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택배노동자, 원청과 대화 단협으로 보장
우체국 택배노동자, 원청과 대화 단협으로 보장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1.03.09 00:00
  • 수정 2021.03.09 0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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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단협에 ‘사회적 합의’ 전면 반영
우정사업본부가 거부 어려운 상시협의체도 운영

[리포트] 우체국본부 단협 의미

2019년 1월 23일, 우체국 위탁배달원들이 택배노동자로서 처음으로 우체국물류지원단과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단협은 노조 전임자 인정, 주5일제(화~토), 여름휴가 보장 등의 내용이 담겼다. 특수고용노동자라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 단협으로 스스로 노동권을 보장하게 된 계기였다.

2021년 1월 29일, 두 번째 단협은 한발 더 나아갔다. 이번엔 원청인 우정사업본부의 참여를 강제하는 상시협의체 운영을 단협에 포함했다. 간접고용 노동자라서 실질적 노동조건을 좌우하는 원청과 직접 교섭할 수 없던 이들이 원할 때마다 우정사업본부를 대화 테이블에 앉힐 수 있게 된 것이다. 특수고용노동자에겐 처음 있는 일이다. 우체국 위탁배달원들이 써낸 그 처음의 의미와 남은 과제를 짚어봤다.
 

우체국 위탁택배 노동자가 '특고노동자 차별철폐' 손피켓을 들고 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지난해 5월 1일 노동절, 택배노조 우체국본부 조합원이 ‘특고노동자 차별철폐’ 손팻말을 들고  드라이브인 집회를 하는 모습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특수고용노동자
노동자도 사장님도 아닌

우체국 위탁배달원은 집배원이 오토바이로 옮기기 어려운 크고 무거운 소포(택배)를 담당한다. 건당 배달수수료를 받는 특고노동자로 우정사업본부(본부장 박종석)의 자회사인 우체국물류지원단(이사장 천장수, 이하 물류지원단)과 2년마다 위탁계약을 맺는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기준 3,757명으로 우체국 택배물량의 약 59.8%를 처리한다. 

우체국 위탁배달원은 민간 택배기사와 같은 구조 아래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동자도 사장님도 아닌 특고노동자이자, 노동조합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아도 진짜사장인 원청과 단체교섭을 할 수 없는 간접고용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특고노동자로서 위탁배달원들은 장시간·고강도 노동을 수행하지만 마음대로 쉴 순 없다. 이들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과 분류작업 시간은 각각 10.2시간, 2시간12분(물류지원단, ’20.9)으로 주50시간을 넘나드는 장시간노동을 수행하고 있다. 민간 택배기사는 각각 13시간, 5시간 이상(고용노동부, ’20.11)이다. 

위탁배달원의 분류작업 시간은 민간 택배기사보다 3시간가량 적지만 노동강도는 높다. 민간 택배 현장에서 분류작업은 허브터미널에서 서브터미널로 배송된 물건들이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오면 택배기사들이 담당 지역별로 가져가는 일을 말한다. 우체국택배는 우정실무원이 적게는 5명 많게는 50명의 물건을 1차로 분류해놓은 가로세로 1m, 높이 1.5m가량의 ‘혼합 파렛(pallet)’에서 위탁배달원들이 직접 배달 구역 물건을 찾아 일일이 분류해야 한다.

배송구역이 민간 택배사보다 넓은 점도 노동강도를 높이는 요인이다. 위탁배달원은 하루 평균 190개, 민간 택배기사들은 313개씩 배송하지만 분류작업 시간을 뺀 배송시간이 약 8시간으로 비슷한 이유다. 윤중현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택배노조 우체국본부 본부장은 “위탁배달원 한 명의 구역에 CJ대한통운 기사 4~6명 정도가 들어와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개인사업자인데 마음대로 쉴 수도 없다. 위탁배달원들은 주5일제지만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해야 해 경조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쉬고 싶을 땐 담당 구역을 용차(대신 배송해주는 차)로 대체해야 한다. 용차 비용은 15만~20만 원 수준이다. 이렇게 한 달 일하면 배송 건당 평균수수료로 1,213원씩 받아 월평균 수입은 488만 원이다. 여기서 노동자가 아니라 부담해야 할 차량 임대비, 부가세, 유류비, 4대 보험료, 식비 등을 빼고 남는 돈은 300만 원 초반대다.

