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 만들기까지 쟁점은 무엇이었나?
비정규직법 만들기까지 쟁점은 무엇이었나?
  • 박석모 기자
  • 승인 2007.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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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대한민국 키워드, 비정규직
② 법안 논의 과정의 쟁점들

‘차별시정’과 ‘남용 방지’ 입법취지 살릴 수 있을까?

지난 7월 1일부터 비정규직 관련 법안이 시행됐다. 이 법은 논의 단계부터 한쪽에서는 비정규직‘보호’법이라고 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비정규직‘양산’법이라고 맞섰다.

정부가 2004년 입법안을 공개한 이후 노사정은 첨예한 대립각을 세웠다.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양보할 수 없다는 태세였다. 재계에서는 정규직의 지나친 고용 경직성 상태에서 비정규직마저 법으로 규제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고 반대했고, 노동계는 비정규직의 증가가 사회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고용불안을 가져오기 때문에 강력한 보호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줄다리기가 계속된 끝에 지난해 말 법안을 통과시켰고, 올해 7월부터 시행된 것이다.
수많은 진통 끝에 이 법안을 통과시킨 것은 비정규직 문제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로 등장했고, 시급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사회 안정성까지 해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리고 법안 시행의 명분은 적어도 ‘차별시정’과 ‘남용 방지’를 통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첫단추라도 꿰겠다는 거였다.


하지만 이런 입법취지가 무색하게 법안이 시행되자마자 여기저기서 파열음이 들리고 있다. 시행 한 달도 되기 전에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체 어디서 문제가 꼬인 것일까.


현행 비정규직 관련 법안 논란을 파악하기 위해 이 법이 만들어지기까지 논란이 되었던 쟁점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여전히 이 문제들이 논란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법안 제정 당시의 논란을 크게 3가지 쟁점으로 나눠봤다.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비정규직법이 만들어지기까지

2004년 9월 9일 정부는 비정규직 관련 3개 법률에 대해 입법(개정)안을 발표했다. 점차 증가하는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개선해보자는 취지였다. 이 입법안은 2006년 11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까지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표류를 거듭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 국회, 양대 노총, 재계, 각 정당 등 이해당사자들로부터 십인십색의 의견들이 표출됐다.

 


쟁점1. 사유제한

법 제정과정에서의 최대 쟁점은 기간제 고용의 사유제한 설정 문제였다. 정부에서 제출한 기간제법 입법안에는 사유를 제한하는 규정이 없으며, 최대 사용기간을 3년으로 제한했다. 즉 정부는 모든 경우에 기간제 고용을 허용하되 그 기간을 3년으로 제한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간제로 고용하여 3년이 경과한 후에는 해고를 제한한다는 방침이었다.


재계에서는 정부안에 규정된 3년 경과 후 해고 제한 규정도 폐기하라고 주장했다. 기간제 고용에 대해 제한 없이 허용하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노동계에서는 합리적 사유가 없는 기간제 고용을 제한함으로써 기간제의 남용으로 인한 비정규직 확산을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기간제 고용이 가능한 사유를 법에 명시하고 그 외에는 기간제 고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포지티브 리스트). 또 합리적인 사유에 의해 기간제로 고용하더라도 사용기간을 1년(필요한 경우 합의에 의해 1년 연장 가능)으로 제한하고, 1년이 경과하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간주하는 ‘고용의제’를 주장했다.


이 문제는 법 제정과정에서 노동계 입장과 재계 입장이 팽팽히 맞서 이렇다 할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결국 현행법은 사유제한에 대한 규정 없이 사용기간만 2년으로 제한된 상태에서 통과됐다. 2년이 경과한 경우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간주하는 고용의제가 적용됐다. ‘사유제한’을 수용하지 않은 것은 재계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고, ‘고용의제’를 적용한 것은 노동계의 입장을 반영했다.


하지만 이런 결정에 노동계와 재계 모두가 반발했다. 재계에서는 노동시장에서의 유연성이 제한된다며, 노동계에서는 2년을 주기로 기간제 노동자의 대량 계약해지를 초래할 것이라며 각각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이 문제는 앞으로도 현장에서 자주 충돌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는 지적이다.


쟁점2. 차별 금지

정부의 당초 입법안은 고용형태를 이유로 한 불합리한 차별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법안에 명시하지는 않았다. 또 노동위원회에서 차별시정 업무를 담당하게 하고, 차별적 처우에 대한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사용자에게 1억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규정했다.


재계에서는 노동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차별시정을 명문화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노동위원회법에 차별시정 절차를 마련하는 것에도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노동계는 고용형태를 이유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법에 명문화하자고 주장했다. 특히 한국노총은 차별시정 요구가 제기될 경우 그 입증 책임을 사용자에게 부과하고 위반 시 과태료가 아닌 벌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별 금지, ‘동일노동 동일임금’ 명문화 여부를 두고 많은 논란을 거쳤으나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현행법에서는 동종 또는 유사업무에 대해 차별적 처우를 금지하고, 차별시정 업무를 노동위원회에서 담당하며, 노동위원회의 시정명령을 불이행하면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규정했다. 차별시정 신청은 차별당한 노동자 개인이 하고 차별 입증 책임은 사용자가 부담하되 시정 신청 등을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하면 벌금을 부과한다.


