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을 사랑으로”, 노동자에게도 적용을!
“희생을 사랑으로”, 노동자에게도 적용을!
  • 최은혜 기자
  • 승인 2019.10.04 00:23
  • 수정 2019.10.04 00: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평균 한 달 유류비 25만 원 드는데
교통보조비는 하루 4,500원 불과

[리포트]국가보훈처 보훈섬김이의 삶

‘국가를 위한 헌신을 잊지 않고 보답하는 나라’. 국가보훈처의 정책 목표다. 국가보훈처는 ▲보훈선양을 통해 국민 통합에 기여 ▲튼튼한 안보를 뒷받침하는 제대군인 지원 강화 ▲유엔 참전국 등과의 보훈 외교 증진 ▲보훈가족에 대한 보상 및 예우 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다.

국가보훈처의 주요 사업 중 하나는 바로 ‘이동보훈복지사업(이하 BOVIS)’이다. BOVIS는 Bohun Visiting Service 또는 Benefit of Visiting Service의 약자로 가사간병 등 찾아가는 재가복지 서비스를 비롯하여 요양 시설을 통한 시설보호, 여가선용 활동 지원 등 다양한 노후복지 시책을 뜻한다. BOVIS 사업에는 보훈복지사, 보비스요원, 그리고 보훈섬김이가 투입된다.

BOVIS 사업의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보훈섬김이. 그러나 보훈섬김이의 노동환경은 척박하다. 대표적인 가구 방문 노동자인 보훈섬김이의 노동환경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2017년 8월, 이동보훈복지사업(BOVIS) 10주년 기념식 ⓒ 국가보훈처
2017년 8월, 이동보훈복지사업(BOVIS) 10주년 기념식 ⓒ 국가보훈처

하루 교통보조비 4,500원, 유류비는 보훈섬김이 몫

보훈섬김이는 BOVIS 사업에서 보훈재가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 이하 보훈처)의 공무직 노동자다. 보훈섬김이는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9시간 동안 보훈대상자 집 3곳을 방문한다. 일주일이면 보훈대상자의 집 15곳을 방문하는 셈이다. 이렇게 이동하다 보니 어떤 보훈섬김이는 하루에 100km를 이동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렇게 매주 장거리의 이동을 반복한다.

보훈섬김이에게 주어진 하루 9시간은 2시간의 이동시간, 6시간의 보훈재가복지서비스시간, 1시간의 휴게시간으로 구성된다. 9시부터 11시까지 첫 번째 보훈대상자에 대한 보훈재가복지서비스를, 11시부터 1시까지 이동 및 휴게를, 1시부터 3시까지 두 번째 보훈재가복지서비스를, 3시부터 4시까지 또 다시 이동해서 4시부터 6시까지 마지막 보훈대상자에 보훈재가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보훈재가복지서비스 시간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보훈섬김이는 늘 시간에 쫓긴다.

그렇기 때문에 보훈섬김이는 대부분 자기 차량을 이용해 움직인다. 그러나 보훈처는 ‘대중교통을 기준’으로 한다는 지침을 내렸다. 실제로 <2019년도 이동보훈복지사업(BOVIS) 지침>에는 <보훈섬김이 복무관련 조치 사항>을 통해 “서비스 대상자별 이동시간은 대중교통을 기준으로 1시간 부여”라고 명시하고 있다.

ⓒ 국가보훈처

한진미 국가보훈처공무직노동조합 위원장은 “조합원 554명을 대상으로 이동 중 자가용 이용 비율을 조사했는데 112명만이 대중교통으로 이동한다고 답했다”며 “약 80%가 자가용을 이용해 보훈대상자 집으로 이동하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한진미 위원장은 자가용 이용 비율이 높은 이유에 대해 “모든 도시가 서울 같은 대중교통망을 갖추고 있는 게 아니”라며 “경기북부보훈지청에 근무하는 한 보훈섬김이는 대중교통으로 보훈대상자 거주지까지 이동하는 데만 3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한진미 위원장이 설명한 경기북부보훈지청의 보훈섬김이의 경우, 본인의 거주지에서 보훈대상자의 집까지 버스를 총 2번 갈아타야 한다. 3대의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은 70분이지만, 버스의 배차 간격으로 인한 환승 소요시간, 또 버스 정류장에서 목적지까지의 도보시간을 종합하면 3시간이 소요된다.

한진미 위원장은 전국 지청의 모든 보훈섬김이의 대중교통 이용 시 소요되는 이동시간을 조사했다. 이 자료를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실과 이학영 의원실에 제출했으며 현재 의원실에서 역시 자체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훈섬김이는 하루 평균 몇 km나 이동할까? 국가보훈처공무직노동조합(이하 노조)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하루 평균 이동거리가 30km 이하인 보훈섬김이가 47.51%였다. 그러나 하루 평균 이동거리가 60km 이상인 보훈섬김이도 6.5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주일 동안 보훈섬김이는 짧게는 150km 이하에서 많게는 300km 이상을 이동하는 것이다.

