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과 조합원 속에 답이 있다
현장과 조합원 속에 답이 있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08.07.30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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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특집Ⅱ] 대한민국 노동조합을 말하다 ⑧-1 현장에 밀착하라
현장으로부터 위기 극복 첫걸음 떼야
조합원 찾아 현장으로 간 노조

어떻게 보면 노동조합 활동에 있어 ‘현장’은 참 고전적인 화두다. 노동조합이 탄생한 이래, 평상시건 위기상황이건 항상 제일 먼저 강조되는 것이 현장이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현장’이 답이라는 얘기는 달라지지 않았다.

많은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현장과의 밀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합원들과의 직접적인 대화 방법을 찾아내려고 하고, 현장을 방문하고, 또 술자리를 함께 하면서 조합원들의 얘기에 귀 기울인다.

문제는 이런 ‘현장 강화’가 일회성 ‘이벤트’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시작은 거창하게 했더라도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조합원들 입장에서는 “또 이러다 말겠지” 하고 외면하는 것이다.

▲ G노조는 조합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전임자 현장 근무'를 약속했다.

또 진짜 현장은 놓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조합원들에게 현장이란 그들이 노동하고 있는 그 곳, 작업장의 고민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단순한 고충처리 정도가 아니라 작업의 공정부터 근무 패턴, 심지어는 작업 공구에 이르기까지가 모두 현장이다.

우리는 쉽게 노동이 도구화되었다고 얘기한다. 더 이상 노동이 즐겁지 않고 단순한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한탄한다. 이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현장의 문제에 개입하는 것이다.

직접 만나야 신뢰 회복된다

조합원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G노조를 소개하기 위해 사무실로 연락을 했더니 한사코 익명으로 다뤄달라고 이야기한다. 노동조합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데 특별히 사례로 소개되는 것이 쑥스럽다는 것이다.

G노조는 몇 년 전 파업으로 인해 후유증이 심각했다. 파업 이후 조합원들은 마음을 굳게 닫아버렸다. 파업은 노사 모두에게 심한 상처를 남겼고, 노조는 파업 이후 조합원들을 지킬 힘이 없었던 것. 이로 인해 조합원들이 노조를 믿지 못하고 조합원들끼리도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파업 이후 선출된 집행부는 조합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전임자 현장근무’를 약속했다. 전임자들이 노조 사무실만 지키고 앉아있는 대신 매주 1회 현장 조합원들과 함께 근무를 하고 있다.

G사는 현장직의 경우 3교대 근무를 시행하고 있는데, G노조 전임간부들은 매주 금요일 오후근무를 조합원들과 함께했다. 매주 금요일 오후 3시가 되면 그 주에 근무할 현장을 찾아 밤 11시까지 함께 근무했다.

처음에는 조합원들도 긴가민가했다. 일부에서는 ‘쇼’를 한다며 색안경을 끼고 보는 조합원들도 있었다. G노조 전임간부들은 그냥 함께 땀 흘리는 모습을 조합원들에게 보여주었다. 애로사항이 뭐냐, 필요한 것이 뭐냐 같은 의도적인 질문은 하지 않아도 함께 땀 흘리면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뤄졌다.

처음 어색해 하던 조합원들도 8시간 동안 함께 근무하면서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11시에 근무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간단한 술자리가 이어졌다. 술자리에서는 이미 함께 땀 흘린 사이라 어색함은 허물어지고 자연스럽게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나왔다. 파업 이후 쉽게 이야기하지 못했던 회사에 대한 불만이나 노조에 대한 불만을 꺼내기도 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꾸준히 진행하다보니 처음에는 의심하던 조합원들도 이내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G노조 P사무국장은 “이런 활동이 조합원과의 의사소통과 신뢰회복에 크게 도움이 됐다”고 평가한 뒤 “앞으로도 조합원들의 의견에 따라 방식은 바뀔 수 있지만 현장근무를 계속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P사무국장은 “집행부가 전임자 현장근무를 고민한 데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가장 크게는 노조와 조합원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신뢰를 회복하려면 조합원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하면서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조합원들을 직접 만나기 위한 활동이 전임자 현장근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조합원들의 노조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려야 했다. 조합원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관심을 가져주십시오’라고 호소만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집행부가 솔선수범해서 한 번이라도 더 얼굴을 보이고 관심을 유도해야 한다”는 점도 덧붙였다.

G노조 집행부는 또 현장을 순회하면서 조합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 것이 조합원들과의 의사소통을 위한 기본이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조합원들의 근무환경이 어떻다고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직접 체험을 해봐야 조합원들의 어려움을 알 수 있고 올바른 정책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G노조 집행부는 이런 목적으로 2007년 한 해 동안 각 팀으로 나뉘어 있는 현장을 순회하며 조합원들과 함께 땀을 흘렸다. 올해 초에는 19차례에 걸쳐 조합원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는 일근부서(상시 주간근무부서) 조합원들의 고민이 많이 제기됐다. 일근부서 조합원들은 전체 조합원 중 40% 정도인데, 전임자 현장근무에서는 이들의 고민을 제대로 듣지 못했던 것.

