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만난 노동] “우리에겐 하루를 살아갈 용기가 필요합니다”
[책에서 만난 노동] “우리에겐 하루를 살아갈 용기가 필요합니다”
  • 김란영 기자
  • 승인 2019.0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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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는 아이’는 또 다른 우리 모습
하루를 살아갈 용기 얻었으면

[인터뷰]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저자 은유 

슬프고, 아팠다. 기자는 책을 편 주말 내내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한 장을 넘기고, 울다가, 그쳤다가 또 다음 장에서 눈물을 쏟았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앞에서 한없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아이 잃은 부모의 음성을 바로 듣기가 쉽지 않았다. 은유 작가는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에서 현장실습생 고 김동준 군을 시작으로 9명의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그는 현장실습생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나열하지 않았다. 병렬식 이야기 속에서 독자가 지식을 축적하기보다, 살면서 만나 본 적 없는, 잘 알지 못하는 아이인 특성화고 학생들을 ‘피가 돌고, 영혼이 깃들 온전한 존재’로 만나길 바랐기 때문이다. 기자도 은유 작가의 방식을 본 따 그와 인터뷰한 내용을 1인칭 시점으로 정리해봤다. 인터뷰는 지난달 9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모 카페에서 진행했다. 

은유 작가
은유 작가 ⓒ 이현석 175studio@gmail.com

동준이를 둘러싼 사람들의 개인적인 삶의 이야기예요

특성화고를 나온 아이들이 안전하지 못하고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 사업장으로 많이 가요. 어떻게 보면 이 아이들이 우리 사회의 밑바닥 노동을 메우고 있던 셈이죠. 특성화고가 값싼 노동자의 공급책이 되는 거예요. 아이들은 학생이었다가 갑자기 노동자가 돼요. 학교에서 직장 예절 교육은 받아도 노동 인권 교육은 제대로 받지 못해요. 보호 장치도 없어요. 노동하지 않는 인간은 없잖아요.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일하는 사람을 존중하지 못해요. 나이가 어리고 공장에서 일하면 더욱 그래요. 특성화고도 직업학교로 존중하고 인정하기보다 집이 가난하고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이 가는 학교로 생각해요.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의 죽음을 들여다보면 우리 노동 전반의 문제가 보일 거라 생각했어요. 우리 노동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니까요.

이 책은 동준이를 둘러싼 사람들의 개인적인 삶의 이야기예요. 현장실습생 제도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아요. 대신 그 언저리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초점을 맞췄어요. 다들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특성화고 학생들도 그들의 평범한 이야기를 담으려 했어요. 동준이도 평범한 아이였던 거잖아요. 동준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면, 직장 생활을 하고 있을텐데. 동준이 또래친구들이나 후배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특성화고를 간 친구들은 왜 갔을까? 그곳에서 뭘 배웠고, 뭘 느꼈을까? 책을 보면 아이들이 동준이 사건도 잘 몰라요. 그런 일반적인 목소리를 담는 게 이 책의 목적이었어요.

이 아이들의 정체성이 현장실습생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죽는 순간 비운의 현장실습생으로 박제되고 만다. 그뿐인가. 죽어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군, ○○양으로 불려 나오기 바쁘다. 현장실습생 김군 혹은 이군이 아니라 오롯한 존재, 저마다 고유한 관계 속에서 경험과 기억을 쌓아갔던 복잡하고 다채로운 한 사람으로 기억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느낀 이유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중에서

“내일 난 제정신으로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요?" 그 말이 계속 환청처럼 들렸어요

동준이 어머니가 동준이가 쓰던 공책을 주셨어요. 동준이가 학교생활을 하면서 필요한 계획이나 메모들을 적어둔 공책이에요. 공책에는 동준이가 고2 때 쓴 자기소개서도 있고, 시험 계획을 세운 것도 있어요. 동준이가 SNS나 문자로 남긴 글들도 양이 꽤 됐어요. 그런 기록들이 참 소중하더라고요. 기록하지 않는 남자아이들도 많잖아요. 동준이가 그렇게 기록을 남겨줘서 고마웠어요.

“내일 난 제정신으로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요? 선생님 무서워요.” 그 말이 계속 환청처럼 들렸어요. 그렇게 활달하고 적극적이었던 아이가 그런 선택을 할 정도로 느꼈을 공포가 무엇이었을까. 어떻게 보면 형(회사 동료)이 그렇게 협박을 했어도 회사를 안 가거나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동준이가 그런 선택을 한 이유는 한가지로 환원이 될 수 없겠죠. 그래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동준이가 굉장히 섬세하고, 여린 아이구나. 그동안 존중받고 살았구나. 어머니 이야기를 들으니까 이해가 되더라고요. 자기 목소리를 내던 아이가 처음으로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는 상황을 맞닥뜨린거죠. 갑자기 라인에 들어가서 부속품처럼 자기 목소리를 잃어버리고, ‘술 마셔라’, ‘춤춰라’하니 얼마나 충격이었을까. 일도 서툴렀을 텐데, 그것을 기다려주거나 친절하게 대해주는 사람은 없고 못 하고 구박하고 때리고. 슬프지만 차라리 동준이가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가정에 조금이라도 노출되었더라면 나았을까?

