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국에 페미니스트로 살기] 생사의 기로에서 던지는, “아가씨, 결혼했어?”
[이 시국에 페미니스트로 살기] 생사의 기로에서 던지는, “아가씨, 결혼했어?”
  • 참여와혁신
  • 승인 2021.03.08 14:53
  • 수정 2021.03.08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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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세계 여성의 날 릴레이 기고① 최원영 서울대병원 간호사
최원영 서울대병원 간호사
최원영 서울대병원 간호사

나는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30대 중반의 여자고, 간호사다. 중환자실에 입원해 죽다 살아난 환자들의 의식이 점점 호전되고, 기관지 내에 삽관됐던 인공기도관을 제거하고, 이제 조금 살만해졌을 때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아가씨, 결혼했어?”

얼마 전에도 어느 60대 환자에게 같은 질문을 받았다. 그 환자는 나뿐만 아니라 여러 간호사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그리고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대답이 많자, “다들 결혼을 안 해서 어쩌려고 하냐”며 한탄했다. 이젠 환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는 일도 익숙해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대답해주곤 했는데 문득 이 질문이 왠지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까지 죽다 살아난 사람이 깨어나 처음 궁금한 것이 고작 처음 만나는 여성의 결혼 여부라니.

그리고 한편으론 대다수의 30대 여성들이 다양한 상황에서 낯선 이들에게 똑같이 이런 질문을 받는다는 것에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질문을 하는 이들에게 ‘30대 여성에게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란 결혼했는지, 아이 낳았는지가 전부인 것일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만이 여성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닌데 말이다.

왜 어떤 이들은 여성의 생식능력이 쓰이지 못하는 것만 안타까워하고, 여성의 삶이나 잠재력이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을까. 여성은 아픈 사람을 살리는 의료인이 되거나, 새로운 백신을 개발하는 과학자가 될 수도 있고, 글을 쓰는 작가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특별한 무엇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꼭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해내야만 하는가, 우리는 꼭 이 사회의 밑거름이 될 업적을 이뤄야만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무엇이 되기 위해, 냄새나는 거름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우리들은 그 자체로 이 세상에 꽃피기 위해 태어난 존재다. 여성들은 누군가를 꽃피울 거름으로 쓰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여성들 스스로가 세상의 다양한 양분을 먹고 마시며 꽃피고 푸르러야 한다.

이제는 여성들에게 이런 질문을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사실 죽다가 살아난 이 환자들도 생전 처음 보는 간호사의 결혼 여부가 정말 못 견디게 궁금해서 물어봤을까? 다 그렇게 사회화된 거지. 30대 여성들에게 좀 더 의미 있는 질문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만약 본인이 중환자실에서 깨어나서 간호사를 맞닥뜨렸을 때, “아가씨, 결혼했어?” 말고 던지기에 적절한 질문이 뭔지 모르겠다면 몇 가지 추천해주겠다.

“저는 언제쯤 일반 병실에 갈 수 있을까요?”
“제가 어떻게 하면 회복에 좀 더 도움이 될까요?”
“가족들은 제가 깨어난 사실을 알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