간접고용 노동자
없지만 있는 진짜사장

노동자도 사장님도 아닌 특고노동자로서 어려움뿐 아니라 위탁계약을 직접 맺은 적은 없지만 실질적 노동조건을 좌우하는 원청을 상대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특히 우정사업본부의 물량 통제 문제가 그렇다. 

위탁배달원들은 민간 택배기사와는 다르게 우정사업본부의 경영상 이유 등으로 물량 통제 위협에 자주 노출된다. 노조가 단협에 최소 보장 물량을 명시한 이유이기도 하다. 박종식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물류택배산업의 노사관계 평가와 전망>(고용노동연구원, 2020)에서  “특히 기존 우편물량이 적고 택배물량이 많은 지역에서 택배위탁이 증가하면서 우정사업본부의 위탁예산이 부족해지면, 기존의 위탁 물량을 예산절감 목적으로 정규직 집배원에게 할당하면서 우체국 택배배달원들의 물량이 줄어들어 수입이 감소할 뿐 아니라 고용불안이 발생할 수도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도 관리 이원화 문제는 발생한다. 우정사업본부가 위탁배달원의 기준 물량을 190개로 보장하겠다는 입장을 내놔도 물류지원단이 전담하는 물류센터 관리자가 다음날 ‘우정사업본부의 공문을 받은 적이 없다’는 식으로 나오면 위탁배달원들은 당장 손쓸 도리가 없다. 위탁배달원들은 우정사업본부가 관리하는 집중국, 물류지원단이 담당하는 물류센터, 우정사업본부가 관리하지만 각 우체국 국장, 과장 등의 입김이 센 총괄국(우체국) 세 곳에서 일한다. 지원하는 지역 사정에 맞게 셋 중 한 곳으로 배치된다.
 

(왼쪽부터) 윤중현 택배노조 우체국본부 본부장, 천장수 우체국물류지원단 이사장, 김태완 택배노조 위원장이 지난 1얼 29일 두 번째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 택배노조 우체국본부
(왼쪽부터) 윤중현 택배노조 우체국본부 본부장, 천장수 우체국물류지원단 이사장, 김태완 택배노조 위원장이 지난 1얼 29일 두 번째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 택배노조 우체국본부

단체교섭으로
실질적 보호장치 마련

이런 상황에서 위탁배달원들은 최근 두 번째 단체협약을 통해 스스로 노동조건을 보호할 수 있는 실질적인 보호장치를 만들어 주목받고 있다. 우체국본부와 우체국물류지원단은 2019년에 이어 2021년 1월 29일 두 번째 단체협약을 맺었다. 윤중현 본부장은 “1차 단협은 협약 체결 자체가 목적이었다면 이번엔 노동조건 관련 쟁점을 훨씬 많이 담아냈다”고 했다. 15조 21항으로 구성된 1차 단협에 비해 2차 단협은 33조 68항으로 더 구체적인 내용들을 포함한다.

의미① 사회적 합의 전면 수용

2차 단협은 지난 1월 노사정이 도출한 <택배기사 과로사 대책 사회적 합의기구 1차 합의문>을 전면 수용했다. 사회적 합의기구는 택배노동자들의 잇단 과로사를 막기 위해선 택배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데 정부, 종사자, 사업주, 대형화주, 소비자단체 등이 뜻을 모아 지난해 7월 출범했다. 

1차 합의문에는 장시간노동의 주원인으로 지적되어온 분류작업을 택배노동자의 기본작업 범위에서 제외하고 사측이 전담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등 과로 방지를 위한 내용이 담겼다.

우체국본부는 사회적 합의 결과를 단협 제7조(혼합파렛 해소)에 담아 합의 이행을 사측이 강제할 수 있도록 못 박았다. 단협은 취업규칙이나 근로계약보다 우선(노동조합법 제33조)한다. 윤중현 본부장은 “이번 협약은 택배노동자 처우 개선 관련 공론화 과정을 단협으로 완성했단 의미가 있다”며 “노조는 사측이 관련 내용을 이행하지 않을 시 단협에 근거해 소송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택배노조의 전략이기도 했다. 택배노조는 민간택배사, 우정사업본부 등이 참여하는 사회적 논의기구의 결과를 이행의 강제성을 띤 단체협약으로 완성하겠단 목표를 세운 바 있다. 그 과정에서 택배노조는 협약 막바지에 총파업 카드 등을 꺼내며 사측을 압박해 공공기관인 우정사업본부와 물류지원단이 결국 사회적 합의를 이행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 잇따른 과로사로 택배노동자들을 강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도 공공기관이 무시하지 못할 요인이었다.

