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박싱] 이 주의 인물 : 코웨이 CS닥터
[언박싱] 이 주의 인물 : 코웨이 CS닥터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0.08.30 15:57
  • 수정 2020.08.30 1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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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고용직 #25일부터 #정규직

특수고용노동자였던 코웨이 CS닥터(설치·수리기사)들이 25일부터 회사에 직접고용된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정규직 전환과 호봉제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을 노사가 24일 최종 타결하면서부터다. 코웨이지부가 지난해 6월 '원청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교섭투쟁을 벌인 지 1년 2개월 만이다. 

CS닥터들의 치열했던 투쟁은 '원청 직접고용'과 근속연수를 인정하는 '호봉제' 도입이라는 성과를 남겼지만, 지난 6월 연차 적용에서도 과거 근로자성을 인정받기 위해 한 달 반가량 진행한 총파업은 조직률 98%에 달했던 1,500여 명 코웨이지부를 흔들기도 했다. 해당 기간 약 200명이 지부를 떠났기 때문이다. 이흥수 코웨이지부 지부장에게 1년이 넘는 투쟁이 남긴 성과와 상처, 그리고 정규직이 된 CS닥터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물어봤다.

가전통신서비스노조 웨이지부가 지난 6월 9일 서울 코웨이 본사 앞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진행하고 있다. ⓒ 코웨이지부
가전통신서비스노조 웨이지부가 지난 6월 9일 서울 코웨이 본사 앞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진행하고 있다. ⓒ 코웨이지부

- 정규직된 CS닥터들,  요즘 어떻게 지내나? 
적응 중이다. 건당 수수료를 받던 특수고용직으로 20~30년 짧게는 4~5년씩 일하다 이제 시급을 받는 정규직이 됐으니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정해진 근무시간에 각 지점 관리자가 틀을 딱 정해놓고 업무지시를 하니 현장에서 조금 혼란스러운 것 같다. 노조 SNS 밴드에도 질문이 쏟아진다. '저녁 6시 이후에 일해도 되나요?' 'OT(오버타임, 시간외근무)는 고정인가요 변동인가요?' '급여는 정확히 어떻게 책정되는 건가요?' 등 조합원들이 궁금한 점이 많다. 각 지점장들도 CS닥터들을 처음으로 정규직으로 대하면서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안다. 

- 현장 복귀는 12일부터 했다. 그간 쌓인 고객 불만도 상당하겠다. 
말도 못 한다. CS닥터들이 파업하는 동안 제품의 설치, 수리, 반환하는 길이 모두 막힌 고객들은 고객센터에 전화해도 상담원이 제대로 연결조차 안 돼 화가 많이 났다. 한국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6월 정수기 대여 관련 수리, 설치 지연으로 인한 소비자불만 상담이 전월 대비 128.2% 증가해 상담 증가율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는 CS닥터들이 파업하는 동안 회사가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단 증거이기도 하다. 지난해 겨울 넷마블 앞에서 파업했을 때랑 같다. 내부 문제를 외부에 알리지 않고 틀어막는 데만 급급했던 거다. 지금 회사에서는 아침 9시 전, 오후 6시 이후에도 필요한 만큼 OT를 써도 되니 현장 안정화에 집중해주길 요구하고 있다.

- 24일 체결한 임단협 관련해 가장 의미 내용은? 
자회사를 통하지 않은 원청 직접고용이 가장 큰 결과물이다. 동종업계인 SK매직, 청호나이스 설치·수리 기사들은 정규직이지만 자회사를 통한 간접고용 형태로 일한다. 생활가전 렌털업계에서 특수고용직이었던 설치·수리기사가 원청 직접고용된 건 코웨이가 첫 사례다. 지난해 6월부터 '원청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교섭투쟁을 벌인 지 1년 2개월 만의 큰 성과다. 

- 아쉬운 지점이라면? 
외부에선 '연차투쟁'으로 알고 있는데,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근속연수에 따라 달라지는 '연차'는 과거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코웨이 측에선 20년차 경력사원이 와도 연차는 1년차로 적용받는 게 원칙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CS닥터들은 다른 회사에 있다가 코웨이에 새롭게 입사한 게 아니다. 지금 현장 CS닥터 중에는 1992년부터 코웨이라는 이름 아래 일해온 분이 계신다. 우리는 같은 코웨이 노동자이지만 특수고용직에서 종합일반직으로 직군만 변경된 거다. 그래서 CS닥터들에게 호봉제를 적용할 때 근속연수를 인정한 것처럼, 연차에서도 같은 기준을 요구하며 지난 6월 총파업에 들어간 거다. 사람으로 치면 내 생일을 찾는 투쟁이었다 호봉제에서는 생일을 찾았지만 결국 연차는 정규직 전환 날짜인 2020년 8월 25일 기준으로 모두 1년차를 적용받게 됐다. 

