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우리는 이렇게 풀었다
비정규직, 우리는 이렇게 풀었다
  • 함지윤 기자
  • 승인 2007.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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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대한민국 키워드, 비정규직
⑤ 현장의 해법

정답 아닐지라도 업종·조직 특성 고려한 선택

우리은행의 분리직군제와 보건의료노조의 산별합의

 

비정규직법 시행은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고 비정규직 사용을 억제시킬 것으로 기대됐다. 적어도 비정규직법을 만든 주체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랜드 사태에서도 나타났듯이 기업들의 선택은 예상과 달리(혹은 이미 예견되었던 대로) 대량 계약해지나 외주용역화 등 법의 맹점을 이용한 부정적인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결국 시행 한달도 못 된 상태에서부터 재개정과 보완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유례없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부는 법 안착화를 위해 성공사례를 찾아 나서고 있고, 기업 노사는 당장 해결책을 찾는 것을 꺼릴 뿐 아니라 노사간 합의한 비정규직 대책에 대한 지나친 관심도 부담스러워 한다.

 

업종 특성상 가능했던 선택

앞장서서 비정규직 대책 마련하고 있는 곳은 바로 은행 업계다. 우리은행이 먼저 분리직군제 신설을 통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노사가 합의한 것에 이어, 부산은행이 7급제 신설을, 외환은행이 무기계약직 전환을 노사가 합의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은행노조 간부는 “각 은행들이 내놓은 대책이 이름만 다를 뿐 정규직 내 또다른 정규직 신설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인 내용은 동일하다”며 “은행업계는 비정규직들이 담당해온 업무가 이미 정규직들의 업무와 상당부분 분리되어 있었고, 2년마다 비정규직을 교체한다는 것이 은행업무 특성상 회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큰 무리 없이 비정규직 대책에 노사가 합의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은행업계가 선택한 정규직 내 또다른 정규직군의 신설은 비정규직의 고착화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처음 이런 방법의 해결책을 제시한 우리은행노조는 “비정규직의 고착화가 아니다”고 주장한다.

 

“단계적 차별시정이지 고착화 아니다”

우리은행 노사는 새로 정규직 직군을 신설하여 기존의 비정규직들을 그 직군에 편입시키기로 했다. 이른바 ‘분리직군제’로 새로운 분리직군의 조합원들은 임금과 승진체계를 제외한 복지나 고용안정 부분에서 정규직과 동일한 혜택을 받게 된다. 이후 우리은행은 신입사원 채용도 직군별로 할 계획이다. 이로써 우리은행의 고용형태는 기존 정규직군과 분리직군, 일시적 공백을 충원하기 위한 비정규직군이 존재하게 된다.


분리직군에 들어가는 직원들의 임금과 승진체계는 정규직과 동일하지 않다. 비정규직들의 임금수준을 정규직 수준으로 맞췄을 경우 ‘회사의 재정적인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현 임금수준을 유지한 채 정규직으로 신분의 이동만을 가하기로 한 것이다. 이것이 분리직군제가 비정규직의 고착화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그러나 우리은행노조의 생각은 다르다. 분리직군제를 선택하면서 노조는 “분리직군의 초봉을 기존 정규직의 85% 수준으로 맞추기로 했으며, 이후 초봉을 정규직과 동일한 수준으로 맞춰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은행노조의 한 간부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있어서 선과제는 비정규직의 조직화가 아니겠냐”며 “조직화해서 회사와 단체협상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 나갈 수 있는 접점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분리직군제가 비정규직을 고착화 시킬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오히려 “분리직군제는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분리직군제 형태라 하더라도 정규직이기 때문에 “기업은 해고의 제한을 받게 되므로 전체 인력의 효율성을 위해서라도 기업 스스로가 분리직군제의 벽을 허물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른 은행노조 간부도 은행업계의 정규직 전환의 사례들은 “완벽한 비정규직 해법은 아니지만, 금융시장의 상황과 기존 업무성격과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현 시점에서 나올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며, “산업과 업종의 특성과 비정규직의 업무형태 등을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산별에서 해법 찾아가는 보건의료노조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법의 실효성을 두고 노사정 간의 이해가 엇갈린 가운데 보건의료노조가 정규직의 양보를 통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로 노사가 합의해 주목을 받고 있다. 더구나 이번 합의는 개별 기업이 아닌 산별교섭에서 이뤄진 점에서 더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그동안 개별 기업 노사가 비정규직 문제를 푸는 데 대한 한계가 제기되면서, 산별이나 지역차원에서의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올해 9번째 산별교섭을 진행한 보건의료노조는 2007년 핵심사업 중 첫 번째로 ‘비정규 미조직 투쟁 전면화’를 정기대의원대회에서 확정했다. 그리고 최우선 사업으로 삼은만큼 비정규직 실태조사를 비롯해 정규직 조합원들을 이해시키기 위한 교육 등 산별교섭 전에 사전활동들을 추진했다. 보건의료노조는 “9년여에 걸쳐 산별운동을 해 오는 과정에서 축적된 것들이,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서도 조합원들이 산별정신에 입각해 크게 단결해야 한다는 점을 수긍해 신속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고 평가했다.

 

변화된 조합원 의식과 업종 특성이 만든 결과

보건의료 분야에서 병원들은 간호사나 간호조무사, 의료기사 등 진료파트는 비정규직을 직접고용해 사용하고 있었고, 시설관리나 주차, 경비, 식당, 세탁 등의 업무부분에는 외주용역 등 간접고용 형태로 비정규직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분야다보니 병원의 중간관리자들도 1~2년마다 사람을 바꿔야하는 비정규직법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일이 익숙해져 일을 할 만하면 사람을 교체해야 되는 것은 기업에서도 반가운 일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보건의료 노사 또한 이런 산업의 특성이 있었기에 비교적 합의를 해 나가는데 어려움이 없었다고 설명한다.


조합원의 인식전환도 비정규직 해법 마련에 도움이 됐다. 올해 산별교섭에 들어가기에 앞서 실시한 조합원 의식실태조사에서 조합원들은 노조의 비정규노동 정책에 대해 다수의 조합원들이 ‘일정기간 계속 고용할 경우 정규직화해야 한다(79%)’는 정책에 가장 높은 찬성률을 보였다. 또 노동조합의 비정규노동 정책 중 가장 필요한 사안으로 ‘비정규직의 고용안정(50.8%)’을, 다음으로 ‘복지후생 증진(26%)’을 지적했다.


의미있는 성과를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보건의료노조는 “우리의 사례가 ‘아름다운 양보’란 이름으로 현재 비정규직법을 옹호하는 것으로 오해되지 않길 바란다”고 조심스러워했다. 이번 결과의 핵심은 ‘산별정신에 입각해 추진된, 9년에 걸친 산별활동이 축적된 결과물’이라는 측면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이야기다.

 

결과적으로 자세히 살펴보면, 보건의료노조 뿐만 아니라 우리은행을 비롯한 은행 업계의 비정규직 대책은 산업과 업종의 특성과 비정규직의 업무형태, 현장 노사의 이해관계가 찾은 접점 속에서 나온 결과물들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비정규직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이들 사례에서 나타난 특징들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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