엄마 입장에서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파요. 동준이 어머니는 동준이 하나만 바라보고 산 전형적인 한국의 엄마예요. 동준이 어머니는 동준이가 집에 오는 주말이면 아무 데도 안 가셨어요. 오로지 동준이. 동준이 어머니가 그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자식이 죽었는데, 어디에 무언가를 해 놓는 것이 이상하다.” 그래서 그냥 할아버지 산소에 뿌리셨대요. 복잡한 마음이셨겠죠. 동준이의 죽음을 마주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저도 큰아들이 있어요. 동준이가 한 살 형이에요. 인터뷰할 때 제 아이가 군대에 있었거든요. 행여나 잘 못 될까, 어디 맞지는 않을까, 그런 걱정에 잠이 안 왔어요. 그런데 동준이 어머니는 아드님을 그렇게 보내셨으니까 그런 슬픔엔 비교할 수 없어요.

아이를 뺀 세상은 지옥이다. 무심한 햇살 한줄기조차 마음을 짓누른다. 민호 군 아버지도, 동준 군 어머니도 따로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햇빛을 보는 게 미안”해서 커튼을 닫고 있다는 말을 똑같이 했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중에서

세월호 아이들도 그렇고 우리 사회가 너무 엉망이잖아요. 나이 어리면 함부로 대하고, 일 못 하면 무시하고, 구박하고. 소위 ‘좋은 회사’에서도요. 우리 아이도 그렇게 될 수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는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는 동준이 어머니의 말이 맞아요. 동준이 어머니는 2년에 걸쳐서 여러 번 뵀어요. 문자도 종종 하고요. 우리도 한번 보고 말 사람한테 깊은 이야기를 하지 않잖아요.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저자 은유 ⓒ 돌베개
은유 작가는 고 김동준 군이 사용하던 공책을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의 표지로 골랐다.  ⓒ 돌베개

우리에겐 하루를 살아갈 용기가 필요해요

책을 쓰면서 감정적인 부침이 컸어요. 녹취를 풀고 나면 며칠은 우울하고. 작업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어요. 책을 쓰는 동안에도 구의역 특성화고 아이들의 죽음이 이어졌어요. 그러다가 또 일주일이 지나면 묻혀버리죠. 그럴수록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마음과 한편으로는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이렇게 구조적인 모순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데. 회의감이 들었어요.

사람들은 동준이를 알지 못해요. 알려고도 하지 않아요. 몰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죠.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직장 생활이 힘들어도 왜 힘든지, 자신이 뭘 견딜 수 있는지 구체적이고 깊게 고민하지 않아요. ‘그냥 카드값을 내야 하니까 다니지’란 식이죠. 학교 교육의 문제라고 봐요. 학교가 뭘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고민할 기회를 안 주잖아요. 학생들에게 어느 대학을 갈 것인지만 묻죠. 노동 교육도 안 해요. 그러다가 학생들은 등 떠밀리듯 사회인이 돼요. 그러니까 힘들 때 자신을 지킬 힘 부족해요.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는데도요. 이 책을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사람들, 일을 힘든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모욕을 당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어떻게 힘을 내서 하루를 또 살아가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나도 회사 가기 싫었었지, 나도 괴롭힘을 당했었지. 하루하루 노동을 하면서 동준이와 같은 고민을 해봤을 사람들. ‘알지 못하는 아이’는 그런 노동자들 각자의 모습이기도 해요. 서문 제목이 ‘하루를 살아갈 용기’예요. 우리에겐 하루를 살아갈 용기가 필요합니다.

힘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에요. 읽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자기 자식은 죽지 않으니까 관심 안 갖는다”는 민호 아버지 말이 맞아요. 만일 사회 고위층 자식들이 죽어갔으면 이렇게까지 제도 개선이 안 됐을까? 아닐 것 같거든요. 제도 개선은 바라지도 않아요. 그렇지만 우리 부모들이 자식이 힘들다고 했을 때 “회사 안 가도 돼”, “학교 안 가도 돼” 그렇게 말해줄 수 있었으면 해요.

그런데 너나없이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삶이 과연 누구에게 이득이었을까. 지금에야 그는 질문을 던진다. 아들을 잃고 묻는다. 묻고 또 물으면서 알게 됐다. 자기 일에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자기를 돌보고 지키는 사람이 되는 게 더 중요하다. 힘들면 회사는 가지 않아도 된다. 나를 지키는 게 먼저다. 교과서에도 안 나오고 근로계약서에도 없지만 꼭 명심하라고 다른 동준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붙잡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중에서

[책에서 만난 노동] 서점에서도 ‘노동’은 그다지 인기 있는 분야가 못됩니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책을 통해 우리 노동에 대한 목소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들이 바라본 우리 노동, 우리의 삶의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요?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선 어떤 고민과 변화가 필요할까요? [책에서 만난 노동]을 통해 노동 책과 저자들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