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교섭 1년, 왜 신도리코는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가
단체교섭 1년, 왜 신도리코는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가
  • 손광모 기자
  • 승인 2019.07.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성우 금속노조 신도리코분회장 인터뷰
강성우 금속노조 신도리코 분회장 ⓒ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강성우 금속노조 신도리코 분회장 ⓒ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부조리는 노동자를 투사로 만든다. 50년 전 전태일이 그랬던 것처럼 현실의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금속노조 신도리코분회의 강성우 분회장이 그런 사람이다. 그는 스스로 “노동문제나 진보적 사상에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공대출신’이었다고 자신을 평가했다.

불합리하다는 문제의식. 강 분회장의 가슴 속에서 피어난 문제의식이 그로 하여금 험난한 길을 걸어가도록 했다. 지난해 6월 7일 강 분회장은 신도리코 사상 최초로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그러나 사측과의 단체교섭은 쉽지 않았다. 올해 5월 14일에는 본사 앞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농성에 들어간 지 어언 두 달. 강성우 분회장은 여전히 신도리코 본사 앞을 지키고 있었다. 지난 금요일(12일), <참여와혁신>은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떼인 돈 받아내려다 … 문제 인식

서글서글하게 큰 눈에는 유쾌함이 서려있다. 웃는 상이지만 말투에는 단호함이 묻어 있었다. 지난 두 달 간의 농성에도 지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강성우 분회장은 2014년 12월 신도리코에 입사해 자동스캐너를 개발하는 업무를 맡았다. 신도리코의 주요 제조라인이 중국 청도와 베트남 하노이로 이전한 상태다 보니 출장이 잦았다. 살인적인 업무강도. 강 분회장의 가슴 속에 피어난 첫 번째 문제의식이었다.

“원래 저는 노동문제라든가 진보적인 사상에 전혀 관심 없었어요. 처음 문제의식을 자각하게 된 계기는 베트남 출장이었습니다. 긴박하게 일이 돌아가고 제한된 시간 안에 일을 모두 끝내고 와야 했죠. 어떤 때는 근무기록을 보니 주에 70시간을 일하기도 했었어요. 베트남은 주 6일제 국가인데 거기에 맞춰서 토요일까지도 일을 했어요. 당시에 몸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왜 60시간이 과로사의 기준인지 몸소 체험했었죠. 뉴스에 과로사 문제로 한창 떠들 때는 관심도 안 가지다가 막상 70시간을 넘어보니 몸에 이상이 왔음을 느꼈어요.”

주 40시간. 근로기준법은 주40시간이 넘을시 초과노동으로 규정한다. 기준임금에 추가하여 초과근로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강 분회장은 주 70시간을 일하면서도 초과노동에 대한 몫을 받지 못했다.

“이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정근로시간, 주 40시간 기준을 잘 몰랐어요. 하지만 내가 이렇게 일을 많이 했는데 추가 수당을 안 받는 건 이상한 것 같다는 문제의식이 들었죠. 그래서 사규도 처음 읽어 봤고, 근로기준법도 처음 보기 시작했어요. 읽어보니까 40시간 기준이었어요. ‘일을 더 했는데 왜 돈을 안 줬지?’ 이렇게 의문이 진행됐죠. 그래서 상담을 받아봐야겠다. 마침 동네에 걸려있던 노무 상담 현수막을 봤어요. 그 현수막에 적힌 번호로 연락을 하니 무료 상담 가능하다고 해서 처음 찾아간 그곳이 금속노조 동부지역 사무실이었어요.”

ⓒ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폐쇄된 신도리코 본사 정문 앞 조합원들의 모습 ⓒ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신도리코분회는 전국금속노동조합 서울지부 동부지회 소속이다. 하지만 그때는 아무도 노동조합 결성까지 기대하지 않았다. 강 분회장도 임금체불로 금속노조를 찾아오는 수없이 많은 사람에 불과했다. 하지만 두 번째 부조리가 강 분회장을 붙잡았다. 회사에 정당한 요구를 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회사를 떠나야만 했다.

