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호텔 살릴 긴급수혈 이뤄져야
관광호텔 살릴 긴급수혈 이뤄져야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0.11.10 00:00
  • 수정 2020.11.10 0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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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개입 없이는 전통 호텔기업도 구조조정 빨간불
지역사회연계·호텔별 특성화, 양질의 일자리 전제돼야

 호텔업, 이대로 끝? ➌

'위기'라는 표현은 이제 호텔의 현실을 잘 설명해주지 못하는 듯하다. 하늘길이 막힌 지 8개월 남짓, 코로나19는 호텔업 전반을 뒤흔들었다. 일부 관광호텔은 폐업이 목전에 닥쳤다. 그러나 누구도 해결책을 선뜻 내놓지 못한다.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노사정 각 주체는 갈피를 잃었다.

호텔업의 다음 고비는 이미 예견돼 있다. 해외 관광객은 세계가 팬데믹 상황에 빠지거나, 또 다른 외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끊길 것이다. 이후의 위기를 고려하지 않아도 코로나19가 단기간에 종식되지 않는다면 호텔의 구조조정과 폐업은 불 보듯 뻔하다.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지만 일단 살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당장의 출혈을 조금이라도 막으면서, 탄탄한 호텔을 만들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다.

10월 27일 오후 3시 서울시 광진구 관광서비스노련 교육장에서 진행된 '코로나19 대책 마련을 위한 긴급 전국대표자회의' 현장
10월 27일 오후 3시 서울시 광진구 관광서비스노련 교육장에서 진행된 '코로나19 대책 마련을 위한 긴급 전국대표자회의' 현장.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일단 살려야' 앞날 도모하지만 ···
관광진흥개발기금, 쓸 수 있는 돈인가?

현재의 흐름이 이어진다면 대기업이나 재단 같은 '뒷배'가 없는 호텔들은 정상적인 영업이 어렵다. 30년이 넘게 안정적으로 운영된 호텔들도 코로나19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호텔 노동자뿐만 아니라 사용자까지도 더 큰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일단 당장 떨어진 매출을 보충할 자금이 공급돼야 한다.

8월 18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관광산업위원회(위원장 노광표)는 '관광산업 생태계 유지와 고용안정을 위한 긴급 노사정 합의문'을 발표하고 관광산업의 고용안정·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노사정이 함께 노력해야 할 방안을 내놨다. 주요 내용은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돼 고용유지지원금을 받는 경우, 지원금 종료일부터 최소 2개월 이내 감원하지 않도록 노력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관광업종 경영상황 실태조사 실시 ▲관광진흥개발기금 확충 등이었다.

이 중 문화체육관광부가 운용하는 관광진흥개발기금은 매년 관광사업체에 자금을 저금리로 빌려주는 역할을 한다. 10월 27일 한국노총 전국관광·서비스노동조합연맹(위원장 강석윤, 이하 관광서비스연맹)에서 진행된 '코로나19 대책마련을 위한 긴급 전국대표자회의'에서 이교석 프레지던트호텔노조 위원장은 "고용유지지원금을 받고 있는 이유는 고용안정을 위해서다. 하지만 노동조합들은 그 이후의 문제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 빚이 쌓여 있는 기업들이 대출을 받으면 구조조정과 희망퇴직이라는 조건이 붙는다"며 "문화체육관광부가 가지고 있는 관광진흥개발기금이 있는 것으로 안다. 기금에서 호텔업이 대출할 수 있는 폭을 넓혀주면 노사가 고용안정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당시 경사노위 관광산업위원회에 참여하는 주체들은 이 위원장에게 '관광진흥개발기금은 고갈됐다'고 대답했지만,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박양우)는 관광서비스연맹 대표자회의에 4일 앞선 10월 23일 '2020년 하반기 관광진흥개발기금 융자지원지침' 계획을 수정하고 총 400억 원 규모의 추가 금융지원을 시작했다.