통과된 법에 대해서 차별의 판단 기준이 되는 ‘동종 또는 유사업무’를 어떻게 해석할 할 것인가를 두고 입장이 다시 갈린다. 재계는 해당 사업장 내에서 정확하게 동일한 업무를, 노동계는 사회적 평균으로서의 유사업무를 각각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쟁점3. 파견제 노동

정부가 제출했던 파견법 개정안은 파견업종을 전면적으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었다. 정부안에서는 파견을 할 수 없는 절대금지업무를 규정하고 그 외의 모든 업종에 파견을 허용하도록 했다(네거티브 방식 : 기존법은 26개 업무에 대해서만 파견을 허용하는 포지티브 방식). 절대금지업무에는 건설, 선원, 직접 생산 공정, 쟁의 사업장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파견기간은 최장 3년으로 제한하고 휴지기는 3개월로 규정했다. 휴지기는 한 번 파견노동자를 사용하고 그 기간이 종료된 후 일정한 기간 동안 같은 업무에 다시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수 없는 기간을 말한다. 즉 정부안에 따르면 A라는 업무에 2007년 7월 31일까지 파견노동자를 사용하면 2007년 10월 31일까지는 A업무에는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수 없다. 한편, 파견기간이 종료된 후 또는 불법적인 파견의 경우는 사용자에게 해당 노동자를 직접 고용할 의무를 부과한다(고용의무)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재계는 파견이 제한된 제조업 직접 생산 공정 및 건설업까지 파견을 허용할 것을 주장했으며, 파견기간 또한 제한 규정을 철회하고 당사자 간의 합의에 의해 연장 가능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휴지기간 3개월 규정도 철회하고, 불법파견 시 직접고용 의무화 규정 역시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계의 주장은 절대금지업무의 범위도 최소한으로 축소하고 파견제를 제한 없이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계 입장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갈렸다. 우선 한국노총은 파견 자체는 인정하되 파견기간은 개정안 이전의 2년을 유지하자는 입장이었다. 또 휴지기는 6개월로 규정하며, 불법파견이 적발되거나 파견기간을 경과할 경우 고용의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민주노총은 파견제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입장을 보였다. 따라서 파견법은 개정하는 것이 아니라 폐지해야 하며, 기존의 파견노동자들은 파견법 폐지에 따라 모두 불법파견이 되므로 직접고용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명백한 파견임에도 도급으로 가장하여 직접 생산 공정에 파견된 경우가 많으므로, 파견과 도급의 기준을 강화하여 적용할 것을 촉구했다.


현행법은 정부가 제출한 개정안에서 파견기간을 최장 2년으로 하고 휴지기 규정을 뺀 상태로 통과됐다. 따라서 불법파견이나 파견기간(최장 2년)을 경과하면 사용사업주에게 직접고용의 의무가 주어지며 위반할 경우 과태료가 부과된다. 또 파견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처우 금지 및 시정은 기간제법의 규정에 준하여 시행된다.


노동계는 파견 업종이 전면 확장됨에 따라 파견노동자를 양산하게 될 것을 우려했으며, 재계는 파견법이 너무 파견노동자 보호에만 치중되어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비정규직법, 그리고 비정규 노동자

비정규직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노사정은 합의를 통해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때로는 대화를 하고 때로는 갈라서기도 하며 힘겨루기를 계속했다. 이렇게 2년여의 시간 동안 의견 접근을 하지 못한 채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비정규 노동자들은 계속 증가했고, 이들에 대한 차별적 처우도 여전했다.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비정규직법을 일단 시행했다. 하지만 시행 후에도 여전히 논란이 끝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비정규 노동자들의 불안한 삶은 계속되고 있다.

 

고용의제와 고용의무

고용의제란 ‘직접 고용한 것으로 본다’는 뜻이고 고용의무는 ‘직접 고용하여야 한다’는 의미다.

고용의제는 사용자나 노동자의 선택에 의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고용된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거부할 경우 사용자는 부당해고 여부를 다투어야 하며 부당해고로 판명된 경우에는 부당해고에 대한 처벌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해고기간 동안의 미지급 임금은 체불임금으로 처리되게 된다. 그러나 고용의무일 경우에는 벌칙조항에 의한 처벌이 가능하다고는 해도 고용간주로 볼 수는 없다.

즉 고용의제가 적용되면 이미 고용된 것으로 보기 때문에 노동자에게 유리하지만, 고용의무가 적용되면 사용자측이 과태료를 내고 고용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노동자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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