가구 방문을 하며 이동하는 노동자인 만큼 보훈섬김이에게는 교통보조비가 지급된다. 노조가 <참여와혁신>에 공개한 교통보조비 지급표에 따르면 기본급 지급액은 하루 30km 미만일 때 4,500원이다. 30km 이상부터 추가 교통비가 지급된다. 보훈섬김이의 절반 정도는 교통비로 하루에 4,500원을 받는 것이다.

한진미 위원장은 “한 달에 평균 25만 원이 유류비로만 나간다”며 “이동거리가 긴 보훈섬김이의 경우 40만 원 이상을 유류비로만 사용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이어 “보훈처도 우리가 자가용을 이용해 보훈재가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심지어 어떤 지청은 교통비 문제를 지적하니 서비스 대상자를 잘라 비용에 맞춰준다고 협박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보훈재가복지서비스는 가사서비스? 골병 드는 보훈섬김이

보훈재가복지서비스에서 제공하는 유형별 서비스 내용은 가사활동, 건강관리, 편의지원 등이 있다. 구체적으로 가사활동은 취사, 세탁, 청소 등의 가사활동을 지원하는 서비스를, 건강관리는 신체청결, 식사수발, 말벗, 치매예방 등 건강관리 지원을, 편의지원은 병원동행, 산책, 심부름 등 외부 활동 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진미 위원장은 “보훈재가복지서비스는 보훈대상자의 노후를 돌보고 국가유공자로서의 예우를 끝까지 다하는 게 목적인데 지금은 가사서비스로 변질됐다”고 주장한다. 예전에는 가사활동 지원뿐 아니라 다양한 서비스를 지원했는데 지금은 보훈처와 각 지방보훈지청(이하 지청)에서 가사서비스를 지시하고 종용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노조는 경기북부보훈지청에 속한 어느 지역의 8월 마지막 주 주간활동 계획표(Care Plan)를 공개했다. 이 계획표에 따르면 이 지역에 소속된 15인의 보훈섬김이는 174명의 보훈대상자에게 단 한 차례도 빠짐없이 가사서비스를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가보훈복지서비스가 제공하는 건강관리나 편의지원은 단 한 차례도 제공하지 않았다.

또한 인천보훈지청의 경우 ‘서비스 제공 범위’라는 제목으로 한 달 치 청소를 계획해 지시하기도 했다. 간단하게 방과 거실을 청소기를 이용해 청소하는 것은 물론, 현관 거울과 베란다 청소는 매주 고정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 제공 범위에 해당한다. 또 각 주마다 가스레인지 청소나 베란다 문 틀 청소 등의 업무까지 고정 서비스 제공 범위에 포함시켰다.

한진미 위원장은 “매일 6시간의 가사 중노동으로 많은 조합원이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다”며 “가사에 함몰된 서비스 추구로 맞춤형 서비스의 의미는 퇴색됐다”고 지적했다. 노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549명이 참여한 근골격계 증상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97.81%에 해당하는 537명이 근골격계 증상이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61.02%에 해당하는 335명의 경우 중등도 이상의 증상을 느끼고 있다고 응답했다.

최근 1년 동안 근골격계 증상으로 병원 치료를 받은 적 있냐는 질문에는 519명이 응답했는데, 79.38%에 해당하는 412명이 병원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518명이 답한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는 부위로는 399명이 허리, 팔, 어깨 등 복합적으로 아프다고 답하기도 했다. 발생 원인으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지나친 가사업무 지시로 업무지시가 바뀐 후 노동강도가 세졌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87.33%로 가장 높았다.

한진미 위원장은 “복지서비스는 복합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며 “가사서비스 위주의 업무지시는 수량화하기 좋고 통제하기 좋은, 관리자 위주의 서비스 제공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서비스 본연의 목적을 벗어나면서 보훈섬김이는 병 들었고 대상자 위주의 서비스 제공도 어렵다는 것이다. 김정원 노조 사무국장은 “가사서비스 위주의 업무지시로 인해 보훈대상자들이 ‘청소 필요 없는데 왜 맨날 청소만 하냐’는 불만이 많다”며 “대상자 요구에 부응하려면 지청에는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한진미 위원장은 “우리가 요양보호사와 꼭 들어맞지는 않지만 요양보호사는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라 급여외행위의 제공을 금지하고 있다”며 “그러나 보훈섬김이는 보훈대상자나 그 가족이 먹을 일주일 치의 음식 만들기, 김장, 대청소, 창틀 닦이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제28조의 2, 급여외행위의 제공 금지 조항에 따르면 ▲수급자의 가족만을 위한 행위 ▲수급자 또는 그 가족의 생업을 지원하는 행위 ▲그 밖에 수급자의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인천보훈지청의 업무지시와 같은 집안 대청소 및 가스레인지, 베란다 청소 등은 급여외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잦은 위치 보고, 감시인가 근태관리인가

