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삶이 뒤바뀐 인천공항 노동자들
코로나19로 삶이 뒤바뀐 인천공항 노동자들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0.11.19 16:50
  • 수정 2020.11.19 2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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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 중 4명, 코로나19로 소득 감소
4명 중 1명, 매일 불안과 우울 느껴
19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13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인천공항 노동자 고용·심리 실태조사 보고'에서 김성원 서비스연맹 백화점면세점노조 면세점업종 본부장이 현장발언하고 있다. ⓒ 인천공항‧항공‧면세점 노동자 고용위기 대책회의
19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13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인천공항 노동자 고용·심리 실태조사 보고'에서 김성원 서비스연맹 백화점면세점노조 면세점업종본부장이 현장발언하고 있다. ⓒ 인천공항‧항공‧면세점 노동자 고용위기 대책회의

"얼마 전 회사의 지시로 직원을 해고할 수밖에 없었던 면세점 점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점장은 회사에서 해당 직원의 이름을 들은 뒤 몇 날 며칠 잠들지 못하고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그는 왜 자신이 사랑하는 직원 한 명이 선택되어서 해고돼야 했는지 아직도 모르지만, 같은 일이 12월에도 올 것은 알고 있었다. 왜 이런 아픔이 반복돼야 하고 그 대상은 언제나 노동자여야 하는가?" (김성원 서비스연맹 백화점면세점노조 면세점업종본부장)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끊긴 지 6개월, 삶이 뒤바뀐 인천공항‧항공‧면세점 노동자 5명 중 4명은 소득이 줄었고 4명 중 1명꼴로 매일 불안과 우울을 느끼는 것으로 드러났다. 3명 중 1명이 '6개월 이내에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전망하는 이들은 '소득보전'을 가장 시급한 정책으로 꼽았다. 

민주노총 인천공항‧항공‧면세점 노동자 고용위기 대책회의는 19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13층 대회의실에서 '인천공항 노동자 고용·심리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대책회의에는 공공운수노조 공항항공 고용안정쟁취 투쟁본부와 서비스연맹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가 함께한다. 

대책회의는 8월 20일부터 9월 17일까지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노동자 530명을 대상으로 현장면접(87명)과 온라인 조사(443명)를 진행했다. 다만 응답자의 88%는 노조가 있는 사업장 소속이었다. 대책회의는 "이번 실태조사는 상대적으로 보호받고 있는 고용·임금 상위 계층 노동자들의 상태를 보여준다"고 전제했다. 

응답자의 81.0%는 소득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특히 항공사와 면세점 노동자들은 소득이 줄었다는 응답이 각각 98%, 95%로 평균을 웃돌았다. 

소득 감소 이유는 '연장·휴일 근무시간 축소 등 노동시간 감소'가 63.2%였다. 이어 '성과급·수당 감소'(32.4%), '임금 체불'(16.4%), '기본급 삭감'(16%), '일자리를 잃어서'(5.6%) 순이었다. 

대책회의는 일자리를 잃어 소득이 감소했다는 응답(5.6%)이 비교적 낮은 이유로 "이미 항공부문 하청업체들을 중심으로 2~4월 최소 2,000명 이상 미조직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은 상황이라 이들은 응답할 기회 자체가 적을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했다.

코로나19로 회사로부터 '연차강요-임금삭감·반납-무급휴업·휴직강요-권고사직'으로 이어지는 부당한 처우를 받았다는 답은 45%로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웠다. 

'세대별 소득감소 대응 방안' (자료 : 인천공항‧항공‧면세점 노동자 고용위기 대책회의)
'세대별 소득감소 대응 방안' (자료 : 인천공항‧항공‧면세점 노동자 고용위기 대책회의)

세대별로 소득감소에 대응하는 방안도 달랐다. 2030세대는 당장 소비지출뿐 아니라 보험, 저금 등 미래보장 지출도 4050세대보다 더 많이 줄이면서 위기를 버티고 있었다.

위기를 버티고 있지만 6개월 안에 일자리를 잃을 것 같다고 응답한 노동자는 36.0%로 3명 중 1명이 당장 일자리 유지에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실직 후 현재 수준의 임금을 받지 못할 것이란 응답은 75%로 4명 중 3명이 미래를 비관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노동자들이 느끼는 불안과 우울도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거의 매일' 불안감과 우울감을 느낀다는 답이 각각 24.2%, 22.6%였다. '7일 이상'은 불안감이 13.8%, 우울감이 18.9%였다. 대책회의는 "우울감을 14일 이상 느끼면 DSM-5(미국 정신의학회 정신의학진단 통계편람 5판) 기준으로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며 "'거의 매일' 응답자는 당장 치료가 필요한 상태일 수 있다"고 말했다. 

소득 감소 직장인들을 위한 정부 정책을 신청한 경험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41.3%가 '없다'고 답했다. 이들이 정부 정책의 도움을 받지 못한 이유는 '해당 없음'이 73.5%로 최다 응답을 차지했고, '사업주 거부'(25%), '신청방법 모름'(11%) 등이 뒤를 이었다. 

대책회의는"인천공항산업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일정 정도 규모가 필요해 300인 이상 사업장이 78.3%로 다수를 차지한다"며 "50인 미만을 기준으로 삼은 정부 고용안정지원조치(긴급고용 안정지원금 등)가 인천공항에는 적합하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인천공항‧항공‧면세점 노동자들이 얼마전 강제휴직 기간을 버티다 극단적 선택을 한 항공사 승무원을 추모하기 위해 묵념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인천공항‧항공‧면세점 노동자들이 얼마전 강제휴직 기간을 버티다 극단적 선택을 한 항공사 승무원을 추모하기 위해 묵념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인천공항 노동자들은 고용불안 해결을 위한 정부정책 우선순위(복수응답)에서 '무급휴직자 소득보전'(51.9%), '인천 중구 고용위기지역 지정'(45.8%), '공항지역 한시적 해고금지'(41.3%), 특별고용지원업종 하청까지 확대'(26.2%) 등을 꼽았다.

이어 코로나19 이후 달라져야 할 고용정책 과제(복수응답)로 '감소한 소득 보전'(59.6%), '근로기준법 감독 강화'(47.5%), '조업단축수당 도입'(39.1%) 등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대책회의는 "특히 응답자의 47.5%가 고용정책 과제로 근로기준법 감독강화를 꼽은 것은 코로나19로 경영위기가 닥치자 절반 이상의 노동자들이 위법을 강요당했기 때문"이라며 "근로기준법 준수는 노동자 권리 보호, 좋은 일자리 창출과 연동되기에 민주노총이 요구해온 '노동청 분소 영종도 설치' 등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