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절없이 무너지는 호텔산업 노사 대책 없나
속절없이 무너지는 호텔산업 노사 대책 없나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11.10 06:27
  • 수정 2020.11.10 1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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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장기화에 정부·전문가도 두 손 두 발
구조조정·사업체 매각 … “정부지원 없으면 버티기 어려워”

호텔업, 이대로 끝?❶

“뾰족한 수가 없어요.”

“어느 한 쪽으로도 출혈을 강요할 수가 없어요. 왜냐면 지금은 사용자도 어려움에 부닥쳐있단 말이에요. 노조에서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못하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파산이 자꾸 나올까 봐 걱정이야, 사실은.”

경사노위 관광산업위원회 공익위원을 맡고 있는 김남조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의 말이다. 코로나19의 여파로 관광산업은 올해 2월부터 큰 타격을 받았다. 정부에서도 위기 극복을 위해 각종 대책을 내놓았으나 코로나19 종식 시점이 자꾸만 늦춰지면서 뾰족한 대책 없이 시간만 흘러가는 상황이다.

서울의 한 호텔 로비
서울의 한 호텔 로비

관광산업은 더 이상 위기 국면이 아니다. 기약 없이 이어지는 코로나19에 산업 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10월 27일 전국관광·서비스노동조합연맹(위원장 강석윤, 이하 관광서비스노련)이 개최한 ‘코로나19 대책 마련을 위한 긴급 대표자회의’에서 노광표 한국고용노동교육원 원장(경사노위 관광산업위원회 위원장)은 “관광산업에 있어서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게 정부의 입장인 것 같다”면서, “정부는 올해까지만 지원을 해주면 관광산업이 살아나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과 다르게 내년도 현재와 비슷할 것이라는 예측 속에서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도 이날 “힘든 상황 속에서 가능한 아이디어를 만들어야 한다. 쉽지는 않다. 더 비상한 각오와 결의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사실상 전문가도 두 손 두 발 다 든 상황에서 관광산업 노동자와 사용자는 속절없이 무너져야 할까.

호텔업 현장은 지금

① 구조조정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서울가든호텔은 11월 1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정규직 기준 180여 명에 달하던 직원은 20여 명으로 축소됐다. 주로 시설 및 식음료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다수였다. 이후 해당 분야는 아웃소싱으로 운영될 방침이다.

노종복 관광서비스노련 서울가든호텔노조 위원장은 회사의 구조조정을 뼈 아파하면서도 한편으로 이해하는 지점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노종복 위원장은 “저희 호텔은 1979년에 오픈했고, 저는 32년간 근무했다. 그동안 회사에서 한 번도 임금체불이나 이런 게 없었다”면서, “2016년 사드 사태 이후 계속 적자였다. 사실 3월에 구조조정 이야기가 있었지만 정부지원금을 이유로 반대했다. 현재 상황은 사실상 약간 딜레이된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가든호텔은 2015년 진행한 리모델링으로 약 500억 원의 부채를 안고 있었다. 이후 사드사태가 닥치면서 2017년 19억 원 적자, 2018년 21억 원 적자, 2019년 25억 원 적자를 이어갔다. 재정이 악화된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가 찾아온 것이다.

호텔업 노동자에게 서울가든호텔의 상황은 남의 일이 아니다. 대다수 호텔 사업장에서는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이 끊기는 11~12월 구조조정이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전주환 관광서비스노련 세종호텔노조 위원장(관광서비스노련 사무처장)은 “직원이 150명 정도 되는데 원래는 180명 정도 됐다. 몇 달이 지나면서 계약직 노동자가 계약 해지되면서 30명 정도가 나갔다”면서, “현재는 정규직 100명, 계약직 50명이다. 계약직은 계속 줄어들 것 같다”고 전했다. 인력감축, 정리해고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는 게 전주환 위원장의 설명이다.

한편, 코로나19를 핑계로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시도하는 사업장도 있었다.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서울로얄호텔이다. 서울로얄호텔은 자체적으로 매년 영업이익의 일부를 적립해 발전기금을 쌓아뒀다. 2016년 600억 원에 달하던 발전기금은 리모델링 비용으로 460억 원을 사용하여 현재 160억 원이 남았다. 서울로얄호텔의 연 인건비는 31억 원 수준이다. 코로나19 안정화 때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여력이 있다.

이상곤 관광서비스노련 로얄호텔서울노조 위원장은 “작년에 이미 48명의 직원이 구조조정 됐다. 회사에서 코로나19가 오기 전에 영업이 잘되면 직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해주겠다고 말했다”면서, “그런데 주변 호텔들이 구조조정 및 임금삭감·동결되자 분위기에 편승해 발맞춰 들어가겠다는 식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② 호텔 매각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은 사용자라고 다르지 않다. 서울시 서초구에 위치한 38년 역사의 쉐라톤팔레스호텔은 강남 최초의 특급호텔이다. 그러나 쉐라톤팔레스호텔은 2021년 1월 31일까지 영업한다는 방침이며 이후에는 호텔을 매각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실제로 4월과 8월 쉐라톤팔레스호텔의 매각 소식이 부동산업계에 알려지기도 했다.