사회적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는 주체들은 27일 관광서비스연맹 회의 때까지도 문화체육관광부의 추가 금융지원 사실을 자세히 알지 못했다. '자금 조성을 노력 하고 있다'는 말 외에 구체적으로 어떤 지원이 논의되는지 사회적 대화에서 충분히 공유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회적 대화는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창구다. 현재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있어야 나아갈 길을 논의할 수 있다. 호텔업뿐 아니라 관광 산업 전반을 위해서라도 믿음직한 정보가 신속히 오가는 사회적 대화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구은회 경사노위 전문위원은 "기금은 사실상 고갈이 맞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금이 이미 많이 소진돼 있는 상황에서 기금확충에 대해 노사정이 문제제기를 했고, 방안을 마련하자는 게 8월 18일 합의사항"이라며 "추가지원은 문화체육관광부의 노력으로 집행된 것으로 안다. 집행과정에서 소통이 매끄럽지 않다는 것이 발견됐다면, 경사노위가 특히 더 세심한 조율을 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관광진흥개발기금의 운영자금은 인건비 등 고용유지를 위한 목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개별 호텔이 이 기금을 활용할 경우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을 막는 초석이 될 수 있다. 변상봉 문화체육관광부 관광정책과 관광진흥개발기금 관리 담당자는 <참여와혁신>과의 통화에서 "관광업계의 어려운 여건을 고려해 가용할 수 있는 재원을 마련했다. 운영자금은 인건비로도 활용을 한다. 여행업, 호텔업 등에서도 많이 지원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참여와혁신> 취재 결과 관광업체가 관광진흥개발기금을 사용하기 위해 은행을 찾더라도, 심사에서 거절되는 사례도 있었다. 기금을 풀어 공급했는데 받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관광업체들이 실제로 400억 원을 사용할 수 있도록 금융당국과 정부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호텔업계 노사정이 장기적으로 모색해야 할 미래

김남조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살아남는 관광업체는 대박을 터트릴 수 있다. 우리 국민들의 관광성향은 강한 편이다. 억눌린 수요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김남조 교수뿐 아니라 호텔업계 관계자들은 펜데믹 이후 관광 수요는 증가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호텔은 관광산업의 기반이다. 긴 불황이 끝난 후 호텔업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재정비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 호텔업 노사는 다양한 의견을 통해 장기적인 발전방향을 내놨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① 정부의 관광산업 전담 기구 신설

먼저, 환경적 측면에서 관광산업을 전담하는 정부기관을 세워야 한다는 조언이 있다. 그동안 정부가 호텔업을 포함한 관광산업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이다. 정오섭 한국호텔업협회 사무국장은 "코로나19가 전체적으로 관광산업 전반에 대해서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뒤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는 시간들이 많지 않았다. 코로나19는 관광산업의 전환기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문화체육관광부 관광정책국에서 벗어나 관광산업을 총괄하는 정부 부처를 신설해야 한다. 관광청이 있다면 산업 발전에 힘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 부처가 관광산업에 집중하게 되면 기존 수도권 집중이었던 호텔들을 전국단위로 재편하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 정부기관들을 지방으로 이전하고, 관광지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지자체의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 관광지가 전국 곳곳으로 스며들면 호텔도 자연스럽게 분산될 가능성이 높다. 뿐만 아니라 관광호텔은 객실 외의 부대시설이 다양하다. 예식장, 회의장, 연회장, 레스토랑 등 지역사회에서 사용가능한 시설을 강화하면 지역주민들도 호텔을 찾을 수 있다.

② 내수활성화·실업자 구제방안 마련

내수활성화도 주요한 정책과제 중 하나다. 10월 21일에 진행된 '관광 내수시장 활성화 방안 문화체육관광부 브리핑'에서 최윤희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숙박쿠폰·여행쿠폰 등 국민소비쿠폰 지원사업은 코로나19 추이를 봐가면서 시행시기를 결정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노광표 원장은 "노사가 같이 살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종합적 대비책을 만들어야 한다. 고용안정을 위해서 지켜야 할 것은 지키고, 기업도 방안을 종합적으로 만들어내지 않으면 수동적으로 방어하다가 끝날 위험이 있다. 관광의 경쟁력과 노동자도 살릴 수 있는 것은 정부밖에 없고, 특단의 조치들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교육훈련을 통한 이직이 쉽지 않고,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현 상황에서 노동조합 관계자 A씨는 노조가 먼저 나서서 자신들의 상황을 공유하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전했다. A씨는 "노동조합에서도 (명예퇴직이나 희망퇴직을) 당연히 해야 한다는 식으로 받아들인다. 개별 노조에서도 자기 상황 공유가 안 되고 내부적으로만 소화해버린다"며 "아픈 부분이 있으면 그걸 쓰다듬어줘야 하는데 관여를 안 한다. 노총도 마찬가지고 지역본부도, 연맹단위도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노동조합이 있는 호텔은 사용자와 대화할 수 있는 창구가 존재하지만, 미조직 호텔 노동자들은 실태파악조차 쉽지 않다. 실제로 인력을 감축한 호텔들이 많고, 정리해고자들에 대한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③ 노사 협력으로 정부 압박