- 코웨이 측에서 원청 직접고용, 호봉제까지 CS닥터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는데 왜 '연차'에서는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고 보나? 
무엇보다 동종 업계에 선례로 남는다는 점이 큰 부담이었을 거다. 물론 CS닥터 퇴직자와 재직자가 모두 진행 중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노동자 측에 유리한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겠지만, 특수고용직의 첫 입사일을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그대로 인정했다는 선례를 업계에 남기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이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연차 관련 과거 근로자성을 인정받기 위해 한 달 반가량 총파업을 하면서 회사는 몇백억 원씩 손해를 봤다. 그런데 CS닥터들의 근속연수를 인정하는 연차를 받아들여도 코웨이 측에선 3~4억 원 정도 더 부담하게 된다. 회사에선 돈보다 특수고용직의 과거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한 문제였던 거다.  

- 지난 1년 2개월간 투쟁, 어떻게 평가하나? 
많은 부분 성과를 이뤘지만, 마지막에 조금 아쉬운 부분을 남겼다. 정말 처음부터 지난 한 달 반 총파업 전까지는 원청 직접고용, 호봉제 등 우리가 의도했던 대로 이뤄왔다. 조합원 단결력, 투쟁력 모든 게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마지막에 최초 근무일자를 쟁취하는 투쟁에서 자본에 밀렸다고 본다.

- 자본에 밀렸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노동조합을 짧은 기간 했지만 매번 높은 자본의 벽을 실감한다. 노동자들은 생계, 경제적 측면에서 약자다. 특히 하루 벌어 하루,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사는 특수고용직이 생계절벽에 몰리면 매우 취약해진다. 투쟁 막바지에 코웨이가 지난 교섭 과정에서 CS닥터들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취하를 전제로 주기로 한 보상금, 즉 현금을 가지고 조합원들을 흔들기 시작했다. 굳건했던 조합원들이 흔들리는 게 눈에 보였다. 조합원 1,500여 명 중 200명 정도가 빠져나갔으니까. 회사와 개인적으로 사인하고 합의금을 받은 뒤 복귀한 거다. 물론 그분들에겐 회사가 제시한 선택지를 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을 거다. 노동조합 입장에선 하룻밤 사이에 백 명씩 쭉쭉 빠져나갈 때 정말 위기였다. 하지만 한두 번 위기를 넘은 뒤 1,300명 인원이 끝까지 흔들림 없이 버텼다. 마지막까지 버텨준 분들 덕분에 회사도 더는 흔들지 못하고 다시 교섭에 들어가 마무리가 잘 된 것 같다.

- 앞으로 계획은? 
노동조합 안정화가 첫 번째 목표다. 코웨이지부 1기는 2018년 2월 출범부터 투쟁의 연속이었다. 초기 집행부는 임기가 2년이라 내년 2월까지인데, 군대에 들어가자마자 전쟁이 났고 제대할 때가 되니 비로소 전쟁이 끝난 것 같은 느낌이다.(웃음) 처음이라 훈련되지 않고 연습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거칠고 울퉁불퉁하게 여기까지 왔다. 용기도 의의도 좋았지만 상처도 많이 남았다. 막연하긴 하지만 2기부터는 안정화를 목표로 노동조합을 잘 가꿔나갔으면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전까지 함께 잘 싸웠지만 마지막에 조합을 떠났던 200명과 다시 같이 하는 방안을 찾아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 이전 1,500명 코웨이지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  

- 그러고 보니 지부장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맞다. 끝을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한다. 노동조합 시작하며 투쟁을 외치지 않은 지, 빨간 머리띠를 푼 지 1주일 됐다. 지난 투쟁을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마지막 총파업 과정에서 조합원들에게 특히 경제적으로 힘들게 했던 점이 가장 아프게 남는다. 특수고용직이었던 조합원들에게 금전적 부분은 물론 심신피로도를 높인 부분이 정말 미안하다. 내 욕심을 우선한 게 아닌가 후회도 된다. 무엇보다 이 힘든 과정은 조합원들의 가족이 버텨줬기에 가능했다. 조합원 가족분들에게 고마움과 사죄의 절을 몇 번이고 올리고 싶다. 사실 고맙다는 말씀을 드릴 분이 정말 많다. 남은 기간 고마워해야 할 사람들을 떠올리며 잘 마무리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