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노리카 코리아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페르노리카 코리아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임동우 기자
  • 승인 2020.12.10 00:16
  • 수정 2020.12.10 0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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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국감 그 이후, 부당노동행위와 노조와해 그리고 공익제보
고질적인 외투기업 노사 문제, ‘파트너’로 바라보는 인식 필요

[리포트] 페르노리카 코리아, 노사 파트너 인식이 시급하다

“외투기업이 본국 법은 존중하면서 한국 법은 무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페르노리카, JTI코리아는 아직도 노조파괴라든가 교섭결렬 등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관련 부분을 청장님께서 잘 파악해서 관리해주시길 바랍니다.”

2020년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반짝 언급됐던 위 발언은 지난 2018년 10월 1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미 도마에 오른 적 있다. 유명 브랜드의 양주를 판매하는 페르노리카 코리아의 장 투불 대표는 당시 K 전무의 폭언 및 성희롱·부당노동행위·노조 와해 등 문제로 인해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불려 나왔으며, 임이자 의원이 서울지청장에게 특별근로감독 실시를 촉구해 이후 22일부터 25일까지 4일간의 진상조사가 시행된 바 있다.

국정감사 이후 개선될 것으로 예상했던 노사관계는 정반대로 흐르기 시작했다. 그해 12월 회사는 노사 갈등 내용이 담긴 노보를 발간했다는 이유로 노동조합 사무국장에게 정직 6개월 징계와 함께 모욕·명예훼손 등 형사고소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한 달 뒤인 2019년 1월 임페리얼 브랜드 위탁 판매 명목으로 갑작스러운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당시 회사가 구조조정 대상자로 통보했던 인원의 약 90%가 조합원이었다. 2019년에는 총 직원 250여 명 중 170여 명이 노조에 가입돼 있었으나, 현재는 조합원 수 36명에 그친다.

2019년 12월, 중앙노동위원회가 회사의 사무국장 징계 처분에 대해 부당하다는 결론을 냈음에도 회사는 행정법원 제소에 들어갔고, K 전무의 폭언 및 성희롱 관련 위자료 손해배상 소송에서 재판부가 원고인 조합원의 손을 들어줬지만, 회사와 K 전무는 이에 항소했다.

대기발령 기간만 15개월, 독방인가 교육장인가

당시 페르노리카코리아노동조합(이하 노조)의 수석부위원장으로 활동했던 이강호 현 노조 위원장은 지난 11월 초 서울 중구 을지로에 위치한 서울고용노동청에서 꼬박 하루를 보냈다. 비조합원-조합원 간 차별대우, 사측의 노조 대자보 훼손, 사측의 노조 비방 대자보 게시 등 부당노동행위 및 단협 위반에 대한 고소인 자격으로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노조는 회사 측의 부당노동행위가 노조뿐만 아니라 이강호 위원장 개인에게도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노조에 의하면, 2019년 1월 명예퇴직을 거부한 이강호 위원장에 대해 회사는 그해 5월까지 직무를 찾아 복귀시키기로 합의해 대기발령 조치를 내렸으나 직무 복귀는 2020년 4월 이뤄졌다. 마케팅팀으로 입사했던 이강호 위원장은 현재 팀장도 팀원도 없는 영업팀으로 발령 난 상태다. 이강호 위원장은 “창고로 쓰던 비좁은 회의실에 책상 하나와 랜선, 컴퓨터가 배치됐고, 직무전환교육 명목으로 온라인 교육을 받았다. 회사는 온라인 교육에 대해 시험을 보게 했는데, 낙제 통고에 대한 이유도 대외비 명목으로 비공개했다”며 “버티다 못해 육아단축근로제를 신청했으나 직무전환교육이 6시간 이상 분량으로 주어져 강도가 심해졌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이어지는 공익제보, 회사의 ‘노조혐오’

2018년 당시 공개됐던 녹취록에 따르면, 프랑스 출신 장 투불 대표는 “노동조합을 공격하고 싶다”, “노동조합이 직원들의 이익을 위해 일할 필요가 없다”, “유니언 숍 해지에 대해 흥분된다”는 등 발언을 통해 노조혐오 인식을 드러낸 바 있다. 이러한 인식은 현재까지 사내 관리자들의 노동조합 약화를 위한 회유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이강호 위원장에게는 녹음파일을 담은 공익제보가 들어왔다. 익명의 제보자는 응원한다는 한 마디 말을 남기고 계정을 탈퇴했다. 녹음파일에는 조합탈퇴를 종용하는 C 회계팀장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노조가 제보 받은 녹음파일에 따르면, C 회계팀장은 “새로 온 이사님은 노조 극혐이기 때문에 아래 있는 직원들이 입장을 확실히 해주길 원한다. 그래서 아마 노조에 계속 있으면 탈퇴하는 것보다 뭔가 불이익이 좀 있을 수도 있다. 주말동안 잘 생각해보고 빠른 액션을 취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당시 출산휴가 중이었던 직원은 바로 다음 날 노조를 탈퇴했다.