호텔업계 노사가 공동으로 고민해야 할 지점도 존재한다. 정부를 향한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야 하는 것이다. 최대근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밀레니엄서울힐튼노조 위원장은 "관광산업 전체의 발전을 위해 행사, 이슈, 지역사회 축제 등 노사가 같이 정부에 대고 요구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며 "서울역에 근접해 있는 우리 호텔을 예로 들자면, 정부와 명동과 남대문의 관광자원 개발도 같이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송현기 노무사도 "지금 코로나19는 노동자뿐 아니라 사용자도 같은 고통을 가지고 있다.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정부에 대한 건의를 같이 해 줬으면 한다. 관광산업에 대해 활성화 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이 무엇인지, 어떤 부분을 정부에게 요구할지 한 목소리를 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④ 각 호텔 특성 찾기

변화하는 관광 트렌드에 맞춰 각 호텔의 강점을 부각시키는 작업도 필요하다. 황성식 (사)한국호텔전문경영인협회 이사는 "호텔을 아무나 못 가던 시절, 사람들은 화려한 조명과 인테리어, 비싼 가격의 객실과 음식들로 품격 있는 서비스를 체험하고 대우받고자 호텔을 찾았다. 그러나 간접고용 형태의 인력 증가는 호텔 서비스 품질 저하로 이어졌고, 로망이 사라진 호텔을 직장으로 삼고자 하는 젊은이들은 없다. 호텔은 3D업종으로 분류될 정도로 매력이 사라진 지 오래됐다"며 "색깔 있는 호텔로 바뀌어야 한다. 젊은 세대들이 이용하는 문화 컨텐츠를 심어 넣고, 계속 신규 아이템에 접근하면서 지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황성식 이사는 '자만추'라는 표현을 썼다. 소비자들이 '자기만의 만족 추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호텔 안에 만들어져야 한다는 의미다.

⑤ '반짝반짝' 아이디어 등장할 환경 ··· 결국 일자리다

지역사회와 연계하고, 호텔이 각자의 강점을 모색할 수 있으려면 양질의 일자리는 전제조건이다. '사람이 안 들어온다'는 관광업계의 걱정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고용이 요구되는 것이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세종호텔노조 관계자는 자신의 경험을 빗대 고용안정과 호텔 서비스의 상관관계를 설명했다. 그는 "사실 서비스는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모호하다. 입사를 하고, 정규직이 되면서 조금씩 급여가 올라가니까 힘든 일이 있어도 서비스가 나오더라"며 "그런데 연봉이 삭감되면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들이 와도 그 전에는 웃으면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면 연봉이 삭감되고 난 이후에는 별 표정 없이 인사만 하게 됐다. 그런 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의 관광산업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증언했다.

유승환 한국노총 관광서비스연맹 쉐라톤팔레스호텔노조 위원장은 "호텔 안에서 손님이 지루하지 않을 만큼의 즐길 거리를 둬야 한다. 지금처럼 와서 잠만 자고 간다면, 다른 숙박과 차이가 없다.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해나가려면 이곳이 정말 양질의 일자리여야 한다. 우리나라 호텔의 양적 팽창은 충분히 했다"며 "정말 반짝반짝한 사람들이 호텔산업에 오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용안정은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고, 이는 곧 매출로 이어진다. 우리나라의 호텔 수는 충분히 많다. 언제까지나 양적 팽창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유승환 위원장의 말처럼, 호텔은 미래산업이다. 호텔업에서 관광산업을 주도할 '인재'들이 나타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잠만 자는 호텔'과 관광호텔의 차별점을 둬야 앞으로의 관광산업도 바뀔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