“그때 노무 상담은 노동조합 결성 그런 건 전혀 아니었어요. 정말 노무사님이 제가 겪었던 상황을 듣고 상담을 해주신 거죠. 이런 상황이 ‘임금 체불’이고, 소송을 걸면 받을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런데 새로운 화두가 나왔어요. “근데 그걸 받아내고 회사계속 다니실 건 아니지요?” 이렇게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굉장히 당황했죠. 당연히 받아야 될 걸 받는데 왜 그렇게 되냐고 물어봤는데, “생각을 해보라 회사에 반기를 든 거다. 정상적인 회사생활은 불가능하다. 그 생각하고 해야 된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촛불 혁명', 노동조합’ 결성의 계기

강 분회장은 소송하기를 그만두고 회사를 계속 다녔다. 하지만 혼자만의 ‘준법투쟁’을 시작했다. 자체적으로 주 40시간이 넘어가는 근무는 거부했다. 또한 틈틈이 노동법 강좌를 듣는 등 공부도 열심히 했다. 그러면서 강 분회장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사원복지회’였다. 사원복지회는 신도리코 자체에서 운영하는 노사 조정기구다.

“사원복지회는 노동자가 매달 건의사항을 내고 회사가 처리하는 기구예요. 거기에 제가 건의를 했는데, 돌아온 답변은 뻔했어요. 그래서 제가 저기 회장을 해보자 생각하고 출마를 했죠. 그런데 도맡아서 하다보니까 회사의 문제점이 자꾸 더 보이는 거예요. 정당한 요구 건의를 해도 이리저리 돌리면서 회사가 피하니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게 맞기는 한데, 절이 이런 식이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온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이걸 그냥 두는 거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 같고…. 그 때 머리가 참 복잡했죠. 회사의 부당한 대우가 납득이 안됐어요. 정의감이 컸지만 또 일도 엄청 커서 감당이 안됐어요.”

생각과 행동사이에서 어쩌지도 못하고 있던 강 분회장에게 가장 필요했던 건 ‘용기’였을 테다. 강 분회장에게 용기를 준 건 다름 아닌 시민과 사회였다. ‘촛불 혁명’이 한국을 휩쓸었다.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는데, 촛불 혁명으로 정권을 딱 바뀌는 거예요. 이제 우리도 해볼 수 있다. 그렇게 생각을 했죠. 정권이 바뀐 그 해에 사원복지회 회장에 다시 한 번 나갔어요. 연임 때는 노동조합 결성을 염두하고 임기를 시작했어요. 사원복지회를 하면서 얻은 인지도를 기반으로 2018년 6월 7일에 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되었죠. 부당함을 다들 느끼고 있더라고요. 사실 제가 느끼는 부당함은 양호했어요. 취합을 하니까 어마어마한 것들이 튀어 나왔죠. 오히려 제가 처음 느낀 문제는 없어졌어요. 연장근무 없는 문화가 정착이 되었죠. 그래도 나머지 문제들을 해결하자고 생각했어요. 그런 걸 단체협약에 담았어요.”

1년 31차례 교섭동안 합의된 조항은 '0개'

신도리코분회는 2018년 6월 7일 설립되어 7월초부터 교섭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약 1년간 총 31차례 단체교섭이 진행됐다. 처음에 분회는 단체협약 조항을 126개를 내걸었지만, 회사의 요구로 105개로 줄였고, 현재는 100개 이하의 조항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파격적인 내용을 담은 조항은 없다. 법이 정하는 최소한의 노동조합 활동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전문조차 합의되지 않은 상태다.

“노동존중 시대에서 회사가 노동조합을 이렇게 다루구나 하는 걸 많이 느꼈어요. 회사는 교섭에는 성실하게 참석해요. 안을 주지 않았지만, 검토 중이고 신중하게 논의하고 있다고 말해요. 교섭해태를 걸기는 어려운 거죠. 이럴 때 딱 맞는 말이 ‘법꾸라지’에요. 교섭해태로 고소당하지 않을 수준을 유지하면서 사실상 교섭을 회피하는 거죠. 저희도 6개월까지만 해도 노동부에 가서 할 말이 별로 없었어요. 1년이 지나니까 회사가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죠. 법의 잣대를 어떻게 피해갔을지언정 노동조합할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어요.”

