴졌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일한 시간만큼 가질 뿐

 

외부에서 기자가 직접 일을 해보러 왔단 소리에 만나는 사람이면 열에 아홉은 “우리가 언론에서 말하는 돈을 벌려면 얼마나 일해야 되는 줄 아슈? 10년 넘게 잔업에 주말에도 나와서 일해야만 겨우 그 돈을 받을 수 있을까 말까” 한다며 자신들이 ‘고임금 노동자’란 이유만으로 질타를 받는 현실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연봉과 월급이란 결과를 놓고 보면 현대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의 임금은 높다. 하지만 그들은 철저히 일한 시간만큼만 돈을 받을 수 있다. 정규직이라고 하더라도 임금체계가 시급제이기 때문이다. 일한지 5년 정도 일한 사람의 시급은 4000원대로 법적으로 규정된 최저임금제 수준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남들보다 돈을 많이 받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대기업이니까 물량이 있기 때문이에요. 중소기업은 일이 없어서 잔업이 없고, 주말에도 일을 안 하니까 상대적으로 받아가는 돈이 적은 거죠.”

 

“주말이나 휴일에 하는 야근수당은 3.5배까지 되니까 사람들이 다 나와서 일하려고 하죠. 한달 내내 주말에 거의 나와서 일하면 그런 수당들이 월급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거든요. 어차피 주말에 마땅히 할 일도 없는데 나와서 일하면서 돈이라도 벌어야죠.”

 

이렇게 임금체계가 시급제다 보니 공장 사람들이 가장 민감해 하는 것이 바로 ‘물량 문제’다. 체험한 승용 제1공장도 생산차종이 잘 팔리지 않아 6월부터 ‘텐텐(주간 야간 각 10시간, 정상근로 8시간+잔업 2시간)’으로 일하던 것이 ‘팔팔(잔업 없이 주야 각 8시간)’로 줄어들었다. 이런 근무시간 단축은 이들에겐 곧 임금삭감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당연해 보였다.

 

작업장 내에서도 세대 차이가


현대자동차 공장은 1주일마다 근무시간이 주야간으로 바뀐다. 따라서 신체리듬을 1주일 만에 임의로 바꿔야하니 노동자들은 상시 피로한 상태다. 현장 노동자들은 “인간의 적응력은 무섭다”며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3~4달이 되니 그것에조차 적응이 되더라”며 허탈하게 웃는다. 
 

2000년대 들어 자동차업종 호황이 이어지면서 현장에는 젊은층이 늘었다. 공장 안을 둘러보니 40~50대들은 작업 중간에라도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면서 일을 하지만 대부분의 젊은층들은 자기 자리에서 책이나 신문을 보거나 핸드폰을 가지고 놀고 있다. 넓은 공장은 칸막이 없이 사방이 터져 있지만 사람들은 자기만의 공간이 확실해 보였다.

 

반이나 조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이런 세대차이 때문인지 어떤 조에서는 회식조차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했다.

 

젊은 사람들은 일과 노동조합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랐다. 함께 작업한 20대 후반의 ‘사수’는 “가능하면 한시라도 빨리 일이 끝나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한다”며 “잔업해서 몇 푼 더 받는 것보다 일찍 퇴근하는 게 더 좋다”고 말한다. 또 노동조합에 대한 관심도도 젊은층이 오히려 더 없는 듯 보였다. 20~30대들이 모여 주로 하는 이야기 또한 ‘어떻게 놀 것인지’ ‘재테크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이지 사회문제 등엔 별 관심이 없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주홍글씨 ‘비정규직’

 

“밖에선 ‘직영’을 정규직이라 하고, ‘업체’를 비정규직이라 한다지?”현장의 용어를 이해하는 데는 시간과 설명이 필요했다. 그 중의 하나가 ‘업체’란 단어. 이젠 국어사전에 올라도 될 만큼 일반적인 말이 되어버린 21세기 신자유주의시대의 필수어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러나 정작 현장 사람들에겐 낯선 말인 듯 했다. 대신 ‘직영’과 ‘업체’란 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작업장 어디에도 비정규직이란 표시는 없었고, 정규직 노동자들도 차별의식 같은 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입장에선 상황이 다른 듯 했다. 외부에서 기자가 왔다고 이러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속에서 유독 말이 없는 사람들. 뭔가를 물어봐도 “예”라는 단답형의 대답이나 “저 쪽 가서 물어봐요”란 말만 되돌려 보내던 사람들. 알고 보니 그들이 바로 비정규직, 현장에서 말하는 ‘업체’ 사람들이었다.

 

작업을 배우느라 정신이 없어서 주위를 살필 겨를이 없어 처음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공장 안 공기에 익숙해 질 때쯤 그들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함께 작업을 하지만 주인과 손님으로 나뉜 공장 분위기. 손님 주제에 남의 집에서 큰 소리를 낼 수 없지 않냐는 듯이 묵묵히 일만 하는 사람들. 어딘지 모르게 움츠러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겉으론 아무런 표식도 없지만, 보이지 않는 ‘비정규직’이란 ‘주홍글씨’가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우리가 진정 관심 가져야 할 것은?

 

“우리가 어떻게 일하는지 알고 싶다고? 그러면 하루 일해서 알 수가 있나. 적어도 야간근무 하면서 일주일은 일해 봐야지.”


현장을 알고 싶어서 왔다는 말에 사무실 노동자든, 노동조합 간부든, 현장 노동자든 모두 같은 말로 몇 시간을 보고서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표했다. 사실 반나절의 체험과 반나절의 견학으로 10여년 이상을 몸담으며 일하고 있는 그들의 고통을 다 이해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다만 ‘이런 것 아니겠어’라고 함부로 단정할 수 없음을 느꼈을 뿐이다.
 

짧은 시간 동안 공장 안에서,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만났던 그들은 공장 밖의 세상이 말해주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그들은 ‘귀족’도 ‘투사’도 아니었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노동자’일 뿐이었다. 우리네 친구였고, 아버지였다.

 

우리는 그동안 그들의 월급명세서와 그들의 붉은 머리띠만을 보고 각자 편한대로 규정을 내려버린 것은 아닐까. 우리가 진정 관심 있게 봐야할 것은 그들이 일하고 있는 일터와 그 속에서의 그들의 고민일 것이다.

 

이번 현대자동차 공장체험을 통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볼 때 진정 관심 있게 봐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의 첫발을 내딛었다. 그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알 때, 알고자 할 때 비판도 대안제시도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