매각 소식을 접한 노동조합은 깊은 고민에 빠져있다. 노동조합의 입장에서 매각을 반대하기에는 ‘경영상의 이유’가 너무나 적나라한 것이다. 유승환 관광서비스노련 쉐라톤팔레스호텔노조 위원장은 “실제로 코로나19 이전 우리 호텔이 영업이 안 된 건 아니었다”면서, “코로나19 이후 한 달에 10억 원가량 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쉐라톤팔레스호텔의 매각은 코로나19로 인한 영업악화와 더불어 강남의 노른자위 땅에 위치한 것이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현재 매각 예상가는 4,000~5,000억 원 정도다. 유승환 위원장은 “부동산의 가치가 영업의 가치를 넘어섰다”면서, “영업의 가치는 작아지고 부동산의 가치는 올라가니 거기에 따른 부작용이 생긴 것”이라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르메르디앙서울호텔도 2017년 9월 리츠칼튼호텔에서 재단장한 지 3년 만에 매물로 나왔다. 르메르디앙서울호텔 역시 쉐라톤팔레스호텔과 마찬가지로 강남에 위치해 있다. 투자업계에서는 매물로 나온 호텔들이 더 이상 호텔로 기능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매수자들이 호텔업을 지속하는 게 아닌 개발이익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 위치한 호텔방. 소님을 맞지 못하고 비어있다.
서울에 위치한 호텔방. 소님을 맞지 못하고 비어있다.

③ 위기가 기회? 사업 확장

한편,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상황 속에도 신규 호텔을 출점하는 곳도 있었다. 신세계조선호텔과 롯데호텔,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등이다. 주로 대기업 계열사 호텔들이 공격적으로 신규출점을 진행하고 있다.

신세계조선호텔은 10월 7일 그랜드조선부산호텔을 개장했다. 신세계조선호텔은 2021년까지 총 5개 호텔을 추가로 개장할 예정이다. 롯데호텔은 이미 지난 6월 부산 해운대에 롯데시그니엘부산호텔을 개장했다. 또한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10월 6일 ‘마티에’라는 이름으로 호텔 체인 사업을 시작했다. 2022년 동부산, 2024년 평촌 등 2030년까지 총 10개 이상의 호텔을 개장할 예정이다.

이러한 대기업 호텔의 행보를 바라보는 시선은 두 가지다. 정오섭 한국호텔업협회 사무국장은 “일부 호텔이 계속 오픈하고 있는데, 그게 호텔업 전체의 영업이 나아지거나 잘되고 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면서, “호텔은 계획부터 실제 오픈까지 기간이 5~10년 정도의 준비가 필요하다. 준비를 해왔는데 오픈 시점이 되니까 안 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대기업들이 신규로 호텔에 투자하는 게 아니라 기존 계획을 지금 집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김남조 교수는 “경기를 읽은 것이다. 코로나19가 끝나면 살아남은 관광업체들은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면서, “망하는 곳은 망하지만 나름대로 재력이 있는 기업에는 기회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기초 체력이 탄탄한 대기업 계열사 호텔에게 코로나19는 위기보다 기회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④ 임금동결 및 삭감과 고용의 교환

한편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밀레니엄힐튼호텔은 최근 노사 교섭을 통해 고용유지와 임금삭감을 교환했다. 물론 처음 회사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했지만 노동조합의 투쟁 끝에 고용유지를 얻을 수 있었다.

최대근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밀레니엄힐튼호텔노조 위원장은 “9월 15일에 구조조정과 관련한 교섭이 끝났다. 총고용은 보장된 상태며 2년간 고용안정에 합의했다”면서, “올해 임금은 동결, 내년 임금은 10%, 내후년 임금은 8% 삭감하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고용유지지원금 끊기는 11~12월이 고비

호텔산업 노사도 코로나19의 심각성을 모르지 않았다. 관광서비스노련은 3월 8일 한국호텔업협회와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노사 공동 협약서’를 체결했다. 4월 29일에는 워커힐호텔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코로나19 극복 고용유지 현장 간담회’가 진행됐다. 이러한 활동은 6월 19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관광산업위원회 출범으로 이어졌다.

또한 관광산업위원회는 출범 2개월여 만인 8월 18일 ‘관광산업 생태계 유지와 고용안정을 위한 긴급 노사정 합의문’을 도출했다. 타 업종별위원회와 비교했을 때 상당히 속도감 있는 합의였다.

그러나 노사정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이 끊기는 11~12월경 구조조정 및 매각을 예상하고 있다. 정오섭 사무국장은 “정부의 지원금이 끊기면 호텔에서도 직원들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다”면서, “명예퇴직, 정리해고 심지어는 호텔을 계속 할 이유가 없으니 폐업하기도 한다. 최악의 상황으로 가지 않아야 한다. 정부지원도 한계가 있어서 하나 둘씩 망하는 호텔이 나오는 실정”이라고 호소했다.

강석윤 관광서비스노련 위원장은 “그동안 우리는 코로나19 위기상황을 맞이해서 노사 상생과 고통분담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돌아오는 건 고통전담이었다”며 “11월 말까지 기한을 두고, 관광 산업에 대해 살릴 수 있는 대안이 없다면 관광서비스노련 총파업을 통해 우리의 살길을 찾는 호소를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