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조직의 화학적 융합, 이것이 필요하다
주도적인 참여로 통합의 시너지효과 극대화 가능
두 개의 조직이 서로 물리적으로 통합하는 것은 진정한 어려움이 아니다. 물리적인 통합이 화학적인 융합으로 이어지지 않을 경우 통합의 시너지효과는커녕 분란만 부채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한 어려움은 조직의 화학적 융합이 성공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
현재 금융노조 산하에서 통합을 경험한 지부는 우리은행지부를 필두로 KB국민은행지부, 하나은행지부가 있고, 조흥은행지부와 신한은행지부는 통합을 앞두고 있다. 이들 지부들은 통합과정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표면으로 드러난 것만으로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조직이 화학적으로 융합해야 한다는 점은 통합을 경험한 모든 지부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과제다.
어느 곳에서 갈등이 발생할지 모른다
조직통합과정에서, 또 통합 이후 갈등은 여러 곳에서 발생한다. 우선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의 합병을 제외하면 구성원들의 동의를 통해 합병이 이뤄진 곳이 없다. 누구라도 자신의 직장생활이 크게 변화하는 걸 원하는 사람은 없다. 더구나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데 외부적 환경의 변화 때문에 자신이 변화해야 한다면 그런 변화에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금융구조조정의 과정에서 전례 없던 금융노동자 총파업이 발생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당시 총파업의 요구사항은 ‘강제합병 저지’였다.
합병 후 두 조직의 통합과정에서도 갈등이 발생한다. 우선은 업무에 있어서 서로 자신이 속한 조직의 업무시스템을 채택하기 위한 갈등이 발생했다. 특히 은행에서 중요한 전산시스템을 둘러싸고 어느 시스템을 선택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KB국민은행은 어느 한 쪽의 시스템을 택함으로써 갈등이 증폭된 경우이다. 반면 갈등을 피하기 위해 분야를 나누어 전산시스템을 따로 수용한 우리은행의 경우 갈등을 줄일 수는 있었으나, 향후 새로운 전산시스템을 개발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됐다.
또한 가장 첨예한 갈등이 표출되는 곳은 구성원 개인의 신상에 관련되는 제도의 통합이다. 임금과 인사제도, 평가, 복지 등 구성원들의 신상에 관련되는 부분이기에 변화에 가장 민감한 반응이 나타나고, 반응의 정도도 격렬하다.
통합은 상대방이 있는 과정
이런 갈등의 과정은 조직의 화학적 융합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해소되기 어렵다. 금융노조 김재현 정책본부장은 “현실적으로 물리적 통합도 이뤄지지 않았는데 화학적 융합을 이야기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결국은 노조가 하기 나름”이라고 말한다. 노조가 조직의 화학적 융합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에 따라서 통합이 빨라질 수도, 더뎌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직통합을 위한 활동에 대해서 조합원들이 선거를 통해 평가할 것”이라는 게 김 본부장의 생각이다.
조흥은행지부 김득연 정책국장은 갈등에 대해 “통합 집행부를 구성해도 내부에서 분란이 있을 수 있지만 통합 전에 민감한 문제를 해결하고 가자는 입장”이라면서 “꺼내놓고 이야기하면서 상호존중과 단결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 문제 해결을 앞당길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조직통합은 상대방이 존재하는 과정이기에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없다면 어느 것도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신한은행지부 강동한 부위원장도 상호존중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덧붙여서 “노동조합부터 출신을 따지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현장에서는 아직 조직문화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며, 이 문제는 단기간에 극복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서로 출신을 따지고 기득권을 지키려고만 하면 조직통합은 그만큼 더 멀어진다는 것이다.
한편, 경영진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도 있다. 통합 은행의 경영진이 조직통합에 대해 얼마나 열의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통합과정이 단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은행지부 모간부는 “하나은행지부와 서울은행지부가 통합하는 데에 하나은행 경영진은 걸림돌이 됐다”며 경영진의 태도를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경영진의 입장에서 볼 때 통합된 조직이 대외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에는 유리하지만 노동조합이 나뉘어 있으면 상대적으로 관리하기가 쉬울 것”이라며, “하나은행 경영진은 하나은행지부와 서울은행지부 사이에 갈등을 부추기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은데 경영진의 방해까지 극복해야 했기에 통합과정이 더 힘들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경쟁상대는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조직통합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통합하는 주체들의 마음가짐이다. 은행 합병이 구성원들의 이익이 아닌 주주들의 이해를 위한 합병이었다고 하더라도 조직통합의 주체는 구성원들이다. 내가 원하는 변화가 아니었지만 이미 통합은 현실적인 과제이다.
“은행 합병이 구성원들이 아닌 주주들에 의해 결정됐다고 해서 조직통합도 외부의 결정에 따라야 하겠습니까? 조합원들에게 조직통합을 주도할 것인지 아니면 따라갈 것인지는 우리 손에 달렸다는 점을 자주 이야기합니다.” 조흥은행지부 이용규 위원장의 이야기다. 남 탓만 하고 있는 동안 조직통합 역시 구성원들의 손을 벗어난다. 강제로 은행이 합병됐던 것처럼 조직통합에 있어서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구성원들이 주체로서 통합과정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때 비로소 구성원들을 위한 통합이 가능해진다. “좁은 은행 안에서 직원들끼리 서로 경쟁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경쟁상대는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밖에 있습니다. 넓게 보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신한은행지부 이건희 위원장은 더 넓은 시야로 미래지향적인 조직통합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주문한다.
앞으로 또 다시 금융구조조정이 있을 것으로 예측하는 이들이 많다. 금융경제연구소 이종태 연구원은 “자본시장통합법이 통과됨에 따라서 은행과 보험, 증권 사이의 업무분리가 무너질 것이고, 이제는 은행 간 경쟁뿐만 아니라 제2금융권과의 경쟁도 촉발될 것”이라며 “경쟁이 점차 격화되면 살아남기 위한 인수합병이 늘어나 결국 3~4개의 대형은행이 남을 때까지 금융구조조정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금융구조조정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그 속에서 조직통합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는 지금 어떤 준비를 하는가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