또한 노조가 받은 제보 중에는 K 전무의 노조 총회 참석 방해 의사가 드러난 녹음파일도 있었다. 녹음파일에는 K 전무가 휴가를 써서 총회에 참석하려는 조합원에 대해 “휴가 냈다고 이거 승인 안 된다. 무단결근이다. 무단결근하면 회사에서 인사조치가 있을 거다, 징계가 있을 거다”라고 발언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K 전무는 이어 총회 참석으로 인한 휴가 승인에 대해서는 회사에서 한꺼번에 거절할 수 있다는 발언을 이어갔다.

대다수 회사에서는 직원의 휴가 사용 이유를 묻지 않는 추세다. 만약 회사가 조합원을 필요로 하는 타당한 이유 없이 단지 노조 총회 참석을 막고자 하는 의도로 휴가 승인을 거절할 경우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

박소연 한국노총 공인노무사는 “(노조 총회는) 일반적인 조합 활동의 예다. 노조가 단결하기 위한 기본활동인데 총회에 참여하려고 유급으로도 보장이 안 되는 사업장에서 각자 개인 연차로 총회에 참석하려는 것을 어떤 이유에서든 사측이 알고 연차신청을 반려하는 건 근기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다른 측면에서 연차 반려 행위의 의도가 총회참석을 막으려는 정황 증거가 나왔다. 연차 승인 결재를 담당하는 직원에게 반려하라는 등 압박을 넣는 정황을 통해 반려행위 자체가 총회를 막으려는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정황을 봤을 때 노동조합의 활동을 막기 위한 지배개입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박소연 노무사는 출산휴가 중인 직원에게 연락을 취해 탈퇴를 종용한 것도 지배개입의 하나로 봤다. 박소연 노무사는 “(해당 팀장의 발언이) 탈퇴하지 않으면 회사생활을 못한다는 의미가 담겼고, 탈퇴하면 인사 상 이익을 주는 제안도 있었으며, 실제로 탈퇴가 진행되기도 했다”며 이를 지배개입의 근거로 봤다.

이강호 위원장은 “익명 제보를 처음 받았을 때 사실관계 확인이 우선이라 조심스러웠다. 당시에는 어떤 내용인지 모르니 돌아가는 상황을 면밀하게 파악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제보 내용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회사의 조직적인 노조 와해에 대해 수많은 감정이 겹쳤다”고 말했다.

‘법률전’에 지쳐가는 노동조합

약 3개월 전 노조는 회사의 법률 자문비용을 확인했다. 회사는 국내 4대 로펌에 해당하는 두 곳의 로펌으로부터 자문을 받아왔으며, 2014년부터 2020년 5월까지 자문비용으로 약 100억 원을 지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위원장은 “내역을 확인할 때 당황스러운 마음이 역력했다. 직원들에게 그 비용이 쓰이면 노사 화합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사실상 고액의 자문비는 불필요한 지출이다. 회사 입장에서도 개미지옥으로 빠진 것 같다. 대형로펌에 대한 의존을 끊어내야 한다”고 밝혔다.

<참여와혁신>이 올해 1월에 취재했던 ‘외투기업 노동조합 좌담’에서 거론됐듯, 외국계 투자기업이 대형로펌에 의존하는 건 페르노리카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당시 모였던 외국계 투자기업 노동조합 위원장들은 대형로펌에 의존해 노사 간 소통 구조를 차단하는 것이 노사 간 문화 차이, 이어지는 대화 부재, 신뢰 부재 등 순서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일본계 담배회사인 JTI코리아노동조합의 경우도 2017년 10월 시작된 소송을 3년째 이어오고 있다.

외국계 투자기업, 노조를 ‘파트너’로 인식해야

페르노리카 노사는 현재 5년 전 임금협상과 3년 전 단체협약 교섭을 진행 중이다. 노조가 공시자료를 통해 분석한 바에 따르면, 팬데믹 요건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2019년부터 2020년 6월까지 이벤트성 수익·비용을 제외한 추정 영업이익률은 17.6%로 지난해에 비해 상승했다. 노조는 배당지급액, 유상감자 등을 통해 회사가 글로벌 본사로 송금한 금액을 약 691억 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노조는 수익이 증대되고 있음에도 노조의 권리를 약화시키는 회사에 대해 이해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노조가 바라는 건 딱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회사의 노조 탄압 중단, 두 번째는 기존 단협 중 미이행하거나 파행을 겪는 부분에 대한 회복이다. 이강호 위원장은 이어 “탄압은 여전해 힘도 들고 조합원 세도 줄었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권리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회사가 노조를 파트너로 인정하고 화합해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페르노리카 코리아 관계자는 노사문제와 관련한 <참여와혁신>의 질문에 “노동조합을 파트너로서 존중하며, 여러 가지 노사 간 현안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성실히 협의하고 있으며, 향후에도 건전한 노사관계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해명 없이 노력하겠다는 입장만을 내놓은 것이다.

올해 수익이 지난해에 비해 올랐다고는 하지만 코로나19가 가져온 일상의 변화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기 힘들다. 이 같은 외부로부터 닥쳐온 위기에 대응하려면 내부의 단합된 힘이 필요하다. 내부적인 갈등비용은 불필요한 낭비이기도 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노동조합이 회사에 걸림돌이 된다는 인식을 버리고, 파트너로 인정하며 상생의 길을 도모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