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풍에도 감기 드는 ‘약골’ 체질이 문제
미풍에도 감기 드는 ‘약골’ 체질이 문제
  • 박석모 기자
  • 승인 2008.07.21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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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충격 고스란히 받는 운수업, 고유가에 ‘휘청’
조정능력 상실한 정부, 눈앞 문제 덮기에만 급급

운수산업이 몸살을 앓고 있다. 6월 13일부터 시작된 화물연대의 파업은 1주일 동안 물류를 멈췄다. 화물연대에 이어 6월 16일 시작된 건설기계분과의 파업도 한 달을 넘기고 있다. ‘시민의 발’ 버스와 택시도 운행해봐야 적자만 쌓인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바퀴 산업’은 지금 어떤 모습인가? 무엇이 문제이고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온라인 <참여와혁신>이 운수산업의 고민을 들어봤다. 각 부문별로 <참여와혁신> 홈페이지를 통해 운수산업의 현재와 문제점, 해법 모색을 위한 고민을 싣는다.

취재과정에서 부문을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문제들을 살펴보고 택시산업부터 각 산업의 문제를 연재한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고유가 대책 … 언 발에 오줌 누기

지난 6월 8일 정부가 발표한 고유가 대책. 눈에 띄는 것은 유가보조금 지급에 대한 사항이다. 정부에서는 경유 가격 ℓ당 1800원을 기준으로 해서 이를 넘어서는 부분에 대해서는 50%를 보조금으로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 발표에 대해 화물자동차산업과 버스산업에서는 미흡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라고 일축한다. 더구나 건설기계는 유가 보조금 지급대상에서 빠져 있고, 택시가 사용하는 LPG 대책은 언급되지 않았다.

화물자동차와 건설기계의 경우 유가는 모두 차주가 부담한다. 산업의 구조상 독립적인 사업자로 등록된 차주는 유가, 관리비 등 차량과 관련된 모든 비용을 부담하는 구조다. 따라서 운송료를 받아서 비용을 지출하고 남는 금액이 수입이다.

문제는 차주가 부담하는 비용 중 유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60%에 이른다는 점이다. 매년 운송료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가운데 유가와 각종 비용만 인상돼 차주가 벌어들이는 수입만으로는 생활이 곤란할 정도로 한계상황에 이르렀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택시도 개별기사들이 유가를 부담하는 구조다. 회사에서 유류를 지급하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운행이 어려워 개별기사들이 부족한 LPG를 충전한다. 이런 구조에서 개별기사들이 부담해야 하는 LPG 가격은 연초에 비해 ℓ당 170원 정도 늘었다. 월간 적게는 10만 원에서 많게는 30만 원까지 부담이 늘어난 것이다.

버스라고 다르지 않다. 버스는 준공영제를 시행해 각 지자체가 통합적으로 수입을 관리하고 배분해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급등한 유가로 인해 버스산업이 지출해야 하는 비용도 그만큼 늘었다. 준공영제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정부가 내놓은 고유가 대책은 그야말로 ‘언 발에 오줌 누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것이 운수산업 관계자들의 말이다. 건설노조 건설기계분과 오희택 교육선전실장은 “정유사들은 원유 가격이 올랐다고 기름 값을 올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기름 값이 올랐다고 안 쓸 수는 없는 것 아니냐? 기름 값이 오르면 그에 대한 완충장치도 없이 그대로 충격을 받아야 하는 것이 건설기계”라며 고유가로 인한 어려움을 설명한다. 오 실장에 따르면 “현재의 가격으로는 도저히 수익을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산업 구조가 비슷한 화물자동차의 경우도 오르는 유가의 충격을 고스란히 감수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 충격은 모두 차주가 받아 안아야 하는 짐이다. 이런 이유로 전국화물자동차운송주선사업연합회 한영태 전무는 “차주가 매출과 비용을 고민해야 하는 사실이 그 자체로 문제다. 왜 운송회사가 고민해야 할 일을 차주가 고민하나? 이는 근본적으로 개인차주제 때문에 생긴 일”이라며 지입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이번엔 넘어가도 더 큰 문제 기다린다

운수산업 관계자들이 지적하는 또 한 가지 문제는 정부의 조정능력 상실이다. 올해처럼 급격하게 유가가 오른다거나 하는 경우에 정부가 제대로 된 조정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공통된 말이다.

운수산업노조 화물연대본부 박상현 법규부장은 “거의 매년 화물연대가 제기하는 문제들에 대해 정부는 ‘이번만 넘어가면 그만’이라는 태도로 접근한다. 설령 파업이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덮여질 뿐이다. 다음해에는 같은 문제가 더 증폭된 채로 나타나거나 새로운 문제가 제기된다”며 정부가 미봉책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한다.

화물주선사업연합회 한영태 전무도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자꾸 미봉책으로 일관하지 말고 규제가 필요한 부분은 합리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이해관계자들이 수긍할 수 있는 개선책을 제시해야 한다”며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택시노련 임승운 정책국장도 “현재의 난국을 풀기 위해 가장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정부다. 결국 정부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적극적인 의사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해결이 빨라질 수도, 진통을 겪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부가 미봉책으로 일관하며 당장의 문제를 덮기에만 급급해하는 한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기는커녕 매년 똑같은 주장의 변주곡들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다.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같은 문제들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체질을 개선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이미 수십 년 동안 구조적으로 쌓인 문제다. 한 순간에 해결되지 않는다고 조급하게 굴지 말고 이해당사자들과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책상에 앉아서 오라 가라 하지 말고 직접 현장에 나와서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하는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한영태 전무의 충고를 귀담아 들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