폐쇄된 신도리코 연구소 정문 ⓒ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폐쇄된 신도리코 연구소 정문 ⓒ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강 분회장은 분회장이기 이전에 신도리코의 성실한 노동자였다. 신도리코를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설득과 대화에 오래 걸릴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회사에 대한 기대는 사라졌다. 대신 회사가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확신은 커졌다.

“지난해 7월에 첫 교섭을 하고 쟁의권을 올해 1월에 얻었어요. 그 6개월 동안 제마음속에는 회사에 대한 믿음이 있었어요. 회사가 조직문화가 보수적이고 의사소통체계가 복잡해서 단체협약 100여 개 조항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시간을 더 주자. 그래서 교섭마다 항목을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었어요. 임금협약에서는 그런 입장까지 밝혔어요. 중앙노동위원회 가서 “임금인상 요구가 큰 게 아니다. 잘못된 문화를 바로 잡는 게 크다. 그러니 회사의 인상안을 노조에 내면 바로 합의해주겠다. 절차만 지켜지도록 하자”고요. 회사는 무시했죠. 그때 회사의 의중을 정확히 캐치할 수 있었어요. 회사는 노동조합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회사의 치부는 자신의 치부 … 복잡한 애사심(愛社心)

지난 7월 1일, 강성우 분회장은 회장실과 임원실이 있는 신도리코 본사 4층을 점거하고 집회를 열었다. 이에 회사는 출입문을 2개 남기고 모두 폐쇄 조치했다. 이어서 매스컴에 자극적인 ‘직장 내 갑질’ 사례가 보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강 분회장의 뒷맛은 썩 좋지 않다.

“저희가 어제(11일) 회사 내 직장 괴롭힘을 까발리는 기자회견을 했어요. 그걸 보면서 조합원들이 두 가지 감정을 말하더라고요. 회사에 세게 대응하니까 속 시원하기도한데, 왠지 눈물이 났다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사실 다들 어렵게 들어온 직장이고, 좋은 직장 갔다고 주변에서 박수 받으며 들어왔거든요. 그런데 실체는 그렇지 않았고 그걸 우리 손으로 까발리는 게 부끄러웠던 것 같아요. ‘왜 우리 회사 이래야 하냐’는 감정도 많이 가지고…. 조합원들끼리는 그런 얘기도 해요. 임원 저 사람들은 몇 년 있다가 나갈 사람들이고, 우리는 10년, 20년 다닐 사람들인데…. 우리가 더 애정이 있는 것 같다. 저 사람들은 회사의 미래에 관심이 없다. 자기 자리보전하면서 회사돈 몇 억 빼먹고 나가려는 사람 아니냐….”

폐쇄되지 않고 남은 2개의 출입문 중 하나. 보안직원이 오가는 사람들을 통제했다. ⓒ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폐쇄되지 않고 남은 2개의 출입문 중 하나. 보안직원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노동조합의 생리는 복잡했다. 회사를 공격하면서까지 노조의 요구를 주장하기는 부담스러웠다. 회사는 쉽게 다른 노동자를 구하면 되지만, 노동자에게 회사는 삶의 터전이다. 하지만 강 분회장은 이제 어느 정도 결심이 선 듯하다. 회사보다 더 회사를 위해서 노동조합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 분회장은 말한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몇 번 항의하면 끝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본사 앞에서 농성을 한다는 것 자체가 회사로서는 굉장히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거든요. 여기서 담배도 못 피고, 회장실이 바로 위이고, 고객 응대실도 가깝고, 임원들 모이면 풍경 보면서 회의하는 그런 장소예요. 저희도 기획할 때 회사가 이미지 손상을 못 견딜 거라고 예상했어요. 근데 벌써 60일을 견디거든요. 정말 회사가 노동조합을 탄압하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법에 안 걸리는 선에서 버티고 해산을 주도 할 것이라면, 우리도 나서야죠. 금속노조도 만만한 조직은 아니잖아요. 지금 제일 압박받고 있는 사람이 전데, 제가 나가떨어지더라도 조직들이 달라붙을 수 있거든요. 꼭 이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