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은 먼데 곳곳에 암초
갈 길은 먼데 곳곳에 암초
  • 박석모 기자
  • 승인 2007.1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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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 Up_덩치 커지는 은행노조
③ 조직통합의 걸림돌

서로 출신 따지면 통합은 요원

우리나라 은행들은 외환위기 이후 여러 차례의 은행 간 합병을 거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 1차 금융구조조정 과정에서 퇴출된 5개 은행에 대한 합병을 시작으로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끼리의 합병, 대형화를 위한 합병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다양한 합병을 경험했다.

 

은행의 합병에 따라 각 은행에 존재하던 노동조합들도 조직을 통합했거나 통합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조직통합과정이 비교적 순탄한 곳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격렬한 갈등을 수반한 곳도 있다. 우여곡절 끝에 조직통합이 된 곳도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각각의 사례들 속에서 나타나는 조직통합의 걸림돌은 어떤 것들일까?

 

 

제도 통합은 조직통합의 첫 걸음

조직통합을 방해하는 요소 중 가장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제도의 차이다. 은행 합병 이전에 각각의 은행은 각기의 고유한 제도를 가지고 있다. 임금체계도 다르고 직급과 승진체계도 다르다. 각 은행에 소속돼 있던 구성원들도 해당 시스템에 익숙하다. 그런데 갑자기 은행이 합병함으로써 고유한 시스템을 변경해야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가 될 수밖에 없다. 자신에게 익숙한 옷을 낯선 새 옷으로 바꿔 입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은행과 서울은행의 통합은 이런 제도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통합 전 하나은행은 직무성과급제를 임금체계의 기본으로 하고 있었고, 서울은행은 호봉제를 실시하고 있었다. 합병은행이 두 제도를 동시에 적용할 수는 없다.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는 구성원들에게 각기 다른 임금제도를 적용하는 것은 업무효율의 저하는 물론 구성원들 사이에 갈등의 골을 만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어느 한 제도를 강제할 수도 없다. 제도를 변경해서 적용받는 구성원들은 그 임금제도가 더 유리하다 할지라도 차별이라고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두 은행이 서로 다르게 적용하던 임금제도를 통합하는 것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하나은행의 경우 직무성과급제를 기본으로 하고 각각의 호봉을 인정하는 절충적인 제도를 이끌어 내기까지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비단 임금체계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직급과 승진체계의 차이가 문제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조흥은행과 신한은행의 사례가 그렇다. 직급과 승진체계의 차이는 임금의 차이로 귀결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구성원들에게는 민감한 문제이다. 조흥은행은 단일호봉제를 기본으로 했기 때문에 승진의 늦고 빠름에 따른 영향이 적은 반면 신한은행은 직급별 호봉제를 기본으로 해서 승진이 늦어지면 그만큼 임금격차가 커지는 구조였다. 이에 대한 조정은 조직통합을 눈앞에 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제도의 차이를 조정해야 하는 것은 이 외에도 단체협약, 후생복리제도, 업력의 차이 등 구성원들의 직장생활 전반에 걸쳐 있다. 어느 하나의 문제도 소홀히 취급할 수 없는 문제이다 보니 이런 제도의 차이를 통합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통합 전 양쪽의 제도를 파악해서 통합 후 가장 알맞은 제도를 설계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 제도를 구성원들에게 적용하기 위해 설득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하는 방식도 맞춰야

통합하는 양 은행 간의 이질적인 업무시스템도 장애물이 된다. 은행의 경우 특히 중요한 것은 전산시스템이다. 거의 모든 업무가 전산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전산시스템을 통합하는 것은 구성원들의 업무효율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두 은행의 전산시스템이 서로 엇비슷할 때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반으로 하고 있는 운영체제가 다르거나 같은 운영체제라 하더라도 시스템이 전혀 다른 것이라면 문제가 크다. 이럴 경우 어느 한 쪽 시스템에 맞추거나 제3의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해서 표준으로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경우나 자신이 익숙한 시스템을 버려야 하는 구성원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들은 새로운 시스템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업무를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의 스트레스가 된다. 그래서 서로 다른 시스템을 가진 은행이 합병하게 되면 표준방식이 어느 것으로 결정되느냐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전산시스템의 차이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많았던 곳은 KB국민은행이다. KB국민은행은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합병으로 초대형은행으로 거듭난 곳이다. 두 은행 모두 IBM을 기반으로 하는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었기에 전산시스템을 공유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문제는 두 은행 모두 합병을 앞둔 시점에서 차세대 전산시스템을 따로 개발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개발에 투자된 막대한 자금은 물론 각각의 구성원들의 업무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었기 때문에 서로 자신의 시스템을 주장했다. 외부 컨설팅업체의 도움을 받아 결국 주택은행의 시스템을 채택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의 저항은 매우 심각했고, 통합과정에서 은행 내부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이 가장 심했던 시기이다.

 

출신을 따지지 않는 조직문화 필요

무엇보다도 조직통합을 어렵게 하는 것은 조직문화의 차이다. 각 은행마다 독특한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조직문화는 그 은행이 발전해오는 과정에서 오랜 시간동안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한 순간에 바뀔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은행에 입사해서부터 그런 조직문화에 동화되어 왔던 구성원들이 새로운 조직문화를 받아들이고 익숙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더구나 입사 후 오랫동안 동료들과 호흡을 맞춰 와서 익숙한 업무스타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구성원들과 호흡을 맞춰야 하는 것은 스트레스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때문에 사소한 차이로 갈등이 생기기 쉽다. 이럴 때 어느 은행 출신이냐는 것을 따지기 시작하면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기도 한다. 

 

조직통합 후 새로운 조직문화의 형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출신을 따져서 구성원들끼리 편을 가르면 조직을 통합한 목적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조직통합을 경험한 어느 은행에서도 이런 부분은 쉽사리 극복되지 않는 어려움 중 하나다. 구성원 사이의 마찰이 있을 때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기보다는 출신을 따지는 것이 훨씬 쉽고 간단하다.

 

비단 이런 문제들뿐만 아니라 흡수합병의 경우 흡수된 쪽의 분위기가 위축되는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또 조직통합에 있어서 서로 기득권을 고집할 경우 통합은 그만큼 멀어질 수밖에 없다. 서로 다른 두 조직이 만나서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 그리고 양보가 없다면 통합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경영진이 통합에 얼마나 열의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도 통합의 속도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