이에 따라 G노조 집행부는 일근부서 조합원들과 함께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 그 결과 올해 상반기에는 현장부서 근무 대신 일근부서 퇴근시간에 맞춰 ‘족구간담회’를 실시하고 있다. 매주 금요일 5시에 각 일근부서를 순회하며 해당 부서 조합원들과 족구 경기를 통해 함께 땀을 흘린다. 그 후 저녁식사를 함께하며 일근부서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P사무국장은 “올해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전임자들이 현장을 순회하며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조합의 행사나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며 “물론 현장에 가면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비판이 두렵다고 현장에 가지 않는다면 집행부에게 주어진 임무를 방기하는 것”이라는 말을 꼭 전해달라고 당부했다.

조합원이 아쉬워하는 것 찾아라

SK텔레콤노동조합 수도권마케팅본부는 2007년 새롭게 탄생한 지역본부다. SK텔레콤노조는 네트워크와 마케팅이 함께 있던 수도권본부에서 마케팅을 따로 떼 별도의 본부를 구성했다. 수도권마케팅본부(이하 수마본)를 처음 이끌게 된 이는 김봉호 본부위원장은 올해 처음 실시된 본부위원장 직접선거에서 98%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당선됐다.

별도의 지역본부로 새로 출범하다보니 처음에는 체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기도 했다. 노조활동이 처음인 김 본부위원장에게도 노조가 생소하기는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고민 끝에 그는 “답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그동안 밥 먹으면서, 술 한 잔 하면서, 일 하면서 노조나 회사에 아쉬웠던 부분, 안주거리로 삼았던 이야기를 찾아서 하면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수마본은 본조에서 해결할 때까지, 노사협의회에서 해결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조합원들에게 필요하고 할 수 있는 일은 오늘 당장 한다. 작은 일이라도 거기에서 출발하자는 것이 김 본부위원장의 생각이다.

첫 사업은 여직원 휴게실 리모델링. 소외된 사람부터 챙기자는 의미였다. 이어서 올해는 식당을 개선했다. 인프라도 중요하지만 컨텐츠인 ‘맛’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식당품평회를 열어 다음 주에 나올 식단을 미리 평가한다. 이런 노력을 통해 이제는 외부에서 친구나 손님을 데리고 와 식사를 함께할 정도로 개선됐다.

매주 수요일은 패밀리데이다. 토·일요일에도 업무로 출근을 많이 하는데 수요일 하루만이라도 6시에 퇴근하자는 것. 마케팅본부는 성격상 6시 퇴근이 어렵다. 김 본부위원장은 이것을 우려해 처음부터 전체 사무실을 돌고 있다. 퇴근하라고 메일도 보내고 팀장들에게도 퇴근을 독려했다. 이젠 수요일은 5시만 되면 왜 메일 안 보내느냐, 왜 안 오느냐며 조합원들이 기다릴 정도가 됐다.

김 본부위원장은 이번 노사협의회를 통해 육아외출이나 육아휴가를 제도화 시켰다. 자녀를 둔 여성 조합원들이 급식당번이나 청소당번 때 학교에 가지 못하면 엄마들 커뮤니티에 끼지 못해 자녀들이 ‘왕따’를 당할 수도 있기에 만든 제도다.

김 본부위원장이 수마본의 모토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전국에서 가장 만만한 본부위원회’다. 신입사원들이 처음 본부노조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김 본부위원장은 ‘취침교육’을 실시했다. 노조에서 교육하면 으레 노조가 어떻고 조합원의 권리가 어떻고 하는 내용들이 나오기 마련이지만 그게 한 번 교육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고 앞으로 볼 기회도 많다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 교육 받느라 피곤할 테니 편하게 잠이라도 잘 수 있게 해 거부감을 없애자는 취지였다.

수마본의 모토처럼 노조사무실은 만만하다. 항상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중에는 팀장도 섞여 있다. 김 본부위원장은 “노조는 편안한 만남의 장소가 돼야 한다”며 “그렇게 일상적인 만남이 이루어지고 그 안에서 소통이 되면 단결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김 본부위원장은 “조합원들과 나누는 이야기 속에 답이 있고 아이디어가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조합원들과 많이 이야기하고 조합원들이 묻는 것은 반드시 대답한다. 좋은 아이디어는 칭찬해주고 꼭 피드백을 해준다. 또 “앞뒤 다 자르고 결과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과 함께 과정을 이야기하다보니 조합원들도 결과가 크든 작든 관심 있게 받아들인다”는 게 김 본부위원장의 이야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조합원들과 소통하기 위해 많은 노동조합 간부들이 노력하고 있다. 그 노력의 중심에는 조합원이 있고 조합원이 일하는 현장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 물론 그런 노력만으로 노동조합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현재 당면하고 있는 위기를 극복하는 첫 걸음은 언제나 현장 조합원들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점 또한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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