한진미 국가보훈처공무직노조 위원장

그렇다면 보훈대상자의 반응이 가장 좋은 서비스 유형은 어떤 것일까? 보훈대상자의 반응이 가장 좋은 서비스 유형은 바로 편의지원이라는 것이 한진미 위원장의 설명이다. 대부분 교통약자인 보훈대상자는 일주일에 한 번 차를 가지고 방문하는 보훈섬김이와 병원에 가거나 일주일 동안 필요했던 물건을 사러 장에 가는 것을 가장 원한다고. 그러나 보훈처 지침에 의하면 보훈섬김이 차량을 이용한 편의지원은 불가능하다. 또한 업무지시가 가사서비스 제공 위주로 내려오기 때문에 외부로 나가야 하는 편의지원 서비스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노조의 설명이다.

외부로 나가야 하는 편의지원 서비스가 사실상 불가능한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노조는 사진을 찍어서 보고해야 하는 잦은 위치 보고 때문이라고 답했다. 또한 일부 지청에서는 보훈대상자의 집전화로 전화를 걸어 보훈섬김이의 동향을 확인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일부 지청에서 서비스 시간에 전화해 현재 보훈섬김이가 자리하고 있는지, 어떤 업무를 수행하는지 묻기도 하고 서비스 종료 시간 1~2분 전에 전화해 자리를 이탈했는지 확인한다는 것이다. 이때 집 전화를 안 받거나 보훈섬김이가 자리에 없으면 근무지 이탈로 징계사유가 된다는 것이 노조의 설명이다.

노조는 “신규 서비스 대상자의 경우 사전에 보훈복지사가 보훈재가복지서비스를 가사서비스로 소개해 편의지원 요구가 덜하지만 기존에 서비스를 이용하던 보훈대상자의 경우 외부로의 편의지원을 도울 수 없다고 하자 ‘차 가지고 유세 떠냐’고 반응한다”며 “보훈대상자를 모시고 외부로 나가기도, 안 나가기도 곤란한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사전 보고 후 외부 활동을 지원하더라도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위치 보고 때문이다. 보훈대상자를 모시고 병원에 갈 경우, 병원에 도착해서 사진을 찍고, 진료 중에도 사진을 찍어서 전송해야 한다. 실제로 병원에서 진료를 하는 것인지, 보훈섬김이가 일을 안 하고 노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는 ‘감시’라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뿐만 아니라 매일 6번, 보훈대상자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2차례씩 정시에 사진을 찍어 전송해야 한다. 만약 이동시간이 1시간 이상 소요될 것 같으면 차가 막히는 것을 운전 중에 사진을 찍어 보고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이에 대해 보훈처는 “대상자에 대한 서비스 관리를 위해서 특정한 시간을 정하지 않고 주기적인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며 “이는 감시적 근태관리가 아닌 보훈재가복지서비스에 대한 기본적인 사업 관리”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현재 서비스 관리를 위한 시스템이 시범운영 중에 있어 이를 통해 보다 개선된 관리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려면…복지사업은 복지인력이 감당하는 게 90% 이상

이외에도 노조가 심각한 문제로 꼽고 있는 것은 보훈병원 시설을 이용한 목욕서비스다. 보훈재가복지서비스에서 목욕서비스는 원칙적으로 지원하지 않지만 보훈병원 인근 거주 보훈대상자 중 거동이 어려운 대상자에 한해 보훈병원의 시설을 이용해 목욕서비스를 하고 있다. 일주일에 두 차례 정도 진행되는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 바로 여성 보훈섬김이라는 것을 지적했다. 노조는 “보통 요양 시설에서도 그런 부분은 남성 요양보호사에 맡긴다”며 “우리 인권은 어디서 찾아야 하나”고 비판했다. 보훈처는 이 부분에 대해 “보훈섬김이분들의 근무환경 및 건강을 고려해 개선해 나갈 계획”이라고 답했다.

한진미 위원장은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책 운영의 유연성을 재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진미 위원장은 “복지 업무는 대상자의 요구를 얼마만큼 들어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한 번은 보훈대상자가 신분증을 도용당해 휴대전화가 개통돼 요금이 300만 원 넘게 나온 일이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그런 필요한 일을 하면 일을 안 한 게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자유롭게 일하면 일의 질이 높아지고 보훈대상자의 만족도 역시 높아진다”며 “처음 목적으로 돌아가 사업의 유연성을 재고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사업의 90% 이상은 복지 인력이 감당하는 것이라는 견해를 밝힌 한진미 위원장은 “보훈재가복지서비스는 대면서비스”라고 강조하며 “일선에서 일하는 보훈섬김이들이 각자 잘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믿고 맡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잦은 위치 보고와 전화 등이 보훈섬김이를 못 믿어서 행해지는 비인격적 대우라고 생각한다는 한진미 위원장은 보훈처에서 국가유공자를 위해 제공하는 복지서비스인 만큼 다른 기관의 복지서비스보다 질이 훨씬 좋아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