의미② 원청 포함 상시협의체 운영 

2차 단협은 무엇보다 원청이 함께하는 상시협의체를 운영하기로 노사가 약속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 우체국본부-물류지원단-우정사업본부 세 주체는 정당한 사유 없이 대화를 거부할 수 없는 강제력을 띤 상시협의체를 운영하기로 했다. 

▶제26조(상시협의체)
① 상시 물량유지 등을 위해서 노사당사자는 3자 상시협의체를 운영한다.
② 당사자 일방이 필요 시 상시협의체의 개최를 요청하였을 경우, 상대방은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할 수 없고, 거부 시 그 사유를 즉시 상대방에게 통보한다. 

노조가 직접계약 관계인 지원단과 단체교섭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우정사업본부를 노사관계의 주체로 단협을 통해 명확히 포함한 것이다. 윤중현 본부장은 “어떻게 보면 상시협의체 운영이 이번 단협의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며 “특고노조 중 원청-하청-재하청으로 이어지는 3자가 만나 단협에 의한 강제력을 보장하는 협의체를 구성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이야기했다.

세 주체는 최근 두 차례 상시협의체에서 만났다. 각각 3명씩 총 9명이 모인 자리였다. 윤중현 본부장은 지난 2월 5일 열린 첫 상시협의체 관련해 “지원단과 협상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우정사업본부와 협의해보겠습니다’였다. 논의가 겉돌 수밖에 없었다”면서 “이번 상시협의체에서는 결정 권한을 가진 집배과장이 앉아 있기에 우리의 의사를 직접 전달하고, 우체국본부의 실질적 고민이 무엇인지 알고 대화 자리에서 결론이 나와 긴장감을 높일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리고 지난 3월 3일 2차 상시협의체에서 윤중현 본부장은 “노조가 요구했던 ‘분류작업 개선 이행계획서’와 세부 시행 지침 마련을 위한 ‘시범국 운영’을 사측이 수용하며, 3차 상시협의체에서 구체적으로 논의해보자”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들이 상시협의체에서 풀어야 할 첫 과제는 분류인력 투입 관련 세부 규칙을 정하는 것이다. 사회적 합의기구 합의문에 따르면 사측은 ▲분류작업 설비 자동화 추진계획 수립 ▲설비 자동화 완료 전까지 분류인력 투입 ▲둘 다 어려우면 택배노동자에게 분류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물류지원단 측은 지난해 12월 기준 전체 평균 5.3명당 1파렛으로 물량이 분류되고 있으며, 지난해 9월(6.2명당 1파렛) 대비 개선되었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개선할 계획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사회적 합의기구의 결정은 원칙적으로 (팀별이 아닌) 개인별 분류를 하는 것인데 민간택배사와 우체국택배의 작업장 환경이 달라 노사가 기준에 관해 구체적으로 논의를 더 해야 한다”며 “우정사업본부가 합의기구에서 결정한 내용을 최대한 적극적으로 이행해야 한다는 입장은 확고하다”고 이야기했다.

노조 측은 현실적으로 개인별 분류가 어려울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가 총괄국을 꾸준히 폐국하고 집중국을 늘리고 있지 않는 가운데 2011년 이후 물량은 10%대로 증가하고 있어서다. 물량을 수용할 물리적 공간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물량이 꾸준히 늘어나니 분류작업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정된 공간에 분류인력만 계속 증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위탁배달원들의 분류작업에 대한 값을 매기는 과정이 필요하다. 상시협의체에선 이 같은 우체국택배 현장의 현실적 고민들을 하나씩 풀어나갈 예정이다.

동시에 노조는 개인사업자 신분이라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중현 본부장은 “위탁배달원 약 4,000명을 직접고용하면 690억 원이 추가로 든다고 한다. 그만큼의 돈이 우리의 근로조건 개선에 사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4대 보험료, 차량 유지비, 식대 등 당연히 사측이 써야 할 비용들을 쓰게 만들 예정”이라며 “항상 특고노동자 최초라는 자부심을 갖고 두려움 없이 원청을 상대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